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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증원, 국민 기만하는 정책은 필패한다

[메디칼타임즈=경남의사회 마상혁 공공의료위원장] 정부가 지역의료 문제 해결을 위해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천명한 뒤 불과 5개월 만에 그 결과를 발표하였다. 추계위원회와 보정심의위원회라는 절차를 거쳤다고는 하나, 의료인력 수급이라는 고도로 복잡한 문제를 다루기에 5개월은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다. 인구구조의 변화, 질병 패턴의 전환, 의료기술의 발전, 지역별 수요의 편차, 의료인력의 유출입 동태—이 모든 변수를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의료인력 수급 추계는 단순한 산술이 아니라 고도의 전문적 작업이다. 이를 5개월이라는 시간 안에 완성했다는 것은,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절차를 역순으로 밟았다는 합리적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추계위에서 만 명 이상 부족하다는 수치가 나왔고, 이후 보정심에서 이를 줄였다. 그런데 왜, 어떤 근거로 조정했는지는 명확히 공개되지 않았다. 의료인력 추계를 위한 방법론은 국제적으로도 수요기반 모델, 공급기반 모델, 벤치마크 모델, 활용기반 모델 등 다양하며 각각의 전제와 한계가 다른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모델 선정 과정에서 방법론적 논란을 자초하였다. 더구나 이전 정부에서 수행한 추계와 유사한 결과를 반복적으로 발표함으로써,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이 원하는 숫자를 생산하는 주문형 연구기관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연구의 독립성과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는 국책연구기관은 그 존재 가치 자체를 의심받아 마땅하며,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할 정당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다.정부는 추계위에 의사 출신 위원들이 참여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전문가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었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참여한 전문가들의 증언에 따르면 실상은 정반대였다. 의견이 실질적으로 수렴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으며, 이미 결정된 방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형식적 참여에 불과했다. 보정심의 분위기는 더욱 일방적이었다고 전해진다. 참가자 대부분이 정원 증원에 찬성하는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런 구조에서 반대 의견이 반영될 여지는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전문가 단체가 결국 들러리에 불과했다는 비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거버넌스의 외형은 갖추었되 실질은 부재한, 전형적인 껍데기 민주주의의 표본이다.현 정부는 시민참여를 유독 강조하고 있으며, 이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의료정책에서 전문가의 목소리를 형식적으로만 수렴하고, 이미 짜놓은 시나리오대로 밀어붙이면서 충분한 의견 수렴이 이루어졌다고 선언하는 것은 시민참여라는 가치 자체를 훼손하는 행위이다. 전문가 참여를 강조하면서 전문가의 목소리를 묵살하는 것, 그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그런데 정원 확대를 논하기에 앞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교육환경이다. 현재 다수의 의과대학은 강의실 공간부터 부족한 상황이다. 기초의학 및 임상의학 교수 요원은 만성적으로 결원 상태이며, 임상실습 과정의 질적 수준은 수련병원의 여건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러한 기반 위에 정원만 늘리겠다는 것은 부실 교육을 제도적으로 양산하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역사는 이 점에 관하여 이미 한 차례 뼈아픈 교훈을 남긴 바 있다. 1980년대 시행된 졸업정원제가 그것이다. 당시 준비 없이 도입된 정원 확대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다. 새벽부터 등교하지 않으면 강의실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고, 뒷자리에서는 칠판의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해부학 실습에 필요한 시신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겨울에만 제한적으로 실습이 가능했다. 유급률이 치솟았고, 열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해 중도 포기하는 학생이 속출했다.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방치였으며, 의학교육의 이름을 빌린 졸속이었다.그런데 이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놀라운 발언들이 나오고 있다. 전 보건복지부 박민수 차관은 당시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말하였고, 보정심에 참가한 한 인사는 그때 그렇게 했어도 지금까지 잘 버텨온 것이 아닌가라고 이야기했다고 전해진다. 이 발언들의 저의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열악한 교육환경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인가. 수준 낮은 교육을 용인하자는 것인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의 교육과정에 대충이라는 단어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 과거의 실패를 부정하는 자들이 미래의 정책을 설계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정책의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정원이 늘어난 이상 남은 것은 교육의 질에 대한 철저한 관리이다. 교수 대 학생 비율, 실습 시설의 적정성, 임상실습의 질적 수준에 대한 엄격한 평가 기준이 수립되어야 하며, 기준 미달 대학에는 정원 감축을 포함한 실효적 제재가 뒤따라야 한다. 교육의 질 보장은 의과대학 과정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되며, 졸업 후 인턴과 레지던트 수련과정까지 포괄해야 한다. 