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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정확해도 과학은 겸손하지 않았다

[메디칼타임즈=경남의사회 마상혁 공공의료위원장] -질병청 인플루엔자 연례보고서를 읽고지난 4월 17일, 질병관리청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가 인플루엔자 연례보고서'를 처음으로 공동 발간했다. 두 거대 공공기관이 가진 방대한 빅데이터를 결합해 인플루엔자 유행과 백신 효과를 분석한 첫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는 분명하다. 지난 절기 인플루엔자 유행이 2016년 이후 가장 컸다는 점, 입원환자의 절반 이상이 65세 이상 고령자였다는 점, 그리고 백신이 고령층의 중증과 사망을 상당 부분 막아냈다는 점은 국민이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다.그러나 보고서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의학자의 눈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이 여럿 눈에 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과는 의미 있으나 전달 방식은 과학적 겸손함을 잃었다. 그리고 이 겸손함의 부재야말로, 역설적으로 백신에 대한 국민 불신을 키우는 가장 큰 원인이다.첫째, 연구 방법이 공개되지 않았다. 보고서는 "연구 설계와 연령대에 따라 중증 예방효과 63.7~74.6%, 사망 예방효과 38.1~81.1%"라는 구체적 수치를 제시했다. 그러나 그 수치가 어떤 연구 설계(test-negative design인지, 코호트 분석인지, case-control인지)로 산출되었는지, 교란변수는 어떻게 보정했는지, 관찰 기간은 어떻게 설정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보도자료 어디에도 없다. 과학에서 '결과'와 '방법'은 분리될 수 없다. 방법이 빠진 결과는 주장일 뿐, 근거가 아니다.둘째, 동료평가(peer review) 여부가 명시되지 않았다. 국가 기관이 발표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과학적 타당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공기관의 발표일수록 독립된 전문가 집단의 검토를 거쳤는지, 어느 학술지에 투고·게재될 예정인지를 밝혀야 국민 신뢰가 쌓인다. 그 절차가 없거나 있어도 표시되지 않는다면, 이는 '정부가 말하니 믿으라'는 권위주의적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가깝다.셋째, 빅데이터 분석의 본질적 한계가 적시되지 않았다. 건강보험 청구자료와 예방접종 등록자료를 연계한 후향적 빅데이터 분석은 강력한 도구이지만, 결코 완벽하지 않다. 접종군과 미접종군 사이에는 건강 상태, 의료 이용 행태, 사회경제적 지위 등에서 체계적 차이가 존재한다(이른바 'healthy vaccinee bias'). 청구자료의 진단코드는 임상 확진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고, 사망 원인 분류도 불명확한 경우가 많다. 이런 한계를 인정하지 않은 채 효과 수치만 단정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홍보다.넷째, 연령별 세분 분석이 부족하다. 인플루엔자는 연령에 따라 임상 양상, 합병증 위험, 면역 반응이 완전히 다른 질환이다. 소아, 학령기, 청장년, 65~74세, 75세 이상, 85세 이상은 각기 다른 집단으로 분석되어야 한다. 그러나 보고서는 "고령층 중증·사망 예방효과 50~80%"라는 광범위한 구간만 제시한다. 이 구간은 너무 넓어서 어떤 정책 판단에도 쓰기 어렵다. 75세 이상 초고령층에서 감염 예방효과가 10%대에 머무른다면, 그것을 숨기는 것보다 솔직히 알리고 대안(고용량 백신, 보조제 첨가 백신 도입 등)을 논의하는 편이 훨씬 생산적이다.다섯째, 가장 문제적인 지점은 '14만 3868건의 입원·외래 감소, 3506건의 사망 감소'라는 숫자다. 이 숫자는 관찰된 수치가 아니라 백신효과 추정치를 인구에 적용해 역산한 모델링 결과다. 앞서 지적했듯 효과 추정치 자체가 38.1%에서 81.1%까지 두 배 넘게 흔들리는데, 거기서 산출된 '예방된 사망 3506명'이라는 한 자리 단위 숫자가 어떻게 가능한가. 과학적으로 성실한 표기는 '약 2000~6000명의 사망을 예방한 것으로 추정된다'와 같이 불확실성 구간을 함께 제시하는 것이다. 한 명 단위까지 찍어 발표하는 순간, 시민들은 직관적으로 안다. "저건 계산이 아니라 선언이다."결과가 의심스러워서가 아니다. 결과를 전달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확정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의심의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팬데믹 이후 공중보건 기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과학은 '우리가 아는 것'만큼이나 '우리가 모르는 것'을 정직하게 말할 때 힘을 얻는다.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우선, 연례보고서는 보도자료가 아니라 과학 문서여야 한다. 연구 설계, 포함·제외 기준, 통계 모형, 한계점, 이해상충, 자금 출처를 명시한 본문 보고서를 누리집에 함께 공개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익명화된 분석 데이터와 코드를 연구자 커뮤니티에 공개해 재현성을 확보해야 한다.둘째, 모든 효과 추정치에 95% 신뢰구간과 불확실성 범위를 병기해야 한다. '3506건 사망 감소'가 아니라 '중앙값 3500건, 95% 신뢰구간 1800~6200건'으로 써야 한다. 이는 불신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치의 신뢰도를 높이는 일이다.셋째, 연령·기저질환별 세분 분석을 표준화해야 한다. 특히 75세 이상, 면역저하자, 만성질환 동반자 집단의 효과를 별도로 제시해야, 고용량 백신 도입이나 2회 접종 전략 같은 실질적 정책 논의가 가능하다.넷째, 독립된 외부 전문가 자문단의 동료평가를 거치고, 그 결과를 함께 공개해야 한다. 대한감염학회, 대한예방의학회, 대한소아감염학회 등 관련 학회와의 공식 검토 절차를 연례화할 필요가 있다.다섯째, 국민 대상 요약본과 전문가용 본문 보고서를 분리 발간해야 한다. 국민에게는 쉽고 정직하게, 전문가에게는 방법과 한계를 상세히. 이 두 층위를 혼동한 현재의 방식이 혼란을 키우고 있다.인플루엔자 백신은 고위험군을 지키는 가장 비용 효과적인 공중보건 수단 중 하나다. 그 가치를 지키는 길은, 효과를 부풀리는 것이 아니라 효과와 한계를 동시에, 겸손하게, 투명하게 말하는 것이다. 국민은 완벽한 백신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정직한 정부를 원한다. 첫 연례보고서 발간은 분명 진일보다. 다만 다음 보고서부터는, 숫자의 정확함보다 과학의 겸손함이 더 돋보이기를 바란다.
2026-04-20 05:00:00이슈칼럼

