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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의 스코폴라민

부모님께서 배를 타고 3박 4일간 여행을 다녀오셨다. 파도를 넘는 것보다 산을 넘나드는 게 익숙한 분지에 사셔서 그런지 부모님은 여행 초반부터 배를 타야 한다는 것에 걱정이 많으셨다. 그 무렵 이동 경로를 예측하기 힘든 태풍이 일본에서부터 올라오고 있다는 뉴스도 태산 같은 걱정에 한몫했다. 다행히 똑같은 배를 타고 똑같은 목적지에 다녀온 경험이 있던 나는, 여행 가시는 부모님의 손에 멀미약을 쥐여드렸다. 왕복 2알씩, 두 분께 총 4알을 챙겨 드렸다.여행을 다녀오신 부모님의 표정은 밝았다. 여행 전 말썽꾸러기였던 태풍은, 여행 기간 조용히 사그라들어 둘도 없는 기특한 자식이 되었고-무소식이 희소식인 여느 자식들처럼-, 그 덕에 부모님의 휴대전화 갤러리엔 청명한 하늘색과 푸르른 초록색이 넘쳐흘렀다. 여행이라는 상황이 주는 특유의 다정함과 애틋함에, 평소에는 자주 보이지 않는 하트 손동작들이 사진에 즐비했다.부모님의 신명 나는 사진 설명과 여행 이야기를 한창 듣다 보니 괜스레 내 기분도 푸릇푸릇해졌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의례적인 말로 부모님께 이번 여행에서 힘들었던 건 없으셨냐고 여쭤봤다. 부모님은 몇 가지를 툭툭 말씀하시다가-택시 기사님이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시더라. 등등-마지막에 한 말씀을 내뱉으셨다. 멀미약이 독하더라. 먹고 나니까 한동안 잠도 오고 어지럽더라.부모님은 말의 뜻을 몸소 보여주시려는 듯, 이른 저녁부터 주무시러 방에 들어가셨다. 스코폴라민. 부모님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내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단어만 떠올랐다. 별다른 수식어 없이 정말 깔끔한 단 하나의 단어, 스코폴라민. 나는 어머니의 핸드백을 뒤져 네모반듯한 멀미약 상자를 서둘러 꺼냈다.그리고 뒤를 돌려 성분 표를 살펴보았다. 예상대로 스코폴라민이 그곳에 적혀 있었다. 근데 이 약이 왜 잠을 오게 하더라. 지난 학기에 배운 약리학 강의 슬라이드들이 머릿속에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검은 글씨와 흰 배경이 서로 섞이더니 결국 회색 조의 멍한 이미지로 머리가 가득 찼다. 익숙한 회색이었다. 마음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여름방학이 다가오기 몇 주 전, 쏟아지는 시험 일정에 지칠 대로 지친 동기와 함께 학교 앞 크림새우 집에 갔었다. 주문 즉시 갓 튀겨주시는 집이어서 우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빠르게 크림새우 하나를 주문했다. 그리곤 새우가 기름에 들어가는 동안 잠시 숨을 돌렸다. 머릿속에서 조금 전까지 하다 나온 공부 내용들이 소용돌이치다 이내 가라앉았다.그러고 나니 그 무렵 입버릇처럼 하던 말들이 여지없이 툭툭 튀어나왔다. 정말 어떻게 이걸 다했는지 모르겠다. 얼마 남지 않았다. 학점이 어떻게 나올까. 이번에 등수표가 엄청 촘촘하더라. 등등. 크림새우가 생각보다 빨리 나오지 않았던 탓일까, 그날은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넘어 평소와 다른 주제들도 빈 테이블에 올려지기 시작했다.  "나는 고등학생 때랑 지금이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 그때는 내신 따려고, 그 등급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면서 공부했었는데. 지금도 시험 등수에, 학점에만 몰두하지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 하지 않는 것 같아"내뱉고 나니 맞는 말이었다. 너무 맞는 말이어서 잠시 가라앉은 머리는 다시금 뿌옇게 부유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내 지난 학기는 그랬다. 새로운 개념을 배우고 환자의 케이스에 적용해 보며 지식의 유용성을 확인하는, 그런 즐거움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를 계속 나아가게 했던 힘은 그런 즐거움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고등학생 때 느꼈던 불안함이었다.밀려오는 시험과 쏟아지는 성적표, 평가의 연속에서 내가 생각하는 어떤 기준치 이상의 점수를 받아내야 한다는 조급함. 그 만들어진 감정들은 내 시선을 오로지 교수님이 강조하신 빨간 문장에 묶어두고, 내가 흥미로워하는 것에는 시선이 새어 나가지 않게 붙들었다. 어쩌면 그 과정은 내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알아낼 힘을 서서히 뺏어 나가는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언제부터 그 기준이 세워진 걸까. 기준은 끊임없이 자가 복제를 반복해 내가 하는 거의 모든 것에 세워져 있다. 단순히 시험 성적과 등수 등 수치적인 것뿐만이 아니다. 일주일 동안 공부했으면 적어도 이 정도는 알아야지, 어제 복습을 그렇게 했는데 적어도 이건 외우고 있어야지 등 구체적인 행동까지 내겐 선이 생겨버렸다. 촘촘하게 세워진 잣대들은 나를 정해진 트랙에서 한 칸, 또 한 칸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었지만 잠시 딴 길로 새려고 하면 감정을 회색 조로 만들어 답답함을 느끼게 했다.선으로 둘러싸인 한 칸에 가까스로 안착하면 마음은 잠시 안정감을 되찾았다가 다시금 울렁였다. 그다음 칸으로 나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기준이란 게 생긴 이상, 그리고 그것이 내 동력이 된 이상, 내가 느끼는 뿌연 무채색의 감정들은 당연한 것이 되었다. 오히려 그 감정들이 다시금 한 칸에 들어가야 할 당위성을 제공했다.어쩌면 부모님의 이야기에서 단순히 스코폴라민 단어만 떠올리고, 그게 왜 졸음을 유발하는지 설명하지 못했던 것. 그리고 크림새우를 기다리며 친구와 나눈 대화에서 내 머릿속이 또다시 잿빛으로 변했던 것 역시 그 이유였을지도 모른다.나는 가끔 기준이 부재했다면 어떨지 생각한다. 하지만 그랬다면 내가 지금까지 나아갈 수 있었을까. 어느 순간엔, 그 틀에서 벗어난 생각들을 거리낌 없이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준과 빛바랜 감정들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줬다는 양가적인 감정이 혼재한다.부모님이 주무시러 들어간 그날 밤, 어머니 핸드백 속 약상자를 꺼내 성분 표를 확인하고 끝내 스코폴라민의 기전을 찾아본 것은 결국 내 안에 있던 그 '기준' 덕분이었다. 알지도 못하면서 대충 넘어가기는 싫었던 조바심, 최소한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내 안의 엄격한 잣대가 없었다면 나는 그저 부모님의 피곤함으로 치부하고 그날 일을 넘겼을지도 모른다.기준은 나를 예리하게 다듬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지만, 동시에 나를 끝없는 회색빛 트랙 위에 가둬놓는다. 트랙은 끝이 없다. 이전의 칸과 앞으로 가야 하는 칸, 그리고 지금 내가 서있지만 빠르게 넘어서야 하는 칸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촘촘한 선이 만드는 모눈종이가 있어야 나는 비로소 내 좌표를 찍을 수 있었다. 나는 기준이 만들어준 궤도에서 벗어나는 것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고 있을 뿐이다.다음 칸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나는 당연하게 또다시 회색빛 감정을 선택할 것이다. 멀미를 막아주는 스코폴라민이 어지러움을 남기듯, 나를 나아가게 하는 이 기준 역시 무채색의 부작용을 동반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선을 벗어난 삶을 동경하면서도, 선 밖에서는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조차 잡지 못하는 나는 아직 기준을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하지만 나는 비로소 무채색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용기 내어 이 부작용에 눈을 맞춰본다. 정해진 궤도를 따라 걸으며, 촘촘한 격자 사이에 갇혀 놓치고 있던 질문들을 조금씩 칸 안으로 끌어들인다. 질문들이 들어찰수록 칸은 조금씩 넓어진다. 나는 여전히 트랙 위에 있다. 스스로 만든 검은 테두리지만, 이제는 그 선 너머를 바라보며 다음 칸을 향해 발을 내디뎌 보려 한다.  
2026-08-31 05:00:00젊은의사칼럼

완전히 고쳤다는 말

본과 4학년 마지막 실습을 위해 서울로 이사 온 지 이 주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벽 한쪽과 천장의 경계에 새로 생긴 물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까치발을 하고 손으로 꾹꾹 촉진하자 습하고 들뜬 벽지가 푹푹 눌렸다. 불길한 예감이 스쳐 곧바로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집주인은 바로 수리 기사를 부르겠다고 했다. 집에 늦게 돌아오자 젖은 벽지는 바삭하게 말라 있었다. 별일 아니었어,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잠에 들 수 있었다.그러나 이튿날 새벽에 나를 깨운 건 톡, 톡 창문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였다. 전등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서 바닥에 고여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닦을 생각도 못 하고 망연자실하게 주저앉았다. 이틀 만에 다시 우리 집을 방문한 수리 기사는 문제의 윗집을 둘러보다가 고개를 종종 갸우뚱했는데 그때마다 인터넷에서 본 누수는 쉽게 안 잡힌다느니, 벽을 다 뜯어내서야 겨우 잡았다느니 하는 글들이 떠올라서 가슴을 졸였다."사장님 어디서 새는 거예요?""잘 모르겠네…분명 여기가 새서 정말 뜯어고쳤거든요?"사장님이 발로 탁탁 치는 곳에는 바닥을 뜯고 시멘트로 메꾼 자국이 있었고,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그 위에 물기가 스며들어 있었다. 고조되는 불안에 나는 질문을 쏟아냈다."이번에 수리하면 고쳐지는 거예요? 수리해도 안 잡힐 수도 있어요?""아뇨 뭐…. 한번 볼게요, 봐야죠"미적지근한 대답을 하고 사라지는 수리 기사 뒤로 남아 있는 무수한 질문을 삼키느라 속이 메슥거렸다. 답답한 마음에 벽지를 다시 촉진해 본다. 더 축축해지고 이제는 옆으로 번지기까지 한다. 벽을 이번에는 퉁퉁 타진해 본다. 그렇게 해도 이 콘크리트 안으로 뭐가 지나가는지, 어디서 뭐가 터져서 새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다. 이 건물에 조영제를 주입해서 통째로 CT에 넣어보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그런다고 보일지도, 보인다고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이제 얼룩은 더 빠른 속도로 번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 등을 타고 내려오는 기분이 들어, 나는 외래 진료실에서도 허리를 곧게 펴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신환이 진료실로 들어왔다. 난소 문제로 타 병원에서 결장절제술을 한 후로 화장실에 너무 자주 가고 싶은 것이 걱정되어서 찾아온 환자였다. 교수님은 왜 그런 증상이 있는 건지, 지금 먹고 있는 약은 어떤 건지, 약은 어떨 때 먹으면 되는 건지 찬찬히 설명해 주셨고, 환자는 자신이 먹던 약과 같은 약 하나만 처방받아 가면서도 환한 표정으로 연거푸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면서 진료실을 나갔다.이어지는 따뜻한 분위기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을 때쯤, 교수님이 왜 온 건지 의아해하시면서 다음 환자를 불렀다. 문이 왈칵 열리고 한 여자가 뛰어들어와서 바로 침대 위에 엎어졌다. 뒤따라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이 쫓아 들어왔다. 환자는 지난달 교수님께 치루 수술을 받은 환자였는데 재발해서 외래를 앞당겨서 방문한 것이다."아니, 왜 다시 새는 거예요? 그때 완전히 없앤 게 아니에요?""그때는 깨끗하게 다 수술했습니다"환자의 남편은 답을 스스로 정해서 들어온 성난 사람의 목소리였다."그러니까, 수술이 실패했다는 거잖아요. 그렇잖아요"날 선 남편의 말에 교수님도 더 참지 않으셨다. 그렇게 환자를 보내고 냉랭한 진료실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간호사 선생님이 문을 조심히 열었다."교수님 진료 의뢰서 달라고 하셔서…. 다른 병원으로 가시겠다고…"나는 성난 환자의 남편과 다정한 교수님의 입장이 모두 이해되는 모순적인 마음에 빠졌다. 나도 곧, 최선을 다해도 결과가 기대와 다를 수 있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환자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내 몸의 일이 된다면 나도 여지없이 그들이 될 것이다. 나는 다시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번 수리했는데 다시 새는 것이 이해가 안 되고, 그 수리 기사가 제대로 하는 건지 믿음이 잘 가지 않으며, 이번에도 재발할까 봐 걱정되고 힘들다고 호소하고 싶었다."그분이 그 집을 지은 분이라서 제일 잘 아는 분이세요. 사실 다른 사람도 불러봤는데, 구조를 잘 몰라서 자기가 손대기 어렵다고 하셔서… 이번 한 번만 믿어 보는 게 어때요?"할 말이 없었다. 그 집을 지은 사람도, 그 구조를 가장 잘 아는 사람도 물이 새는 이유를 단번에 잡아내지 못했는데 인간이 만들지도 않은 사람의 몸은 어떨까. 어떤 문제는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최선을 다해도 다시 새고, 다시 곪는다. 의사가, 혹은 수리 기사가 건네는 "완전히 고쳤습니다"라는 말은 앞으로 영원히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신이 내려준 보증서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내가 가진 지식과 기술을 동원해 당신의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그리고 다시 무너지더라도 기꺼이 다시 고쳐내겠다는 선언이다.그 선언은 언제나 부정당할 수 있고 그때 환자 의사 관계는 위기를 맞는다. 그때 다시 곪았을 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원인을 찾아내 이번에야말로 완전히 고치려는 의사, 그리고 그 목소리를 믿어주는 환자가 모두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같은 수리 기사를 기다리기로 했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집주인의 말에 깊은 책임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다행히 공사를 거친 후로 물은 더 새지 않는다. 벽지까지 다시 발라 주시겠다고 해서 집에 돌아와 보자, 같은 색의 벽지가 없었던 탓인지 드레이프 같은 초록색의 벽지가 우습게 발라져 있었다. 그 벽을 바라보면서 그 부부를 생각한다. 그들이 '완벽한 수술'을 찾아 여러 병원을 전전하고 있지 않기를, 더 이상 새지 않는 일상을 이른 시일 내에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곧 의사가 될 나 역시, 나의 수고가 빈번히 무용으로 돌아가더라도 기꺼이 다시 초록 벽지를 덧대어 고쳐주는 끈질긴 의사가 될 수 있기를 다짐한다.
2026-08-24 05:00:00젊은의사칼럼

