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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가 설계자들이 칼을 거꾸로 들었다

[메디칼타임즈=대한병원의사협의회 마상혁 고문 ]  '건강보험 수가 구조 혁신방안'이라는 이름은 기만이다. 6월 17일 정부가 내놓은 이 문서는 혁신이 아니라, 30년에 걸쳐 자신들이 비틀어 놓은 수가 체계의 책임을 의료 현장에 뒤집어씌우는 면피용 청구서일 뿐이다. 불을 지른 자가 소방 호스를 들고 나타나 "여기가 왜 이렇게 탔느냐"고 호통치는 격이다.숫자부터 따져 보자. 검체검사 190%, CT·MRI 200%, 반대로 입원 57.3%·재활 62%·진찰 70.7%. 정부는 이 수치를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객관적 진실처럼 들이민다. 그러나 이것은 정부 산하 의료비용원가분석위원회가 '종합병원 77곳', 그것도 의원급은 통째로 빠진 표본을 정부 기준으로 계산한 값에 불과하다.게다가 '원가보전율'은 학계조차 단일한 정의를 합의하지 못한 개념이다. 비용을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같은 행위의 보전율이 수십 퍼센트씩 춤춘다. 깎을 때는 이 흐릿한 잣대를 정밀과학처럼 휘두르고, 올려야 할 때는 슬그머니 치워 버린다. 통계를 권력의 무기로 골라 쓰는 전형적인 행정 편의주의다.그렇다면 묻는다. 진찰과 입원을 원가의 60%대로 처박아 놓은 그 점수표는 누가 만들었는가. 우리 수가는 상대가치점수에 환산지수를 곱해 정해진다. 상대가치점수는 건정심을 거쳐 보건복지부 장관이 고시하고, 환산지수는 매년 공단과 의료계의 협상으로 결정된다. 다시 말해 검사를 과보상하고 진찰·입원을 원가 이하로 묶은 그 왜곡된 설계도의 저작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보건복지부와 건정심 자신이다. 의원 초진료를 20년 넘게 동결시킨 것도, 인상분을 매년 0.5% 안팎으로 틀어막고 SGR이라는 총량 억제 장치로 의료를 고사시켜 온 것도 정부다. 자기 손으로 망가뜨린 구조를 가리키며 "엉망"이라 비난하는 그 뻔뻔함에는 최소한의 자기반성조차 없다.검사가 많다는 비난은 더욱 악의적이다. 인구 1천 명당 CT 333.5건이 OECD 평균의 두 배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가 직접 발표한 'OECD 보건통계 2025'는 같은 해 우리 임상의사가 인구 1천 명당 2.66명으로 사실상 꼴찌, 국민 1인당 외래는 연 18회로 OECD 평균의 약 3배, 진료 시간은 4.3분으로 평균(16.4분)의 4분의 1임을 함께 적시한다.의사는 턱없이 부족하고, 한 명이 폭주하는 환자를 분 단위로 쳐내야 하는 나라에서 검사는 사치가 아니라 짧은 진찰을 메우는 생존의 보완재다. 여기에 진단 지연을 형사처벌로 단죄하는 살벌한 사법 리스크가 방어진료를 강요한다. 그리고 결정타—MRI 검사가 폭증한 진짜 방아쇠는 정부 스스로 당긴 것이다. 보장성 강화 정책(이른바 문재인 케어)으로 2018~2019년 MRI와 초음파를 대거 급여화하며 빗장을 활짝 연 장본인이 정부다. 수요를 폭발시켜 놓고 이제 와 그 수요를 '과잉'으로 낙인찍는 것, 이것이야말로 책임 전가의 완성형이다.'아낀 돈 2조 원'이라는 표현도 거짓 포장이다. 이것은 절감이 아니라 강탈에 가까운 이전이다. 총진료비를 사실상 묶어 둔 틀 안에서 검사 수가를 깎아 응급·분만을 메우는 제로섬 돌려막기일 뿐, 단 한 푼의 새 재정도 들어오지 않는다. 정작 정부의 건강보험 국고지원은 법정 기준 20%에 한참 못 미치는 13%대에 방치돼 있다. 자기가 내야 할 돈은 떼먹은 채, 의료기관끼리 서로 살을 뜯어 나누라는 것이다. 더 가관인 것은, 깎을 항목은 110%·150%까지 기어이 숫자로 못 박으면서, 원가의 57%짜리 입원료를 언제 정상화하겠다는 약속은 '강화' '지원' '연계'라는 공허한 수사로 얼버무린다는 점이다. 의도가 빤히 보인다. 깎는 것은 확정, 올리는 것은 희망사항이다.응급실은 환자를 돌려보내고, 분만실은 사라졌으며, 소아청소년과는 원가에 못 미치는 진료로 줄줄이 문을 닫았다. 이 참사는 갑자기 터진 것이 아니다. 수년간의 절규를 묵살한 정책 실패의 필연적 귀결이다. 책임은 명백히 보건복지부와 정치권에 있다. 그렇다면 혁신을 입에 올리기 전에 무릎 꿇고 사과부터 하는 것이 도리다. 그런데도 마치 의료인이 폭리를 취한 파렴치범인 양 몰아세우며 그들의 보상을 깎아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니, 이보다 더한 적반하장이 어디 있는가.의사는 OECD 꼴찌로 부족하고 의료비(2023년 경상의료비 GDP 대비 8.5%, OECD 9.1%)는 평균에도 못 미치는 나라에서 "저비용 고품질 의료"를 약속하는 것은 산수조차 안 되는 국민 기만이다. 반나절 공청회 한 번 열어 놓고 "충분히 들었다" 자평하며 정책을 밀어붙이는 이 오만이, 미래를 스스로 지워 가는 한국 의료의 민낯이다. 국민이 그 청구서를 떠안기 전에, 책임 소재부터 분명히 물어야 한다.
2026-06-29 05:00:00이슈칼럼

탈모는 건강보험, 근골격계 통증은 과잉진료인가

[메디칼타임즈=박상준 기자]정부가 탈모 치료의 건강보험 적용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6년 하반기 중점 추진과제에 탈모 치료 건강보험 급여 확대를 포함했고, 국민 200명이 참여하는 공론화 절차와 토론회를 통해 사회적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도 건강보험 적용 방식과 재정 소요에 대한 실무 검토가 있었다고 설명했다.탈모가 단순한 외모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특히 청년층에게 탈모는 심리적 위축, 대인관계의 부담, 사회생활의 자신감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원형탈모처럼 질병성이 명확한 경우라면 치료의 필요성도 분명하다. 의료는 몸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을 회복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건강보험은 무한한 재원이 아니다. 한정된 보험 재정을 어디에 먼저 사용할 것인가, 어떤 질환을 우선 보장할 것인가, 국민 전체가 납부한 보험료를 어떤 기준으로 배분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탈모 치료가 삶의 질이라는 이름으로 건강보험 논의의 전면에 등장한다면, 우리는 같은 기준으로 다른 질환들도 바라봐야 한다.허리 통증으로 밤잠을 설치는 환자가 있다. 무릎 통증으로 계단을 오르내리지 못하는 노인이 있다. 어깨 통증으로 옷을 입고 벗는 일상동작조차 어려운 노동자가 있다. 목 통증과 두통으로 하루 종일 진통제를 먹으며 버티는 직장인이 있다. 이들에게 근골격계 통증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일할 권리, 이동할 권리, 잠잘 권리, 노후의 독립성을 좌우하는 기능장애다.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도수치료는 2026년 7월부터 관리급여로 전환되며 회당 4만3850원대 수가, 본인부담률 95%, 주 2회 이내, 연 15회 제한이라는 기준이 확정됐다. 수술이나 골절 후 관절구축 등 뚜렷한 의학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도 연 최대 24회까지로 제한된다.더 중요한 것은 연간 인정 횟수를 초과한 질환 치료 목적의 도수치료는 비급여로도 청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즉 환자가 자신의 비용으로라도 통증과 기능장애 치료를 이어가고 싶어도 제도적으로 막히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이쯤 되면 의료현장은 묻지 않을 수 없다.탈모는 건강보험이고, 근골격계 통증은 과잉진료인가. 머리카락의 삶의 질은 보장하면서, 걷고 일하고 잠자는 기능의 회복은 왜 규제의 대상인가. 청년의 탈모 스트레스는 사회적 고통이고, 노인의 무릎 통증과 중년 노동자의 허리 통증은 단순한 소비인가.이 질문은 탈모 치료를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건강보험의 원칙을 바로 세우자는 것이다. 건강보험이 삶의 질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다면, 그 첫 번째 기준은 의학적 필요도와 기능장애의 정도여야 한다. 일상생활 수행능력을 떨어뜨리고, 노동능력을 상실하게 만들고, 수술과 장애와 요양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질환부터 우선순위를 가져야 한다.근골격계 질환은 대한민국 의료에서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과소평가되는 영역이다. 국민 상당수가 허리, 목, 어깨, 무릎, 손목, 발목 통증을 경험한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퇴행성 관절질환, 척추질환, 근감소증, 낙상 후 통증과 기능저하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근골격계 진료는 단순한 통증 완화가 아니라 고령사회에서 노인의 독립생활을 유지하고, 노동자의 생산성을 보존하며, 불필요한 수술과 장기요양을 줄이는 사회적 투자다.그럼에도 정책은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근골격계 초음파와 같은 진단 인프라는 충분히 보장되지 않은 채, 치료 영역은 실손보험 손해율과 과잉진료 프레임 속에서 먼저 규제된다. 통증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도구는 제한되고, 기능 회복을 위한 치료는 횟수와 가격으로 묶인다. 진단은 늦고, 치료는 막히고, 환자는 결국 더 큰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로 밀려난다.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도 가볍게 볼 수 없다. 보도에 따르면 국회예산정책처는 의료개혁 1·2차 실행방안을 반영할 경우 향후 10년간 건강보험 재정 누적 적자가 27조8000억원 늘고, 누적 준비금 소진 시점도 2029년으로 앞당겨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급여 항목을 확대하려면 더 엄격한 우선순위 논의가 필요하다.건강보험은 정치적 선심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인기 있는 질환, 표가 되는 세대, 여론의 반응이 빠른 항목부터 급여화하는 방식은 건강보험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건강보험은 의학적 필요도, 질병 부담, 기능장애, 재정 지속가능성, 치료 효과성을 기준으로 움직여야 한다.탈모 급여화 논의가 필요하다면 최소한 세 가지 원칙이 전제되어야 한다.첫째, 질병성 탈모와 미용·노화성 탈모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둘째, 중증질환·필수의료·기능장애 치료보다 앞설 수 없다는 우선순위 원칙을 세워야 한다.셋째, 근골격계 통증과 기능장애 치료도 같은 삶의 질 기준에서 재평가해야 한다.청년의 머리카락이 중요하다면, 노인의 무릎도 중요하다.외모의 자신감이 중요하다면, 걷고 일하고 잠자는 기능도 중요하다.탈모의 사회적 고통을 인정한다면, 근골격계 통증의 사회경제적 손실도 인정해야 한다.정형외과 진료실에는 오늘도 머리카락보다 먼저 봐야 할 환자들이 온다. 허리를 붙잡고 들어오는 환자, 무릎을 절며 들어오는 환자, 어깨를 들지 못해 보호자의 도움을 받는 환자들이다. 이들은 미용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걷고, 다시 일하고, 다시 잠들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건강보험이 국민의 삶의 질을 말하려면, 그 삶의 질은 머리카락에서 시작해서는 안 된다. 국민이 서고, 걷고, 일하고, 살아가는 기능에서 시작해야 한다.탈모는 건강보험이고, 근골격계 통증은 과잉진료인가.이 질문에 정부가 답해야 한다.
2026-06-22 05:00:00이슈칼럼