효과 입증 CTEPH 치료제, 정책 결단 필요

"수술을 했는데도 얼마 전부터 다시 숨이 차기 시작했어요…방법이 없을까요? 너무 답답합니다."얼마 전 진료실에서 만난 만성 혈전색전성 폐고혈압 환자의 말이다. 이런 질문에 시원하게 답변할 수 없을 때가 의사로서 미안하고 막막한 심정이다. 만성 혈전색전성 폐고혈압(이하, CTEPH)은 폐동맥 안에 남아 있던 혈전이 섬유화되며 혈관을 서서히 막아가는 희귀 난치성 질환이다. 발병률은 인구 100만 명당 약 5명. 통계만으로 보면 가볍게 느껴질 수 있는 수치지만, 치료 시기를 놓치면 호흡곤란, 어지러움 등으로 일상적인 활동조차 버거워지고, 수술이 불가능한 중증 환자의 5년 생존율은 약 30%에 불과하다. 진료실에서 느끼는 '환자들의 삶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CTEPH의 근본적 치료는 섬유화된 혈전을 외과적으로 제거하는 폐동맥내막절제술(PEA)이다. 그러나 교과서적인 치료가 현실에서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환자의 약 40%는 병변의 위치나 동반 질환으로 인해 처음부터 수술 적응증에 해당하지 않는다. 어렵게 수술을 받더라도 약 10~35%의 환자에서 폐고혈압이 지속되거나 재발한다. 수술이라는 선택지조차 허락되지 않은 환자들, 수술 이후에도 여전히 숨 가쁜 환자들을 진료현장에서 반복해서 만나고 있다. 희귀질환이라는 특성은 환자들에게 또 하나의 장벽이 된다. 질환에 대한 정보는 부족하고, 진단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며, 치료에 대한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부산대병원이 15년째 폐고혈압 클리닉을 운영하며 매년 5월 환자의 날을 마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해도 5월 7일 '숨쉬는 오늘, 나누는 이야기'라는 주제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폐동맥 고혈압을 포함한 폐고혈압 환자와 보호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환자들이 서로의 경험과 어려움을 나누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소중한 자리로 자리 잡았다. 필자에게 진료를 받는 CTEPH 환자들 역시 이 자리에 참석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전할 예정이다. 함께 숨쉴 수 있는 희망을 찾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만으로는 환자들이 마주한 현실을 바꾸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환자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실제로 병의 경과를 바꿀 수 있는 치료제에 대한 접근성이다. 공감만으로는 숨 가쁨을 멈출 수 없고, 제도적 뒷받침 없이 희귀질환 치료를 위한 정책의 구조적 한계를 넘기 어렵다. 수술이나 시술이 불가능하거나, 수술 후에도 폐고혈압이 남아 있는 CTEPH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가 없는 건 아니다. 현재 국내에서 허가된 유일한 CTEPH치료제 '아뎀파스'는 2014년 폐동맥 고혈압과 CTEPH 모두에서 허가 받았으며, 폐동맥 고혈압에는 지난해부터 급여가 인정됐다. 하지만 CTEPH에는 여전히 급여가 인정되지 않는다. CHEST-1 임상연구에서 아뎀파스는 16주 치료 후 6분 보행거리를 평균 39m 개선시켰으며, 위약군에서는 오히려 평균 6m 감소했다. 폐혈관저항(PVR)과 심부전 지표인 NT-proBNP 수치에서도 유의미한 개선이 확인됐다.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FDA와 EMA의 승인을 받았고, ESC와 ERS 가이드라인에서도 Class I 등급으로 권고되고 있다. 전 세계 진료 현장에서 10년 이상 사용되며 효과와 안전성이 축적된 치료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진료 현장에서는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전액 본인 부담으로 약값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일본, 유럽 주요 국가에서는 건강보험을 통해 치료 접근성을 보장하고 있지만, 국내 환자들은 경제적 이유로 치료를 포기하거나 미루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결국 치료가 가능한 환자마저도 '급여'라는 큰 장벽에 막혀 돌아서게 된다. 여기에 더해 국내에는 CTEPH에 대한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코드조차 없어, 질환에 대한 통계적 파악과 제도적 관리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CTEPH는 사실상 희귀질환 관리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CTEPH 환자들이 더 큰 소외감을 느끼는 이유다.CTEPH 환자들은 충분한 임상 근거와 해외에서 오랜 사용 경험이 있는 치료제가 존재함에도 치료받지 못한 채로 오늘도 숨 가쁜 일상을 간신히 살아내고 있다. 모든 질환이 그렇듯, CTEPH 역시 진단 시점에서 얼마나 빨리 충분하게 환자의 상태를 개선해 주느냐가 예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제는 정부가 '한 시라도 빠르게' 정책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희귀질환 환자들이 제도 밖에 머무르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을 환자와 가족, 그리고 의료진은 기억하고 있다. 대한폐고혈압학회는 아뎀파스의 급여화와 KCD 코드 신설을 포함해 CTEPH 환자의 치료 환경 개선을 위한 논의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정책이 한 걸음만 더 환자 쪽으로 다가온다면, '희귀하다'는 이유로 눈앞에 있는 숨쉴 수 있는 희망을 놓치는 환자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매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진료실에 들어서는 환자를 직접 마주하는 의사로서, 그 변화를 간절히 기대한다.
2026-04-16 10:01:32이슈칼럼

'중대한 과실'이라는 이름의 함정

[메디칼타임즈=손문호 위원]의사에게 진료와 수술은 단순한 기술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매 순간 예측할 수 없는 변수와 마주하며 환자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작은 전쟁'에 가깝다. 환자의 상태는 교과서대로 움직이지 않으며, 동일한 질환이라도 개인의 생리적 반응은 끊임없이 달라진다. 결국 최종 판단은 현장에 있는 의사의 경험과 직관, 그리고 책임에 의해 내려질 수밖에 없다.이러한 의료의 본질을 고려할 때, 최근 논의되는 '중대한 과실'과 '중한 과실'의 법적 구분은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의료행위는 본질적으로 연속적이고 확률적인 판단의 결과물인데, 이를 사후적으로 이분화하여 책임의 정도를 구분하려는 시도 자체가 현실과 괴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 기준이 명확한 수치가 아닌 해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동일한 의료행위조차도 상황과 판단 주체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할 위험이 존재한다.문제는 이러한 불명확성이 필수의료 현장에 미치는 영향이다. 의사는 최선의 치료를 선택하기보다, 사후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안전한 선택'을 우선하게 된다. 이는 곧 방어진료의 구조적 고착화로 이어진다. 고위험 환자나 예측이 어려운 상황을 기피하는 경향이 강화되며, 결국 가장 도움이 절실한 환자일수록 적절한 치료 기회를 잃게 된다.방어진료는 단순히 의료비 증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필수의료의 붕괴로 이어지는 신호다. 응급, 외상, 중증질환과 같이 본래 높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영역에서 의사의 참여가 줄어들고, 의료는 점점 '안전한 영역'으로만 이동하게 된다. 그 결과 의료 시스템 전체는 취약해지고,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영역이 가장 먼저 흔들리게 된다.전쟁에서 동일한 행위가 '살인'이 되기도 하고 '사살'이 되기도 하듯, 의료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과실'이 되기도 하고 '불가항력'이 되기도 한다. 그 차이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이를 해석하고 규정하는 기준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그 기준이 불명확하고 사후적으로 작동할수록, 현장의 판단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따라서 의료에서의 과실 판단은 결과 중심의 단편적 평가를 넘어, 당시의 의료 환경과 의학적 합리성, 그리고 의사의 의사결정 과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방향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특히 형사책임의 과도한 확대는 필수의료의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는 만큼, 합리적 범위 내에서의 민사적 보상 체계와 위험 분산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의료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다루는 영역이다. 그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방식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정책의 역할이다. '중대한 과실'이라는 이름으로 불확실성을 처벌하려는 순간, 의료는 위축되고 환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강한 규제가 아니라, 현장의 판단이 존중받을 수 있는 제도적 균형이다.
2026-04-14 05:30:00이슈칼럼

의사회 회비의 가치

서울특별시의사회의 재무를 맡은 지 9년차에 접어들었다. 제34대와 제35대 집행부에서 재무이사를 역임한 후, 제36대 집행부에서는 재무부회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서울특별시의사회의 회무에 헌신해 왔다.짧지 않은 그 시간 동안 우리 의사회의 재무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으나, 한 가지 두드러진 점이 있다면 회원들이 내는 회비 납부율이 감소 추세에 있다는 점이다. 일부 회원들은 회비를 납부하면 나에게 어떤 혜택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재무 부회장인 나의 답변은 개인의 영역과 직역집단의 영역에서 그 혜택이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모든 직역 단체는 회비 납부를 의무로 한다. 개인과 집단이 공통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회는 개인과 집단의 이익이 다를 수 없기에 이런 맥락에서 회비 납부율의 감소는 아쉬운 부분이다.우리 의사회는 의사 면허신고 및 연수 교육, 각종 위원회 운영 그리고 실사 및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기관 현지 방문 및 애로사항을 파악하는 실사상담위원회와 회원고충즉각대응팀을 운영하고 있다.또한 회원 및 회원 가족의 경조사에 지원을 하고 있으며, 종합민원실, 인사노무관리 자료, 의사면허 신고 확인 등 홈페이지를 통한 각종 온라인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회비 미납 회원의 경우, 연수 교육 참여 시 등록비를 차등화하고, 온라인 면허 신고 제한, 위원회 위촉 제한, 선거권 미부여, 홈페이지 접속을 제한하는 등 회비 납부율 제고를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타 직역에 비하면 상당히 완화된 수준이다.예를 들어, 변호사협회는 회비 미납의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고 심지어 회비지급명령 신청 등 법적 강제까지 불사하며 단체의 기강을 세우고 있다. 치과의사협회는 미납 회원이 보수 교육을 신청할 때, 점수 1점당 5만 원의 간접비를 추가 부과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우리 의사회는 제도적 보완에도 힘쓰고 있다. 특히 지난 2025년 11월, 서울시 4개 의약단체(의사·치과의사·한의사·약사회)와 전현희 국회의원이 협력하여 의미 있는 법안을 발의했다. 의료인이나 약사가 기관을 개설할 때 해당 지역 의약단체에 개설 내역 제출을 의무화하는 것이 골자로, 이 법안이 통과되면 지역 의사회의 체계적인 관리와 회비 납부율 제고에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나날이 어려워지는 의료 환경 속에서 회원들이 납부한 소중한 회비는 회원 모두의 기본적인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 정부의 불합리한 정책에 맞서는 법률 대응 비용이며, 회원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의료 분쟁의 방어막이자 우리의 권익을 대변할 전문가 그룹을 육성하는 투자이기도 하다. 즉, 회비는 의사 개인은 물론 의사회 전체 공동의 가치를 부여하고 살찌우기 위한 것이며, 개인이 부담하는 사적 비용이 아니라 직역 전체를 지키는 보험에 해당한다.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참여의식이다.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비전문가 집단인 국회와 정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의사들의 전문적 식견과 윤리적이고 숭고한 의지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중요한 의료 제도나 의학적 사안에 대한 의사 개인의 의견을 수렴하고 전달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의사회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는 것이다.우리의 미래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산만하고 무기력한 각자 도생하는 집단의 미래는 밝지 않다. 선명한 하나의 목소리를 가진 존재감 있는 직역으로서 의사회는 그 사회적 위상을 지켜내야 한다. 이 갈림길에서 우리 의료계의 내일을 결정짓는 것은 의사회 회원 모두의 적극적인 참여와 결속에 달려 있다.  
2026-04-13 05:00:00이슈칼럼
[박선영 대표의 병원ESG 칼럼]