삶을 사랑한다는 것

나는 왜 의대생 단체 '투비닥터'에 들어왔던가. 의정갈등에서 느낀 무력감에서 출발해 의대생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던가, 글을 쓰고 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는 식의 여러 그럴 듯한 이유들을 갖다 붙일 수는 있겠지만, 가장 솔직한 이유는 그저 "무언가 해야 할 것만 같아서"였다. 예기치 않은 휴학 때부터였던가, 아니면 더 오래 전부터 나는 늘 무언가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한다는 원인 모를 강박에 시달렸다. 가만히 쉬는 것을 무엇보다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그 어느때보다 빠른 속도로 변모하고 있는 세상에 발맞추려면 부지런히 뭐라도 하나 더 배우고, 어떤 경험이라도 하나 더 쌓아야지, 이 젊은 날의 하루하루를 릴스나 쇼츠만 소비하며 보내는 것이 너무나도 아깝게 느껴졌다.고맙게도 이런 삶을 '갓생'이라는 멋진 말로 포장해주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근사한 말로 나의 이런 강박적 열정을 표현하기에는 마음 한 구석이 영 찔리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건 번지르르해 보이는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뚜렷한 동기와 목적성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025년 4월 '투비닥터'에 들어온 이후, 무어라도 경험을 더 쌓아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늘 새로운 영역을 기웃거렸다. 선배 의사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하고, 학회 행사에 참석하고, 봉사활동을 다니며 귀감이 될 만한 타인의 인생을 부지런히 탐색했다. 하지만 올해 봄, 이런 경험들을 함께했던 팀원들이 하나둘 OB가 되어 단체를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하는 회의감에 휩싸였다.메디컬 코스메틱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던 한 팀원은 투비닥터 홍보팀에서 브랜딩을 익히고, 나와 함께 피부과 전문의이자 닥터지(Dr. G) 브랜드의 창업자인 안건영 대표님을 만나 인터뷰하는 등 그녀의 목적을 다한 뒤 떠나갔다. 다른 이들 역시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투비닥터'라는 무대를 마음껏 활용하여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보고, 그럴듯한 포트폴리오를 쌓아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그러나 나에게는 투비닥터의 '다음 단계'가 없었다.학문에 빠져 연구에 열을 올리는 사람, 사업가적 야망으로 창업 동아리와 경진대회에 힘을 쏟는 사람, 글쓰는 행위 자체를 사랑해 훌륭한 매거진과 칼럼을 써내는 사람... 내 곁에는 저마다의 동력으로 빛나는 여러 동료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 무엇에도 해당되지 않는 것 같았다.학회 행사에 참석하지만 학구열 때문은 아닌 듯했고, 창업 관련 행사에 얼굴을 비추면서도 뚜렷한 계획을 품은 창업가도 아니었으며, 편집팀에서 일하며 여러 매거진을 함께 발간했지만 글 쓰는 행위에 깊이 매료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것들을 타인의 인정을 바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저 바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이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 덜컥 두려워졌다.올 여름, 한 권의 책에서 뜻하지 않게 그 질문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에 대해 '진정으로 삶을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대부분은 그게 무슨 뜻인지 잘 안다. 그 말을 들으면 우리는 성장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되는 아이, 형태를 갖추어가는 아이디어, 한창 성장 중인 조직에 매력을 느끼는 누군가를 떠올릴 것이다​​"—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바로 사랑이다. 생산적이고자 하는 이 지독한 열망은 역설적이게도 생산적인 것과는 아득히 거리가 멀어보이는 사랑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아, 나는 그저 나의 삶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만들어낸 허물을 벗겨내고 또 다른 내가 되고자 하는 이 끊임없는 갈망은 학구열도, 성취욕도, 인정욕도 아닌 바로 '삶에 대한 사랑'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삶을 사랑하기에 조금이라도 더 성장하고 늘 변화하고 싶었던 것이다. 생명력이 넘치고 성장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기에,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었을 뿐이다. '삶을 사랑한다'는 표현은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도 추상적인데, '삶'이라는 추상적 관념이 하나 더 얹어졌으니 말이다. 그러나 에리히 프롬의 철학을 이해하며 깨달은 것은, 사랑은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는 점이다.그것은 삶을 대하는 꾸준한 태도이자, 한 사람이 지닌 근본적인 성질에 가깝다. 사랑은 세상과 타인을 향한 '근본적 호감'이며, 사랑 수 있는 능력 그 자체를 뜻한다. 특정한 대상 하나에 한정된 사랑은 공생적 집착이나 소유욕에 가깝다. 한 대상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곧 인간 전체와 그 삶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다. 주어진 학업을 제대로 완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찬 의과대학에서, 다양한 분야에 눈을 돌리며 새로운 경험을 갈구하는 이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너는 왜 그렇게까지 하는거야?"나는 이런 질문에 이제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내게 주어진 이 삶을 너무나 사랑해서!"
2026-08-18 05:00:00젊은의사칼럼

완벽한 문장들 사이에서 내 마음을 묻다 

어느 순간부터 인공지능 없이 글 쓰는 법을 잊어버렸다.동아리 톡방에 공지를 올리기 전에도, 교수님께 이메일을 쓰기 전에도, 밤새 작성한 보고서를 제출하기 전에도 인공지능의 검수를 받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제미나이나 챗GPT의 "이 정도면 매끄럽고 완성도 높은 글입니다"라는 승인이 없으면 솔직히 내 글에 선뜻 자신이 서지 않는다. 얼마 전, 예전에 작가를 꿈꾸며 노트북 구석에 끄적여두었던 소설 구상을 꺼내어 보았다. "몸이 아픈 사람에게 장기를 기증하듯,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기억을 기증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던 이야기다. 문득 호기심이 생겨 AI에게 동일한 글감을 주고 "가장 흡입력 있고 더 읽고 싶어지는 소설의 첫 시작을 200자 내외로 써달라"고 요청했다.다음은 두 개의 원고다.A. 기억기증자를 찾습니다.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싶었던 기억, 누군가 손을 내밀어 주기를 바랐던 기억,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았던 기억, 내 속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던 기억, 모든 것을 부수어 버리고 싶었던 기억을 찾습니다.진한 기억, 옅어진 기억, 따뜻한 기억, 차가운 기억, 달콤한 기억, 어떤 맛의 기억이든 괜찮습니다.기증하시는 기억으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겠습니다. 기억 기증을 원하시는 분께서는 아래 번호로 연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B. 스무 살의 겨울, 나는 내게 가장 눈부셨던 바다의 기억을 잘라내어 팔았다. 다음 날 거짓말처럼 파도 소리가 귓가에서 사라졌고, 대신 내 통장엔 석 달 치 월세가 찍혔다.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가장 소중한 걸 버릴 수 있냐고. 하지만 절망에 짓눌린 누군가에겐 내 흘러간 행복이 살아갈 단 하나의 숨구멍이 된다. 오늘 밤, 또 한 번 내 유년의 온기를 사러 올 손님을 기다린다."기억을 삽니다. 당신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내 오늘을 견딜 수 있게"둘 중 어느 것이 사람이 쓴 글이고, 어느 것이 AI가 쓴 글일까? 블라인드 테스트처럼 던져지는 이런 질문은 요즘 기술 행사나 강연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다.사실 답은 간단하다. A는 내가 예전에 직접 고민하며 썼던 원고이고, B는 AI가 출력해낸 문장이다. 하지만 내가 정말 정답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그래서 둘 중 무엇이 더 좋은가?'에 대한 판단이다. 글을 생성해내는 건 AI의 영역이라 쳐도,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가치 판단을 내리는 건 여전히 인간의 몫이어야 하지 않을까?나 역시 평소 습관처럼 AI에게 두 문단을 보여주고 "100점 만점으로 객관적으로 평가해줘"라고 부탁해 보았다. AI는 망설임 없이 A에게 72점, B에게 94점을 주었다. B의 서사가 더 감성적이고 몰입감이 높다는 이유였다.하지만 나는 B를 읽는 내내 찜찜함을 지울 수 없었다. 특유의 전형적이고 매끄러운 AI식 문체도 어색했지만, 무엇보다 서사의 개연성에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AI에게 다시 물었다."근데 B에서 주인공은 바다의 기억을 '팔았다'고 했는데 왜 귓가에서 파도 소리가 사라지는지, 그리고 기억을 파는 입장인데 왜 제일 마지막에 남을 향해 '기억을 삽니다'라고 말하는지 논리적으로 잘 이해가 안 돼"그러자 AI는 기다렸다는 듯 태도를 바꾸며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더니, 점수를 다시 수정해 내놓았다.A: 85점 / B: 58점이 피드백이 정당한지 여부를 떠나서, 한 순간에 평가를 번복하는 AI의 변덕스러움을 보며 약간의 서운함을 느꼈다. AI는 너무나 쉽게 내 질문의 뉘앙스에 길들여지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의견'을 맞춰버린다. 문제는 내가 이런 AI의 판단에 계속 의존하다 보면, 결국 '내가 무엇을 좋다고 느끼는지'에 대한 감각과 취향 자체가 흐릿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AI가 나보다 훨씬 빠르게 문장을 다듬고, 그럴듯한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매끄러운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인 것 같다. 이 글이 정말 내 마음을 울리는지, 이 아이디어가 진짜 살아있는 가치가 있는지 알아보는 눈까지 AI에게 내어주고 싶지는 않다.정제되지 않은 투박함, 정답에서 살짝 비껴간 엉뚱한 상상력, 그리고 막막한 백지 앞에서 밤새 고민한 끝에 빚어낸 나만의 문장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마음. 우리는 이 모든 과정을 '취향'이자 '가치관'이라 부른다.생성하는 능력보다 무서운 것은 판단하는 능력, 즉 취향을 잃어버리는 일이다.가치관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고집을 부려보기도 하고, 때로는 잘못된 생각에 좌절하거나 타인의 의견에 흔들려보는 치열한 과정을 거치며 단단해진다. 그 고민의 시간 속에서 비로소 "나는 이것이 좋다", "이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자신만의 기준이 생긴다.AI가 아무리 완벽하고 화려한 문장을 작성해 준다 한들, 그것이 내 마음을 흔들지 못한다면 "별로"라고 털어놓을 수 있는 용기. 나만의 감각으로 가치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독자적인 '취향'을 지켜내는 것.인공지능을 쓰지 말자는 거창한 주장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앞으로도 끊임없이 AI에게 아이디어를 묻고 문장을 다듬어 달라고 부탁할 테니까. 다만 AI가 만들어낸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이것이 정말 좋은지, 내 마음에 울림을 주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가치관만큼은 내려놓고 싶지 않다. AI가 대신 써줄 수 없는 것은 결국 '무엇이 좋은지'를 알아채는 나만의 눈, 그 취향일 테니까. 
2026-08-10 05:00:00젊은의사칼럼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는다

