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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앞에 선 의료…침묵은 공범

발행날짜: 2025-08-04 05:00:00

의약학술팀 최선 기자

최근 38도의 무더위를 겪으며 '지속 가능성'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자꾸 맴돌았다. 석유 기반의 산업 구조, 끊임없는 소비 행태가 탄소를 쏟아내고 있는데 이대로라면 언젠가 우리 삶이 버티지 못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과연 이상기후 앞에서 의료 영역만은 예외일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닿았다.

사실 기후와 의료는 불가분의 관계다. 기록적인 폭염으로 온열질환자가 급증하는 상황은 의료가 더 이상 기후 위기의 바깥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실제로 에어컨은 45도를 넘기면 제 기능을 상실한다. 여름철 병원에서 오히려 온열질환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관리 불능'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미세먼지 역시 심혈관계 질환과 신장질환을 악화시키는 인자로 꼽히는 등 환경은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홍수, 태풍, 산불 같은 기상이변은 기존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차단하고, 전력이나 식수 공급마저 불안정하게 만들어 치료를 이어가기 어렵게 한다. 단순히 '더워지고 나빠진다'가 아니라, 이미 질환의 발생과 분포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환자의 치료 과정에서 소모되는 자원, 발생되는 온실가스가 다시금 기후 위기를 부추긴다.

헬스케어 부문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4% 이상을 차지하며 일부 지역에서는 8%에 달한다는 통계는 의료가 기후 위기를 촉발한 한 축임을 보여준다. 질환자가 늘어나면 의료 현장은 더 많은 진료와 처치, 약제와 의료기기를 투입해야 하고 이는 오염을 부추긴다. 병실의 전력 사용, 냉난방 가동, 일회용 주사기와 수액 세트, 투석기와 필터 등은 모두 자원 소모로 이어진다. 의료 폐기물은 재활용이 불가능해 소각되는 경우가 대부분. 이 과정에서 다시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장기적·집약적 치료는 자원 소모와 환경 부담이 클 뿐더러 진료, 연구, 약제, 의료기기, 병원 운영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와 폐기물도 결코 적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후 변화는 질환을 늘리고, 질환의 증가는 진료 자원의 소모를 부추기며, 그 소모가 다시 기후 변화를 악화시키는 '악순환 고리'를 만들어낸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즉 의료는 기후 위기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다.

신대체요법은 상징적인 사례다. 혈액투석은 한 번에 120리터 이상의 물을 사용하고, 주 3회 치료를 받는 환자라면 연간 1만 리터 이상의 물이 소비된다. 여기에 전력, 소모품, 폐기물이 겹친다. 만성 신부전 환자가 늘어나면 환경 부담도 함께 커지는 구조다. 이처럼 특정 치료가 환경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게 되면, '환자를 살리는 일과 환경을 살리는 일이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대한신장학회가 내놓은 '지속가능한 신장치료 권고안'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Green Nephrology'라는 이름 아래 학회는 투석의 자원 사용을 줄이고, 폐기물 관리 지침을 강화하며, 병원 시설 차원의 효율 개선까지 포괄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학회가 환자 진료만이 아니라 환경적 책임까지 고민하는 모습으로, 다른 학회에도 생각할꺼리를 던져준다.

결국 기후 위기와 의료의 관계는 단순히 '환자가 더워서 힘들어진다' 수준이 아니라는 것. 기후 변화가 질환을 불러오고, 늘어난 질환이 의료 자원 소모를 확대하며, 그 결과로 다시 환경이 파괴되는 순환을 끊는 건 정치만의 몫이 아니라는 메시지다. 환자를 지키는 길과 환경을 지키는 길은 결코 별개가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의학회가 기후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거대 담론이 아니라 책무라고 판단할 수 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우리 사람은 못 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 지금 의료를 둘러싼 상황에 빗대자면 이렇게 고쳐 쓸 수 있을 것 같다. "기후 위기의 파수꾼이 되지 못하더라도, 가해자로 남지는 말자." 침묵은 공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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