나프타 수급 불안이 남긴 숙제⑦

[메디칼타임즈=스테리케어 박선영 대표] 오늘 정부는 중동 지역의 긴장 고조로 인한 나프타 수급 차질에 대비해 수술복, 수술포 등 필수 의료용품 원료를 우선 공급한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국민 생명과 직결된 의료 현장의 공백을 막기 위한 정부의 신속하고 기민한 대응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역설적으로 우리 의료 현장이 외부 환경 변화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대외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의료 현장을 위하여일회용 수술복과 수술포는 현대 의료의 효율성을 높여주었지만, 석유 화합물인 나프타를 원료로 한다는 점에서 국제 유가와 수급 불안정이라는 대외 변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부의 우선 공급 정책은 당장의 급한 불을 끄는 효과적인 처방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원료 수급 상황에 따라 의료 현장의 불안감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조금 더 근본적이고 보완적인 대안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외부에서 원료를 들여와 한 번 쓰고 버리는 구조를 넘어, 이미 보유한 자원을 순환시켜 사용하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이다.재사용 시스템, 정부 정책의 든든한 보완재나는 재사용 수술 가운과 수술포가 정부의 자원 관리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실질적인 보완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75회 이상 재사용이 가능한 고성능 가운은 일회용품 75벌이 수행할 역할을 단 한 벌로 대신한다. 이는 원재료 수급 파동이 닥쳤을 때 병원이 자체적으로 견뎌낼 수 있는 '자생력'을 의미한다.해외의 선진 의료 체계가 팬데믹이나 물류 대란 속에서도 재사용 자산을 활용해 의료 공백을 최소화했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재사용 시스템을 갖춘 병원은 정부의 자원 배분 우선순위에만 의존하지 않고도,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회복 탄력성(Resilience)을 갖게 된다.'자원 순환형 의료'로 나아가는 길정부가 오늘 발표한 규제 완화와 우선 공급 대책은 민생 안정을 위한 필수적인 조치다. 여기에 더해, 장기적으로는 의료용품의 '자원 자립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적 시야를 넓힌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재사용 의료용품의 도입을 장려하고 관련 인프라를 지원하는 것은, 단순한 환경 보호를 넘어 국가적 자원 위기 상황에서 의료 현장을 보호하는 이중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글로벌 공급망 위기 속에서, 우리 의료 현장이 보다 단단해지기를 바란다. 이번 나프타 수급 이슈가 일회용품 중심의 소비 구조를 넘어, 보다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자원 순환형 의료 시스템'으로 나아가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의료의 본질인 '환자 안전'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안정적인 자원 공급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2026-04-10 08:03:10이슈칼럼

통합돌봄 시대, 의사와 주간보호센터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환자의 모습은 종종 다르다. 그리고 진료실에서 세운 계획은 생활 속에서 다르게 작동하곤 한다.혈압은 조절되어야 하고, 약은 규칙적으로 복용해야 하며, 운동과 식이 조절이 필요하다는 점은 충분히 설명된다. 하지만 환자의 일상에서는 그 계획이 그대로 유지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이 문제를 단순히 '순응도'의 문제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오히려 의료가 다루는 영역과 환자가 실제로 살아가는 영역 사이에 구조적인 단절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령 환자를 진료할수록 이 단절은 더욱 뚜렷해진다. 여러 만성질환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고, 신체 기능은 점차 저하되며, 일상생활 수행 능력 역시 함께 떨어진다.이때 환자의 예후를 결정짓는 것은 더 이상 '처방의 적절성'만이 아니다. 생활 속에서 그 처방이 실제로 구현되는지, 그리고 기능 저하를 얼마나 늦출 수 있는지가 핵심이 된다.최근 정책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통합돌봄'은 바로 이 지점에서 등장한다. 환자가 병원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살고 있는 곳에서 의료와 돌봄이 함께 작동하도록 구조를 바꾸겠다는 시도다.그러나 이 흐름 속에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이 구조 안에서 의사는 어디까지 관여해야 하는가?"지금까지의 의료는 비교적 명확했다. 환자가 병원을 방문하면 진단하고, 치료하고, 필요시 추적 관찰을 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통합돌봄 환경에서는 환자의 상태가 병원 밖에서 대부분 결정된다. 의료가 개입하는 시간보다, 그렇지 않은 시간이 훨씬 길다.이 지점에서 우리는 특정 시설 하나가 아니라, 환자의 '생활 공간 전체'를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주간보호센터는 그중 하나의 축이다. 환자가 낮 시간 동안 머물며 반복적인 관찰과 개입이 가능한 공간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환자의 삶은 주간보호센터에 머무는 시간보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더 길다.따라서 방문요양, 재가요양과 같은 영역까지 함께 보지 않으면 환자의 실제 생활은 여전히 의료의 바깥에 남게 된다. 중요한 것은 개별 서비스의 종류가 아니라 이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여부다.현재의 시스템에서는 의료기관, 주간보호센터, 방문요양기관이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그 사이의 연결은 충분히 설계되어 있지 않다.그 결과 현장에서는 돌봄 영역이 의료적 판단을 일부 대신하거나, 의료는 환자의 실제 생활을 충분히 알지 못한 채 처방을 반복하는 일이 발생한다.통합돌봄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이 분절을 단순한 '협력' 수준이 아니라 하나의 관리 체계로 재구성해야 한다.예를 들어, 외래 또는 방문진료에서 환자의 기능 상태와 위험요인을 평가하고, 주간보호센터에서는 낮 시간 동안의 활동과 재활을 담당하며, 방문요양과 재가요양은 가정 내에서의 생활을 지속적으로 유지·보조하는 구조다.그리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화와 신호가 다시 의료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러한 순환이 만들어질 때 비로소 '생활 속 관리'가 작동하게 된다.이 구조를 누가 설계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중요하다. 만약 의료가 이 과정에 충분히 관여하지 않는다면, 돌봄을 중심으로 한 구조가 먼저 형성되고 의료는 필요할 때 호출되는 형태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그렇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의사가 주간보호센터뿐 아니라 방문요양, 재가요양까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변화 속에서 의료가 중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진료실 밖의 구조를 이해하고, 필요하다면 그 설계에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통합돌봄에서 의사들이 해야 하고, 할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한다.그 변화 속에서 의사가 어떤 위치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의료가 환자의 삶을 다시 중심에서 다룰 수 있을지, 아니면 점점 주변으로 밀려나게 될지가 결정될 것이다.
2026-04-06 05:00:00이슈칼럼

설명의무는 어디까지 정의할 수 있는가?