8분이었다. 몇 주 전 자교 포트폴리오 경진대회의 발표 시간. 방학 동안 나간 대회들과 지난 몇 년간의 활동을 슬라이드에 얹어보니 도저히 8분에 들어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분량 문제라고 생각했다. 문장을 다듬고 슬라이드를 합쳤다. 그래도 넘쳤다.그제야 알았다. 나열해서는 8분이 아니라 80분을 줘도 안 되는 것이었다. 무엇을 남길지 정하려면 먼저 "이것들을 관통하는 게 무엇인가"에 답해야 했는데, 나는 그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했다. 발표 준비를 하다 말고 며칠을 그 질문에 붙들려 있었다.자유를 찾겠다며, 또 심사받는 곳으로 갔다이번 방학에 하고 싶었던 건 분명했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듯, 나는 내 언어가 의대 밖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이번 목표는 하나였다. 의료적 타당성 말고 다른 언어로도 내 생각을 끝까지 설명해내는 것. 팀 안에서 "그건 의학적으로 맞습니다"만 말하고 물러나는 사람이 되지 않는 것.그래서 고른 것이 외부 대회였다. 해커톤 두 번, 그리고 연구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챌린지. 신청서를 넣을 때는 스스로 꽤 능동적이라고 여겼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학점도 나오지 않고, 오히려 시험 공부 시간을 깎아먹는 일이었으니까.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이상하다. 나는 왜 하필 '대회'를 골랐을까. 대회에는 마감이 있고, 심사위원이 있고, 등수가 있다. 정해진 커리큘럼에서 벗어나겠다고 하면서 내가 고른 것은 또 하나의 평가받는 구조였다. 솔직히 말하면, 마감이 없었다면 나는 이번 여름에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신청서를 다 써놓고도 며칠을 미뤘다. 시험 일정 때문도, 학점 때문도 아니었다. 지난번처럼 개발 이야기가 시작되면 또 고개만 끄덕이고 있을 것 같아서였다. 코드를 짤 줄 모르는 내가 팀에 들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여전히 잘 그려지지 않았다.막상 팀을 꾸리고 보니 답은 어렵지 않게 나왔다. 개발은 팀원들이 나보다 훨씬 잘했다. 대신 왜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를 정하고 그것을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하는 일은 내가 잘하는 것이었다. 두 해커톤에서 팀 대표를 맡은 건 그래서였다. 앞에 서면 모르는 걸 감출 필요가 없어진다. 모르는 부분을 팀원들에게 묻고 정리하며 중심을 잡는 것이 대표의 역할이니까.세 개의 발표 대본이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포트폴리오 발표 자료를 만들며 세 대회의 대본을 한 화면에 띄워놓고 있었다. 그러다 한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CODE:MEDI라는 해커톤에서 만든 것은 CPX 연습용 AI 표준화환자였다. 개발하면서 가장 신경 쓴 건 기능이 아니라 원칙 하나였다. 학생이 묻지 않은 정보는 환자가 먼저 말하지 않는다. 시중의 다른 서비스들은 학생이 가만히 있어도 과거력과 약물력을 알아서 알려줬는데, 우리는 그걸 결함으로 봤다.능동적으로 묻는 훈련을 시켜야 할 도구가 묻기 전에 답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채점도 점수만 주지 않고 "여행력을 확인하지 않아 감염성 발열의 감별 단서가 부족했다"는 식으로, 무엇을 왜 놓쳤는지를 학생이 실제로 한 말과 함께 돌려주게 만들었다.RISE 해커톤에서 만든 CareNest는 새벽에 아이가 열이 나는데 병원에 가야 할지 판단하지 못하는 양육자 및 아이의 성장·발달 체크를 어려워하는 돌봄취약 계층을 위한 것이었다. 여기서도 우리는 선을 하나 그었다. 진단하지 않는다. 대신 판단을 곁에서 돕는다. 답을 대신 내려주는 서비스는 만들지 않기로 했다.기술사업화 챌린지에서 준비 중인 '늘봄'은 치매 전단계의 인지 변화를 조기에 포착하는 플랫폼이다. 핵심 설계는 이것이었다. 남들의 평균과 비교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평소와 비교한다. 기존 선별검사가 한 시점의 단면을 찍는다면, 우리는 개인의 기준선 대비 변화의 궤적을 본다.셋을 나란히 놓고서야 보였다. 세 번 다 나는 결과를 판정하는 장치를 만들지 않았다. 과정을 드러내는 장치를 만들고 있었다.내가 만든 것은, 내가 받지 못한 교육이었다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CPX 에이전트 기획서에 내가 쓴 문장 중에 이런 게 있다. 학생은 몇 점을 받았는지는 알아도 무엇을 왜 놓쳤는지는 끝내 모른 채 다음 연습으로 넘어간다고. 발표를 준비하며 그 문장을 다시 읽는데, 문득 이게 CPX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본과에 들어와 나는 수십 번의 시험을 봤다. 점수는 매번 나왔다. 그런데 내가 무엇을 왜 틀렸는지 앉아서 확인한 적은 거의 없다. 시험이 끝나면 다음 과목이 시작됐고, 틀린 문제를 붙들고 있을 시간에 다음 과목의 진도를 나가는 편이 합리적이었다.기존 서비스가 학생이 묻지 않은 것까지 먼저 알려주는 걸 우리는 결함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강의실에서 나는 늘 묻기 전에 답을 받는 쪽이었다. 무엇이 중요한지는 강의에서 짚어주고, 어디가 나오는지는 구독한 AI가 정리해주고, 학생은 그 안에서 외운다. 능동적으로 묻는 훈련을 받은 기억이 없다. 그러면서 나는 능동 문진을 훈련시키는 도구를 만들고 있었다.세 번 연속으로 같은 형태의 것을 만든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받지 못한 교육의 모양을, 도구를 빌려 간접적으로 반복해서 그리고 있었다. 그걸 알아차리는 데 세 번이 걸렸고, 발표 시간 8분에 쫓기지 않았다면 그마저도 몰랐을 것이다.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의지가 아니라 구조였다여기서 한 가지를 더 짚고 가야 한다.세 개 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보자고 만든 것들이다. 그런데 정작 그 여름의 나를 움직인 것은 마감과 심사였다. 마감이 없었다면 시작하지 않았고, 심사가 없었다면 끝까지 다듬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이것이 모순처럼 보였다. 지금은 오히려 중요한 관찰이었다고 본다.사람은 의지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구조가 있어야 움직인다. 나는 그 구조를 학교 밖에서 스스로 찾아 나섰기 때문에 무언가를 만들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물어야 할 질문은 "왜 학생들은 능동적이지 않은가"가 아니다. "지금 학생을 움직이는 구조는 무엇을 남기는가"여야 한다.지금의 구조가 남기는 것은 대체로 결과다. 점수, 등수, 이수 여부. 과정은 남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는 시험이 끝나는 순간 함께 사라진다. 세 번의 대회에서 내가 반복해 만든 것이 하필 그 사라지는 부분을 붙잡아두는 장치였다. 그 반복에는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지난 글에서 내가 놓친 절반지난번 이 지면에서 나는 학생들이 외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그 경험을 학점으로 인정하자고 제안했다. 지금도 그 방향이 틀렸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이번 여름을 지나며 그것이 절반짜리 제안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학점은 참여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참여가 곧 성찰은 아니다. 학점이 붙는 순간 그것은 이수해야 할 항목이 되고, 학생은 다시 결과를 향해 달린다. 내가 대회를 향해 달렸듯이. 참여를 만드는 장치와 과정을 남기는 장치는 같은 것이 아니며, 지난 글의 나는 앞의 절반만 이야기했다.나머지 절반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생이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가 기록으로 남고, 무엇보다 본인이 그것을 다시 볼 수 있어야 한다. 앞서 말한 CPX 에이전트에는 학생이 손소독을 빠뜨리거나 진찰 순서를 어기면 그 위반이 타임라인에 그대로 남는 기능이 있다. 점수를 깎으려고 만든 장치가 아니었다. 자기가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를 눈으로 보게 하려고 만든 것이다. 나 역시 세 개의 대본을 나란히 놓고 나서야 내가 무엇을 반복해왔는지 알았다.그래서 지금부터 풀어야 할 것들방향은 잡혔지만, 그대로 두면 작동하지 않을 지점들이 보인다. 세 가지다.첫째, 기록이 또 하나의 평가가 되는 순간 이 구조는 무너진다. 성찰일지를 제출물로 만들면 학생은 채점자가 원할 법한 문장을 쓴다. 나라도 그렇게 쓸 것이다. 그래서 제출하는 기록과 본인만 보는 기록을 처음부터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가에 쓰지 않겠다는 약속이 실제로 지켜지는지가 이 방식의 성패를 가른다.둘째, 과정을 되짚어주는 일에는 사람이 많이 든다. 교수 한 명이 학생 100명의 문진 과정을 일일이 돌려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내가 AI 쪽으로 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이 반드시 해야 하는 판단과 기계가 대신할 수 있는 반복을 나누는 일. 다만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은, 우리가 만든 도구가 답의 전부가 아니라 한 조각이라는 점이다. 기계는 학생이 무엇을 묻지 않았는지 알려줄 수 있다. 그러나 왜 그 자리에서 묻지 못했는지는 사람만이 되물을 수 있다.셋째, 나는 아직 학생이고 현장의 제약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 학사 일정, 인증 기준, 교원의 부담, 예산. 밖에서 보면 간단해 보이는 제안이 안에서는 왜 어려운지를 나는 아직 다 듣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둘이다. 하나는 여러 학교의 사정을 직접 듣는 자리에 계속 서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만든 것을 실제 교육 현장에서 작은 규모로라도 돌려보며 결과를 남기는 것이다. 주장으로 설득할 생각은 없다. 해보고 남은 기록으로 이야기하고 싶다.마치며지난 글에서 나는 의대생의 교육에 관여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썼다. 이번 여름에 알게 된 것은, 내가 그리고 싶은 교육의 모양이 이미 내가 만든 것들 안에 녹아 들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세 번을 만들고 나서야 그것을 알아봤다.내가 만든 모의환자는 학생이 묻지 않으면 말해주지 않는다. 그렇게 설계한 이유는 분명하다. 답을 먼저 주는 교육은 편하지만, 묻는 법을 남기지 못한다. 나는 그 원칙을 도구 안에만 두고 싶지 않다. 앞으로 하려는 일은 묻지 않으면 말해주지 않는 자리를 학생 곁에 만들어두고, 학생이 물었을 때 그 과정이 사라지지 않고 남게 하는 것이다.그러려면 먼저 물어야 할 사람은 나다. 현장에 계신 분들에게 무엇이 왜 어려운지 묻는 일부터 시작하려 한다.
2026-08-03 05:00:00젊은의사칼럼

