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 앞에 서는 마음에 대하여
돌이켜보니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한 이후로 약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나를 둘러싼 외부적 상황과 나의 내면 모두 여러 변화를 겪었지만, 또 어떤 것들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글을 쓸 때의 가장 큰 고민거리 같은 것이다.그동안 글에 대해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꾸준히 지적 받아온 것은 일종의 피상성이었다. 어떤 사고 과정에 이르기까지의 개인적인 경험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 그러므로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가 어렵다는 것.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따끔거리는 기분이었다. 실은 스스로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주변의 시선이나 평가가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주위에선 나를 볼록렌즈를 통해서 바라보는데, 나는 오목렌즈를 끼고 바라보는 것처럼, 주변의 평가에 비해 스스로가 한없이 작아 보이곤 했다.그렇지만 날 향한 기대를 실망으로 변질시키고 싶지 않았으므로, 어떻게든 보잘것 없는 나를 감추고 꽤 볼만한 '나'를 만들고자 했다. 완벽할 수 없다면 완벽해 보이기라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늘 나의 결점을 숨기기 바빴다. 애초에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은 나의 의무가 아님에도,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스스로에게도 솔직하지 못했던 시간이 꽤 길었던 것 같다.솔직함은 언제나 일종의 두려움을 동반한다. 그동안 나는 나의 약점을 드러낼 용기가 없었다. 특히 지면에 연재되는 글에서는 더더욱 감추고 싶었다. 매끄럽지 못한 주장과 부족한 생각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거나, 무엇보다 미래의 나 자신에게 숨기고 싶은 치부가 될까 두려웠다. 그 두려움은 줄곧 방어적인 태도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최대한 글 속에서 자신을 숨기고자 했고, 그렇게 나의 글쓰기는 더 이상 '나'만의 글쓰기가 아니게 되었다. 그런 점에 대해 자주 피드백을 받으면서도 한순간에 고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그러던 중 최근 출간된 최은영 작가의 첫 산문집 『백지 앞에서』를 읽게 되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의 연약함, 과거, 불행 등을 그저 담담히 털어놓는다. '일개 독자인 내가 이런 것까지 읽어도 될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솔직한 글들을 보고 있자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글의 내용보다도, 작가의 태도가 더 오래, 더 큰 충격으로 남았다.더 이상 좋은 작품을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 외모에 대한 강박, 버림받을 것 같다는 느낌 등 자신의 취약성과 두려움에 대해 고백하는 글 속에서 역설적으로 작가는 굉장히 강인하고, 또 자유로워 보였기 때문이다.나는 이제 어릴 적 생각했던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누구나 자신만의 결핍과 불행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삶은 예상되지 않는 종류의 것이라서 어떤 선택을 하든 나름의 후회가 뒤따른다는 것도 꽤 오랜 시간이 흘러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결점을 회피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받아들이고 또 포용하는 것도 가능하단 걸, 그리고 그런 모습이 아마도 '진정한 어른'에 더 가까우리라는 것을 나는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하얗고 깨끗한 것만이 아니라, 때 묻은 흔적까지도 모두 내 마음, 내 모습이므로 느리더라도 하나씩, 온전히 받아들이고자 한다.스스로 한없이 부족하다고만 느꼈던 시절도 나의 최선 중 하나였음을 이제는 알 수 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헤맸다고 여겼던 시간들도, 뒤돌아보니 꽤 괜찮은 경험으로 남아 있었다. 무엇이 될 줄도 모르고 연신 자판을 두드리던 날들은 나름 근사한 작업물로 기록되어 있다. 스스로의 부족함과 싸우며 발버둥 쳤던 흔적은 지나고 보면 늘 애틋하고 생각보다 아름다웠다.이제는 더 이상 나의 결점을 외면하거나 숨기지 않고, 미래를 미리 두려워하지 않고, 그저 꾸준히 걸어가고자 한다. 지금 써 내려가는 이 글이 스스로에게 더 솔직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그리하여 언젠가 더욱 자유로운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