[메디칼타임즈=손문호 위원]의료에서 설명은 당연한 의무처럼 여겨진다. 환자는 자신의 몸에 대해 알 권리가 있고, 의사는 그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이 명제 자체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한 걸음만 더 들어가 보면, 단순해 보이던 질문은 곧 복잡해진다. 그 설명은 어디까지가 충분한가. 우리는 과연 그 경계를 정의할 수 있는가.진료실에서 이루어지는 설명은 결코 정형화된 문장이 아니다. 같은 질환이라도 환자의 나이, 기저질환, 생활환경에 따라 위험은 달라지고, 같은 치료라도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의사는 불확실성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제시하고, 환자는 그 선택을 받아들일지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설명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문제는 법이 이 설명을 '측정 가능한 의무'로 만들려 할 때 시작된다. 설명의 범위를 넓히면 넓힐수록 환자의 권리는 보호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 반대의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가능한 모든 합병증을 빠짐없이 설명하라는 요구는 결국 두 가지를 초래한다. 하나는 끝없는 나열이다. 다른 하나는 책임의 확장이다.의학적으로 발생 가능한 위험은 무수히 많다. 어떤 것은 흔하지만 경미하고, 어떤 것은 극히 드물지만 치명적이다. 이 모든 것을 동일한 수준으로 설명하는 것이 과연 환자의 선택에 도움이 되는가. 오히려 중요한 위험과 덜 중요한 위험이 뒤섞이면서 판단은 흐려지고, 설명은 소통이 아니라 부담이 된다. 설명이 많아질수록 이해가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질이 가려지는 역설이 발생한다.더 중요한 문제는 설명의 평가가 언제나 '사후적'이라는 점이다. 치료 당시에는 합리적이었던 설명도, 결과가 나쁘면 다시 해석된다. "그 위험을 더 강조했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은 언제든지 제기될 수 있다. 결국 설명은 사전에 이루어지지만, 책임은 사후에 결정된다. 이 간극 속에서 설명의 의무는 점점 더 넓어지고, 그 경계는 흐려진다.특히 형사책임과 연결되는 순간,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설명이 부족했다는 이유만으로 의료행위 전체가 중대한 과실로 평가될 수 있다면, 의사는 치료 이전에 법적 위험을 먼저 고려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방어적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의 방향 자체를 바꾸는 요인이 된다. 위험한 환자일수록 더 많은 설명이 요구되고, 동시에 더 큰 책임이 뒤따른다면, 결국 가장 치료가 필요한 환자일수록 진료에서 멀어지게 된다.그렇다면 설명의 의무는 어디까지가 합리적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모든 것을 설명하라'가 아니라, '의사결정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는 정보를 설명하라'는 데 있다. 사망이나 영구적 장애와 같은 중대한 위험, 그리고 치료 방법의 선택을 바꿀 수 있는 핵심 정보가 그 범위에 포함된다. 이 범위를 넘어서는 설명은 환자의 권리를 보호하기보다는 오히려 판단을 방해할 수 있다.또한, 설명의무는 어디까지나 의료행위의 보조적 요소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의료의 본질은 치료에 있으며, 설명은 그 치료를 이해하고 선택하기 위한 과정이다. 설명의 부족이 곧바로 형사책임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의료를 위축시키고, 결국 환자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결국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의료에서 설명의 의무는 완벽하게 정의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고정된 기준이 아니라, 환자의 상태와 의료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유동적인 영역이다. 따라서 법은 그 경계를 무한히 확장하기보다,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제한해야 한다.설명은 신뢰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 설명이 처벌의 기준이 되는 순간, 신뢰는 사라지고 방어만 남는다. 의료가 본래의 목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설명의 의무 또한 그 본질에 맞게 이해되어야 한다.우리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것은 설명의 양이 아니라, 설명의 방향이다. 환자의 선택을 돕는 설명인가, 아니면 책임을 대비하기 위한 설명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야말로, 설명의무 논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2026-03-31 05:00:00이슈칼럼

서울시립대 의전원 공약 정책 아닌 판타지

[메디칼타임즈=경남의사회 마상혁 공공의료위원장] '서울시립대 의전원 공약' — 이것은 정책이 아니라 판타지다선거철이 되면 어김없이 의료 공약이 등장한다. 문제는 그 공약이 의료 현장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탁상 위의 상상에서 빚어진 것인지를 국민은 구별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그랬다.국민의힘 서울시장 예비후보인 윤희숙 전 의원이 서울 공공의료 공백 해소를 위해 서울시립대 의학전문대학원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미 결정된 3342명 증원 중에서 서울시립대 의전원에 40명 정원만 배정해달라며, 재정은 서울시가 전액 책임지고 국가 예산에 손 벌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아가 전공 과목은 내과, 소아과, 정신과, 재활의학과로 한정하고, 졸업 후에는 15년간 서울시 산하 공공의료기관에서 의무 복무하게 하겠다고 했다.듣기에는 그럴듯하다. 그러나 30년 임상 경험을 가진 의사의 눈으로 이 공약을 들여다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허구와 무지의 결합이다. 정중하게 말할 수 없다. 이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공약이다.의과대학은 간판만 달면 생기는 것이 아니다의과대학을 설립하는 일은 건물 하나 짓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기초의학 교육을 위한 해부학·생리학·병리학·약리학 전임 교수진이 필요하고, 이들이 연구하고 실험할 수 있는 실험실과 시설이 있어야 한다. 임상의학 교육을 위해서는 교육병원이 필수이며, 그 병원에는 충분한 수의 지도전문의와 환자군이 확보돼 있어야 한다. 의사 국가시험 응시 자격을 갖추려면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양쪽의 엄격한 인증 기준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40명이라는 소규모 정원이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오히려 소수 정원일수록 학생 한 명당 소요되는 운영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전국 어느 의과대학도 소수 정원으로 운영되는 곳이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전임 교수 인건비, 기초실험 장비 구축비, 임상실습 비용, 학생 장학금까지 합산하면 실제 소요 예산은 수천억 원 규모를 쉽게 넘어선다. "서울시 예산으로 전액 책임지겠다"는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는 조금만 계산해 보면 안다.'전공 지정' 발상, 어디서 나온 것인가더 경악스러운 것은 전공 과목을 내과, 소아과, 정신과, 재활의학과로 처음부터 못 박겠다는 구상이다. 이 발상이 의료 교육과 수련 체계를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의학교육은 6년간의 의대 과정과 1년의 인턴, 4년의 전공의 수련으로 구성된다. 의대 교육과정은 특정 전공에 특화된 것이 아니라 의사로서의 기본 역량을 갖추는 것이 목표다. 외과학이 없는 의대, 산부인과 교육이 없는 의대, 응급의학이 배제된 의대는 존재할 수 없다. 의대 교육과정은 의평원(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인증 기준으로 엄격히 규정돼 있고,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졸업생은 의사 면허 시험조차 볼 수 없다.'소아과만 가르치는 의대'는 '수학만 가르치는 고등학교'와 다를 바 없다. 교육 체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원하는 전공을 배정하고 싶다면 그것은 의대 설립이 아니라 전공의 수련병원 확충과 처우 개선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의료인력 수급 문제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서울은 정말 공공의료 공백 지역인가윤 후보는 세계 최고 수준의 빅5 병원들이 있지만 그 병원 문 앞까지 걸어갈 수 없는 사람, 119를 누를 엄두도 못 내는 사람이 서울에도 수없이 많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해법이 왜 의전원 신설이어야 하는가.서울시는 이미 서울의료원, 보라매병원, 동부병원, 북부병원, 서남병원, 은평병원 등 다수의 시립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공공의료 인프라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이 기관들이 제 기능을 못 하는 이유는 의사가 없어서가 아니라, 민간에 비해 열악한 처우와 경직된 운영 구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시립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야간진료, 정신건강의학과 외래를 강화하고 싶다면 의전원을 신설할 것이 아니라 그 과에 근무하는 의사들의 급여와 근무환경을 개선하면 된다. 그것이 가장 빠르고 현실적인 해법이다.15년 의무복무라는 조건을 내건 공약도 마찬가지다. 의사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최소 10년을 투자한 사람에게 졸업 즉시 15년 복무를 강제하는 것은, 아무리 전액 장학금을 준다 해도 지원자를 구하기 어렵다.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자격은 대졸 이상이므로, 15년 복무가 끝나는 시점이면 이미 40대 후반이다. 이 공약은 현실적인 인력 수급 계획이 아니라 선거용 슬로건에 불과하다.KDI 출신 경제학자에게 묻는다윤희숙 후보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의 경제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그 경력이 사실이라면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경제학자라면 가장 먼저 따져야 할 것이 비용 대비 효과다. 수천억 원을 투입해 40명을 양성하고, 그들이 15년 복무를 마치는 데 걸리는 시간 동안 서울시 공공의료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기 시작하는 시점은 의전원 설립으로부터 최소 20년 후다. 그 비용과 시간으로 현존하는 시립병원 인력의 처우를 개선하면 지금 당장 효과가 나타난다.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인 정책인지는 경제학의 기초를 아는 사람이라면 판단할 수 있다.의료는 복잡한 시스템이다. 교육, 수련, 면허, 수가, 개원, 전문화가 촘촘히 맞물려 있다. 그 시스템을 이해하지 않은 채 '내 것도 하나 만들겠다'는 식의 접근은, 의료계에 대한 무지이자 국민에 대한 무례다.공약은 약속이 아닌 계약이다선거 공약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유권자와의 계약이다. 이행 불가능한 약속을 아름다운 포장지에 싸서 내미는 행위는, 표를 얻기 위한 기만이다.'서울시민만을 위한 의료사관학교'라는 말은 감동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그 말 뒤에 구체적인 교수 확보 계획도, 교육병원 운영 방안도, 실질적인 예산 계획도 없다면, 그것은 언어로 포장한 허상이다.의료 공약은 다른 어떤 공약보다 정밀하게 검증돼야 한다. 잘못된 의료 정책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이 이 공약의 민낯을 직시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정치인들이 의료를 정쟁의 도구로 삼는 일을 이제는 멈추기를 촉구한다.모르면 물어봐야 한다. 알지도 못하면서 만들겠다고 하면 안 된다.
2026-03-30 05:00:00이슈칼럼