기대한다는 것, 기어이 대면한다는 것

<에스키모인들의 늑대 사냥법> 1. 가축의 피를 칼날에 묻혀 얼린 후 칼을 거꾸로 꽂아 놓는다.2. 피 냄새를 맡고 온 늑대가 언 피를 핥는다.3. 언 피가 녹고 드러난 칼날이 늑대의 혀를 벤다.4. 혀 감각이 마비된 늑대는 무작정 칼날을 핥으며 출혈로 쓰러진다. 위 과정은 널리 알려진 에스키모인들의 늑대 사냥법이다. 실제로 행해진 사냥법인지는 논란이 있지만, 이 이야기는 이상하리만치 내 기억에 남았다. 혹자는 이러한 사냥법을 통해 늑대의 탐욕을 지적한다. 하지만 나는 마냥 그렇게만 보고 싶지 않다. 오히려 생존에 대한 그들의 간절함을, 탐욕이라는 두 글자로 단순히 설명해버리는 데에 무의식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늑대는 정말 그저 욕심이 많았던 것일까. 아니, 늑대는 간절했던 거다. 늑대는 살고 싶었던 거다. 그저 주린 배를 움켜잡고, 추운 밤을 힘겹게 견디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늑대는 생각했겠지. 이건 먹을 수 있는 고기야. 조금만 더 핥으면 얼어붙은 고기가 녹을지 몰라. 그렇게 칼날을 묵묵히 핥았고, 늑대는 죽어갔다. 나는 이 장면에서 이상하게 늑대가 보이지 않았다. 늑대가 아니라 내 모습이 보였다. 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점철된, 날카로운 현실을 그저 묵묵히 핥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모두 기대하며 산다. 어릴 적에는 기대의 크기도 컸다. 세계정복을 꿈꾸고, 우주를 탐사하겠다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말들이 얼마나 현실적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현실은 작고 좁았지만, 마음속에 품은 세계는 그보다 훨씬 넓었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명문 학교에 들어가길 기대했고, 경시대회에서 상을 받길 기대했다.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고 믿었고, 그 믿음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기대는 단순한 상상이 아니었다. 기대는 매일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기대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의과대학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더 그랬던 것 같다. 원하던 꿈에 닿으면 더 많이 기대하게 될 줄 알았다. 가난한 환자들을 위한 더 나은 복지제도를 구상하고, 질병의 생물학적 치료법에 관한 연구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 오자, 나는 더 크게 기대하는 법이 아니라 기대하지 않는 법을 먼저 배웠다. 정해진 경로를 따라 지나가기만 하면 언젠가 바라던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온전히 나의 착각이었다.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현실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게 되는 일에 가까웠다. 기대를 버린 것이 아니라, 사실은 대면을 미루고 있었던 셈이다. 기대를 멈추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덜 묻게 되었다. 내가 지금 붙잡고 있는 것이 정말 나를 살리는 고기인지, 아니면 나를 조금씩 베고 있는 칼날인지도 확인하지 않았다. 그저 익숙한 현실을 핥았다. 가능성이라는 피 냄새에 기대어 그저 버텼다. 나이를 먹어가며 누구나 기대의 크기는 줄어든다. 세계정복이나 우주 탐사 같은 말은 사라지고, 올해는 다르겠지, 다음 주에는 조금 나아지겠지 하는 작고 소박한 기대만 남는다. 어쩌면 그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대가 가벼워진 이유가 단지 어른이 되었기 때문만은 아닐 거다. 오히려 마주한 현실이 너무 무거워서다. 버거운 현실 앞에서 사람은 기대를 키우기보다 기대하지 않는 법을 먼저 배운다. 기대했다가 깨져보는 일이 얼마나 아픈 일인지 알기에. 그렇지만 정말 기대하지 않는 삶은 덜 아픈 삶일까. 아니었다. 적어도 내게는 기대를 접었다고 해서 현실의 칼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대하지 않을수록 나는 더 무뎌지고 다쳤다. 무뎌진다는 것은 강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감각이 사라진다는 뜻에 가까웠다. 늑대가 혀의 감각을 잃고 무엇을 핥는지 구분하지 못하듯, 나 역시 무엇이 나를 살리고 해치는지 모른 채 그저 버티며 아파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어릴 적 나로 돌아가 다시 기대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다만 그때처럼 순진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겠지. 무작정 잘될 것이라고 믿는 기대, 칼날을 고기라고 우기는 기대는 결국 나 자신을 해칠 뿐이니까. 그러므로 기대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막연히 믿는 일이 아니다. 내가 지금 붙잡은 것이 나를 살리는 고기인지, 나를 베는 칼날인지 끝까지 확인하는 일이다. 나의 간절함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지 계속 되묻는 일이다. 그러니 나는 다시 기대하고 싶다. 오늘 하루조차 살아내기 버겁더라도, 보는 순간 움츠러드는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더라도, 주저하지 않고 기대하고 싶다. 기대하지 않으면 오늘의 나는 움직일 수 없고, 오늘의 고통도 내일의 방향으로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기대는 시간을 견디게 한다. 아무도 나를 기대하지 않고, 내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시간에도 사람은 기대해야 하루를 버틴다. 노력 역시 결국 기대와 다르지 않다.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가 없다면, 인간은 긴 시간 동안 노력을 지속할 수 없다. 당장 달라지는 것이 없어 보여도 하루를 견디고 다시 쌓다 보면, 언젠가 알게 된다. 내가 바라던 곳은 어느 날 갑자기 도착하는 장소가 아니라, 그런 기대 섞인 하루들이 모여 나를 데려다 놓은 자리였다는 것을.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글을 쓰는 나를 기대했다. 글을 쓰다 보면 조금은 더 나아진 내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지난 경험들을 곱씹으며 흩어진 감정들이 문장이 되고,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들이 글이 되면, 나도 나를 조금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조금 더 깊고 단단한 사람일 것 같았다. 그래서 글을 쓰며 나는 그러한 사람이 되기를 고대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글은 나를 곧장 깊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마법이 아니었다. 오히려 글은 내가 깊어 보이고 싶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성숙해지고 싶은 나, 괜찮아 보이고 싶은 나, 아픔을 그럴듯한 예쁜 문장으로 정리하고픈 나를 보게 했다. 단정한 글을 쓰면 상처가 단정해질 줄 알았는데, 막상 문장 앞에 앉으면 여전히 아파하고 흐트러진 내가 있었다. 이제는 안다. 글쓰기는 나를 성숙시키는 일이 아니라 내 눈앞에 놓여있는 가능성의 정체를 끝끝내 확인하는 일이라는 걸. 내가 줄곧 핥고 있던 것이 나를 살릴 고기인지, 아니면 나를 베어낼 칼날인지 문장마다 살며시 더듬어보는 일이라는 걸. 그렇기에 글을 쓴다는 것은 기대하는 일이자 동시에 대면하는 일이라는 걸. 이번 칼럼은 메디컬타임즈에 기고하는 나의 마지막 칼럼이다. 부족한 글들이었지만, 이곳에 문장을 남길 수 있었던 시간은 참으로 내게 감사한 기회였다. 이곳에서 나는 나의 무너진 시간에 관해 쓰기도 했고, 어른이 되는 일에 관해 쓰기도 했으며, 의사의 무게에 관해 쓰기도 했다. 물론 글을 쓰며 나는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단번에 깊어지지도, 쉽게 성숙해지지도 못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자꾸만 나를 마주해야 했다. 외면하고 싶던 마음,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싶던 상처, 그래도 다시 나아지고 싶다는 기대를 한 문장 한 문장 써 내려가며 숨길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마지막 칼럼에서 다시금 기대에 관해 쓰고 싶었다. 좀 더 솔직하고 진실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에 남긴 글들은 결국 나의 연이은 대면이었고, 다시 나아지고 싶다는 기대의 파편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기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메디컬타임즈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 글을 읽어준 누군가에게도 감사드린다. 나는 여전히 기대하고 기대하길 반복할 거다. 다만 이제는 칼날을 고기로 착각한 채 무작정 핥고 싶지 않다. 아프더라도 그것이 칼날이라면, 칼날이라고 냉정히 바라보고 싶다. 기대한다는 것, 그것은 결국 기어이 대면한다는 것이니까.
2026-07-27 05:00:00젊은의사칼럼

백지 앞에 서는 마음에 대하여

돌이켜보니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한 이후로 약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나를 둘러싼 외부적 상황과 나의 내면 모두 여러 변화를 겪었지만, 또 어떤 것들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글을 쓸 때의 가장 큰 고민거리 같은 것이다.그동안 글에 대해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꾸준히 지적 받아온 것은 일종의 피상성이었다. 어떤 사고 과정에 이르기까지의 개인적인 경험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 그러므로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가 어렵다는 것.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따끔거리는 기분이었다. 실은 스스로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주변의 시선이나 평가가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주위에선 나를 볼록렌즈를 통해서 바라보는데, 나는 오목렌즈를 끼고 바라보는 것처럼, 주변의 평가에 비해 스스로가 한없이 작아 보이곤 했다.그렇지만 날 향한 기대를 실망으로 변질시키고 싶지 않았으므로, 어떻게든 보잘것 없는 나를 감추고 꽤 볼만한 '나'를 만들고자 했다. 완벽할 수 없다면 완벽해 보이기라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늘 나의 결점을 숨기기 바빴다. 애초에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은 나의 의무가 아님에도,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스스로에게도 솔직하지 못했던 시간이 꽤 길었던 것 같다.솔직함은 언제나 일종의 두려움을 동반한다. 그동안 나는 나의 약점을 드러낼 용기가 없었다. 특히 지면에 연재되는 글에서는 더더욱 감추고 싶었다. 매끄럽지 못한 주장과 부족한 생각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거나, 무엇보다 미래의 나 자신에게 숨기고 싶은 치부가 될까 두려웠다. 그 두려움은 줄곧 방어적인 태도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최대한 글 속에서 자신을 숨기고자 했고, 그렇게 나의 글쓰기는 더 이상 '나'만의 글쓰기가 아니게 되었다. 그런 점에 대해 자주 피드백을 받으면서도 한순간에 고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그러던 중 최근 출간된 최은영 작가의 첫 산문집 『백지 앞에서』를 읽게 되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의 연약함, 과거, 불행 등을 그저 담담히 털어놓는다. '일개 독자인 내가 이런 것까지 읽어도 될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솔직한 글들을 보고 있자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글의 내용보다도, 작가의 태도가 더 오래, 더 큰 충격으로 남았다.더 이상 좋은 작품을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 외모에 대한 강박, 버림받을 것 같다는 느낌 등 자신의 취약성과 두려움에 대해 고백하는 글 속에서 역설적으로 작가는 굉장히 강인하고, 또 자유로워 보였기 때문이다.나는 이제 어릴 적 생각했던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누구나 자신만의 결핍과 불행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삶은 예상되지 않는 종류의 것이라서 어떤 선택을 하든 나름의 후회가 뒤따른다는 것도 꽤 오랜 시간이 흘러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결점을 회피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받아들이고 또 포용하는 것도 가능하단 걸, 그리고 그런 모습이 아마도 '진정한 어른'에 더 가까우리라는 것을 나는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하얗고 깨끗한 것만이 아니라, 때 묻은 흔적까지도 모두 내 마음, 내 모습이므로 느리더라도 하나씩, 온전히 받아들이고자 한다.스스로 한없이 부족하다고만 느꼈던 시절도 나의 최선 중 하나였음을 이제는 알 수 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헤맸다고 여겼던 시간들도, 뒤돌아보니 꽤 괜찮은 경험으로 남아 있었다. 무엇이 될 줄도 모르고 연신 자판을 두드리던 날들은 나름 근사한 작업물로 기록되어 있다. 스스로의 부족함과 싸우며 발버둥 쳤던 흔적은 지나고 보면 늘 애틋하고 생각보다 아름다웠다.이제는 더 이상 나의 결점을 외면하거나 숨기지 않고, 미래를 미리 두려워하지 않고, 그저 꾸준히 걸어가고자 한다. 지금 써 내려가는 이 글이 스스로에게 더 솔직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그리하여 언젠가 더욱 자유로운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라며. 
2026-07-20 05:00:00젊은의사칼럼