대만에서 배우는 한국 의료의 출구

서울특별시의사회 이정언 부회장2024년 2월부터 시작된 의정사태는 그 동안 쌓인 대한민국 의료의 누적된 문제점을 단번에 드러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대부분 국민이 가입된 의료보험, 암진단을 받으면 5년간 급여항목에서 단 5%만 본인부담이고 국가에서 95%를 보장해 준다고 자랑하던 대한민국 의료는, 실상 시장경제 체제 아래에서 강한 공적 가격통제와 민간 의료공급자 의존이 결합된 구조적 모순을 가지고 있었다.필수의료 인력 붕괴,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의 의료 불균형, 의료진에 대한 불신, 환자 권리 보장과 필수의료진 보호의 균형은 외면한 채 민형사 소송부터 제기하는 사회적 흐름은 젊은 의과대학생들과 수련을 받고 있는 의사들의 휴학과 사직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여과 없이 드러났다.나는 한창 이 사태가 진행 중인 와중에 타이베이에서 개최된 학술대회에 두 차례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대만은 의료보험제도가 우리나라와 유사하고, 높은 보장율을 가지고 있으나 낮은 의료수가로 인한 의료진의 고강도 노동이라는 문제를 공유하는 나라다.이런 까닭으로 대만 의사들은 대한민국의 의료 사태에 대하여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들이 뜻밖에 궁금해하는 것은 '의대생 2000명 증원 선언'으로 비롯된 이 사태가 어쩌면 이렇게 오래 지속될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저수가 구조 개선, 필수의료진 보호, 의료사고를 처벌보다 의료시스템 개선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정책 마련 등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의료계 내부에서 스승과 제자, 선후배 관계가 일시에 흔들리고, 젊은 의사들이 자신의 직업적 정체성 자체를 위협받는다고 느꼈던 당시의 상황까지는 차마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참고로 2024년 5월에 대만 총통으로 취임한 라이칭더(賴清德)는 내과를 전공한 의사 출신 정치인이며, 우리나라의 보건복지부장관에 해당하는 위생복리부 부장 스충량(石崇良)은 응급의학과 의사이자 공중보건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양국의 의료제도에 대해 조금만 더 알아보자. 한국과 대만의 의료보험제도는 동아시아에서 매우 유사한 사회보험형 보건의료 모델이다. 한국은 1977년 5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의료보험을 시작해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을 달성했고, 2000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중심의 단일보험자 체계로 통합되었다.대만은 한국보다 조금 늦은 1995년에 전민건강보험(NHI)을 도입했지만, 출범 당시부터 의무가입과 단일보험자 구조를 채택했다. 양국 모두 공적 보험자가 재정과 급여 기준을 강하게 관리하면서도, 실제 의료서비스 공급은 민간 의료기관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법적 의무가입에 기반하여 매우 높은 인구 포괄률과 의료접근성을 달성했다.또한, 행위별 수가제를 기본으로 하되 수가 수준과 급여 기준은 공적 보험자가 강하게 통제한다. 한국은 모든 요양기관이 국민건강보험 체계에 편입되는 당연지정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대만은 법적으로는 계약제에 가깝지만 전민건강보험의 압도적 포괄성 때문에 대부분의 의료기관이 NHI 체계에 참여한다. 이로 인해 양국 의료계 모두 저수가, 원가보전, 심사·삭감, 의료의 자율성 문제를 오래된 갈등 의제로 공유하고 있다.가장 큰 차이는 대만의 '총액예산제'이다. 대만은 2002년 전면적인 총액예산제를 시행하여 전체 의료비 증가를 사전에 설정된 예산 안에서 조절하고, 진료량이 늘어나면 점수당 가치가 변동되도록 설계했다. 반면 한국은 총액예산제 없이 행위별 수가와 심사평가 체계를 통해 의료비를 관리한다.대만의 독창성은 공급자 중심의 의료정보 인프라이다. 대만은 2004년부터 도입한 전민건강보험 IC카드(NHI IC Card) 체제를 기반으로 파마클라우드(PharmaCloud), 메디클라우드(MediCloud), 마이헬스뱅크(My Health Bank) 등을 발전시켜, 보험자가 축적한 진료·처방·검사 관련 정보를 의료기관과 환자가 유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왔다.이는 환자가 병원에 카드를 넣으면 정부 서버와 실시간 연동되어 의료진이 환자의 서양의학 및 한의학 약물사용 기록, 검사결과, 수술기록, 치과치료이력, 알레르기 약물정보 등을 확인할 수 있고, CT나 MRI 등의 영상에도 접근할 수 있는 구조다.단일보험자 체계가 단순한 재정 관리자를 넘어 의료정보 연결자이자 의료이용 조정자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매우 선진적이다. 이 시스템은 중복처방 방지, 약물 안전, 검사 중복 감소, 환자 본인의 건강정보 접근성 향상, 감염병 대응 등에서 큰 강점을 보인다.이처럼 닮은 점과 배울 점이 많은 양국의 수도 의사회, 즉 서울특별시의사회와 타이베이시의사회는 2003년 자매결연 이후 정기적으로 교차 방문을 이어왔다. 굳건했던 모임이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약 4년간 완전히 중단되는 위기를 맞았으나, 방역이 완화된 이후 교류는 전격 재개되었다.타이베이시의사회 홍더런(洪德仁) 회장과 집행부가 서울시의사회를 방문하였으며, 과거 2005년 당시 서울시의사회 의무이사로서 대만 방문을 수행했던 주역 중 한 명인 황규석 회장이 이끄는 현 서울시의사회 집행부가 타이베이시의사회 창립 80주년을 축하하며 타이베이를 공식 방문하여 더욱 끈끈한 유대를 보여주고 있다.지난 2025년 6월, 서울에서 열린 정기 교류회에서 두 단체는 각각 주제발표를 통해 의료 정책 및 제도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지식과 경험을 공유했다.서울시의사회에서는 '의대 정원 증원 및 의정 갈등'을 주제로 국내의 현실을 공유하였고, 타이베이시의사회에서는 "완벽한 의료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타이완 의료시스템 통합 소개"라는 제목으로 현재 대만에서 진행 중인 수직적·수평적 의료통합시스템을 소개했다.대만 측 발표에 따르면 이 통합돌봄모델을 통해 중복검사율이 27% 감소했고, 환자의 전원 대기시간은 35% 단축되었으며, 의료비용 감소 효과는 18%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대만 측은 의뢰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바로 대형병원 진료를 원하는 대중들의 고착화된 습관, 자원과 환자를 공유하려 하지 않는 의료기관 간의 치열한 경쟁, 벽지 지역의 1차의료 자원 부족, 의료단위마다 다른 정보시스템 표준 사용에 따른 기술적 한계 등 여전히 현장에서 겪고 있는 고충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한편, 이에 대해 한국은 건강보험 청구자료와 심사평가 인프라는 매우 발달해 있지만, 개인정보보호법과 의료정보 보호 규범이 엄격하고 기관 간 정보 연계에 대한 사회적 민감성이 높아 대만식의 보험자 중심 통합 플랫폼을 그대로 도입하기는 쉽지 않겠다는 시사점을 얻기도 했다.이후 2025년 10월에는 타이베이 현지에서 개최된 타이베이시의사회 창립 80주년 기념식에 서울시의사회 임원들이 공식 초청을 받아 참석하며 양 단체 간의 우정과 신뢰를 더욱 공고히 했다.비슷한 의료제도적 토대 위에 놓인 두 나라의 의사회는 결국 비슷한 고민을 안고, 각국의 시스템 내에서 어떻게 하면 국민 보건에 더 잘 기여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당장 교육·수련 정상화, 필수의료 회복, 국민 신뢰 회복이라는 절박한 당면 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 의료계가, 이제는 거대 담론이나 대의명분, 구호에만 사로잡히기보다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방향으로 이 위기를 슬기롭게 수습해 나가야 할 때다. 앞으로 타이베이시의사회와의 지속적인 정책적 교류와 소통이 우리 의료계의 혜안을 넓히는 데 더 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2026-06-15 05:00:00이슈칼럼