소아청소년 의료 정책의 민낯

[메디칼타임즈=경남의사회 마상혁 공공의료위원장] 소아청소년 인구는 전체의 14~15%를 차지한다. 그런데 보건복지부 예산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몫은 2.3%에 불과하다. 이 구조적 불균형 위에 전공의 충원율 붕괴와 전문의 고령화가 겹치면서 위기는 이제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이재명 정부는 소아비만을 질병으로 분류하고 학교·공공 의료기관에서 상담·관리를 지원하는 국가책임 강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2026년 보건복지부 예산 어디에도 소아청소년 비만 관련 신규 독립 사업 예산은 존재하지 않는다.숫자는 냉정하다. 초·중·고등학생 비만율은 2019년 15.1%에서 2024년 18.3%로 높아졌고, 과체중 이상 비만군은 전체 학생의 29.3%에 달한다.소아청소년 비만의 60~80%는 성인비만으로 이행하며, 비수도권과 저소득층에서의 비만율은 더 높아 건강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예산이 없으면 수가 급여화도, 학교 비만 상담 인프라도, 모니터링 체계도 불가능하다. 예산 없는 공약은 선언일 뿐이다.검진 체계의 현실은 더 참담하다. 2026년 법 개정으로 학생 건강검진 관리 주체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이전되었지만, 검진 비용(3만 원 수준)과 검진 항목은 2000년대 초반 설계 그대로다.과체중 이상이 29.3%에 달하는 시대에 체지방 분석이나 대사증후군 선별 검사는 없다. 청소년 우울증 환자가 급증하는데도 표준화된 정신건강 스크리닝은 부재하고, 성조숙증·저신장·갑상선 기능 이상을 가려낼 성장 발달 평가 항목도 없다.구조적 문제는 더 깊은 곳에 있다. 예산 주도권은 교육부가, 실무 수행은 공단이, 정책 전문성은 복지부가 각각 쥐고 있어 누구도 실질적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다. 올바른 개혁이 이루어지려면 예산의 복지부 이관, 검진 항목의 과학적 재설계, 예산 규모의 현실화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의대 증원과 지역의사제는 어떤가. 정부가 내세우는 대책이지만 타임라인을 따라가면 공허해진다. 2027년 지역의사제 첫 모집(490명)이 이루어지더라도,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가 배출되는 시점은 2037~2038년이다. 10년 의무복무가 완료되어 실질적인 자율 배치가 가능해지는 것은 2047~2048년이다.문제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대거 은퇴가 예상되는 시기가 바로 2027~2040년이라는 점이다. 최악의 공백기와 정책 효과의 발현 시기가 완전히 엇갈린다. 게다가 지역의사제는 '어디서 일할지'는 강제할 수 있어도 '무슨 과를 선택할지'는 유도하지 못한다.저수가와 의료사고 위험이라는 기피 원인을 해결하지 않는 한 동일한 결과가 반복될 뿐이다. 지방 소아청소년과 수련 인프라—소아중환자실, 소아수술실—가 부재한 상황에서 의무복무 10년과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조합은 열악한 환경에 묶이는 선택으로 인식되어 전공 기피를 오히려 심화시킬 수 있다.정부는 소아과 오픈런을 의사 부족의 증거로 제시하며 의대 증원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오픈런의 실제 원인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첫째는 일시적 수요 폭발이다. 코로나 이후 RSV·독감·마이코플라스마 트리플데믹으로 인한 단기 급증은 역학적으로 충분히 예측 가능했던 현상이었다. 둘째는 요일·시간대 쏠림이다. 야간·주말에 문 여는 소아과가 없어 개원한 한두 곳에 수요가 집중된 것이지, '소아과가 없어서'가 아니라 '문 여는 소아과가 없어서'였다. 셋째는 폐업이 만든 착시다. 수요가 초과 상태라면 개원이 늘어야 정상인데, 소아청소년과에서는 오픈런과 폐업이 동시에 발생했다. 이는 의사 수의 문제가 아니라 수가 구조의 실패를 가리킨다.해법의 우선순위는 분명하다. 즉각적으로는 소아청소년과 수가 현실화, 야간·주말 가산율 인상,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이 이루어져야 한다. 중기적으로는 지역의사제 소아청소년과 전공 인센티브 도입(복무 단축)과 지방 소아 수련 인프라에 대한 선투자가 필요하다.구조적으로는 학생건강검진 예산의 복지부 이관, 검진 항목의 과학적 재설계, 소아청소년 의료 10년 로드맵 수립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소아청소년 의료 위기의 원인은 의사 수가 아니다. 소아과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수가 구조다. 진단이 틀리면 처방도 틀린다. 지금 대한민국의 소아청소년 의료 정책은 증상은 보고 있지만 병인(病因)은 외면하고 있다.
2026-03-23 05:00:00이슈칼럼