일정 시간만 채우면 전문의 시험 응시 자격을 자동으로 부여하는 현행 방식은 재검토되어야 하며, 역량 기반 수련 체계로의 전환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학교와 병원 내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에도 사안의 경중에 따라 엄격한 징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의사라는 직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행위에 대해서는 관용이 있어서는 안 된다.이 정책에서 가장 치명적으로 간과된 문제는 시간이다. 지금 당장 정원을 늘린다 하더라도 그 학생들이 모두 졸업하고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한다는 보장이 없다. 설령 합격하더라도, 의과대학 6년에 인턴 1년, 전공의 3년에서 5년을 거쳐 독립적 진료가 가능해지기까지 최소 10년 이상이 소요된다. 지난 10년 동안 지역의료는 어떻게 버틸 것인가. 이에 대한 구체적 대책이 전무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방의 응급실이 문을 닫고 있고, 산부인과가 사라지고 있으며, 소아과가 폐업하고 있다. 10년 뒤를 위한 정책은 있으되 오늘의 위기를 넘길 방안은 없다는 것, 이것이 이 정책의 가장 근본적인 모순이다.더 깊은 차원에서 보면, 지역의료 붕괴는 의사 수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 붕괴라는 거시적 구조 변동의 한 단면이다. 인구 감소, 고령화, 젊은 층의 수도권 집중, 지방 경제의 위축, 생활 인프라의 열악함…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얽힌 구조적 문제를 의과대학 정원 확대라는 단일 처방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위험한 단순화이다. 많은 정치인과 국민이 의사 머릿수만 늘리면 된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의사 수가 늘어나도 지역에 머물 유인이 없으면 그들은 수도권으로 향한다. 이것은 예측이 아니라 이미 확인된 사실이며, 세계 여러 나라의 경험이 이를 거듭 증명하고 있다.일본은 2008년 이후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꾸준히 늘려 현재 약 9,400명 수준에 이르렀으나, 도쿄와 오사카 등 대도시 집중 현상은 완화되지 않았다. 특정 지역에서 일정 기간 근무할 것을 조건으로 입학정원을 배정하는 지역 테두리제를 도입했지만, 의무 기간 종료 후 도시로 이동하는 비율이 높아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국은 2018년 의과대학 정원을 25%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으나, 교육 인프라가 따라가지 못해 계획대로 증원하지 못한 대학이 다수 발생했다. 현재도 전체 의사의 약 30%를 해외 출신 의사에 의존하고 있으며, 지방의 의사 부족은 여전히 심각하다. 호주는 2000년대 중반 정원을 대폭 확대한 결과 도시 지역에서는 의사 과잉의 조짐이 나타나는 반면, 원주민 거주 지역과 농촌의 의사 부족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캐나다는 다양한 인센티브 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전문의 수련 후 지역 복귀율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미국은 의대 정원을 늘려도 레지던시 자리가 동반 확충되지 않아 병목이 발생하고 농촌 지역의 의사 부족은 수십 년째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들 국가의 공통된 교훈은 단 하나이다. 의사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지역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지역 정착 유인 체계, 교육 인프라 확충, 수련 체계 개혁, 지역 사회 기반 강화가 함께 가지 않으면 늘어난 의사는 그저 대도시의 의사를 한 명 더 늘릴 뿐이라는 것이다.2025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조원준 전 정책수석이 전문 기자 간담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현재 추진되고 있는 의료정책은 민주당식 의료정책이 그대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이 정책이 순수한 공익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계산의 산물임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일련의 과정에서 전문가 참여를 강조하면서도 원래 가지고 있던 시나리오대로 진행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 해석이다. 대통령은 의료정책에 관한 전문가가 아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의료 현장과 학계의 전문가들과 충분히 소통하고, 급하게 서두르지 않으며 신중하게 정책 결정을 내렸어야 했다. 의료인력 수급이라는 복잡한 문제를 대통령의 한마디로 방향이 정해지고 속도가 결정되는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은, 전문성에 대한 경시이자 국가 정책 결정 과정의 심각한 왜곡이다. 정책의 세부 사항은 전문가와 관료의 영역이며, 이를 존중하는 것이 책임정치의 기본이다.정부가 결정한 이상 이 정책이 취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만약 이 정책이 실패할 경우—지역의료가 개선되지 않거나 오히려 악화되는 경우, 부실 교육으로 인한 의료사고가 증가하는 경우, 의료인력의 수도권 쏠림이 심화되는 경우—그 책임은 누가 지는가가 사전에 명확해야 한다. 책임정치와 책임행정의 원칙에 따라, 정책 결정에 참여한 모든 주체가 자신의 판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추계위와 보정심에 참여한 학자들에게도 묻는다. 정권의 눈치를 보며 소신을 접었는가, 아니면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며 원칙에 기반한 의견을 개진했는가. 당신들의 판단이 틀렸을 때, 그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국민을 기만하는 거버넌스로 설계된 정책은 반드시 실패한다. 형식만 갖춘 전문가 참여, 결론이 정해진 추계, 교육환경을 무시한 정원 확대, 10년의 공백에 대한 무대책, 지방 붕괴라는 구조적 원인에 대한 외면—이 모든 것이 겹쳐 정책은 실패를 향해 가고 있다. 그리고 그 부담은, 언제나 그렇듯,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전문가적 판단이며, 투명한 과정, 실질적 참여, 책임 있는 결정이라는 세 가지가 담보되지 않는 한, 어떤 정책도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2026-02-19 05:00:00이슈칼럼