공정은 왜 청년 의사에게만 가혹한가

서울특별시의사회 임현선 부회장최근 대한민국 청년들은 깊은 무력감과 좌절을 경험하고 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공부하고 경쟁하며 살아왔지만, 노력만으로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는 믿음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일부 특권층의 입시 비리와 불공정 논란, 감당하기 어려운 주거비 상승, 갈수록 좁아지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청년들에게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만으로 충분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들고 있다.청년 세대가 공정에 민감한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은 누구보다 공정한 경쟁을 믿으며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 같은 기준이 모두에게 적용되고, 노력한 만큼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약속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 약속이 흔들릴 때 청년들의 실망은 냉소로, 냉소는 결국 사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최근 의료계 젊은 의사들이 느끼는 좌절감 역시 이러한 공정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의사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쉽게 얻어지는 자격이 아니다. 수년간의 학업과 국가시험, 그리고 혹독한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전공의들은 청춘의 대부분을 병원에서 보내며 밤샘 근무와 과중한 책임을 감내한다. 개인의 희생을 넘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그런데 현행 의료법은 의료행위와 직접 관련이 없는 범죄까지 폭넓게 면허 제한 사유로 포함하면서 과잉규제 논란을 낳고 있다. 살인이나 성범죄, 중대한 윤리 위반과 같은 범죄에 대해 엄격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직역인 만큼 높은 윤리적 기준이 요구되는 것도 당연하다.그러나 직무와 무관한 사안까지 일률적으로 전문직 자격 박탈과 연결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에 대해서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국민 보호라는 입법 목적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그 수단 또한 비례성과 형평성을 갖추어야 한다. 의료행위와 관련된 잘못에 대한 책임과 일상생활에서 발생한 과실에 대한 책임은 구분되어야 하며, 전문직 자격 규제 역시 그 목적에 맞게 설계되어야 한다.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제도가 젊은 의사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등 필수의료 분야는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높은 업무 강도와 의료분쟁 위험, 막중한 법적 책임으로 인해 젊은 의사들이 지원을 기피하는 현상은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직업적 위험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까지 과도하게 부담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필수의료를 선택하려는 젊은 의사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의정 갈등 이후 의료 현장을 떠난 젊은 의사들 사이에서는 "왜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필수의료를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적지 않게 들린다.결국 그 피해는 의사 개인에게만 머무르지 않는다. 응급실과 수술실, 분만실을 찾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필수의료의 붕괴는 특정 직역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모두의 문제다.법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법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공정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동일한 원칙이 적용되고, 처벌과 제재는 행위의 책임에 비례해야 한다. 국민 안전이라는 명분 아래 과도한 규제가 정당화된다면, 그 부작용 또한 결국 국민이 감당하게 된다.오늘날 청년들이 바라는 것은 특권이 아니다. 자신들이 흘린 땀과 노력의 가치를 인정받고,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이 적용되는 사회다. 의료계의 젊은 의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예외적 특혜가 아니라 상식과 형평성, 그리고 예측 가능한 법치주의다.청년들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회, 필수의료를 담당할 인재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현장에 남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의 목적과 효과를 다시 냉정하게 점검해야 한다. 공정은 특정 집단에 대한 엄벌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같은 원칙이 적용될 때 비로소 공정은 신뢰를 얻는다.지금 우리 사회가 다시 고민해야 할 것은 처벌의 강도가 아니라, 공정의 기준이다.
2026-06-10 05:30:00이슈칼럼

의사회의 이정표…소통과 통합의 시대로

가정의학과의사회 경문배  총무이사 대한민국 의료 체계가 유례없는 폭풍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 의대 정원 증원 사태가 남긴 상흔은 깊고, 정부의 일방적인 의료정책과 표심만을 의식한 정치권의 포퓰리즘은 의료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이 거대한 위기 앞에서 대한의사협회를 필두로 한 직역 및 지역 의사회는 지금, 존재의 이유와 미래의 역량을 근본적으로 질문받는 역사적 시험대에 서 있다.국민의 인식은 높아졌고 정보는 범람하며, 의사를 존경의 대상이 아닌 단순한 '서비스직'으로 치부하는 경향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국가 공권력은 비대해지고 사회 전반이 하향 평준화되는 압박 속에서, 우리 의사회는 과연 어떤 역량을 갖추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올바른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주체적 이정표를 세워야 할 시점이다.안팎으로 마주한 연대의 균열과 역량의 한계! 현실을 진단해보자!1) 의사 노조에 대한 고민과 파업의 딜레마최근 버스노조나 삼성전자 노조 등 사회 각계의 파업을 지켜보며 '의사 노조'의 필요성과 역할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노동3권을 무기로 한 일반 노조의 방식을 의사사회에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의사에게는 사회적 위치에 걸맞은 책무와 환자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숭고한 사명감이 지워져 있기 때문이다.강력한 정부와 대항할 때 '파업'이라는 극단적 수단은 양날의 검이다. 파업은 필연적으로 국민의 원성을 부르고 의사와 환자 사이를 갈라놓으며, 공권력의 압박 속에 자칫 무고한 회원들이 다치고 희생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국민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회원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투쟁 방식은 이제 그 실효성과 한계를 냉정하게 되짚어봐야 한다.2) 내부의 치명적 약점 : 세대 간 불신과 25개 전문과의 이질감현재 의사회 조직에서 가장 치명적인 부분은 내부의 분열이다. 의대 정원 사태를 겪으며 거대한 패배감과 상처를 입은 젊은 의사(전공의·의대생) 세대와 기성 의사회 간의 불신은 향후 미래를 가로막는 무거운 숙제다. 선배 세대가 젊은이들의 절망을 포용하지 못한다면 의사회의 미래는 없다.여기에 더해, 25개 전문과라는 구조적 이질감 역시 내부 결속을 해치는 고질적인 원인이다. 각 과의 이해관계와 수가 구조가 다르다 보니 대정부 협상이나 정책 수립 시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각자도생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 이질감 속에서 어떻게 통합된 협의를 이끌어낼 것인가는 의사회가 시급히 풀어야 할 방정식이다.3) 타 의료인 단체 대비 취약한 정치적 역량과 대관 능력우리는 뼈아픈 실책을 인정해야 한다.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등 타 의료인 단체들에 비해 의사회의 대관 능력은 현저히 부족하다. 정관계에 뻗어 있는 정치적 뿌리가 빈약하고, 정책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목소리를 내줄 의사 출신 정치인의 부재는 매번 대관 협상에서 의료계를 고립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의학적 정당성만 외칠 뿐, 이를 제도화하고 정치적으로 관철하는 세련된 역량이 부족했다는 뜻이다.소통·통합·집단지성으로 여는 새로운 미래의 방향성을 세우자!이 사면초가의 현실을 돌파하기 위해 대한의사협회와 직역·지역 의사회는 과거의 투쟁 문법에서 벗어나 '소통과 통합의 아이콘'으로 거듭나야 한다.1) 회원들의 집단지성과 헌신적인 소수 리더십의 조화 현실적으로 모든 회원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상시로 끌어올리는 것은 녹록치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인의 사리사욕이나 명예욕에 눈먼 리더가 아니다. 오직 회원과 의료계의 올바른 가치관을 위해 자신을 내던질 수 있는 '희생적이고 훌륭한 소수의 리더'가 앞장서서 회원들을 이끌어 가야 한다.이 과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개인의 영달이나 정치적 이득을 위해 회원들을 속이고 내부 분열을 야기하는 야합형 리더들이다. 리더들의 허황된 환상을 깨부수고 올바른 길로 가도록 감시하는 힘은 오직 '회원들의 깨어있는 집단지성'에서 나온다. 집단지성이 살아 숨 쉬는 의사회만이 건강한 리더십을 길러낼 수 있다.2) 후배들을 위한 배려와 세대 간·전문과 간 통합 창구 구축 의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세대 간 갈등을 치유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어야 한다. 기성세대는 기득권을 내려놓고, 미래의 주역인 후배들에게 먼저 따뜻한 손을 내밀며 자리를 물려주는 배려심을 보여주어야 한다. 젊은 의사들이 의사회 조직 안에서 효능감을 느끼고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또한, 25개 전문과의 이질감을 극복하기 위해 각과회장단모임을 활성화해야 한다. 특정 과의 이익이 아닌, 전체 의료계의 공존을 위한 그랜드 디자인을 짜고 상호 양보와 조율을 이끌어내는 내부 조정자로서의 역량이 직역 및 지역 의사회의 핵심 역할이 되어야 한다.3) 환자와 국민의 인심을 얻는 역량 발휘 국민의 인심을 얻지 못하는 의사회는 고립된 섬에 불과하다. 의사를 서비스직으로 치부하는 서글픈 세태 속에서도, 우리가 붙잡아야 할 유일한 가치는 바로 환자의 '건강과 생명'이다.의사회는 국민을 설득의 대상이나 적대적 관계로 보지 말고, 우리의 가장 강력한 우군으로 만들어야 한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결국 국민의 건강권을 어떻게 위협하는지 대중의 언어로 소통하고, 지역 사회와 환자 곁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모습을 통해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은 의사회의 목소리야말로, 비대해진 공권력과 포퓰리즘 정치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강력한 역량이 될 것이다.'건강'이라는 오롯한 가치로 정의를 실현하다!사회 전반이 경제적 양극화와 가치관의 하향평준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때, 의사들마저 이 흐름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오롯이 '건강'이라는 숭고한 가치 하나만으로도 사회의 올바른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주체적인 집단이다.대한의사협회와 전국의 직역·지역 의사회가 사욕 없는 리더를 중심으로 결속하고, 후배들을 배려하며, 회원들의 집단지성으로 내부를 채워나갈 때 우리의 역량은 배가될 것이다. 국민의 마음을 얻고 대한민국 의료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당당한 주역으로서, 직역 및 지역 의사회가 새로운 소통과 통합의 역사를 써 내려가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2026-06-08 05:00:00이슈칼럼

[손문호 칼럼]AI가 강해질수록, 의사는 더 중요해 진다.