아이없는 도시 필수의료 존속할 수 있나

[메디칼타임즈=손문호 칼럼위원]얼마 전 한 중앙지는 「올해 '입학생 0명' 초등학교 전국에 210곳… 5년 전보다 81% 늘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충격적인 통계를 보도하였다. 전국 210개 초등학교에 올해 신입생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단순한 교육 현장의 위기가 아니다. 이는 지역 공동체의 존립 기반이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지표다. 출생이 멈춘 지역에서 과연 의료는 유지될 수 있는가. 특히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와 같은 필수의료 영역은 어떤 전제 위에서 존속할 수 있는가. '신입생 0명'이라는 숫자는 교육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의료 체계의 지속 가능성을 근본부터 다시 묻게 만드는 질문이다.1. 소아청소년과: 수요가 사라진 진료과소아청소년과는 출생아 수와 직접적으로 연동되는 진료과이다. 출생아가 연간 수십 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군 단위 지역에서는 외래 수요 자체가 형성되기 어렵다. 영유아 건강검진과 예방접종, 경증 감염 질환 진료는 소아청소년과 의원 운영의 기반이지만, 아동 인구가 급감하면 이 구조는 유지될 수 없다. 응급·중증 환자는 이미 광역 거점병원으로 이송되고 있으며, 지역 내에서 완결되는 소아 진료 체계는 점차 해체되고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외래 환자 수가 확보되지 않는 한, 의원급 운영은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는 사명감이나 정책적 의무 배치의 문제가 아니라, 수요 기반이 붕괴된 구조적 현실이다.2. 산부인과: 인프라의 붕괴와 재건의 어려움산부인과는 더욱 복합적인 조건을 요구한다. 분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24시간 전문의 상주 체계, 마취과와 소아과의 협진, 수술실과 신생아실 운영, 응급 대응 인력 확보가 필수적이다. 여기에 높은 의료사고 보험료 부담까지 더해진다. 연간 분만 건수가 극소수에 불과한 지역에서는 이러한 인프라를 유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미 많은 지역에서 분만실이 폐쇄되었고, '분만 취약지'를 넘어 '분만 불모지'로 전환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분만실이 닫히는 순간 숙련 인력은 지역을 떠나고 협진 체계는 해체된다. 재건은 단기간에 가능하지 않다.3. 의사 수 증원은 해법이 될 수 있는가의료정책은 흔히 "의사가 부족하다"는 전제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의료 공백이 발생하면 인력 부족을 원인으로 규정하고, 의과대학 정원 확대나 지역 배치를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신입생이 단 한 명도 없는 지역에서 문제의 본질은 과연 의사 수에 있는가. 그곳에서 무너지고 있는 것은 의료 인력이 아니라 의료를 성립시키는 인구 기반이다. 출생이 멈춘 지역에서는 소아 환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분만 건수 역시 유지될 수 없다. 마취과·소아과 등 협진 체계도 붕괴된다. 결국, 남는 것은 응급 상황에서의 이송 체계뿐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단순히 의사를 배치하는 정책은 구조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필수의료는 특정 인력 1인의 존재만으로 완성되는 체계가 아니다. 이는 인구 규모, 지역 경제, 협진 인력, 응급 인프라가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생태계 위에서만 유지된다. 생태계가 붕괴된 자리에서는 공급 확대가 아니라 구조 재설계가 선행되어야 한다.4. 필수의료의 재정의와 체계 전환신입생 0명 지역에서 의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다른 접근이 요구된다. 과거의 인구 구조를 전제로 "지역마다 동일한 병원을 유지해야 한다"는 방식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첫째, 광역 거점병원을 중심으로 한 통합 분만·소아 진료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진료 건수를 확보할 수 있는 중심 병원에 자원을 집중하고, 고위험 환자를 신속히 이송하는 체계를 병행해야 한다.둘째, 고위험 산모와 소아 환자를 위한 응급 후송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단순 이송을 넘어 의료진 동승, 신속 전원 프로토콜, 정보 공유 체계가 포함된 통합 네트워크가 필요하다.셋째, 순회 진료와 원격 모니터링을 결합한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 상시 상주 인력으로 모든 기능을 유지하기 어려운 지역에서는 주기적 방문 진료와 디지털 기반 건강 관리 체계를 통해 최소한의 접근성을 확보할 수 있다.넷째, 지역 보건소 기능을 고도화하여 예방 중심의 1차 건강 관리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인구가 감소하는 지역일수록 치료 중심 구조보다 만성질환 관리와 건강 증진 기능이 중요해진다.이제는 분산형 공급 모델에서 밀집형·집중형 안전망 모델로의 전환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맺음말「입학생 0명 초등학교 210곳」이라는 통계는 교육 정책의 경고가 아니라, 지역 사회 전체의 구조적 변화를 알리는 신호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사라진 공간에서 필수의료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 없이 단순한 의사 수 증원만을 반복한다면,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비껴가게 될 것이다. 필수의료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그리고 그 구조는 지금, 근본적인 재설계를 요구하고 있다.
2026-03-17 05:00:00이슈칼럼

연명의료결정법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자기결정을 존중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이 2018년부터 시행되었다.시행 후 연명의료 중단 건수는 2018년 3.1만 건(사망자 대비 비중 10.6%)에서 2024년 7.0만 건(19.6%)으로 증가하였고 2025년 8월 기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 수는 300만 명(19세 이상 인구 6.8%)으로 나름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생애 말기 현장에서는 여러 문제점으로 환자, 보호자, 의료진, 돌봄 제공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특히 이행 시기와 관련된 혼란은 법 제정 시부터 많은 논란이 있었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연명의료 유보·중단의 이행은 임종기에서만 가능하다. 이행 시기와 관련하여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연명의료'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체외생명유지술, 수혈, 혈압상승제 투여와 그 밖에 담당 의사가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필요가 있다고 의학적으로 판단하는 시술로서 치료 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으로 정의하였다.임종기에서만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을 이행할 수 있다. 대한의사협회의 입장,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이 이행되는 현장과 최근 발표된 김태경 등의 보고서(연명의료, 누구의 선택인가: 환자 선호와 의료현실의 괴리, 그리고 보완방안)를 살펴본다.의료행위는 신체 침습을 동반한다.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를 거쳐 침습적인 의료행위는 그 정당성을 확보한다.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는 거부를 전제로 하며 이러한 거부는 연명의료 유보·중단의 윤리적·법적 토대를 이룬다.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 없는 신체 침습은 고문이 있고 예외적으로 응급의료법, 감염병예방법에서 가능하다.임종기에서만 침습적인 의료행위를 적법하게 유보·중단할 수 있다면 그 이전에 유보·중단하는 것은 불법적인가? 그리고 비윤리적인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비윤리적이지는 않다.먼저, 대한의사협회의 연명의료 유보·중단에 대한 입장을 살펴본다.대한의사협회 의사윤리강령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 환자의 인격과 자기결정권을 존중, 죽음을 앞둔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환자가 인간답게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선언하였고 의사윤리지침에서는 제35조 "말기 환자가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노력, 말기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치료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했다.대한의사협회의 공식적인 입장인 KMA POLICY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지'에서 "연명의료 중지에 대한 논의는 환자의 치료 거부권의 맥락에서 논의해야 하며, 환자의 죽을 권리와 연결 지어서는 안 된다. 연명의료 중지에 대한 논의는 임종기 환자 혹은 말기 환자 등 환자의 회생 가능성이 없는 경우를 전제로 한다. 환자의 회생 가능성이 없는 경우 환자의 치료 거부권을 존중해야 한다"라고 하였다.2024년 7월 대한의사협회는 남인순 의원의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와 말기 환자의 구분을 없애고, 말기 환자에게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을 이행할 수 있도록 하여 환자가 존엄하고 편안하게 생애 말기를 맞이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법안(의안번호 2201001)에 대하여 "말기 환자로의 통칭·통합을 통해 환자의 최선의 이익과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면서 환자의 존엄과 가치를 드높이고 보호하도록 하여야 할 것"으로 찬성 의견을 냈다.대한의사협회는 의사의 전문성과 전문가적 양심에 기초한 판단을 바탕으로 말기에서도 연명의료의 유보·중단이 가능함을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천명하고 있으나 현실의 법 적용은 그렇지 않다.허대석 교수 등은 '연명의료결정법 적용에 따른 문제점과 개선 방향'에서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실제 현장에서는 임종 과정을 명확히 진단하는 것은 어렵다. 임종 과정이라는 애매한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기다리다가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 시기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잔여 생명의 예측은 불확실성이 큰 영역이기 때문에 예측되는 잔여 생명 기간을 기준으로 말기, 임종 과정을 구분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말기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은 의학적 쟁점이 없는 상태로 대부분의 나라가 최선의 이익을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 두 가지 상황은 엄격히 구분하기 어려우므로 '말기'로 통일되어야 한다"라고 하여 말기로의 통일을 주장하였다.2025년 12월 11일, 김태경 등은 "연명의료, 누구의 선택인가: 환자 선호와 의료현실의 괴리, 그리고 보완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 보고서에서 "현행법은 이행 시점을 '임종기'로 한정하고 있어 국제 기준에 비해 적용 범위가 좁다는 지적, 우리나라와 달리 대부분의 주요국은 의학적으로 회복이 불가능한 말기 상태에서도 환자 또는 가족의 의사에 따라 연명의료 결정 절차를 개시할 수 있도록 한다. 임종기 이전 단계에 있더라도 의학적으로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로 판단되는 경우에는 이행 요건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하였다.의료전문가 단체와 현장에서 환자를 돌보는 의사들 그리고 정부 출연 연구소가 한목소리로 말기로의 통일·통칭을 주장함에도 그 목소리를 외면하면 원하지 않는 신체 침해를 동반한 연명의료가 지속되면서 국민이 고생한다.연명의료결정법의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 이행 시기가 임종기에서 말기로의 통일·통칭이 하루빨리 실현되어 말기에서도 연명의료의 유보·중단이 가능해져 환자의 연명의료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존중받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가 보호되기를 기원한다.
2026-03-16 05:00:00이슈칼럼