'만성질환'에 갇힌 일차의료

[메디칼타임즈=김병철 대한이비인후과학회 부이사장]대한민국 의료전달체계의 허리를 지탱하는 일차의료 강화라는 대의에는 그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 중인 '지역사회 일차의료 혁신시범사업(안)'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일선 현장의 특수성은 무시된 채 특정 진료과 중심의 모델을 모든 일차의료기관에 강제로 덧씌우려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특히 우리 이비인후과가 마주한 진료 현장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어 깊은 탄식을 자아내게 합니다.이비인후과는 '상담'만이 아닌 '처치와 술기'의 현장이다이번 혁신안의 핵심은 기존 행위별 수가를 묶어 '월별 정액관리료'로 지급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고혈압, 당뇨와 같이 약 처방과 상담이 주를 이루는 내과적 만성질환 관리에는 적합할지 모르나, 매 순간 손기술을 동원한 처치가 이뤄지는 이비인후과적 진료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합니다.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알레르기 비염 환자가 증상 악화로 내원했을 때, 이비인후과 의사는 단순히 약만 처방하지 않습니다. 비강 내 점막의 상태를 내시경으로 세밀히 관찰하고, 비강 세척이나 하비갑개 처치 등 즉각적인 술기를 통해 환자의 호흡을 개선합니다. 만약 화농성 중이염 환자라면 고막 절개나 이루 흡인같은 정교한 처치가 필수적입니다.이러한 '행위'들은 환자의 고통을 즉각적으로 경감시키는 핵심적인 의료 서비스입니다. 그런데 이를 단순히 '상담 관리료'라는 이름의 정액제 틀 안에 가두어버린다면, 복잡하고 정교한 처치를 수행할수록 의료진의 노동 가치는 저평가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결국 현장에서 꼭 필요한 처치를 기피하게 만드는 기제로 작용하여,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갈 것입니다.질환의 역동성을 무시한 'HCC 위험도 분류'의 허점정부가 도입하려는 미국식 Medicare 위험보정 모델(HCC) 역시 이비인후과 진료의 역동성을 반영하지 못합니다. 이비인후과를 찾는 환자들은 계절적 요인이나 급성 악화에 따라 진료의 강도가 급격히 변합니다.단순 만성 질환자로 분류된 환자라 하더라도, 갑작스러운 돌발성 난청이나 심한 어지럼증(이석증 등)이 발생하면 즉각적이고 집중적인 검사와 처치가 투입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급성기적 변화와 이비인후과 특유의 고난도 처치 수요를 '정액제 기반의 환자군 분류'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질환의 경중을 숫자로만 재단하는 방식은 현장의 복잡다단한 진료 양상을 결코 담아낼 수 없습니다.주도권 없는 '거점 지원기관'과 행정 과부하의 늪거점 지원기관(2차 병원 등)이 다학제 팀을 통해 일차의료를 지원한다는 발상 또한 주객이 전도될 우려가 큽니다. 이비인후과 질환은 장비 의존도가 높고 숙련된 전문의의 판단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거점 기관이 환자 관리의 주도권을 쥐고 의원을 '하부 조직'처럼 관리하려 든다면, 일차의료기관의 자율성은 고사하고 진료의 연속성마저 끊어질 것입니다.여기에 야간·휴일 비대면 상담까지 강제화된다면, 가뜩이나 인력난과 행정 부담에 시달리는 소규모 의원들은 고사 위기에 처할 것입니다. 특히 법적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상태에서의 비대면 상담은 의료진에게 '희생'만을 강요하는 독소 조항이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진정한 혁신은 현장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된다혁신은 현장의 동의와 참여가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일방적인 정책 추진을 멈추고 의료계와 진정성 있는 소통에 나서야 합니다.1. 행위별 수가제(FFS)의 근간 사수: 상담과 관리뿐만 아니라 이비인후과 특유의 처치와 술기 가치가 별도로 보상받는 '혼합 지불제'가 명문화되어야 합니다.2. 과정 중심의 평가 체계: 결과 수치 하나로 의사를 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위해 투입한 의료진의 노력과 과정을 인정해 주는 지표가 마련되어야 합니다.3. 법적 안전망 구축: 야간 상담이나 재택 의료 중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해 의료진을 보호할 구체적인 법적 장치가 선행되어야 합니다.우리 이비인후과 의사들은 지역사회에서 국민의 귀, 코, 목 건강을 지키는 최전방 파수꾼입니다. 현장의 온기를 잃어버린, 차가운 수치 중심의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정부가 진정으로 일차의료를 살리고자 한다면, 책상 위 데이터가 아니라 진료실에서 땀 흘리는 의사들의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이길 촉구합니다. 
2026-02-09 05:00:00이슈칼럼