[메디칼타임즈=손문호 칼럼위원]최근 국회를 통과한 의료기기법 개정안은 단순한 광고 규제 강화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하여 의사·약사 등 전문가가 특정 의료기기를 추천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광고를 명시적으로 금지한 부분은 의료의 본질과 미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중요한 변화다.이제 국가는 처음으로 'AI가 만들어낸 가짜 의료 권위'를 법적으로 문제 삼기 시작했다.이는 단순한 광고 규제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AI 시대에 의료인의 전문 판단 권리가 왜 더욱 중요해지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에 가깝다.과거에는 의료정보의 생산자가 비교적 명확했다. 의사는 진료실에서 환자를 직접 보고, 병력을 듣고, 검사 결과를 해석하며 진단과 치료 방향을 결정했다. 의료정보는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임상 경험과 책임이 결합된 전문적 판단의 결과물이었다.그러나 생성형 AI의 발전은 의료정보 생산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이제는 누구나 의사처럼 말하는 영상을 만들 수 있다. 존재하지 않는 전문가를 생성할 수도 있고, 실제 의사의 얼굴과 음성을 합성할 수도 있다. AI는 환자의 불안과 공포를 자극하는 표현을 가장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으며, 의료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도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다.특히 SNS와 영상 플랫폼에서는 이미 '권위의 시뮬레이션'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흰 가운을 입은 AI 아바타가 등장하고, 외국 의사처럼 보이는 가상의 인물이 특정 제품을 추천하며, 환자는 그것을 실제 전문가의 조언으로 오인한다.문제는 AI가 정보를 생성할 수는 있어도,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환자의 생명과 건강은 결국 누군가의 최종 판단과 책임 위에서 결정된다. 의료는 단순 정보 제공 산업이 아니라 위험을 관리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응급실에서 환자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읽고, 애매한 검사 결과 속에서 중증 질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며, 예상치 못한 합병증에 즉시 대응하는 능력은 단순 데이터 학습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의료의 핵심은 정보량이 아니라 책임 있는 판단이다.AI 시대가 될수록 오히려 의료인의 전문 판단 권리는 더욱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보가 넘칠수록 국민은 "누가 실제로 책임지는가"를 묻게 되기 때문이다.앞으로 의료 시스템은 두 개의 영역으로 분리될 가능성이 있다.하나는 AI가 담당하는 정보 생성과 분석 영역이다. AI는 논문 검색, 영상 판독 보조, 임상 데이터 정리, 위험도 예측 등에서 매우 강력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의료 AI는 필수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완화하는 데 중요한 도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그러나 다른 하나는 인간 의료인의 영역으로 남게 된다. 바로 최종 판단과 책임의 영역이다.어떤 수술을 선택할 것인지, 어느 시점에서 전원할 것인지, 설명과 동의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치료 중단 여부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 같은 문제는 단순 알고리즘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는 의학적 판단뿐 아니라 윤리적·법적 책임이 함께 요구되는 영역이다.결국 AI가 발전할수록 의료인의 역할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고도화될 가능성이 크다.따라서 앞으로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것은 단순한 직역 권한이 아니다. 실제 임상 경험과 책임을 기반으로 한 전문 판단 체계 자체다.의료데이터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 수치나 영상정보만이 의료의 본질이 아니다. 감별진단 과정, 치료 전략 선택, 환자 상태 변화에 대한 해석은 의료인의 전문적 기여가 축적된 결과물이다. AI 시대에는 이러한 전문 판단 데이터의 가치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이번 의료기기법 개정안은 그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국가는 AI 기술 자체를 금지한 것이 아니다. 대신 '"가짜 전문가 권위'가 환자의 판단을 왜곡하는 것을 막으려 하고 있다. 이는 곧 실제 의료인의 전문성과 책임 체계가 의료의 핵심 기반임을 다시 확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AI는 의료를 보조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의 책임을 대체할 수는 없다.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의료인의 전문 판단 권리는 AI 시대에 더욱 중요한 사회적 자산이 된다.
2026-06-08 05:00:00이슈칼럼

준비 안 된 특사경 권력, 누가 책임지나

[메디칼타임즈=경남의사회 마상혁 공공의료위원장] 건강보험공단이 특별사법경찰관(특사경)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부정수급과 허위청구를 근절하겠다는 명분은 그럴듯하고, 건강보험 재정 누수가 심각하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책의 명분보다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제도가 정말 필요한지를 따져보았는가 하는 것이며, 설령 필요하다 해도 지금 우리 공직 사회는 사법권을 올바르게 행사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특사경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논거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건보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이미 강력한 선제적 차단 수단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청구 데이터 전수 분석, DRG 이상 패턴 탐지, 현지조사권, 환수처분권, 요양기관 지정취소 연계권이 그것입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연간 수십억 건의 청구를 전산 심사합니다. AI 기반 이상청구 탐지 시스템 고도화, 청구 코드 조작 패턴 데이터베이스 구축, 의·약학 전문가 검토단 확대는 수사권 부여보다 비용 대비 효과가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범죄 탐지를 위해 수사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미 범죄를 탐지하고 있는데 처벌 수단을 자기 손에 쥐려는 것이 공단특사경의 본질입니다. 이것은 수사기관이 아닌 징수기관이 원하는 구조입니다. 수사권은 범죄 예방이 아닌 범죄 이후 처벌 수단입니다. 예방·탐지 시스템을 먼저 갖추지 않고 처벌 수단을 먼저 도입하는 것은 정책 순서의 역전입니다.급여 청구 문제는 본질적으로 행정법적 사안입니다. 형법의 최후수단성(ultima ratio) 원칙상 행정조사→행정처분→환수의 경로로 해결해야 하며, 형사화는 어디까지나 예외여야 합니다. 의료기관의 급여 청구 문제는 기존에도 행정조사와 행정처분으로 해결해 왔습니다. 공단특사경이 도입되면 단순한 청구 기준 해석 오류나 경미한 실수도 손쉽게 형사사건으로 비화될 수 있습니다. 이는 형사법의 최후수단성 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며, 의료현장 전반을 잠재적 형사문제화시키는 구조적 위험성을 내포합니다. 대법원 역시 명문 규정 없이 유사 업무라는 이유만으로 특사경 권한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25도11546). 직무범위와 주체를 명확히 특정하지 않으면 권한 남용 또는 무권한 수사 논란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습니다.더 근본적인 문제는 구조적 이해충돌입니다. 공단은 건강보험 재정을 관리하는 기관입니다. 재정 누수를 줄여야 한다는 조직적 유인이 매우 강합니다. 그런 기관이 동시에 수사권을 갖는다면, 단속 성과가 곧 재정 성과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과잉수사와 무리한 처벌 압력은 예고된 수순입니다. 공단은 현재도 급여 지급, 비용 심사, 환수 처분 등 행정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수사권이 추가되면 조사·처분·수사 기능을 하나의 기관이 동시에 행사하게 되며, 재정 건전성이라는 목표가 수사 과정에 개입하여 수사 공정성에 근본적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수사·기소 분리 및 검사 지휘권 약화라는 형사사법 구조 변화와 결합될 경우 공단특사경은 사실상 독립적 수사기관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중수청 설치로 수사가 검사 지휘 없이 독립적으로 이루어지고, 공소청 설치로 기소가 수사 관여 없이 사후 판단하는 구조에서, 특사경에 대한 기소 억제 기능은 실질적으로 약화됩니다. 의사의 형사 리스크는 구조적으로 증가하고, 의료사고 형사특례가 있어도 실질적 보호 효과는 약화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공단특사경이 도입되면 경찰·특사경·심평원 현지조사가 동일 사건에 중복으로 이루어지는 3중 수사 구조가 현실화됩니다. 의료기관은 과도한 방어 비용과 인력 소모에 시달리게 되고, 공소청은 특사경 수사 관여 통제 기능을 상실하여 불기소·보완 재검토 기능이 약화되며, 수사기관과 공소청 간 책임 경계가 불분명해집니다. 무엇보다 수사 가능성이 상존하는 환경에서 고위험 환자 기피와 고난도 시술 회피가 확산되고, 외과·응급의학·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분야가 집중 타격을 받아 의료 공백이 현실화될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국민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입니다.방치되어 온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의료생협(생활협동조합 형태 의료기관) 문제가 대표적입니다. 명의 대여, 조합원 자격 위장, 비의료인 실질 운영, 보험청구 허위화가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음에도 현행 규제 체계에서 사실상 방치되어 왔습니다. 공단이 진정으로 재정 누수를 차단하려 한다면, 특사경이라는 새로운 권한 창설이 아니라 이미 문제가 드러난 의료생협에 대한 현지조사와 행정처분 강화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새 수단을 요구하기 전에 기존 수단을 제대로 쓰지 않는 이유를 먼저 설명해야 합니다.현장의 현실은 또한 냉혹합니다.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법경찰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민원인이 관련 법령과 고시를 출력해 감독관에게 설명해야 하는 주객전도 상황이 벌어집니다. 단기 교육 수료만으로 자격을 부여하고 2~3년마다 부서를 옮기는 순환보직 문화 속에서 전문성이 쌓일 리 없습니다. 사법권을 가진 순간 일부 공무원들은 민원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전제하고 접근합니다. 압박식 심문, 고압적 언사, 위협에 가까운 분위기 조성이 이루어지고, 정작 민원인에게 진술 거부권조차 제대로 고지되지 않는 사례가 보고됩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역시 허가권이라는 막강한 행정 권력을 이미 쥐고 있음에도 기업 측이 법령 근거 조항을 설명하며 심사관을 사실상 교육하는 구조가 반복됩니다. 전문성 없는 권력이 탄생하면, 동일한 행위가 어떤 담당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범죄가 되기도 하고 아무 문제가 없기도 한 자의적 법 집행이 일상화됩니다. 압수 대상이 진료기록, 처방내역, CCTV, 메신저 기록까지 확대될 경우 환자의 민감한 개인정보가 대량 노출될 위험이 있으며, 이는 의료법상 진료 비밀 보호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은 분명합니다. 단순 수료 방식의 교육을 법조인·전문가가 참여하는 엄격한 자격시험으로 전환하고, 합격하지 못하면 사법권을 부여하지 않는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특사경 직위를 순환보직 대상에서 제외하고 최소 5년 이상 해당 분야 경력자에 한해 자격을 부여해야 합니다. 권한 행사에 대한 사후 감독을 기관 내부 자체 조사에 맡겨서는 안 되며, 독립 외부 기관이 정기적으로 감독하고 결과를 공개해야 합니다. 조사 전 과정을 영상 녹화하고 민원인에게 권리를 서면으로 고지하는 것을 법적 의무로 규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조건이 갖춰지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공단과 심사평가원의 데이터 기반 탐지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방치되어 온 의료생협 불법 구조를 정리하며, 현지조사권과 환수처분권을 제대로 행사하는 것이 그것입니다.마지막으로 정치적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공단특사경 문제는 이미 국회에서 수차례 논의된 사안입니다. 그때마다 결론은 같았습니다. 보험자인 공단에 사법권을 부여하는 것은 권한의 범위를 넘는다는 판단이었고, 이는 여야가 합의한 내용입니다. 법제사법위원회를 반복적으로 통과하지 못한 것은 단순한 절차적 지연이 아닙니다. 입법부가 숙의를 거쳐 내린 판단이며, 삼권분립의 관점에서 사법권의 민간 준공공기관 위임에 대한 헌법적 우려가 반영된 결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단이 특사경 도입을 반복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국회의 판단을 존중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여야가 모두 우려하는 사안을 행정부 주도로 관철시키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민을 위한 제도라면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의 반복된 판단을 겸허히 수용해야 합니다. 국회가 틀렸다고 주장하려면, 그 판단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근거를 국민 앞에 먼저 제시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그런 근거는 제시된 바 없습니다.결국 이 질문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여야가 합의하여 거듭 제동을 건 제도를 지금 이 시점에 다시 밀어붙이는 것이 과연 국민을 위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재정 누수 차단이라는 명분 뒤에 공단 조직의 권한 확대라는 목적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합니다. 국민의 이익과 기관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을 때, 정책은 반드시 국민의 편에 서야 합니다. 그것이 공공기관 존재의 근거이며, 지금 공단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책임입니다.행정 문제는 행정으로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며, 형사는 최후의 수단이어야 합니다. 순서가 틀렸습니다. 권한은 준비된 자에게만, 그리고 다른 수단이 모두 소진된 이후에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법치주의의 기본이며, 지금 이 논의에서 가장 먼저 되새겨야 할 원칙입니다.
2026-06-01 05:00:00이슈칼럼