누굴 위한 '지역·필수·공공의료실' 신설인가

[메디칼타임즈=경남의사회 마상혁 공공의료위원장] 간판 바꾸기 전에, 먼저 반성부터 '지역·필수·공공의료실' 신설, 국민을 위한 것인가 행정을 위한 것인가보건복지부가 올해 상반기 중 '지역·필수·공공의료실'을 신설한다고 밝혔다. 필수의료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으니 이를 전담할 실장급 조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연간 1조 1,300억 원 규모의 특별회계도 설계 중이고, 5년간 총 4조 원에 달하는 신규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숫자만 보면 대단한 의지처럼 보인다.그러나 솔직히 말하자. 기대가 전혀 없다. 아니, 기대가 없는 것을 넘어 이것이 국민을 향한 또 하나의 기만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책임 없는 곳에 해법도 없다지금 한국 의료가 처한 위기—응급실 공백, 소아과 붕괴, 지역 의료 소멸—는 하루아침에 생긴 일이 아니다. 수십 년간 누적된 정책 실패의 결과다. 그 정책을 주도적으로 설계하고 집행해 온 주체가 바로 보건복지부다.그런데 지금 그 보건복지부가 새 조직을 만든다고 한다. 무엇이 잘못됐는지에 대한 반성은 어디에도 없다. 어떤 정책이 실패했고, 왜 실패했으며, 누가 책임을 졌는지에 대한 평가 한 줄이 없다. 그저 '법이 통과됐으니 조직을 만들겠다'는 행정적 논리만 있을 뿐이다.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조직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새 조직은 새로운 예산 낭비의 창구가 될 공산이 크다. 2026년 보건복지부 예산은 137조 원이다. 이 막대한 예산을 편성하면서 현장의 전문가들, 의료 일선의 의사들, 그리고 정작 의료를 이용하는 국민들과 얼마나 깊이 소통했는가? 거버넌스를 강조했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형식적 절차만 갖춘 채 독단으로 진행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순환보직이 만든 전문성의 공백보건복지부 내 순환보직 관행은 정책의 질을 떨어뜨리는 구조적 원인 중 하나다. 복잡한 의료 시스템을 이해하려면 최소한 수년의 경험이 필요하다. 그런데 담당 공무원은 1~2년 만에 바뀐다. 의료 현장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채 법과 예산을 다루다 보니 정책이 현실과 동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지역·필수·공공의료실이 생겨나도 결국 같은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예산만 낭비하는 부서가 하나 더 추가되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  국회와 의료계, 각자의 직무유기잘못된 정책을 견제해야 할 국회는 어땠는가. 무능의 극치를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닫은 채, 얕은 지식으로 자기 주장만 되풀이했다. 필수의료 공백이 현실화되는 동안에도 정치적 셈법에 따라 움직였다.대한의사협회도 자유롭지 않다. 전문가 집단으로서 국민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고, 정부 정책에 날카로운 비판과 합리적 대안을 제시해야 할 역할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의협은 권력 다툼에 함몰돼 있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전문가 단체는 존재 가치를 잃는다.■  '필수의료'라는 말의 함정'필수의료'라는 개념 자체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당장 생명이 위태로운 응급 상황만을 필수의료라 부를 것인가? 만성질환 관리, 소아 발달 평가, 정신건강 돌봄도 삶의 질과 생명에 직결된다. 개념의 범위가 좁을수록 정책의 사각지대는 넓어진다.우선순위를 명확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응급의료와 중환자 진료에서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는 사법 리스크다. '환자가 사망하면 의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정서가 사회 전반에 자리 잡고 있는 한, 어떤 유능한 의사도 고위험 진료 현장에 자원하려 하지 않는다. 코로나 유행 당시에도 경험했듯, 국민과의 소통과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노력은 거의 전무했다. 제도만으로는 사람을 움직일 수 없다.■  진짜 해법은 겸손에서 시작된다해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 방향은 오히려 단순하다.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이 열린 마음으로 전문가와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에 반영하는 것, 정치인들이 짧은 지식으로 판단하지 않고 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정치 색채가 강한 시민단체는 배제해야 한다.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목소리를 국민의 목소리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예산과 법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신뢰다. 신뢰는 투명한 반성과 개방적 소통에서 비롯된다. 지금 보건복지부와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새 조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난 날의 과오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더 겸허한 자세로 현장에 다가가는 것이다.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반성 없는 움직임은 국민을 피로하게 만들 뿐이다. 한국 의료를 돌아올 수 없는 상태로 몰아가고 있는 흐름을 되돌리려면, 먼저 그 흐름을 만들어 온 사람들의 진정한 책임 인식이 선행돼야 한다.
2026-03-09 05:00:00이슈칼럼

재택의료의 새로운 과제

지난 2월 13일 보건복지부는 장기요양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 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2023년 28개 시·군·구 28개소로 시작한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기관은 통합돌봄법 시행을 앞둔 현재 전국 229개 모든 시·군·구에 설치되었으며, 총 422개소로 확대되었다.복지부는 의료-복지-돌봄-주거 등 통합 돌봄을 지역 사회에서 구현하기 위해 각 분야별 핵심 서비스 제공 기관을 설치하려고 노력했으며, 의료 서비스는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 참여 기관을 중심으로 제공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이와 같이 빠른 속도로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 기관을 확장했다.재택의료는 일회성의 방문진료와 다르게 재택에 있는 거동이 불편하며 현저한 기능 저하가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대표적으로 장기요양 등급자 등) 환자 중심의 포괄적인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서 환자의 기능의 보존 또는 향상을 돕고 이를 통해 지역사회 지속 거주(Aging in place)를 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의료이다.보건복지부의 발표에 따르면 2025년 6월 기준 약 1만여 명의 환자가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에 참여했으며, 재택의료 이용자의 경우 응급실 방문 횟수 및 입원 일수가 감소하며, 의료비 절감 등의 유의미한 성과를 도출했다고 한다.복지부, 공단, 전문가 및 현장 서비스 제공 의료 기관이 다 함께 노력해서 얻은 의미 있는 결과이며, 앞으로 초고령화 사회에 대비하여 의료가 나아갈 방향을 잘 보여준 시범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민이 지역사회 지속 거주를 위한 재택의료를 누리기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첫째, 국내 재택의료의 미충족 의료를 생각한다면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 단일 모형이 아닌 다양한 모형이 필요하다.잠재적 재택의료 대상 환자의 숫자는 차이는 있으나 약 50만 명에서 100만 명 정도로 예상한다. 현재 국내 장기요양 등급자의 숫자가 약 150만 명에 육박하며, 중증 장애인이 약 100만 명, 요양원 및 요양병원 이용 환자가 약 50만명, 연간 암 사망자 수 9만명 등등을 고려하면 25년 6월 기준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 이용환자 1만 명은 잠재적 환자 숫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숫자이다. 더욱이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은 장기요양 등급자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장기요양 등급자가 아닌 다양한 집단의 환자는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없다.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은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의 다학제 팀을 단일 의료기관 내에 구성하여 환자에게 포괄적인 재택의료를 제공하는 모형을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국내 1차 의료기관의 85%를 차지하는 단독 개원 의원의 경우 간호사-사회복지사를 고용할 만큼 재택의료 환자를 진료하기가 어렵다. 지역사회 내 재택의료지원센터를 설치하여 1인 의원의 재택의료 참여를 지원하는 체계는 미충족 의료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둘째,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 모형의 분화가 필요하다. 현재 재택의료센터 현황은 의원급 의료기관 229개소, 한의원 111개소, 병원·의료원 63개소, 보건소가 19개소가 참여하고 있다. 특히 의원, 병원, 의료원 등 현대 의학을 기반으로 한 의료기관이 제공하는 재택의료 서비스와 한의학을 기반으로 한 재택의료를 수행하는 한의원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유사점보다 차이점이 더 많음에도 동일한 모형으로 분류되고 있다.재택의료는 현대 의학에 기반한 모형으로 외국에서 발전해왔으며, 필수적으로 제공되어야 하는 서비스는 1. 포괄평가와 케어플랜의 수립 2. 만성질환 관리를 위한 약물 처방 및 검사 및 다제약물 관리 3. 급성기 질환에 대한 대처 및 응급실 이용 예방 4. 치매 환자의 행동심리증상에 대한 약물적/비약물적 개입 5. 주기적인 가정방문과 환자 및 보호자에 대한 교육 6. 비위관, 도뇨관, 욕창 처치 등 와상 환자의 필요에 대한 대용 7. 노인 증후군에 대한 관리 및 재활 치료 등이며, 이러한 서비스 중 한 가지라도 부족한 부분이 발생하면 부족한 부분으로 인해 지역사회 지속 거주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의료기관의 종별 및 유형에 따라 위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접근과 전략이 다를 것이므로 향후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 모형을 구분하여 모집하고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마지막으로, 오랜 기간 외래에서 유지된 좋은 환자-의사를 지속할 수 있는 모형이 필요하다. 외래에서 지속해서 환자를 치료하던 의사가 재택에 가서 지속적인 의료를 제공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의료 서비스는 없다.재택의료의 대상이 되는 환자의 다수는 오랜 기간 지역 의료기관에서 건강 및 질병 관리를 받아왔고, 그 환자를 가장 잘 아는 의사가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환자를 잘 아는 의사가 재택의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수가 및 제도가 필요하다.현재는 재택의료에 참여하는 의원이 턱없이 부족하여 수소문하여 재택의료기관을 찾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 속에서 기존의 환자-의사 관계는 사라지게 되며, 새로운 환자-의사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인지 저하를 겪고 있는 환자들의 경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하기 때문에 난관에 봉착하게 되는 경우가 더 빈번하게 된다.대한민국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 중 몇 되지 않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하여 선진국의 반열에 진입한 국가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재택의료의 대상이 되는 75세 이상 후기 고령자는 경제 성장의 초석이 된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의 혜택도 받지 못하여 매우 높은 노인 빈곤을 겪고 있다.필자는 대한민국 성공 신화 스토리는 이분들의 행복한 삶의 마무리로 완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강보험의 지속성도 중요하지만 이 분들을 의료비 절감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위해 사회가 함께 지원하기를 바란다. 재택의료도 이 분들의 행복한 삶에 중요한 역할로 자리매김하길 기원해본다.
2026-03-03 05:00:00이슈칼럼

