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 너머의 판단…가이드라인에 대한 소고
[메디칼타임즈=고려의대 2학년 강지민 ]2학기가 끝났다. 총 11과목, 402시수, 전공선택 과목을 제외하면 25.5학점. 임상의학 네 개 카테고리를 16주간 달렸다. 한 학기를 돌아보자니, 기초의학만 배웠던 본과 1학년 때와 달리 올해는 유달리도 많은 '가이드라인'을 외웠다는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딱 떨어지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가이드라인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절대적 진리가 되어주었지만, 이따금은 나를 혼란 속에 빠뜨리기도 했다.그 혼돈의 정점은 응급의학 수업이었다. 응급의학에서 다루는 가이드라인은 주로 5년을 주기로 개정되는데, 하필 올해가 2025년이었다. 게다가 강의 편제상 2학기 마지막인 8카테고리에 응급의학이 포함되어 있었다.교수님이 금년 개정안을 반영해 강의하실 때면 기출문제를 온전히 믿을 수 없다는 점에서 머리가 복잡했고, "올해 말에 개정될 예정이니 2020년 버전으로 보자"라고 하시는 날에는 한편으로 감사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래도 PK나 인턴 때는 2025년 가이드라인을 따로 공부해놔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샘솟았다.이보다 더 빈번하게 가이드라인이 개정되는 종양학에서는, 아직 올해가 몇 개월이나 남아 있음에도 벌써 2026년도 NCCN 가이드라인을 들고 오신 교수님도 계셨다. 이처럼 가이드라인 변동을 빠르게 반영하시는 교수님들의 경우에는, 과거 기출문제에서 이해가 가지않는 부분을 한참 구글링하다가 해당 연도의 가이드라인에서 답을 찾곤 허탈한 웃음을 지은 적도 있었다. 그야말로, 가이드라인에 울고 웃은 한 해였다.그러다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막연히 의사들이 처방을 내릴 때는 '경험'이나 '감'이 더 크게 작용할 것이라 여겨왔다. 그러나 올해 임상의학을 배우며 느낀 바는, 실제 임상 과정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이드라인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다는 점이었다.환자의 증상은 해리슨이나 전공서적의 기준에 따라 점수화되고, 처치는 수많은 학회들이 오랜 시간 검토해 온 guideline에 따라 이루어진다. 임상에 수많은 grey zone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토록 표준화된 세계가 존재한다는 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의학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과학적이었고, 훨씬 더 정교한 학문이었다.이러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역시 인상 깊었다. 해리슨의 한 문장, guideline의 한 줄이 바뀌기까지는 수많은 multicenter RCT가 전제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그 RCT를 수행하고 있을 것이고, 그렇게 집적된 자료 위에 최신 지침이 쌓여 간다. 객관성과 재현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이 과정은, 가이드라인이 왜 '표준'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이드라인이 모든 상황을 완벽히 설명하지는 않는다. 특히 감염학에서, 배양 결과가 나오기 전 환자에게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guideline이 전제하는 틀 안에서 empirical antibiotics가 사용된다.이는 가이드라인의 부정이 아니라, 오히려 가이드라인이 현실의 임상을 고려해 허용한 영역에 가깝다. 대부분의 감염은 일정한 패턴을 보이고, 항생제를 신속히 투여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오류의 위험을 상회하기에 이러한 접근이 지침에 포함된 것이다.이 지점에서 가이드라인은 절대적 명령이 아니라, 의사의 판단을 지탱하는 좌표처럼 느껴졌다. 오랜 시간 누적된 환자 경험과 판단의 흔적이 근거로 정제되어 guideline이 되고, 다시 그 guideline이 다음 세대의 임상을 규정한다.무수한 RCT와 체계적 연구가 의학을 정교하게 만든다면, 그 연구들을 가능하게 한 경험의 집합은 의학을 인간적인 학문으로 만든다. 나는 이 순환 구조가 의학의 본질에 가장 가깝다고 느꼈다. 더 나아가, 이러한 과정 자체가 의사라는 직업과 그 전문성에 대한 하나의 '존중'이 아닐까 싶었다.그렇기에 실제 의료현장에서 내가 마주할guideline은 지금껏 퍼시픽 문제를 풀 때와 달리 절대적 진리가 아니며, 전능하지도 않다. 이 부분은 내년 실습을 돌면서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같은 advanced gastric cancer라 하더라도 환자가 100명이면 100개의 서로 다른 케이스가 있고, 환자의 의지, 가족의 생각, 경제적 여건, 동반 질환에 따라 치료의 방향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guideline은 어디까지나 '이상이자 원형'일 뿐, 현실에 맞게 조정하고 재구성하는 역할은 결국 의사에게 달렸다.오후 5시만 넘어도 어둑어둑해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완연한 겨울을 실감한다. 약간 돌아오긴 했지만, 의대를 다닌 지 6년 만에 이론 강의 블록을 모두 마쳤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실제 환자를 대면하며 진정한 의사로서의 능력을 배양하는 일이다. 지금까지의 학습은, 거칠게 말하자면 AI도 할 수 있는 일이니…. (사실은 AI가 더 잘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인간답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저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