이해하고 계실 줄 알았습니다

"목에 난 걸 양잿물로 씻고 싶어요"종양내과 실습 첫 주에 배정받은 70대 할아버지 환자였다. 성대로 암이 침범해 말을 할 수 없는 상태라, 우리는 아침저녁으로 매번 옥스포드 메모지를 10장 가까이 써 가며 필담을 나누었다. 가뜩이나 문진과 라포쌓기에 자신이 없는 터라 급상승한 문진 난이도에 긴장했지만, 나를 레지던트 선생님으로 생각하시는 눈치의 보호자분도 워낙 협조적이셨고 며칠 얼굴을 보니 이젠 할아버지와 꽤 친해졌다고 생각한 어느 날이었다.전반적으로 괜찮으신 것을 확인하고 병실을 나서려던 찰나, 할아버지가 주저하다 뭔가를 슥슥 적더니 내게 건네셨다. 젊을 적 건설 현장에서는 다치면 양잿물을 바르곤 했는데, 목에 난 혹 – 전이된 림프절 – 도 그렇게 소독하면 안 되냐는, 내 의학적 상식을 아득히 벗어난 내용이었다.머리가 뎅…했다. 이미 지난 6개월간 두 차례의 항암치료와 서른 번이 넘는 방사선 치료를 받은 분이었다. 이와중에 이걸 교수님께는 못 여쭤보고 나에게 물어보셨다는 점에서, 그래도 나름 라포는 잘 쌓은 건가…싶으면서도 지금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닌데! 했다.나는 양잿물이 왜 위험한지, 그리고 방사선 치료를 받은 피부에는 더더욱 안 되며 목이라는 부위 자체가 임상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를 한참 설명했다. 할아버지는 묵묵히 듣고 계시다 메모지에 한 마디를 적어 내게 보여주셨다."알겠습니다"그날 병원을 나오면서 계속 그 메모가 생각났다. 정말 이해하셨을까? 그냥 학생 하나가 뭐라뭐라 열심히 이야기하니 적당히 대화를 마무리해주신 게 아닐까. 겨우 며칠 남짓 얼굴 본 주제에, 괜히 그간 내가 할아버지와 했던 이야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며 허망함이 몰려들었다.나는 그동안 할아버지가 병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계실 거라고, 치료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이뤄지는 것인지는 알고 계실 거라고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 6개월간 수도 없이 들으셨을 설명들이, 내가 생각했던 모습 그대로 전달된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얼마 뒤, 또 비슷한 일이 있었다.또 다른 할아버지 환자는 난청이 심해 회진 때도 제대로 된 전달이 어려운 분이었다. 콧줄 삽입을 계속 거부하고 있었는데, 이유를 여쭤보면 "이전에도 자꾸 내 코로 똥을 빼내려 했어! 너무너무 싫어"라는 말씀을 반복하셨다. 교수님께 섬망이 있는지 확인해보라는 말을 듣고 병실로 향했다. 항상 손나팔을 만들어 그래도 소리가 들리는 오른쪽 귀에 대고 반쯤 소리지르듯 질문하곤 했는데, 그날은 목이 좀 아파 가져간 차트 이면지에 글을 써가며 이어가려 했다.그러기를 수 분째, 할아버지는 망설이시다가 나를 가까이 부르시더니 내 귀에 대고 작게 말씀하셨다."사실 나는 한글을 읽을 줄 몰라"머리가 또 한 번 뎅…했다. 어떻게 한글을 모르는 분이 계시지, 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부끄러운 충격이 먼저였다. 그리고 곧바로 다른 충격이 왔다. 그럼 코로 똥을 빼낸다는 말이 섬망이 아니라면, 이건 대체 어떤 오해에서 비롯된 공포였을까?그제야 깨달았다. 설명이 닿지 않았던 게 아니라, 나는 애초에 닿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내 딴에는 쉽게 설명한다고 생각했다. "세포가 여기저기…" 말을 하다가 문득 입을 멈췄다. 이분은 '세포'를 아실까? 의대에 들어오기 전부터도 세포는 내게 너무 쉬운 단어였다. 오래, 또 자주 써왔기에 남에게도 충분히 쉬운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내 세상에서의 이야기였다.그날 저녁, 환자분께 하고픈 말씀을 다 해보시라고 했다. 이해하기 쉬운 말들은 아니었지만, 간병인 분의 도움을 받아 차츰차츰 말 속에서 단서를 찾아가며 환자분의 병에 대한 인식 상태를 이해해나갔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드렸다. 대강 한 시간쯤, 내가 역대 한 문진 중 최장 시간을 가볍게 갱신한 순간이었다.최근 명동을 지나칠 일이 있었다. 좁은 골목을 가득 채운 외국인 관광객들이 거리 한복판에서 연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 어지러운 간판과 네온사인이 뭐가 저렇게 좋을까 싶다가도, 일본 여행을 가서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일본어 간판 앞에서 왠지 모를 감성에 취해 찍은 사진이 수두룩한 내 갤러리를 떠올리곤 금세 납득하게 된다.나는 그 간판을 '읽은' 것이 아니었다. 읽지 못한 채 분위기를 즐겼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병실에서는 그 단순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누군가는 나의 언어 역시 그렇게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솔직히는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 나는 내가 꽤나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내 기준에서는) 환자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내용을, 의학적 정확성을 조금 포기하면서까지 쉬운 표현을 고르고, 열심히 정제하고 가공해 가장 쉬운 형태로 제공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쉬운 말'이라는 기준은 어디까지나 오로지 나만이 공유하는 것이었다.실습을 시작한 지 수 개월이 지났지만, 문진은 항상 어렵다. 아직 이럴 때 써먹을 넉살이 부족한 탓인지 라포를 쌓는 일도 어렵고 의학적으로 꼭 필요한 질문을 적재적소에 던지는 일도 어렵다. 이번 과를 돌고 나서는 고민 하나가 더 늘었다.매일 SOAP note의 Education plan 칸을 채우며, 나는 늘 환자에게 '무엇을 더 설명해야 하는가' 만을 고민해왔다. 하지만 이번 실습에서 처음 알았다.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설명을 더하는 일이 아니라, 이해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을. 환자가 이미 다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는 안일한 전제를 무너뜨리는 것이 소통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다음 환자를 만나면, 설명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이렇게 물어볼 것 같다."환자분, 지금까지 들으신 내용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계셨어요?
2026-07-13 05:00:00젊은의사칼럼

나를 알아가는 시간

본과 4학년이 되면 두 가지 일이 동시에 닥친다. 국가고시 준비와 동시에 인턴을 할지, 일반의로 지낼지, 어떤 과로 갈지를 정해야 한다. 문제는 이 두 가지가 같은 시기에 겹친다는 점이다. 시험을 코앞에 두고 있으면 진로에 대한 고민은 자연히 뒤로 밀린다. 정작 인생에서 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는데, 그 결정을 위한 생각의 시간은 가장 부족한 시기에 내려야 하는 셈이다.진로를 정하는 일의 출발점은 결국 나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과가 적성에 맞을지, 어떤 방식의 일과 삶을 원하는지를 답하려면 먼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돌이켜보면 활동 자체는 적지 않았다. 창업에 관심이 있어 네트워킹 행사와 강연을 찾아다니고 창업 경진대회에도 나가봤다. 의료봉사 동아리에서는 다문화 배경을 가진 환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경험을 했고, 투비닥터 활동을 하면서는 행사를 기획하거나 디자인 작업을 맡기도 했다. 분야도, 결도 다른 일들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이 경험들을 다시 떠올려보니, 경험은 그 자체로 답을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는 사람에 대한 정보로 정리되려면, 경험과는 별개의 작업이 한 번 더 필요하다.의료봉사 동아리에서 다문화 배경을 가진 환자들을 만났던 적이 있다. 그 중 한 명은 한국어가 거의 되지 않는 중년 여성이었다. 진료를 돕기 위해 함께 앉았고,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 우리는 한참을 몸짓과 짧은 단어들로 버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간이 답답하기보다 집중이 됐다. 말 대신 표정을 읽고, 끄덕임의 타이밍을 살피고, 맥락을 통해 의도를 짐작하는 일이 퍼즐처럼 느껴졌다. 진료가 끝날 무렵 그 분이 웃으며 고맙다고 했을 때, 나는 꽤 오래 그 장면을 머릿속에 붙들고 있었다.그때 내가 느낀 것이 즐거움이었는지, 뿌듯함이었는지, 보람이었는지를 한동안 구분하지 않았다. 그냥 좋았다고 뭉뚱그렸다. 그런데 지금 다시 그 장면을 꺼내보면 조금 더 정확한 말이 보인다. 즐거웠던 건 소통 자체의 과정이었다. 말이 막히는 상황에서도 상대를 이해하려고 집중하는 그 순간이 좋았다. 뿌듯함은 그 다음에 왔다. 이렇게 나눠보면 내가 그 시간 동안 보상처럼 느낀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었다는 게 보인다. 뭔가를 완성했을 때가 아니라, 집중해서 맞춰가는 도중에 이미 좋았다는 것이다.창업 경진대회를 준비하던 시간은 결이 달랐다. 발표 자료를 만들고 팀원들과 논리를 다듬으면서도 분명 몰입했지만, 그 몰입은 과정보다 완성에 가까웠다. 발표가 끝나야 비로소 숨을 쉬는 느낌이었다. 두 경험을 나란히 놓고 보면 내가 어떤 리듬으로 일할 때 더 살아있는지가 조금 선명해진다. 완성보다 과정에 에너지가 붙는 사람이라는 것,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보다 지금 마주한 상대와 맞춰가는 일에서 집중이 일어난다는 것.이게 진로를 바로 결정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질문을 들고 선택지 앞에 서야 할지는 알 것 같다. 자신에 대한 고민이라는 말이 막연하게 느껴질 때, 거창한 가치관보다 먼저 해볼 수 있는 건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험들 사이의 차이를 보는 것, 같은 '좋음'도 어떤 좋음이었는지 구분해보는 것. 그렇게 쌓인 작은 관찰들이 결국 나라는 사람의 윤곽을 만든다. 경험은 재료이고, 나를 아는 일은 그 재료를 가지고 따로 해야 하는 작업이다. 그 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인 장면에서 시작된다.
2026-07-06 05:00:00젊은의사칼럼

모르는 게 약이 될 수 있는가

이런 상상을 해보자. 당신은 암에 걸렸다. 가족들과는 20년 전쯤 연락이 끊겼고, 연락하는 친구는 한두 명뿐이다. 그래도 완치의 꿈을 품고 힘든 검사들을 모두 마쳤고, 가슴팍에는 케모포트도 넣었다. 20차, 30차에 이르는 항암치료도 견뎌냈다. 며칠 전에는 운 나쁘게 다리를 다쳐 혼자 걷기도 어려워졌지만, 이번에도 항암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그런데 주치의가 당신에게 이렇게 말한다."몇 달 남지 않으셨습니다"그 사실은 당신의 삶에서 약이 될까, 독이 될까?혈액종양내과 실습에서 만난 그 환자는 그런 소식을 듣기에는 너무 젊어 보였다. 회진을 위해 커튼을 젖히자, 양손을 깍지 껴 목 뒤에 베고 누워 있다가 급히 몸을 일으켰다. 절망적이지도, 그렇다고 희망을 간절히 붙잡고 있는 것 같지도 않은 눈빛이었다. 교수님이 설명하시는 치료에 대해서 익숙한듯 고개만 끄덕이고 더 질문도 없이 다음 환자로 넘어갔다. 회진을 마친 뒤 교수님께서 물으셨다."아까 그 환자 기억나니?"교수님은 환자의 병력을 차분히 훑으셨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대장암으로 진단받았고 당시 꽤 진행된 병기였다. 지금까지 항암치료를 이어왔지만 반응은 좋지 않았다. 사회적 지지 체계는 거의 없이 혼자 살고 있었고, 다리 부상으로 거동도 어려웠다. 의학적으로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는 사실은 비교적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그 사실을 환자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는 분명하지 않아 보였다.가족도 친구도 거의 없는 사람에게, 이제 몇 달 남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환자를 위한 일일까. 그 사실을 안다고 해도 가족들과 친구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거나, 여행을 떠난다 거나 하는 소위 말하는 '의미 있는 여생 보내기'를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면, 진실은 위로가 아니라 형벌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괜찮은가. 환자는 자신의 병을, 자신의 삶의 남은 날을 알 권리가 있지 않은가.교수님은 자신도 어떻게 해야할지 일주일 내내 고민중이라고 하시며, 우리에게도 생각을 물으셨다. 우리는 열심히 고민했지만 어느 쪽도 정답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말하는 것은 잔인해 보였고, 말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해 보였다.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에는 '나쁜 소식 전하기'라는 항목이 있다. 말 그대로 말기 암 판정과 같이 의학적으로 나쁜 소식을 환자에게 전달하고, 앞으로의 치료 계획을 의논하는 시험이다. 객혈이나 호흡곤란처럼 여러 질환을 감별해야 하는 항목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은 충분하다. 해야 할 말도 알고 있다. 그러나 처음 그 모듈을 연습했을 때, 나는 그 사실에 좀처럼 발을 딛지 못했다. 완곡한 표현으로 주변을 맴돌았다. 하지만 훈련 받은 표준화 환자는 집요하게 물었다."그래서 완치가 되는 건가요?"그 '해야할 말을 해!' 하는 눈빛에 나는 결국 말해야 했다. 더 이상 완치를 목표로 하기는 어렵다고.시험장에서 그 말을 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의사의 의무임을 반복해서 배웠다. 그러나 실제 병실에서는 그 말이 한 사람의 남은 시간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것도 배운다. 그래서 의사의 삶은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의료진의 선의, 진실과 보호, 희망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진실을 내 뱉어야 하는 삶일 것이다. 우리의 열띤 토론을 듣는 교수님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우리가 꺼낸 말들은 어쩌면 교수님이 이미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들 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답을 쉽게 정할 수 없는 심리적 무게가 그 표정에 남아 있었다. 거미줄 같은 대장암 치료 가이드라인을 아무리 따라가도, 가족이 없는 환자에게 나쁜 소식을 어떻게 전할지, 더 이상 완치를 말할 수 없을 때 어떤 언어로 희망을 다시 정의 할지는 쉽게 알 수 없다. 종양혈액내과 실습의 마지막 날까지도 환자는 똑같이 의연한 표정으로 교수님을 맞았다. 마지막 회진이 끝나고, 아직도 진실을 모를 그 환자를 생각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긴 병원 복도를 걸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환자도 다가오는 크고 무거운 사실을 이미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었을지 모른다고. 어딘가 에둘러 가는 주치의의 말, 침상 뒤에 서 있는 학생들의 눈빛, 쉽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병실의 공기 속에서, 환자 역시 더 묻지 않는 방식으로 그 사실을 견디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나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의사가 큰 마음을 씹어 삼켜야 하듯, 나쁜 소식을 듣는 환자도 자기만의 속도로 마음을 준비한다. 그래서 나쁜 소식 전하기란 의사의 일방적인 통보도, 환자에게 모든 진실을 한순간에 떠넘기는 일도 아니다. 그것은 의사와 환자가 서로의 준비를 살피며, 결국 피할 수 없는 진실 앞에 함께 도착하는 과정에 가깝다.어쩌면 학생인 우리가 책 바깥에서 배워야 할 것은 바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치료가 더 이상 충분한 답이 되지 못할 때, 그 무거운 진실을 환자와 함께 견디는 방법을, 가끔은 모르는 것이 약이 될 것 같은 순간에도.
2026-06-29 05:00:00젊은의사칼럼