위기 속 리더십, 교체가 능사는 아니다

박용현 회장[메디칼타임즈=박용현 회장]대한의사협회 집행부에 대한 불신임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민주적 조직에서 지도부에 대한 평가와 책임 요구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러나 위기 국면에서의 선택은 평시와 달라야 한다.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집행부 교체가 과연 현재 의료계가 직면한 문제의 본질적 해법이 될 수 있는가.오늘날 의료계를 둘러싼 환경은 어느 한 집행부의 역량만으로 규정되거나 해결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의대 정원 확대 정책, 필수의료 재정 구조 개편, 비대면 진료의 제도화, 직역 간 역할 조정 문제 등은 국가 보건의료 정책의 방향성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는 장기적 구조 변화의 흐름 속에서 형성된 과제들이다. 개인의 판단 착오나 협상 미숙으로 환원하기에는 사안의 규모와 복잡성이 지나치게 크다.위기 상황에서 리더십 교체는 분명 하나의 선택지일 수 있다. 그러나 교체가 곧 해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책 대응의 연속성이 단절되고, 대외 협상에서 신뢰의 공백이 발생할 위험이 존재한다. 정부와의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국면에서 지도부가 교체될 경우, 그 자체로 협상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 외부에서는 이를 내부 분열로 해석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협상은 논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관된 메시지와 안정된 대표성이 중요한 자산이다.물론 집행부에 대한 비판과 견제는 필요하다. 어떤 조직이든 긴장과 균형을 통해 발전한다. 그러나 그 방식이 반드시 즉각적인 교체일 필요는 없다. 정책 대응 과정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회원 소통 구조를 보완하며, 대의원회의 감시 기능을 실질화하는 방식으로도 충분히 개선은 가능하다. 사람을 바꾸는 일은 가장 눈에 띄는 조치일 수 있지만, 제도를 다듬는 일은 더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지금 의료계가 처한 상황은 내부 정쟁에 에너지를 소모할 여유가 많지 않다. 외부 정책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사회적 시선 또한 예리하다. 이럴 때일수록 조직의 안정성과 전략적 통합이 중요하다. 위기의 순간에 잦은 리더십 교체가 반복될 경우, 장기적 신뢰 자산은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다.집행부 교체는 감정적 해소의 수단이 아니라 전략적 판단의 결과여야 한다. 냉정한 평가와 합리적 보완을 통해 조직의 대응력을 높이는 길이 우선이다. 의료계의 미래는 단순한 인적 교체가 아니라, 일관된 방향성과 치밀한 전략 속에서 만들어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분열의 확장이 아니라 역량의 집중이다. 위기 속에서 조직이 선택해야 할 길은 흔들림이 아니라 균형이며, 충동이 아니라 책임이다.
2026-02-26 08:47:00이슈칼럼

신입 회계사들, 전공의 미래일 수 있다

[메디칼타임즈=대한의료정책학교 장재영 교육연구부장] 작년 공인회계사 선발인원은 1200명으로 2018년에 904명과 비교하면 300여명의 차이가 난다. 그런데도 AI의 도입 및 미채용 합격생의 누적으로, 당해 합격자 대비 수습기관 등록률은 28.2%에 그쳤다고 한다. 정식 등록을 위해 회계법인 실무 수습이 필요한 직군 특성을 고려하면, 대형 회계법인들에서의 채용인원 감소는 뼈아프다. 비회계법인에서의 수요가 많아 선발인원을 늘렸다지만, AI라는 대체제가 등장하여 신입 회계사는 업무를 배울 공간이 없어진 것이다. 결론만 가리면 의료계와의 공통점이 보인다. 흔히 빅5라고 불리는 대형병원의 AI 도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고, 진료지원인력이 상당 부분 주니어 의사들의 일을 대체하게 되면서 병원 경영진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전문의는 꼭 필요하므로, 전공의 수를 줄일 순 없을 것이다? 부디 조직 내 낙관론의 또 다른 희생양이 되지 않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그래서 더더욱 전공의는 '교육생', 다소 자존심이 상할 수 있지만 '학생의 연장'이라는 정체성을 버려서는 안 된다. 병원은 대단히 노동집약적인 공간이고, 숙련된 의사가 되기 위해선 상당 부분 도제식 교육이 꼭 필요하다. 전문의는 임상의이면서 의과학자로서의 역량을 지니고 있어야 하기에, 규모 있는 병원에서의 수련도 필수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근로자로서의 정체성이 앞설 경우, 전공의 업무는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항목으로 분해된다. 반대로 배우는 사람, 학생을 대체한다는 것은 매우 어색하다.마침, 교육생으로서의 정체성을 내세울 수 있는 최소한의 바탕이 생겼다. 2월 21일부터 전공의법 개정안의 몇몇 조항이 실행된다. 주당 근무시간 감소가 빠진 것은 아쉬운 대목이나 - 시범사업으로 지속되고 있다는 위로를 뒤로하고 – 연속 근무시간 감소, 임산부 보호, 육아/질병/입영에 의한 휴직, 앞 3개 사항에 대한 평가 등 당장 전공의들의 복지와 관련된 조항들이다. 특히 '평균 주 근무시간에 휴가/휴직 기간을 산입하지 아니한다' '육아/질병/입영 등 사유로 휴직을 신청하는 경우 허용하여야 한다' 등의 조항은 그동안 전공의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 놓였었는지 방증한다. 하지만 동시에 앞으로 그 디테일이 굉장히 중요해질 조항도 있다. 임신/출산 전공의의 추가 수련에 대한 내용, 지도전문의 세부 역할에 관한 규정, 전공의 수련 실태조사의 시행 및 환류 여부는 앞으로 전공의들이 더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내용이다.갈 길이 멀지만, 근로하는 전공의로서 지켜져야 할 최소한의 것들은 법적으로 보장이 될 예정이다. 무엇보다 전공의 노조 설립 이후, 개인 전공의가 감당하기 어려웠던 문제들이 신고되고 공론화될 수 있는 환경이 열렸다. 앞으로 수련환경평가 등 보장된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기에 좋은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다.전공의 업무의 다수는 AI와 진료지원인력이 대체할 수 있다. 대체할 수 있지만, 대체되지 않기 위해서는 장차 사회 구성원들의 건강을 책임질 전문의 후보생, 즉 교육 대상이라는 정체성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과거와 달리 그렇게 해도 될 배경들이 하나둘 만들어지고 있다.전공의법 개정안, 전공의노조의 출범 등 가용 가능한 자원을 잘 활용하여 근로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래를 위한 포지셔닝이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는 참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관대하다. 어렸을 적, 어른들의 간섭을 피해 '공부 중'이라는 세 글자를 요긴하게 썼던 것을 기억하자.
2026-02-23 05:00:00이슈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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