만성 불면증, 전문 치료가 필요한 '뇌의 경고'

[메디칼타임즈=서울보라매병원 신경과 구대림 교수]한국인은 점점 잠을 못 자고 있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의료빅데이터에 따르면 국내 불면증 환자 수는 2020년 65만여 명에서 2024년 76만여 명으로 5년 사이 약 16% 증가했다. 특히 여성 환자는 남성 환자보다 1.5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환자 수 증가보다 더 주목해야 할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불면증을 여전히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시행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9%가 최근 한 달 이내에 다양한 수면 문제를 경험했지만, 실제 치료 경험이 있는 사람은 6%에 불과했고 약 70%는 치료 자체를 고려해 본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는 불면증이 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흔하기 때문에 오히려 질환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이 수면 문제를 스트레스, 일시적인 컨디션 저하 혹은 성격적인 예민함 정도로 여기며 참고 버틴다. 그러나 반복되거나 만성화된 불면은 단순한 피로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수면의학에서는 이를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Hypothalamic-Pituitary-Adrenal axis)의 과활성화, 자율신경계 불균형, 수면 항상성 조절 기전의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관여하는 신경생물학적 이상 상태로 이해하고 있다.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단순히 수면 시간이 부족한 것을 넘어 집중력 및 기억력 저하, 정서 조절 능력 감소, 만성 피로, 무기력 등의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더 나아가 우울장애 및 불안장애의 위험도 유의하게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만성 불면증은 밤에만 나타나는 증상이 아니라 낮 시간의 기능과 정신 건강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질환이며, 전문적인 치료 개입이 필요한 임상적 상태라고 볼 수 있다.현재 만성 불면증의 1차 치료로는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 for Insomnia, CBT-I)가 권고된다. CBT-I는 수면에 대한 비합리적 신념과 과도한 불안을 교정하고, 수면 제한 요법과 자극 조절 기법 등을 통해 무너진 수면-각성 주기를 다시 정상화하는 구조화된 치료 프로그램이다.다만, 실제 임상에서는 환자의 증상 정도와 생활 환경에 따라 약물치료를 병행하거나 단독으로 적용하는 경우도 많다. 기존에 많이 사용돼 온 졸피뎀 등의 GABA 수용체 작용제 계열 수면제는 뇌 전반의 활동을 억제해 수면을 유도하는 기전으로, 빠르게 잠들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일부 환자에서는 다음 날 잔여 진정 효과, 인지 기능 저하, 내성 및 의존성 문제가 보고돼 왔다.최근에는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새로운 치료 접근으로 이중 오렉신 수용체 길항제(Dual Orexin Receptor Antagonist, DORA)가 주목받고 있다. 오렉신은 시상하부에서 분비돼 각성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신경펩타이드로, DORA는 오렉신의 수용체 결합을 선택적으로 차단함으로써 과도한 각성 신호를 낮추고 자연스러운 수면 전환을 유도한다.  GABA 계열 수면제처럼 뇌 전반을 억제하는 방식이 아니므로, 잔여 진정 효과, 반동성 불면, 의존성 등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평가되며,  현재 해외 주요 임상 현장에서 활용이 확대되고 있다.수면 문제가 주 3회 이상, 3개월 이상 지속되거나, 낮 시간 동안 피로감·집중력 저하·정서 불안정 등의 기능 저하가 동반된다면 이는 단순한 생활 습관 문제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만성 불면증으로 평가해야 한다.우리는 하루의 3분의 1을 잠으로 보낸다. 그런데도 수면 문제 만큼은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잠은 의지로 해결하는 영역이 아니라, 뇌 기능과 건강 전반을 유지하기 위한 생물학적 시스템이다. 반복되는 불면은 뇌가 보내는 중요한 경고 신호일 수 있으며, 이를 제대로 진단하고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결국 삶의 질과 건강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중요한 방법이다.
2026-05-27 05:30:00이슈칼럼

1조짜리 지역필수의료법, 제 값 하려면

대한의료정책학교 장재영 교육연구처장[메디칼타임즈=대한의료정책학교 장재영 교육연구처장] 하루가 멀다 하고 지역의 열악한 의료 인프라를 꼬집는 소식들이 들려온다. 그 해법 중 하나로 「필수의료 강화 지원 및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를 위한 특별법」, 이른바 지역필수의료법이 내년부터 시행된다. 이 법은 담배 개별소비세의 55% 등을 재원으로 무려 연간 1조 원 이상의 특별 회계 설치를 포함한다.지역보건법,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등 유사한 내용을 다루는 법안이 있음에도 새로운 특별법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이는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 흔히 '지필공(지역, 필수, 공공)' 영역에 대한 적극적인 국가 개입을 주문한 것이기 때문이다.이 재원이 현장에 제대로 쓰인다면, 지역에서 묵묵히 일하는 의료진에게 정당한 보상이 돌아가고 환자에게도 더 나은 의료 접근성이 보장될 수 있다. 전공의의 입장에서 추후 몸담아야 할 지역의 의료환경을 떠올리며 법안을 찬찬히 읽어보았다.단순한 파견 근무의 확대는 의료진의 참여를 위축시킬 수 있다법 제10조와 제14조에는 필수의료 인력의 파견 및 지원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왕성히 활동 중인 타지역 의사를 해당 지역으로 유입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많은 부분은 지역거점의료기관 (공공의료기관 혹은 대학병원)의 의료진이 파견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이때의 원칙은 '파견은 일시적 방편이며, 그 지원은 충분하게'가 되어야 한다.국내외 연구는 지역 내 교육/수련 경험이 지역 잔류의 핵심 요인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재의 전공의나 젊은 전문의들은 의과대학 교육 및 수련 과정 중 실제 지역사회 의료와 충분히 접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파견 근무가 전문적 성장의 기회가 아니라 부족한 인력을 임시로 메우는 방식으로 운영된다면, 참여 의지를 높이기보다 오히려 기피를 낳을 수밖에 없다.의과대학 교육에서 지역사회 접촉을 늘리는 것이 장기 과제라면, 이미 통과된 지역의사제와 국립의전원을 통해 의무복무해야 하는 인원들이 실제 남을 수 있는 경로를 만드는 것은 중기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파견 수련은 그 전까지의 단기적인 해결책으로 접근해야 하며, 파견수당 및 체류비 지원, 하나의 커리어패스로서 인정되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필수의료 진료권의 탄생, 하지만 환자가 오지 않는 권역에는 발전도 없다지역필수의료법에서 말하는 '필수의료 진료권'은 1998년 폐지된 의료보험 진료권과는 다르다. 환자의 이동을 제한하려는 장치라기보다, 행정 단위로 진료권을 설정해 권역 내 의료기관 간 연결성과 책임성을 높이려는 개념에 가깝다. 그러나 진료권을 설정하는 것만으로 환자 흐름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해당 권역 안으로 환자가 유입되고, 또 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진료받을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2024년 기준 서울 소재 의료기관에서 진료받은 환자 중 타지역 환자는 41.5%에 이른다. 환자가 없는 곳에는 의료진도 모이기 어렵고, 의료진이 없는 곳에서는 교육과 연구도 축적되기 어렵다. 이에 정부는 진료의뢰·회송 시범사업과 최근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을 통해 지역으로의 환자 분산과 의료전달체계 회복을 시도하고 있다.이와 연계하여 새로운 재원은 지역거점병원의 인프라 구축뿐 아니라, 환자가 지역 안에서 치료를 이어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에도 쓰여야 한다. 필수의료 분야의 회송환자 관리료를 신설하고, 환자가 지역에서 필요한 보건의료 자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바우처를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지방정부의 역량 및 역할 확대도 함께 되어야 한다지역필수의료법은 국가 차원의 종합계획뿐 아니라 시도별 시행 계획을 두고, 지역에는 필수의료위원회를 신설해 정책 수립과 조정 과정에 지자체의 참여를 제도화하는 구조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을 실질적으로 수행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정책 역량이 필요함은 자명하다. 하지만 지방정부가 그 여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지는 의문이다.정웅기 외(2024)의 경기도공공보건의료지원단 보고서는 경기도처럼 규모가 큰 지자체에서조차 보건의료 분야의 지방정부 전문성이 취약하고, 지역보건의료심의위원회 등 기존 상설 기구가 형식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한다.따라서 지역의 자체 정책 수행능력을 키우기 위해 특별회계 사업 항목에 지자체 내 보건의료 정책 전담인력 확충, 지역 의료이용 데이터 분석 지원,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의 보건의료 정책역량 강화 프로그램 등이 명시될 필요가 있다. 지역필수의료법의 숨은 전제는 실행력 있는 지방정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지역필수의료법은 출발점에 서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재원이 단순한 인력 파견, 장비 보강, 병원 지원에 머물지 않고 지역에 지속 가능한 의료역량으로 남도록 설계하는 일이다. 의료진이 일할 수 있고, 환자가 믿고 머물 수 있으며, 지방정부가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 그것이 지역필수의료법이 진짜 성과로 이어지는 길일 것이다.
2026-05-26 05:00:00이슈칼럼