임상의학의 문법에서 친절함을 읽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고 느끼는 건 우리가 체감하는 시간이 여태껏 살아온 시간의 총량에 대한 비율로 결정되기 때문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올해의 절반이 유독 빠르게 흘러간 건 그만큼 내 삶의 시간이 누적되었기 때문인지, 1~2주마다 반복되는 시험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시험을 두 번만 쳐도 한달이 사라지니, 시간이 그야말로 녹아 없어지는 기분이다.분명 시험 직전이라고 한 시도 쉬지 않고 공부를 하는 건 아닌데도, 시험이란 건 온 신경을 빨아들이는 효과가 있어서 다른 어떤 것에도 시간을 쏟지 못하게 한다. 그 탓에 시험을 보고 자취방으로 돌아오면 설거지나 빨래부터 시작해서 이런 '글쓰기'처럼 그동안 외면해온 일들이 나를 잔뜩 기다리고 있곤 한다. 본과에 올라와 임상 과목들을 배우며 느낀 소회를 이제서야 글로 남기는 것에 대한 이유이자, 변명이기도 하다.사실 우리 학교는 독특하게도 예과 2학년부터 본과생과 똑같은 블록제 시간표로 생리학, 생화학, 면역학, 조직학 등 모든 기초의학 과목들을 배우는데, 이 때문에 고등학생처럼 한 강의실에 모여 계속 수업을 듣는 방식이나, 1-2주 간격으로 반복되는 시험이 딱히 새롭지는 않았다.올해 가장 새로웠던 건 아무래도 임상 과목에 접어들며 공부하는 내용의 성격이나 목적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늘 보던 교수님만 보면서 이 교수님은 어떤 스타일이고, 저 교수님은 문제를 어떻게 내고, 하는 이야기를 하던 예과 때와 달리 이제는 얼굴을 모두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교수님들이 각자 자신의 전문 분야를 짧게 강의하고 나가시곤 한다.긴급하게 의료인을 호출하는 응급상황에서 "미토콘드리아는, 우리 몸의 에너지를 생성해요!"라고 엉뚱하게 소리치는, 의학도지만 임상 지식은 전무한 의과대학 예과생의 모습을 담은 외국 릴스에 공감하며 웃던 기억이 있는데, 마침내 일상에서 혹은 병원에서 진짜 들어볼 만한 질환들과 치료법들을 배운다는 점이 새롭기는 하다.그럼에도 내게 가장 새로웠던 건 임상 현장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언어'였다. 다른 지역에 가면 귀를 파고드는 그 지역만의 말투, 즉 사투리가 주는 낯선 감각처럼, 외부인의 입장에서 본 임상의학의 언어는 그만큼 이질적이었다.임상 공부에 익숙해진 본과 선배님들이나, 이미 현장에 있는 의사 선배님들에게는 너무 당연하고 뻔한 이야기일지는 모르지만, 원래 사투리라는 게 당사자들에게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이 외부인에게는 신선하기에 늘 흥미로운 대화 주제가 되지 않는가.임상 의학의 첫 번째 문법은 단연 '가이드라인'이다. 본과에 진입한 초기, 임상 교수님들이 복잡한 알고리즘이 가득한 지침을 수업 자료로 들이밀었을 때는 그저 당황스럽기만 했다. 우선 빼곡하게 들어찬 글씨에 '저걸 언제 다 공부하지'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고, 무엇보다 임상 현장을 대변하는 가이드라인이 사람의 판단이 끼어들 틈이 없을 정도로 기계적으로 짜여 있는 것이 묘한 이질감을 자아냈다.변화무쌍한 임상 현장을 이런 정형화된 서식과 단조로운 획들로 모두 담아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그런데 공부하다 보니, 이 '가이드라인' 이라는 게 곧 임상의학 공부의 본질인 듯하다. 우리가 의과대학에서 치열하게 배우는 임상 지식은 결국 '1차 의료인'을 양성하는 데 목적이 있다. 호흡기에 대한 각론을 열심히 설명하시다가도 '이런 증상이 있을 때 호전되지 않으면 어떤 질환을 의심하고 3차 병원으로 보낼 수 있는 정도의 지식은 있어야 한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이 사실이 새삼 와닿곤 한다.여타 학문이 기초 개념을 발판 삼아 새로운 응용과 혁신을 추구한다면, 일차 진료 현장을 지키기 위한 의학 공부는 창의성보다는 오히려 '표준화된' 사고를 요구한다. 내과의사의 진료 능력은 어느정도 임상 경험의 양에 비례할 것이다. 그러나 풍부한 경험이 쌓이기 전의 신규 의사라고 해서 진료실에서 터무니없는 진단을 내려서는 안되는 노릇이다.가이드라인은 바로 이 지점에서 힘을 발휘한다. 누구에게 진료를 받든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최소 수준 이상의 안전하고 정확한 진료 결과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가이드라인의 모든 항목에는 '근거 수준'과 '권고 등급'이 복잡하게 적혀 있었다. 근거 수준이 수많은 논문과 연구를 바탕으로 특정 치료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확신하는 지표라면, 권고 등급은 이 치료를 시행했을 때 환자가 얻을 이득이 위해보다 크다는 것을 보증하는 척도다.나는 이 기계적인 알고리즘에서 역설적이게도 의학의 친절함을 읽을 수 있었다. 초보 의사가 현장에서 마주할 실수를 방지하는 든든한 방패막이 되어주면서도, 동시에 환자의 상황에 따른 판단의 자율성을 완전히 닫아두지 않는다. 새내기 의사가 자신만의 임상적 기준과 직관을 확립할 때까지, 앞서간 선배들이 미리 닦아놓은 길을 안내해 주는 것이다.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임상 의학이 구사하는 특유의 '말투'다. 시험문제를 해설하시는 교수님도, 의사국가시험 대비 문제집에서도 유독 "이러이러한 약제의 사용을 고려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처치가 중요한 치료가 되겠습니다"라며 '-겠습니다'라는 표현을 흔히 사용한다. 일상생활에서는 잘 쓰이지 않고, 고작해야 일기예보의 기상캐스터 멘트에서나 들을 법한 어조가 글로 적혀 있는 것이 처음에는 상당히 낯설었다.언어는 사소한 표현 하나에도 미묘한 정서와 문화를 담아낸다. 이런 표현을 흔히 사용하게 된 배경에는 분명 임상 환경의 특성이 녹아 있을 것이다. 혹자에게는 무엇 하나 명쾌하게 말해주지 않는 이런 태도가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도 이런 유보적인 태도는 의료 현장에서 자칫하면 오롯이 떠안게 될지 모르는 책임 소지나 법적 분쟁을 피하기 위해 방어적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 뿐일까?우리말에서 선어말어미 '-겠-' 은 미래의 일이나 주체의 의지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문맥에 따라 '추측' 내지는 '가능성'의 의미를 내포한다. 임상 의학은 분명 과학의 산물이지만, 'A는 B이다'라는 명쾌한 명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바탕으로 불확실한 상황을 예측하여 최선의 선택을 내리는 과정이다.앞서 말한 가이드라인 또한 절대적이지 않다. 이는 독립적 판단의 여지가 있다는 뜻일 뿐 아니라, 가이드라인 자체도 시대와 연구에 따라 계속 변화한다. 이 때문에 수업시간에도 교수님들이 구버전과 최근 버전의 가이드라인을 동시에 가르치시기도 하고, '여러분이 국시를 칠 때쯤엔 또 기준이 바뀔 수 있으니 꼭 다시 확인해보라'고 당부하시기도 한다.어제의 정답이 오늘의 오답이 되기도 하는 세계. 새로운 연구 결과에 따라 기존 치료법의 유효성이 뒤집히고, 전에 없던 새로운 치료가 나오기도 하며, 효과가 입증된 치료법이라도 사람마다 반응이 제각각인 곳. 이렇게 불확실성으로 점철된 임상 현장에서 자신의 소신과 책임감으로 환자를 이끌어가야 하는 의사의 무거운 과제가 이 사소한 말투 속에 묻어난다.나아가, 이런 조심스러운 표현이 치료의 당사자인 환자에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심리적 공간을 열어주는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결국 이 말투는 현실적인 두려움의 발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지의 영역 앞에서의 겸손함이자, 환자를 향한 배려를 품고 있는 의학의 문법인 것이다.모든 기술과 학문이 궁극적으로는 인류를 위한 것이겠지만, 의학은 특히나 인간의 삶과 존재 자체를 향한다. 그래서 의학은 친절'해야 하는' 다소 독특한 학문이기도 하다. 어쩌면 사소한 표현법에 지나지 않지만, 의학의 세계에 갓 첫발을 내디딘 새내기의 눈에 비친 임상 의학의 언어는 이렇게나 친절하고도 사려 깊은 구석이 있었다. 빼곡한 글씨도, 복잡한 도식도, 결국 사람을 향해 흐르고 있다는 것이 임상의학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2026-06-22 05:00:00젊은의사칼럼

당신의 진짜 취미는 무엇인가요?