정책공학자들의 교묘한 설계, 이중구속

1. 이중구속(Double Bind)과 조현병원래 '이중구속'은 정신의학에서 조현병(정신분열증)의 발생 원인을 설명할 때 쓰이는 이론이다.부모나 권위자가 자녀에게 상충하는 두 가지 메시지를 동시에 보내서, 아이가 어느 쪽을 선택해도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치명적인 심리적 덫을 말한다. 이 모순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아이는 결국 논리적 사고 체계가 붕괴되고 정신적으로 파괴된다.그런데 놀랍게도 대한민국 정책공학자들은 이 병리적 기제를 의료 시스템 설계의 핵심 원리로 사용하고 있다.2. 정책공학자의 시각: 시스템을 유지하는 '정교한 덫'정책공학자들에게 의사는 '치료하는 지성'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비용'이다. 그들은 시스템의 효율적 통제를 위해 다음과 같은 이중구속의 장치를 곳곳에 배치했다.장치 1: 사법적 '최선'과 행정적 '최저'의 충돌설계: 법원 판결은 '의학적 교과서'를 기준으로 의사에게 무한 책임을 묻게 하고, 심평원 심사는 '재정 지침'을 기준으로 최저 비용을 강요한다.이유: 어느 장단에 춤을 춰도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 혹은 '부당 수익자'의 프레임에 가둘 수 있기 때문이다.이 불확실성이야말로 의사를 위축시키고 국가의 통제권을 강화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장치 2: 룰을 감춘 깜깜이 심사 (Black-box)설계: 심사 기준과 전산 필터링 로직을 '영업비밀'이라며 감춘다.이유: 룰이 투명하면 의사들이 그에 맞춰 진료를 최적화(Optimization)하고 이는 곧 지출 증가로 이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의사가 삭감이 두려워 스스로 몸을 사리게 만드는 '공포 마케팅'이 그들의 설계 목적이다.3. 전문가의 지성을 말살하는 '행정적 조현병'이 시스템은 참담하다. 이것은 단순한 행정 편의를 넘어선, 전문가 집단에 대한 '심리적 거세'다.정책공학자들은 의사가 개별 환자의 맥락을 읽는 전문적 지성을 발휘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저 삭감이라는 전기 충격에 반응하는 '파블로프의 개'이자, 주는 먹이(수가)와 가해지는 벌(삭감)에 길들여진 앵무새를 원할 뿐이다.언젠가 공단 직원이 내뱉은 "환자가 원하면 놔주고, 청구하고, 삭감 당하세요. 억울하면 법을 바꾸든가요"라는 말은 이 설계의 오만함과 잔인함을 증명한다.바꿀 수 없는 법을 핑계 삼아 의사의 영혼을 갈아 넣는 이 조현병적 환경에서, 의사는 소신을 삭감당하고 환자의 건강권은 숫자의 함정에 빠진다.결국 이것은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정교한 폭력이며, 전문가를 지배하려는 저급한 갑질일 뿐이다.이중구속의 덫을 걷어내지 않는 한, 대한민국 의료에 '최선의 진료'란 허구에 불과하다.
2026-02-05 05:10:00이슈칼럼