의료혁신, 원인 분석 없는 처방은 사상누각

[메디칼타임즈=경남의사회 마상혁 공공의료위원장] 정부가 의료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현장의 문제를 짚고 개선 방향을 찾겠다는 취지다.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반영하겠다는 다짐도 덧붙였다. 듣기에 그럴듯하다. 그러나 한 가지 근본적인 물음이 먼저 제기돼야 한다. 지금의 의료 현장은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진단 없는 처방은 없다. 의료 현장에서 가장 기초적인 원칙이다. 그런데 정작 의료정책을 논하는 자리에서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혁신위는 현재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점을 찾겠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정책적 실패가 지금의 현실을 만들었는지, 누가 그 결정을 내렸고 어떤 과정이 왜곡되었는지에 대한 분석은 보이지 않는다.현재 의료 현장의 위기는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재앙이 아니다. 수십 년간 누적된 정책 실패의 산물이다. 저수가 구조, 필수의료 붕괴, 지역 의료 공백, 전공의 기피 현상 — 이 모든 것은 보건복지부가 입안하고 집행한 정책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국회는 이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다. 책임의 소재가 분명함에도 혁신위 어디에도 이 구조적 책임을 묻는 의제는 없다. 원인 제공자가 반성 없이 해법을 설계하는 구도, 이것이 지금 의료혁신위원회의 민낯이다.더 심각한 문제는 전문성의 희석이다. 의료정책은 고도로 전문화된 영역이다. 수가 체계, 의료 인력 수급, 지역 배치, 필수의료 구조 — 이 문제들은 수십 년의 임상 경험과 정책 연구가 결합되어야 비로소 실효성 있는 답이 나온다. 시민사회의 목소리는 중요하다. 의료 수요자의 경험과 요구는 반드시 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전문가의 설계 안에서 수렴되어야 할 입력값이지, 전문가의 판단과 동등한 결정 권한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의학에 비유하자면 이렇다. 환자의 증상 호소는 진단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치료 방침은 의사가 결정한다. 시민이 아무리 많은 수로 '수술 말고 약으로 낫게 해달라'고 요구해도, 전문가가 수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그 판단이 앞서야 한다. 여론과 전문성을 동등하게 놓는 순간, 정책은 올바른 방향보다 인기 있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이미 우리는 이 실패를 경험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서부경남 공공의료원 설립을 둘러싸고 공론화 위원회가 꾸려졌다. 숙의 민주주의의 외양을 갖췄다. 그러나 과정을 지켜본 이들은 안다. 논의는 처음부터 결론이 정해진 채 진행되었다. 반대 의견은 형식적으로 수렴되었을 뿐, 정책의 방향은 흔들리지 않았다. 공론화는 정당성을 포장하는 도구였고, 위원회는 들러리였다.지금의 의료혁신위원회가 그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구성 방식, 의제 설정권, 결론 수렴 구조 — 어느 것 하나 투명하게 공개된 것이 없다. 과거와 다른 점이 무엇인지 정부는 답해야 한다.진정한 의료혁신은 불편한 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누가 이 위기를 만들었는가. 어떤 결정이 잘못되었는가. 그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이 물음에 정직하게 답하지 않는 혁신은 혁신이 아니다. 현재의 고통 위에 새로운 실패를 쌓아 올리는 일이다.사상누각은 모래 위에 세운 누각을 말한다. 원인 분석 없는 의료혁신, 책임 소재를 외면한 정책 설계, 전문성을 희석시키는 공론화 —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작동하는 한, 의료혁신위원회가 내놓을 결론은 처음부터 흔들리는 기초 위에 올라선 구조물일 뿐이다.
2026-05-18 05:00:00이슈칼럼

방산 산업 성공 앞에 K-의료기기 백년대계를 묻다

내외적으로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국민 건강과 국가 발전을 위해 헌신해 온 의료기기 산업계에 올해 '제19회 의료기기의 날'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지난해 4월 '의료기기법' 개정을 통해 5월 29일이 법정기념일로 공식 지정된 이후 두 번째로 맞이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는 의료기기산업이 단순한 제조업을 넘어 국민 생명을 지키는 국가 전략 산업으로서 그 위상이 제도적으로 정립되고 있음을 보여준다.화려한 지표와 초라한 현장의 역설그러나 우리 의료기기산업의 실상은 화려한 지표와 초라한 현장의 역설 속에 놓여 있다. 2024년 기준 생산액 11조 4,267억 원, 수출액 7조 1,700억 원을 기록하며 세계 시장 12위권으로 도약했으나, 국내 보건의료의 중추인 상급종합병원 내 국산 장비 점유율은 단 11.3%에 불과하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가 6조 원대 시장을 형성하며 성장을 견인하고 있음에도 연구개발(R&D) 성과가 임상 채택과 대형 시장 확대로 연결되는 구조는 여전히 민낯으로 남아 있다.이런 현상은 단순히 기술력이 부족하거나 의료진의 선택 문제로 치부될 수 없다. 의료기기는 일반 공산품과 달리 의사의 사용 경험과 장기간 축적된 임상 근거, 보험 체계 등이 결합해야만 선택받을 수 있는 특수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산업은 우수한 제조 역량을 갖췄음에도 R&D 성과가 실제 구매와 수출 확대로 이어지는 전주기적 연결 고리가 끊겨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지금 우리가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며, 기술이 아닌 구조의 문제이다.정부 지원의 한계와 전환의 시점그간 정부 지원은 이 단절을 극복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지원 사업은 소액으로 분산돼 있고 부처 간 장벽으로 인해 분절적이다. 국산 의료기기 사용 활성화 예산은 전략 산업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규모가 작으며 실증과 보급 지원 역시 제각각 흩어져 있다. 규제 개선도 점진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나 개별 제품의 인허가라는 미시적 관점에 머물러 있다. 반면 디지털의료제품법 시행과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산업과 제도를 동시에 재편할 수 있는 창을 열어주고 있다. 지금은 단순한 제도 보완의 시기가 아니라 산업 구조 자체를 재설계해야 하는 전환의 시점이다.방산 성공 모델, 의료기기에 맞게 재설계해야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정표는 한국 방위산업의 성공 사례다. 과거 내수용 무기 체계에 머물렀던 방산은 정부의 장기 투자, 국산 우선 획득 제도, 부품 국산화, 그리고 범정부 차원의 수출 지원 체계를 통해 세계적인 전략산업으로 탈바꿈했다. 방산은 국가가 최초의 수요자가 돼 성능을 보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전주기 모델을 구축했다. 다만 방산을 그대로 복제하는 것은 위험하다. 방산의 수요자는 국가이지만 의료기기의 수요자는 환자, 의사, 병원, 보험자, 규제 기관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핵심은 동일한 방식이 아니라, 국가가 산업 전환의 가장 어려운 구간을 책임지는 구조를 의료기기 특성에 맞게 재설계하는 데 있다.이미 주요국은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미국은 혁신 의료기기 지정과 보험 적용을 연계하고 데이터 인프라를 결합하는 구조를 구축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은 의료데이터 활용 체계와 AI 규제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일본 또한 전담 심사체계와 의료 DX를 통해 산업과 의료 현장을 연결하고 있다. 이들 사례가 보여주는 공통점은 분명하다. 규제, 데이터, 보험, 연구개발이 하나의 정책 체계로 통합돼 있다는 점이다.전주기 지원 체계 구축, 백년대계의 출발점이제 우리도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새로운 전략의 핵심은 국가가 단순한 규제자가 아니라 최초 수요 창출자이자 증거 인프라 조성자로 역할을 확장하는 것이다. 총리실 산하 국가전략의료기기위원회를 중심으로 부처 공동사무국을 운영하고, 정책·예산·조달을 하나로 묶는 통합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동시에 병원·기업·연구기관을 연결하는 임상실증 네트워크와 국가 의료데이터 연합망을 통해 산업 전반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특히 디지털 전환기에 발맞춰 데이터·AI 융합을 핵심 경쟁력으로 삼아야 한다. 단순한 데이터 접근을 넘어 연합학습이 가능한 구조, 표준화된 데이터 관리, AI 성능을 지속적으로 검증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아울러 공공병원이 국산 전략 품목의 최초 구매자가 돼 임상 근거를 축적하고 이를 민간 시장과 수출로 연결하는 혁신구매 및 조건부 수가 체계가 필요하다. 수출 전략 역시 단품 중심에서 벗어나 교육, 유지보수, 데이터 분석이 결합된 패키지형 진출로 전환해야 한다.이런 전환은 단계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향후 1~5년은 법·제도 정비와 데이터·실증 인프라 구축에 집중하고, 5~10년은 공공구매와 수출 확대를 통해 산업 규모를 키우며, 이후에는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향후 10년간 공공투자 18조 원을 포함한 총 40조 원 규모의 전략적 투자가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산업 구조를 바꾸기 위한 최소한의 국가적 선택이다.국가 전략산업으로의 전환은 경제적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감염병 위기나 공급망 불안 속에서 필수 의료를 자국 기술로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은 국가 보건 안보와 직결된다. 동시에 의료 AI와 디지털 기술은 고령화 사회의 의료 서비스 문제를 해결할 핵심 수단이기도 하다. 이제는 국가가 시장을 설계하고 산업을 연결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정부는 의료기기·데이터·AI 융합산업을 백년대계 국가전략으로 선포하고 입법과 예산으로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11.3%라는 국산 채택률의 장벽을 넘어서는 길은 오직 전주기 지원 체계 구축에 달려 있다.우리는 지금 첨단의료기기산업의 새로운 전환점 앞에 서 있다. 기술 혁신 그 자체를 넘어, 그 성과가 임상 현장과 국민의 삶에 실질적으로 연결되고 다시 산업의 성장과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지금 이 시대의 과제다. 제19회 의료기기의 날이 대한민국 의료기기산업의 가치와 가능성을 다시 확인하고, 세계 시장을 향한 도전을 더욱 치밀하고 단단하게 이어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원주의료기기산업진흥원은 산업계와 함께 우리 의료기기가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세계 시장에서 신뢰받는 경쟁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맡은 역할을 성실하고 흔들림 없이 다해 나갈 것이다. 의료기기산업 발전을 위해 애쓰는 모든 종사자 여러분의 건승과 발전을 기원한다.
2026-05-15 05:10:00이슈칼럼