"취미가 어떻게 되세요?"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약속이라도 한 듯 마주하게 되는 이 평범한 질문 앞에서, 나는 멈칫하곤 한다. 머릿속에 순식간에 수많은 모습이 스쳐 지나가기 때문이다.밤공기를 맞으며 멍하니 산책하다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에 빠지는 것, 서점에서 우연히 마음에 쏙 드는 문장을 발견하고 온종일 대단한 보물이라도 찾은 듯 설레하는 것, 문구점에 가서 새 공책과 사각거리는 필기구를 만지작거리는 것, 혹은 주말 내내 침대에 누워 고양이 릴스를 보며 귀여워하는 것까지.하지만 내 안의 그 수많은 '진짜 좋아함'의 목록들은 입 밖으로 나오기 전, 보이지 않는 엄격한 서류 면접을 거친다. '시나 산책은 너무 진지하고 지루해 보이지 않을까?', '릴스 보기는 제대로 된 취미가 아닌 것 같은데', '한국무용이나 바이올린은 유난스러워 보일지도 몰라.' 결국 스스로 수많은 취향을 '탈락'시키고 난 뒤, 가장 안전하고 무난한 선택을 한다."아, 저 그냥 기타 치는 거 좋아해요."사실 나는 처음부터 이렇게 내 마음을 눈치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릴 때까지만 해도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소중한 것을 소중하다고 말하는 데 단 한 뼘의 망설임도 없었다. 고래들을 살리겠다며 친구와 머리를 맞대고 '웃는고래 캠페인'의 블로그와 이야기를 직접 디자인하던 초등학교 시절이 그랬다. 내가 꾹꾹 눌러 쓴 시와 글들을 길게 이어 붙여 사진으로 남기고,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친구들에게 "이것 좀 읽어봐 줄래?" 하며 환하게 웃으며 건네곤 했다.마음을 표현하는 일에도 참 거침이 없었다. 중학교를 졸업하던 날에는 학년 전체 친구들 100여 명에게 한 명 한 명 각기 다른 추억을 담아 다섯 줄이 넘는 다정한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마음을 다 꺼내 놓으면 유난 떤다고 비웃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나 눈치는 없었다. 그저 이렇게 만나게 된 사람들이 소중했고, 삐뚤빼뚤할지언정 내 안의 다채로운 색깔들을 세상에 꺼내 놓는 것이 당연하고 자랑스러웠던 시절이었다.그런데 조금씩 나이가 들고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이면서부터, 이 당당했던 마음에 묘한 어색함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 사이에는 적당히 세련되고, 적당히 잘 놀고, 결코 너무 진지해지지는 않는 '쿨함'이 미덕이 된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내 진짜 좋아함의 영역을 있는 그대로 꺼내 놓는 일이 어딘지 모르게 멋쩍어졌다.평소 연구실에서 인턴을 하며 도통 무슨 뜻인지 몰라 헤매던 개념이 수업 시간에 다시 등장해 비로소 이해가 갈 때, 혹은 새로 산 공책에 나만의 방식으로 예쁘게 필기를 정리할 때 찾아오는 순수한 즐거움 같은 것들 말이다. 나 역시 싫어하는 과목 앞에서는 꾸벅꾸벅 졸기 일쑤인 학생이지만, 문득 찾아오는 성장하는 순간에 "공부하는 거 조금 재미있는데?" 라고 눈을 반짝였다간 순식간에 분위기를 다큐로 만드는 지루한 사람이 될까 봐 지레 입을 닫고 만다."나 주말에 누워서 고양이 릴스만 봤잖아" 같은 가볍고 무난한 일상은 쉽게 공유하면서도, 정작 나를 가장 설레게 만드는 진짜 '잼얘'들은 입안에서만 맴돈다. 평소 관심 있던 AI 스터디를 준비하느라 밤을 지새운 일, 머릿속으로 새로운 행사를 멋지게 기획해 보며 가슴이 뛰었던 순간, 소설의 결말 뒤편을 혼자 진지하게 상상해 보거나 타인과 깊은 가치관에 대해 대화를 나눈 기억들 말이다.누군가에게는 참 소소하거나 혹은 '왜 이렇게까지 피곤하게 사냐'며 유난스럽게 보일지 모르는 나의 꿈과 철학적 사색들. 일만 좋아하는 지루한 사람이 될까 봐, 혹은 내 진심이 가볍게 치부될까 봐 지레 겁을 먹고 스스로를 '적당히 쿨하고 무난한 사람'이라는 틀에 가둬두는 것이다.그렇게 내 안의 소중한 진심들을 '오글거림'이라는 말 뒤에 꼭꼭 숨겨두던 어느 날이었다. 얼마 전 처음으로 썼던 칼럼에 대해 한 후배로부터 글이 참 좋다는 과분한 칭찬을 들었다. 기쁜 마음이 차올랐지만, 이내 밀려오는 쑥스러움에 나도 모르게 방어 기제가 작동했다. "내가 좋아하는 칭찬이네. 근데 처음 써본 칼럼이라 말투랑 내용이 너무 오글거리지? 고마워"내 손으로 먼저 내 글을 깎아내리며 민망한 웃음을 짓자, 후배는 단호하면서도 진심 어린 어조로 나를 만류했다. "놉놉, 선배. 오글거린다는 말은 금지해야 돼요. 그건 오글거리는 게 아니라, 그저 감성인 걸요"그 한마디에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진지함과 순수한 열정을 우리는 언제부터 '오글거림'이라고 부르게 된 것일까? 연애나 미팅, 고양이 릴스 같은 가벼운 일상은 누구나 쉽게 공유하면서도, 왜 우리는 진짜 나를 설레게 하는 비전이나 철학적인 사색 앞에서는 입을 닫게 될까.물론 모든 사람이 똑같은 주제에 가슴이 뛸 리는 없다. 저마다 몰입하는 영역과 흥미의 주파수는 다 다르니까. 다만 내가 의문을 품은 것은, 왜 유독 '진지함'이 필요한 영역만큼은 유독 눈치를 보게 되는지였다.어쩌면 그것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느낄지 모르는 불안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환경에서 누군가 미래에 대한 뚜렷한 설계나 비전을 공유하는 행위는, 의도치 않게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이만큼 준비하고 고민했는데 당신은 어떠냐'는 무언의 압박과 자극으로 다가갈 수 있다.마치 모두가 공부를 잘하지만 혹시 결과가 안 좋을 수도 있다는 불안 때문에 '나 공부 별로 안 했어'라고 일종의 방어막을 치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이미 저마다의 생각과 가치관이 굳어진 대학 사회에서 너무 진지하고 이질적인 색깔을 드러내는 것은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부담을 준다.논리적으로 따져보면 내 꿈이나 사색을 말하는 것은 전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오글거림'이 이성이 아닌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으로 작동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기 때문'이다.집단 안에서 유난스럽거나 튀는 사람으로 분류되지 않고 안전하게 연결되기 위해, 적당히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결코 선을 넘지 않는 '쿨함'은 우리가 상처받지 않고 매끄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돕는 훌륭한 소재가 되어준다. 다만, 그 안전함에 길들여지는 동안 우리는 가끔 서로의 내면에 숨겨진 진짜 매력적인 이야기들을 들어볼 기회를 조금씩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사실 막상 조심스럽게 내 진짜 '잼얘'들을 꺼냈을 때, 생각보다 나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어주고 좋아해 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 역시 타인의 깊은 취향을 가만히 듣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자기가 정말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행복한 에너지가 번지고,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까지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사실 한 사람의 취향과 가치관만큼 그 인간이라는 존재를 깊이 있게 보여주는 이야기도 없다.물론 나라고 해서 매일 밤낮으로 이런 진지한 이야기만 붙들고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고양이 릴스를 보며 귀여워하는 시간도 나에겐 소중한 취미다.다만, 남들이 정해둔 쿨함의 기준에 맞추느라 내 진짜 관심사들을 스스로 깎아내리고 싶지는 않을 뿐이다. 가끔은 조금 촌스럽고 진지할지언정, 눈치 보지 않고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꺼내 놓는 단단함을 유지하고 싶다.다음번에 누군가 내게 "취미가 뭐예요?"라고 묻는다면, 이제는 비웃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수수하지만 진짜 내 이야기를 건네보려 한다. "저는 밤공기를 맞으며 시적인 상상을 하고, 예쁜 필기구 모으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이번엔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다정한 눈빛으로 되물어보고 싶다. 타인의 시선에 맞추어 무난한 사람이 되는 매뉴얼은 잠시 접어둔 채, 온전히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진짜 취미'는 무엇이냐고 말이다.
2026-06-15 05:00:00젊은의사칼럼

우리를 채우는 힘, 경험의 기회

경진대회 해커톤에 무작정 참가해본 당일, 나는 처음으로 내가 의대 밖에서 아무 말도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공학과 팀원이 "프론트엔드에서 처리하고 API 설계는 내일 픽스하자"고 말할 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실제로는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옆에서 다른 팀원이 "이 서비스 고객 획득 비용 대비 LTV가 말이 되냐"고 따져물을 때 나는 그 단어들이 무슨 뜻인지조차 몰랐다. 준비 내내 나는 의료적 타당성만 들이밀었고, 팀원들은 어느 순간부터 나를 전문가가 아니라 "그래서 시장에선 어떻게 팔리냐"는 질문에 답을 못하는 사람으로 보기 시작했다.그게 처음이었다. 내가 공부해온 것들이 특정한 울타리 바깥에서는 언어조차 되지 않는다는 감각을 처음으로 느낀 것이. 그 감각이 불쾌했고, 동시에 묘하게 중요한 무언가를 건드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글은 그 느낌에서 시작된 사고의 결과다.1. 레일 위의 삶, 그리고 내가 잃어버린 것들의과대학에 들어서는 순간, 삶에는 촘촘한 일정이 깔린다. 예과 2년, 본과 4년의 커리큘럼은 대부분 미리 설계되어 있고, 학생에게 허용된 자유란 그 빡빡한 틀 안에서 어떻게 버틸 것인지를 선택하는 정도다. 나는 그 시스템에 꽤 잘 적응해왔다. 기출 패턴 분석, 시험 전날 몰아치기, 효율적인 암기법. 이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술들을 나름대로 체득했다.그런데 그 체득이 어느 순간 나를 좁게 만들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의대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 오가는 언어들―약물 기전, 진단 기준, 임상 가이드라인―은 병원 바깥에서는 거의 통하지 않는다. 이 언어를 함께 쓰는 사람은 의사와 의대생뿐이다. 나는 이걸 불편함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4년을 살았다. 불편함을 느낄 기회 자체가 없었으니까. 그 시간 동안 교류한 사람의 절대 다수는 의대 동기, 선후배, 교수님이었다. 우리끼리는 말이 잘 통했다. 문제는 그 말이 잘 통하는 환경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데 있었다.도제식 교육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칼 끝 하나가 사람의 목숨을 가르는 의료에서, 검증된 지식을 빈틈없이 전수하는 방식은 필수적이다. 내가 문제 삼는 건 그 방식이 만들어내는 부작용이다. 학생을 정답의 수신자로만 훈련시키다 보니, 정답이 없는 상황 앞에서 생각이 멈춰버리는 현상. 의대에서 공부한 나는 "심근경색 환자에게 어떤 약을 쓸 것인가"에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환자가 약을 살 경제적 여유가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보호자가 치료를 거부한다면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이런 질문 앞에서 나는 아직 어리다. 그리고 의대 교육은 나를 이 질문 앞에 세운 적이 없다.2. 정답이 없는 현실과의 충돌다시 경진대회 이야기를 하자. 나는 의료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팀에 합류했다. 아이디어는 그럴듯했고, 나름의 확신도 있었다.그런데 아이디어 검증 단계에서 팀원이 물었다. "고객이 이걸 왜 써? 지금 뭐가 불편한데?" 나는 "의료 접근성이 낮아서요"라고 답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고객의 언어야, 아니면 너의 언어야?" 나는 그 순간 막혔다. 나는 문제를 의사의 시각으로 정의하고 있었고, 그게 실제 사용자의 불편함과 같다고 가정하고 있었다. 그 가정이 무너지는 데는 10초도 걸리지 않았다.의대에서의 공부는 대부분 이미 정의된 문제를 푸는 일이다. 환자가 증상을 호소하면 나는 이를 기반으로 진단명을 추려내고, 가이드라인에 맞는 치료를 결정한다. 문제의 틀은 이미 주어져 있다. 하지만 스타트업 현장에서, 그리고 사실 의료 현장의 더 복잡한 층위에서, 문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자체가 일의 절반이다. 나는 이 단계를 훈련받은 적이 없었다.그 경진대회에서 결국 입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공간에서 버티는 경험, 확신이 틀렸을 때 빠르게 방향을 트는 연습, 팀이 흔들릴 때 아무것도 확정짓지 않으면서도 무너지지 않게 중심을 잡는 기술―이것들은 어떤 강의에서도 배우지 못한 것들이었다. 나는 이걸 맷집이라고 부른다. 실패를 맞고도 다시 책상 앞에 앉을 수 있는 근육. 의대 교육은 이 근육을 키워주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키울 기회를 주지 않는다.3. 취지는 좋지만, 솔직히 말하면이쯤에서 제도적 해법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그 전에 한 가지 솔직한 고백을 먼저 해야겠다.일부 의대에서는 이미 의료인문학이니 융합 교육이니 하는 과목들이 운영되고 있다. 가톨릭관동대학교는 본과 교육과정 내내 의료인문학을 틈틈이 배운다. 연세대 의대의 DMH가 대표적이고, 다른 학교들에도 유사한 과목들이 있다. 취지에는 진심으로 공감한다. 의학이 인간을 다루는 학문이니 의대 교육도 인간적이어야 한다는 논리는 틀리지 않다.하지만 내가 그 수업을 들을 때, 솔직히 어떤 마음이었냐고 혹자가 묻는다면 말이다. 임상 과목 필기시험이 사흘 뒤이고 병리 실습 보고서 마감이 주어진 상황에서, 나는 그 의료인문학 수업에 완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주변 동기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게 우리 사이에서의 통용어였다. 취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이렇게 크다면, 그 과목은 학생에게 닿지 않는다. 형식만 남는다.그렇다면 이 취지 좋은 교육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학생 입장에서,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첫째, 경험이 먼저고 성찰은 나중이어야 한다.지금의 인문학 과목들은 대부분 텍스트를 읽고 에세이를 쓰는 구조다. 하지만 아무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쓰는 성찰은 공허하다. 나는 스타트업 경진대회를 거친 뒤에야 비로소 소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쓸 말이 생겼다. 반대 순서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공학·경영학과 등 타 분야의 학생들과 함께하는 실제 문제해결 프로젝트나 경진대회 참가를 학점으로 인정하고, 그 경험을 글로 정리하는 세미나를 성찰의 플랫폼으로 쓰는 방식이라면 다르다. 과제가 아니라 이미 겪은 일을 언어화하는 작업이 되기 때문이다. 순서가 바뀌면 의미도 바뀐다.둘째, 멘토의 스펙트럼을 넓혀야 한다.4년 동안 내가 만나온 선배 의사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어느 병원 어느 과를 어떻게 가는가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의료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의사도 있고, 보건 정책을 설계하는 의사도 있고, 저널리즘을 하는 의사도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정기적으로 들을 수 있는 구조가 있다면, 학생들은 자신의 가능성을 훨씬 넓게 상상할 수 있다. 이건 학교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강연 한 번, 비정기 세미나 하나로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수업을 3월에 학사일정으로 픽스되어 공지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그들이 원하는 수업과 멘토'를 고르도록 해야 한다.셋째, 제도가 바뀌기를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경진대회 신청서 한 장, 외부 세미나 하나, 생각을 글로 써서 올리는 행위 하나. 이 모든 게 제도 바깥의 틈이고, 그 틈을 나는 스스로 넓혀야 한다. 시스템을 탓하는 것과 시스템의 빈틈을 찾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이건 결국 나 자신에 대한 말이기도 하다.마치며나는 아직 의대생이고, 여전히 암기에 쫓기며 살고 있다. 그래서 이 글은 시스템 위에서 내려다보며 쓴 비평이 아니다. 그 안에 있으면서, 안의 한계를 느끼며 쓴 메모에 가깝다.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고 있다. 내가 스타트업 현장에서 언어가 통하지 않아 당황했던 그 경험이, 어떤 강의보다 나를 더 크게 키웠다는 것. 경험은 지식보다 오래 남는다. 그리고 그 경험을 의대라는 공간 안으로 더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일을 우리 스스로가, 그리고 교육 시스템이 함께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생각에만 머무르지 않고, 행동하는 한 사람으로 내 자리에서 먼저 움직이겠다.
2026-06-08 05:00:00젊은의사칼럼

