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성실한 진료행위와 손해배상책임
[메디칼타임즈=동방봉용 변호사(법무법인 문장) ]환자는 의사를 찾아가 질병의 치료를 맡기게 된다. 법률상 이는 계약에 해당한다. 대법원은 진료계약에 대해 '환자가 의사 또는 의료기관에게 진료를 의뢰하고 의료인이 그 요청에 응하여 치료행위를 개시하는 경우에 의료인과 환자 사이에는 의료계약이 성립된다. 의료계약에 따라 의료인은 질병의 치료 등을 위하여 모든 의료지식과 의료기술을 동원하여 환자를 진찰하고 치료할 의무를 부담하며 이에 대하여 환자 측은 보수를 지급할 의무를 부담한다(대법원 2009. 5. 21. 선고 2009다17417 전원합의체 판결)'고 설명한다.의료행위의 속성상 의사는 환자의 구체적인 증상이나 상황에 따라 발생하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최선의 조치를 취하여야 할 주의의무를 부담한다. 환자는 의사가 자신의 질병을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치료하여 줄 것을 기대한다. 환자는 자신의 신체적 고통을 감내하며 전문가인 의사에게 자신의 몸을 맡긴다. 의사의 일거수일투족은 환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의사가 그러한 환자의 기대에 반하여 환자의 치료에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경우에는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18. 12. 13. 선고 2018다10562 판결).그렇다면,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의사에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우선, 의사가 환자에 대하여 부담하는 진료채무는 환자의 치유라는 결과를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결과채무가 아니라, 치유를 위하여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를 다하여 현재의 의학수준에 비추어 필요하고도 적절한 진료를 할 채무 즉 수단채무이므로, 진료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하여 바로 진료채무의 불이행으로 추정할 수는 없다(대법원 2015. 10. 15. 선고 2015다21295 판결). 즉, 의사는 환자에 질병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을 뿐 반드시 그 질병을 치료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관하여 대법원은 의료진이 환자의 기대에 반하여 환자의 치료에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경우 그러한 주의의무 위반과 환자에게 발생한 악결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다면, 그에 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한다. 다만, 대법원은 불성실한 진료가 일반인의 처지에서 보아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한 것이라고 평가될 정도에 이른 경우라면 그 자체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하여 그로 말미암아 환자나 그 가족이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배상을 명할 수 있다(대법원 2018. 12. 13. 선고 2018다10562 판결)고 하였다. 즉,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행위 자체가 독자적인 불법행위를 구성하고, 그로 인한 정신적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와 관련한 대법원 사례가 있다. 갑이 을 의료재단이 운영하는 병 병원 응급실에 내원하여 치료를 받은 후 증세가 호전되어 귀가하였다가 약 7시간 후 같은 증상을 호소하며 2차로 내원하였는데, 병 병원 의료진이 갑에게 투약 등의 조치를 시행하였고, 그 후 증세가 악화되자 집중 관찰을 실시하였으며, 2차 내원 후 약 3시간이 지나 응급실 당직의사가 갑의 혼수상태를 보고받고 조치를 취하였으나 갑이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대하여 원고는 망인이 2차 내원한 이후 혼수상태에 이를 때까지 적절한 치료와 검사를 지체하였고, 이는 일반인의 수인한도를 넘어선 것으로서 불성실한 진료를 행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이에 대하여 원심은 '망인이 ○○병원에 2차 내원한 후 약 1시간 만에 상태가 급속히 악화되었는데도 간호사가 의사에게 망인의 상태를 보고조차 하지 않았고, 망인이 의식을 상실할 때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음으로써 망인에게 나타난 뇌병증 원인을 찾아 치료할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하게 한 것은 일반인의 처지에서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치료를 행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는 이유로 위자료의 지급을 명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수인한도를 넘어서는 정도로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하였다는 점은 불법행위의 성립을 주장하는 피해자가 증명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① 일반 의료진 능력으로는 진단과 치료에 한계가 있으므로 즉시 동맥혈가스분석 검사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당직의사에게 과실이 있다고 연결하기는 어려우며 망인의 내원 시부터 적절한 처치까지 치료가 약 3시간 정도 늦어진 것을 치명적 범실로 보기는 어렵다는 점, ② 망인에게 대사성산증, 미오글로빈 증가, 뇌부종으로 인한 뇌사 등 악성신경이완증후군에 따른 일련의 증세가 진행하면서 망인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악성신경이완증후군 환자를 다루어 본 경험이 있는 일부 신경과 전문의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질병이라는 점을 들어 망인이 2차 내원한 이후 혼수상태에 이를 때까지 적절한 치료와 검사를 지체하였다고 하더라도, 일반인의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한 것으로 평가될 정도에 이르지 않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18. 12. 13. 선고 2018다10562 판결). 대법원은 감기몸살로 내원한 환자가 수액을 투여받던 중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가슴이 답답하다고 호소하자 ‘택시를 타고 큰 병원으로 가라’고 전원을 권고하였고, 의원에서 나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건물 앞에서 주저 앉아 쓰려져 119구급대를 통해 응급실로 후송되었으나 사망한 사안에서 ‘망인이 피고 의원에 내원하였다가 주사를 투여받은 후 전원권고를 받고 피고 의원을 부축받아 걸어 나왔다면, 원심이 들고 있는 것처럼 망인의 혈압 등을 측정하지 않았다거나 이송 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행위만으로 피고가 일반인의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대법원 2023. 8. 18. 선고 2022다306185 판결).대법원이 설시한 '불성실한 진료가 일반인의 처지에서 보아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한 것이라고 평가될 정도에 이른 경우'란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달리 판단될 수밖에 없다. 의사의 진료채무는 환자의 치유라는 결과를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결과채무가 아니라 질병의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는 진료채무의 성질상 대법원의 위와 같은 법리를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그런데, 대법원이 제시하고 있는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인정할 수 있는 사안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그 입증책임도 환자에게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그 문턱이 너무 높아 보인다.환자들은 자신의 질병을 치유할 목적으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감내하며 전문가인 의사에게 치료를 받는다. 의사의 관심에서 멀어지면 환자는 자신이 방치되고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환자의 권익 신장을 위해서라도 대법원이 제시한 문턱이 다소 완화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