[손문호 칼럼]학생은 줄고 환자는 늘어난다

[메디칼타임즈=박상준 기자]학령인구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교육교부금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내국세의 일정 비율이 자동으로 배분되는 구조 속에서 교육재정은 이미 70조 원을 넘어섰고, 추가경정예산까지 반영될 경우 80조 원을 넘길 가능성도 거론된다. 학생 수는 줄어드는데 교육 예산은 늘어나는 이 역설적인 구조는 이제 단순한 재정 논쟁을 넘어, 국가 재정의 방향 자체를 다시 묻는 단계에 이르렀다.지금 대한민국은 명백히 인구 구조의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학생은 줄어들고, 환자는 늘어나고 있다. 고령화는 가속화되고 있으며, 의료와 돌봄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은 과거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자동적으로 교육 분야에 집중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과 괴리된 재정 시스템의 문제다.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교육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정의해 왔다는 점이다. 초중고 학생의 건강관리와 생활습관은 평생 건강을 좌우한다. 비만, 당뇨, 정신건강 문제, 생식건강 문제는 성인이 되어서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학령기에서 시작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교육은 교실 안의 문제로, 건강은 의료의 영역으로 분리해 왔다. 이 이분법적 사고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청소년의 건강은 교육의 일부가 아니라 교육 그 자체다. 건강하지 않은 학생에게 학습은 지속될 수 없고, 건강하지 않은 사회에서 교육의 성과 역시 유지될 수 없다. 특히 여학생의 생식건강, 청소년기의 정신건강, 생활습관 형성은 단순한 보건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교육 과제다.한편 필수의료는 이미 붕괴의 경계에 서 있다. 산부인과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으며, 소아청소년과는 유지조차 어려운 구조에 놓여 있다. 아이를 낳을 병원이 없고, 아이를 진료할 의사가 없는 상황에서 교육만 강화하겠다는 정책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 출생 자체가 무너지는 사회에서 교육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이제는 재정의 질문을 바꿔야 한다. 교육교부금을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재정을 어떻게 재배치할 것인가의 문제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상대적으로 여유가 생기는 교육재정의 일부를 필수의료와 생애주기 건강관리로 전환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특히 산부인과 분만 인프라 유지, 소아청소년과 필수진료 지원, 학교 기반 건강관리 시스템 구축, 청소년 정신건강 및 생식건강 관리 등은 더 이상 의료 영역에만 맡겨둘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이는 교육과 의료를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개념을 건강까지 확장하는 방향으로 재정 구조를 재설계하는 문제다.현재의 교육교부금 구조는 학생 수와 무관하게 예산이 증가하는 자동배분 시스템이다. 반면 필수의료는 환자가 늘어도 유지가 어려운 취약한 구조에 놓여 있다. 이러한 불균형을 방치하는 것은 단순한 비효율을 넘어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문제다.결국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시대에 교육재정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미래세대의 건강과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재정을 재배치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교육은 교실에서 끝나지 않는다. 건강에서 시작된다. 이제는 교육교부금 시대를 넘어, 필수의료 재정 시대로 전환해야 할 때다.
2026-05-11 05:00:00이슈칼럼

필수의료 기피, 의사는 공공재인가?

서울시의사회 김나영 부회장2024년 2월,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의대 2000명 증원의 여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의 질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낮은 수가를 유지해온, 세계가 부러워하던 의료강국이었다. 그러나 의정사태 이후 교수들은 병원을 지키느라 연구를 중단해야 했고, 많은 우수한 교수들이 대학을 떠났다. 향후 회복이 쉽지 않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2024년 보건복지부 박민수 차관이 브리핑 중 "여성 의사 비율의 증가, 남성 의사와 여성 의사의 근로시간 차이, 이런 것까지 가정에 모두 집어넣어서 분석을 하고 있다"고 발언한 일은 충격적이었다. 의대 증원을 정당화하기 위해 여의사의 증가를 문제처럼 언급한 이 여성차별적 발언은 의료계, 특히 여성 의사들에게 깊은 모욕이었다.의정사태를 겪으며 내가 가장 놀랐던 말은 '의사는 공공재'라는 표현이었다. 그것은 의사를 공익적 역할을 수행하는 전문직으로 존중하는 말이 아니라, 필요하면 국가가 언제든 동원할 수 있는 관리 대상으로 보는 시선에 가까웠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인데도 내 의사와 상관없이 그만둘 수 없다는 어감은 참기 어려웠다. 나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의사가 되고 싶었다.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지만 자연과학 그 자체보다 환자를 진료하고, 연구하는 의학자의 길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험이 잦고 경쟁이 치열한 의대를 졸업하고, 응급실, 흉부외과, 외과, 내과, 소아외과 등 소위 힘들다는 인턴 과정을 나는 오히려 재미있게 마쳤다. 당직을 서며 잠도 못 자고 100시간이 넘는 강도 높은 수련을 견디면서도 즐겁다고 느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의사가 되어간다는 사실이 좋았기 때문이다. 특히 아픈 환자를 돕는 일은 내게 분명한 보람이었다. 그래서 이후 내과를 선택했다. 전인적 치료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필수적인 분야였기 때문이다.소화기내과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친 후 대학 취직은 쉽지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내시경 시술로 위암도 치료할 수 있고 출혈도 멎게 할 수 있는 소화기내과가 좋았다. 지금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나 흉부외과와 산부인과의 전공의 미달 사태가 외과로, 다시 소아과와 내과로 번지는 동안 안과, 피부과, 재활의학과, 성형외과, 마취통증의학과가 선호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보람이 큰 필수과가 기피의 대상이 된 데에는 결국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고생에 비해 보상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 다른 하나는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일 것이다. 그동안 보람을 많이 느껴온 나에게는 후자가 더 필수의료를 외면하는 현 사태에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필수의료과인 내과, 특히 소화기내과에도 의료사고는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내시경 시술 후 천공이다. 2020년에는 대장경 검사를 위해 장정결제를 투여한 뒤 장 천공이 발생해 환자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두 아이의 엄마인 소화기내과 교수가 구속되어 감옥에 간 이 사건은 의료계 전체에 깊은 충격을 주었다. 사건은 결국 해결되었지만, 대신 당직 중 오더를 냈던 전공의가 피해를 본 것으로 알고 있다. 인턴과 전공의 시절부터 형사 구속의 공포에 노출되는 현실은 필수의료 기피를 더욱 날카롭게 만든다.나 역시 2008년 10월 큰 상처를 남긴 의료사고를 겪었다. 다행히 환자가 사망하지는 않았지만, 그 과정은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최종 진단은 복막에 발생한 밴드결찰에 의한 소장폐색이었다. 수술 전까지 한 달 동안 폐색이 생겼다가 풀리기를 반복해 초기 진단이 쉽지 않았고, 이후 다시 폐색이 발생해 수술을 받았으며, 퇴원 후에도 유착으로 재수술을 하는 등 상황 계속 꼬였다. 환자는 결국 처음 진료 과정에 참여한 인턴, 내과 교수, 외과 교수를 의료진 오진으로 형사와 민사로 고소했고, 나는 2009년 1월 2일 경찰 출두 통보를 받았다.여러 단계로 꼬인 상황을 정리해 진술서를 쓰는 일만도 고통스러웠다. 다섯 번, 여섯 번을 수정해 제출했고, 2월 5일에는 경찰서에서 환자와 대질심문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 나는 경찰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런 문제로 환자가 그렇게 쉽게 의사를 고소할 수 있느냐고. 경찰은 웃으면서 우리나라에 신문고 제도가 있지 않았느냐고 답했다. 이후 일이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출두 요청을 받았을 때는 내가 유죄가 되면 의사면허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2009년 5월 4일 토요일 오후, 집으로 '기소중지판결'이라는 등기가 도착했을 때 나는 거의 주저앉을 뻔했다. 무죄가 아니라는 뜻인가 싶어서였다. 이후 3개월이 지나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그 과정을 지나고 나서야 왜 환자들이 형사와 민사를 동시에 제기하는지, 왜 의사들이 민사소송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지 절감했다. 나와 함께 고소를 당했던 인턴은 이후 박사과정을 밟으며 훌륭한 신진의학상을 받았고, 미국에서 연구한 뒤 다시 임상으로 방향을 바꾸었다고 들었다. 그 의학자가 우리나라에서 계속 활동했다면 보건의료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 인턴, 전공의, 전임의 시절 겪는 의료사고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진로를 바꾸고, 필수의료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깊은 정신적 상처다.의협 대의원회 2025년도 하반기 워크숍에서 발표된 '의료사고 관련 민·형사 소송 현황에 관한 비교법적 고찰'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1년에 입건되는 의사의 수는 약 735명이다. 이 가운데 약 40명 정도가 형사판결을 받고, 실제 처벌받는 의사는 연간 20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한편 의료과오로 인한 민사소송 1심 선고 건수는 2020년 이후 해마다 700~900건 수준이며, 약 50% 내외에서 환자 측 청구가 인용된다. 여기에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처리 건수까지 연평균 2000건 안팎이라는 점을 더하면, 의료진은 매년 3000건 가까운 민사 분쟁에 휘말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답은 분명하다. 필수의료를 살리려면 필수의료과에 종사하는 의사들에게 중대한 과실이나 고의가 아닌 이상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하고, 피해자는 공적 제도를 통해 보상받는 체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의사를 공공재처럼 통제하는 발상이 아니다. 필수의료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제도적 신뢰와 보호가 아닐까 싶다. 
2026-05-11 05:00:00이슈칼럼