머뭇거릴 수 없는 사람

'땡땡땡'의과대학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특별한 경험이 있다. 바로 '땡시'다. 종이 울리면 수십 명의 학생이 일제히 자리를 바꾸고, '몇 초' 안에 눈앞의 구조물을 보고 답을 적어야 한다. 이제껏 수많은 시험을 치러봤지만, 이 시험의 감각은 유난히 낯설었다. 몇 초 안에 답을 쓰지 못하면, 그것을 모르는 것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알고 있는데도 늦게 떠오르면 소용이 없었다. 특히 표본 상태가 좋지 않은 날이면 더 그랬다. 핀 끝에 걸린 구조물이 artery인지 nerve인지조차 선뜻 가늠이 되지 않았다. 몇 초는 금세 지나갔고, 나는 끝내 확신 없는 답을 적은 채 다음 자리로 밀려나야 했다. 나중에 그 답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께름칙함은 꽤 오래 남았다.사실 억울했다. 애꿎은 시험 형식만 탓하고 싶었다. 틀렸다는 사실보다도, 알고도 늦으면 모르는 사람 취급을 받는 그 방식이 더 억울했다. 왜 꼭 이런 방식이어야 하는 걸까. 선배에게 불평 아닌 불평을 털어놓았을 때 돌아온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땡시는 빠르게 판단하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 의사의 직무를 가장 잘 드러내는 시험이라는 말이었다.짧은 시간 안에 옳은 판단을 하지 못하면,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환자의 상태는 실제로 위험해질 수 있다는 말.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땡시는 단순히 까다로운 시험 형식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좋은 의사란 어떤 사람인가'를 묻는 질문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의사는 많이 아는 사람이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필요한 순간에 머뭇거리지 않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 걸까.돌이켜보면 나는 원래도 머뭇거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이 틀렸다고 해도 내가 맞다고 느끼면 그냥 주저 없이 했다. 수업을 빼기도 했고, 군대를 미루기도 했고, 예과 시절에는 마음껏 놀기도 했다. 그 선택들이 늘 좋은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내 삶에서는 내가 납득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데 익숙했다.속으로 늘 비슷한 말을 되뇌며, '망하면 내가 책임지면 되지.'라고 말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런 태도를 용기라고, 혹은 내 선택을 끝까지 관철하는 의지라고 믿었다. 남들이 정한 길보다 내가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길을 택하는 것. 적어도 내게는 그것이 더 솔직하고 올바른 삶처럼 느껴졌다.그런데 의대에 와서는 나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되었다. 선생님의 말을 잘 듣고, 주어진 기준을 성실하게 따르며, 실수를 줄이기 위해 반복하는 사람들. 대개 그런 학생들이 성적도 좋았다. 나는 오랫동안 그런 상을 지양해 왔기에, 그들을 볼 때마다 문득 궁금해졌다. 좋은 의사는 정말 나보다 그들에게 더 가까운 사람일까. 말 잘 듣고, 안 틀리려고 애쓰는 사람이 결국 더 적합한 것은 아닐까.한동안은 그 질문 앞에서 선뜻 답을 내리지 못했다. 틀리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은 분명 학생으로서 강해 보였고, 나는 그런 강함과는 다른 방향으로 살아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알게 되었다. 의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순응도, 단순한 배짱도 아니라는 것을.그 사실을 처음 또렷하게 느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앞서 말한 해부학 땡시에서였다. 핀 끝에 걸린 가느다란 구조물이 recurrent laryngeal nerve인지, 그 곁을 지나는 작은 동맥 가지인지 몇 초 안에 가늠해야 하는 순간. 표본 위에서는 그저 비슷한 한 줄기였지만, 그 몇 초는 내게 단순한 식별 이상의 감각으로 남았다. 얼핏 비슷해 보이는 것들 사이의 작은 차이가 결코 작은 결과로만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어렴풋이 배웠던 것 같다.생각해 보면 실제 의료에서 중요한 것은 늘 거창한 정답을 맞히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비슷해 보이는 것들 사이에서 끝내 다른 것을 알아보는 일, 너무 사소해 보이는 차이를 사소하게 넘기지 않는 일에 더 가까울 것이다. 늦게 알아본 차이는 지연이 되고, 잘못 붙인 이름은 오진이 된다. 그래서 의사에게 필요한 정확성은 많이 아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작은 차이를 끝내 책임 있게 가려내는 데까지 가야 한다.돌이켜보면 나는 늘 빠르게 선택하는 쪽에 익숙했다. 그러나 그 빠름은 대개 '내가 맞다고 믿는 것'을 따르는 속도였다. 내가 틀리면 그 대가는 대부분 내가 치르면 되니까. 수업을 빼면 따라잡아야 하는 것도 나였고, 군대를 미루면 꼬인 시간표를 감당해야 하는 것도 나였다.내가 책임지고 끝낼 수 있는 삶에서는, 내 확신을 밀어붙이는 것이 하나의 태도가 될 수 있었다. 내 삶에서는 오래도록 '망하면 내가 책임지면 되지'라는 말이 통했다. 그런데 의사가 된다는 것은, 처음으로 그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계 앞에 서는 일이기도 했다.그래서 의사는 내게 더 낯선 종류의 책임으로 다가왔다. 내 판단의 결과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감당하게 될 수도 있다. 내 착오와 망설임, 혹은 성급한 확신의 결과가 누군가의 불안과 고통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 사실 앞에서 자기 확신은 더 이상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문제가 된다. 어쩌면 의사가 되어 간다는 것은, 자기 확신으로 살아온 사람이 그것을 책임으로 바꾸는 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르겠다.예전의 나는 머뭇거리지 않는 것을 용기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틀렸다고 해도 내가 맞다고 믿는 쪽으로 가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의사에게 필요한 머뭇거리지 않음은 그런 종류의 배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끝까지 점검하면서도, 필요한 순간에는 판단을 미루지 않는 태도에 더 가깝다.빨라야 해서가 아니라, '빠르면서도 틀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땡시가 유독 내게 오래 남았던 이유는, 그 시험이 단순히 내 지식을 묻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어온 삶의 방식까지 함께 흔들었기 때문일 것이다.어쩌면 좋은 의사는 말 잘 듣는 사람과 고집 센 사람 사이 어딘가에 있는 사람일 것이다. 안 틀리려 애쓰는 성실함을 가지되, 동시에 결정적인 순간에는 책임 있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 순응만으로도, 배짱만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사람. 나는 아직 어떤 사람이 좋은 의사인지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다만 적어도, 내 판단이 가진 무게를 실감하면서도 필요한 순간에는 끝내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시간의 소중함을 알지만 조급함에 휘둘리지 않고, 책임을 알지만 두려움에 멈추지 않는 사람. 언젠가 다시 어떤 '몇 초' 앞에 서게 되더라도, 그 순간을 함부로 넘기지 않는 사람. 어쩌면 내가 되고 싶은 의사는, 결국 그런 사람일 것이다.
2026-06-01 05:00:00젊은의사칼럼

동화책을 읽는 마음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동화책을 읽었던 기억을 떠올려 보자. 아마도 대부분은 어린 시절 추억 속 한 장면에 흐릿하게 남아 있는 게 전부이지 않을까? 우리는 누구나 동화책의 독자였음에도, 시간이 흐르고 성장하면서 철저한 외부인으로 변모한다.성인이 된 이후엔 동화책을 다시 펼쳐 볼 엄두도 내기 힘들고, 그럴 이유도 떠올리기 쉽지 않다. '아동들의 전유물', 아마도 이것이 일반적인 어른들이 동화책에 대해 가지는 태도일 것이다. 나 또한 어린이 도서관에서 봉사를 하기 전까지는 비슷한 마음가짐이었다.어린이 도서관에서 낭독 봉사를 시작하면서 나는 동화책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대가 없었다. 아이들이 요청하면 성심성의껏 읽어줄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알 수 없었다. 몇몇 동화책들은 스스로 낭독자인 동시에 청자가 되어 책장을 넘기는 손길을 재촉하게끔 만들 것이고, 또 쉬는 시간에도 다시금 책장을 넘겨보며 내용을 곱씹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10년도 넘는 세월이 지나 다시 펼쳐 본 동화책은 나의 선입견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단순하고 쉬운 문장들은 유치하기보다는 오히려 큰 울림을 주었고, 뻔할 것이라고 생각한 이야기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래서 더 잊어버리기 쉬운 삶의 진실들을 담고 있었다.동화책을 넘기면서 나는 어린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며 웃음 짓기도 하고, 성인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일정 부분 어른답지 못한 지금의 나를 들켜버린 듯한 기분도 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동화책을 읽은 덕분에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어느새 다 커버린 어른들에게도 여전히 동화책이 필요하단 사실을 말이다.하지만 그 이후로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막상 지인들에게 자신 있게 추천할 만한 동화책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우선 동화책에 대한 편견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고, 동화책은 내용이 비교적 단순한 만큼 각자의 해석에 따라 내용이 전혀 다르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그러던 와중 이번에 좋아하는 출판사인 동아시아에서 어른들을 위한 동화 『바퀴벌레 이야기』가 출간되었다고 해서 읽어보았는데, 지인들에게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동화책을 드디어 발견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이 책은 한 소년이 갑자기 튀어나온 바퀴벌레를 보면서 기겁하다가 문득 자신이 어린 시절엔 바퀴벌레를 이렇게 무서워하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리며 시작한다. 이윽고 소년은 바퀴벌레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의 본능적인 반응이 아니라, 부모님의 대응을 보고 자라면서 '사회적으로 학습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하지만 '시간이 흘렀고, 그 생각은 이제 너무 진짜처럼 느껴져서 꾸며진 이야기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가 없었' 던 것이다. 한번 이러한 사실을 상기한 이후로 소년은 그동안 당연함에 가려 의문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사회가 만든 이야기'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하고, 어쩌면 그동안의 '생각'과 '진실'은 다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작은 균열은 소년이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린다.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메시지는 사실 다른 책들에서 이미 다루어진 주제 의식과 크게 다른 부분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화책'이라는 형식을 통해 전달되었기 때문에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가지게 된 것이다.『바퀴벌레 이야기』에서는 동요 내지는 동시가 떠오를 정도로 앞선 문단에서 따옴표로 인용한 문장이 여러 번 반복되는데, 삶의 진실을 담은 명료하고 단순한 문장의 반복은 독자로 하여금 책의 메시지를 명확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이전에도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추상적인 문장들 사이에서 발견한 빛나는 지점들을 타인에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화려한 문장으로 꾸며내기 보다는, 간결한 문장의 반복을 통해 독자에게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진심이 느껴지는 탓일까.스스로 터득한 삶의 진실을 '쉬운 말로 쓸 수 있는 용기와 배려'가 있어야만 쓸 수 있는 책이 바로 동화책이라는 사실을 나는 『바퀴벌레 이야기』를 읽으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어쩌면 '쉬운 말을 쓸 용기'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 아닐까? 우리 모두가 동화책 작가가 될 수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겠지만 종종 일상 속에서 과도한 '꾸밈어'가 남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인터넷 및 SNS의 발달과 서비스 업종의 확대, 그리고 각종 민원 등 다양한 이유로 우리는 조금씩 더 자신의 말을 포장하게 된다. 물론 그 목적이 타인을 위한 배려일 때도 있겠지만, 종종 과한 배려는 오히려 상대방의 이해와 의사소통을 방해하기도 한다.겉보기에는 예쁘더라도, 포장된 언어는 상대방에게 충분히 가 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공허한 대화만이 허공을 맴돌게 되는 것이다. 포장이 일종의 '방패'가 되어버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선뜻 먼저 쉬운 말을 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다.때로는 상대방에게 책잡힐 수 있고, 은근히 낮춰 보는 시선을 마주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었을 때만 맞닿는 진심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진심을 나누는 일이 더욱 가치를 인정받는 사회가 될 수 있길 바란다. 
2026-05-26 05:00:00젊은의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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