초고령 사회 방문진료는 새로운 기회

백재욱 의무부회장바야흐로 지역사회 통합돌봄(커뮤니티케어)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서울시의사회는 서울특별시와 협력하여 '일차의료방문지원센터'를 성공적으로 개소하였고, 이를 마중물 삼아 일차의료 중심의 방문진료 저변 확대를 꿈꾸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초고령 사회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재택의료는 우리 개원가가 반드시 선점해야 할 최우선 화두입니다.현장에서 진료실을 지키시는 동료 선후배님들께서 방문진료의 필요성에 십분 공감하시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현실을 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진료실을 비우는 것에 대한 기회비용과 두려움, 수가의 한계, 환자 발굴부터 동의서 작성과 청구에 이르는 복잡한 행정력, 그리고 인력의 부재까지. 그 현실적인 벽이 결코 낮지 않기 때문입니다.따라서 우리 일차의료방문지원센터는 막연한 '명분'만을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철저하게 회원 여러분께 '실리와 편의성'을 제공하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센터는 다음의 세 가지 핵심 주안점을 실현해 나갈 것입니다.첫째, 진입 장벽의 최소화입니다. 방문진료의 전면적인 도입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외래 진료의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주 1~2회 오전이나 오후의 유휴 시간, 점심시간 등 특정 시간대만을 활용한 부분적 참여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모델을 만들겠습니다.둘째, 행정 부담의 완전한 분리입니다. 환자 발굴, 일정 조율, 서류 작업 등 진료 외적인 행정 소요는 모두 센터가 감당하겠습니다. 지원센터가 완벽한 허브 역할을 수행하여 원장님들의 행정 부담을 제로(0)에 가깝게 덜어드리고, 오직 '진료'에만 집중하실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겠습니다.셋째, 동선 최적화와 지역 밀착형 매칭입니다. 진료실 밖에서 이동하는 시간은 곧 원장님들의 기회비용입니다. 센터는 권역별로 환자와 참여 의원의 좌표를 분석하여, 이동 거리를 최소화하는 스마트 매칭 시스템을 도입할 것입니다. 동네의 가까운 환자를 우선 배정하여 이동에 따른 피로도를 획기적으로 낮추겠습니다.나아가 센터는 원장님들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현장 대안을 제시합니다.무엇보다 간호사와 사회복지사를 아우르는 '팀 접근(Team-based) 모델'을 안착시키겠습니다. 의사 혼자 모든 짐을 지고 방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위해 현재 의사회와 센터 주도로 현장형 통합돌봄 인력 양성을 위한 6주간의 전문 커리큘럼이 가동되고 있습니다. 철저히 훈련된 케어매니저들이 사전에 방문하여 환자 상태를 스크리닝하고 환경을 세팅한 뒤에 원장님이 방문하실 수 있도록, 믿고 맡길 수 있는 인력 풀(Pool)을 의원들과 공유하겠습니다.또한, 모든 회원이 매일 방문진료에 나설 수는 없기에 '공동 참여형 순환 당직제' 및 '거점 의원제' 시범 운영을 추진하겠습니다. 뜻이 맞는 지역 의원 3~4곳이 그룹을 이뤄 요일별로 방문진료를 전담하는 순환형 모델을 구축한다면, 개별 의원의 부담은 최소화하면서도 환자에게는 끊김 없는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커뮤니티케어와 재택의료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요구입니다. 우리가 지금 일차의료 방문진료의 튼튼한 뼈대를 세우지 않는다면, 이 중요한 의료 전달 체계의 주도권은 결국 다른 직역이나 거대 자본의 손에 넘어가게 될 것입니다.우리가 일차의료방문지원센터를 굳건히 키워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센터가 환자를 찾고, 일정을 조율하며, 스마트하게 동선을 맞추겠습니다. 센터가 단단하게 깔아놓은 레일 위에서, 회원 여러분께서는 일주일에 단 반나절, 혹은 단 한 명의 환자라도 좋으니 의사 본연의 역할로 힘을 보태어 주십시오.진료실 문을 나서는 결단이 지역사회의 깊은 존경으로 이어지고, 새로운 의료 모델의 주도권을 우리 개원가가 당당히 쥘 수 있도록 센터가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2026-05-04 05:00:00이슈칼럼

의과는 '시스템' 한방은 '개별 판단'

의료의 본질은 치료에 있지 않다. 진정한 의료는 '언제 치료를 멈추고 환자를 보내야 하는가'를 아는 데서 완성된다. 환자를 끝까지 붙잡는 것이 능력이 아니라, 더 이상 자신의 영역이 아닐 때 정확히 넘기는 것이 의료의 수준이다. 현대 의학은 이 판단을 개인의 감각에 맡기지 않는다. 진료의뢰서, 협진, 상급병원 전원이라는 구조를 통해 환자를 이동시키며, 일정 수준 이상의 위험 신호가 발생하면 자동적으로 다음 단계의 의료로 연결된다. 이 과정은 선택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의과 의료는 결국 '환자를 보내는 구조' 위에서 작동한다.그러나 현재의 한방 의료는 이러한 구조를 갖고 있지 않다.전원은 제도화된 시스템이 아니라 개별 의료인의 판단에 맡겨져 있으며, 언제 다른 의료기관으로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차이는 단순한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환자의 생존을 좌우하는 구조적 격차다. 의료의 또 다른 본질은 '검증된 경험'이다. 의과 의료에서 의사는 면허 취득 이후 곧바로 독립 진료에 들어가지 않는다. 대부분 전공의 과정을 통해 수년간 환자를 경험하며 진단과 치료의 기준을 체화한다. 이 과정은 의료 오류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안전장치이며, 의료를 개인의 기술이 아닌 표준화된 시스템으로 만드는 핵심 장치다. 그러나 한방 의료에서는 이러한 구조가 보편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수련 과정이 존재하더라도 필수 경로가 아니며, 상당수는 졸업과 동시에 독립 진료에 진입한다. 이는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임상 판단이 환자에게 직접 적용될 수 있는 구조를 의미한다.문제는 이 두 가지 구조적으로 전원 시스템의 부재와 수련 구조의 미비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전환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검증되지 않은 판단이 반복될 경우, 진단 지연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그리고 그 지연은 환자에게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다.최근 한 환자가 장기간 치료를 받는 동안 암 진단이 지연되어 말기 상태에 이른 사건은 이 구조적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법원은 일부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인과관계 입증의 한계를 이유로 대부분의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 환자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고, 시스템은 아무런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 의료의 현실이다.환자는 시스템이 아니라 판단에 맡겨져 있고 판단이 실패하더라도 책임은 제한되며 그 구조는 반복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은 이 문제를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자동차보험 경상환자 치료를 제한하기 위한 '8주 룰'조차 수년간의 논의와 데이터 검토를 거쳤음에도 특정 집단의 반대에 의해 원점으로 되돌려졌다. 이는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결정 구조의 붕괴를 의미한다. 이 구조가 지속되면 결과는 분명하다. 저위험·고수익 진료는 확대되고, 고위험·필수의료는 붕괴된다. 의료는 치료가 아니라 리스크 회피의 산업으로 변질된다.이제 국회는 선택해야 한다. 전원 없는 의료를 그대로 둘 것인가, 수련 없는 진료를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환자 안전을 중심으로 의료 구조를 재설계할 것인가.해답은 명확하다.지속되거나 악화되는 증상에 대해서는 검사 및 전원을 의무화해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는 인과관계 입증 책임을 완화해야 한다. 또한 의료인의 독립 진료 이전에 일정 수준 이상의 임상 수련을 의무화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자동차보험 등 보험 영역에서는 장기 치료에 대해 자동 심사와 전원 연계를 제도화하여 의료 이용의 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 무엇보다 정책 결정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며, 특정 이해관계에 의해 쉽게 뒤집히는 구조를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 된다.의료는 기술이 아니라 구조다. 그리고 구조가 없는 의료는 환자를 보호할 수 없다. 지금 대한민국 의료는 묻고 있다. 환자를 시스템으로 보호할 것인가 아니면 판단에 맡긴 채 방치할 것인가.그 선택의 책임은 국회에 있다.
2026-04-27 05:00:00이슈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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