지역의사제 입시 불공정 낳고 지역 의료는 외면하나

[메디칼타임즈=손문호 칼럼위원(정형외과) ] 최근 ‘지역의사제’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대치동 학원가를 중심으로 “지방 유학이 의대 진입의 지름길”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정부는 ‘지역 의료 공백 해소’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지만, 의료 현장과 입시의 최전선에서 바라본 이 제도는 과연 지역 의료를 살리는 ‘심폐소생술’인가, 아니면 공정성을 해치고 의료 생태계를 교란하는 ‘독배’인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농어촌 전형’ 위에 또 하나, 불공정의 제도화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제도의 설계가 자칫 특정 집단에게 과도한 특혜를 부여하는 ‘이중 사다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논의되는 지역의사제가 기존의 ‘농어촌 전형’ 등 사회통합전형과 중첩 지원이 가능해질 경우, 심각한 역차별이 발생한다. 이미 농어촌 전형이라는 별도의 트랙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자격을 갖춘 수험생이 ‘지역의사제 전형’까지 동시에 지원할 수 있다면 이는 명백한 ‘기회 중복’이다. 일반 수험생들은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반면, 일부는 정책적 혜택을 업고 두 개의 동아줄을 잡는 셈이다. ‘지역 의료를 살리겠다’는 명분이 입시의 공정성, 즉 헌법적 가치인 기회균등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구현된다면, 이 정책은 시작부터 정당성을 상실하게 된다.10년 의무 복무? ‘정착’ 없는 ‘거쳐가는 정거장’ 될 뿐“대치동을 떠나 지방으로”라는 구호는 현실을 모르는 낭만적인 서사다. 지역의사제가 강제하는 10년의 기간(수련 기간 포함)은 의사가 되어가는 과정일 뿐, 지역에 뿌리내리는 ‘정착’을 담보하지 않는다. 의무 복무가 끝나는 순간, 대다수의 의료진은 자녀 교육, 생활 인프라, 그리고 더 나은 수익 구조가 보장된 수도권으로 회귀하거나, 비급여 인기과로 이탈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국 지역의사제는 지역 병원을 잠시 거쳐가는 ‘수련 정거장’으로 전락시킬 위험이 크다. 지역 환자들이 원하는 것은 잠시 머물다 떠날 ‘한시적 의사’가 아니라, 내 병을 꾸준히 봐줄 ‘숙련된 전문의’다.‘인사 행정’ 아닌 근본적 ‘의료 정책’이 필요하다지방 의료가 무너진 원인은 의사 수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의사가 그곳에 남을 수 없게 만드는 구조적 환경 때문이다. ▲원가에도 못 미치는 필수의료 저수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과도한 형사 처벌 ▲지방 병원의 열악한 인프라 등 핵심적인 문제는 방치한 채, 입시 제도를 비틀어 숫자만 채우려는 시도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 이는 ‘의료 정책’이라기보다 기계적인 ‘인사 배치’에 가깝다. 정부는 입시판을 흔드는 미봉책을 멈추고 정공법(正攻法)을 택해야 한다. 지방 의료기관에 대한 과감한 재정 투자, 필수의료 의료진에 대한 확실한 사법적 보호 장치 마련, 그리고 지역 근무가 의사로서의 커리어와 경제적 보상 측면에서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도록 수가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공정하지 못한 입시 제도로 선발된 의사들이, 강제성에 묶여 근무하는 병원에서 환자와 깊은 신뢰를 쌓기는 어렵다. 지역의사제가 또 하나의 ‘입시 로또’ 논란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의료계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공정성을 훼손한 채 지역을 살릴 수는 없다.
2026-02-03 05:30:00이슈칼럼

통합돌봄법, 소는 누가 키울 것인가

[메디칼타임즈=서울시의사회 백재욱 부회장 ] 요즘 뉴스를 듣다 보면 귀에 유독 자주 걸리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통합돌봄법'입니다. 오는 2026년 3월 27일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지자체마다 대비에 철저를 기하고 있다는 소식이 연일 들려옵니다.정확한 명칭은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입니다.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이나 환자가 병원이나 요양시설이 아닌 '자신이 살던 집과 지역사회'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의료, 요양, 돌봄 서비스를 통합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죠. 선진국에서 강조해온 'AIP(Ageing in Place)', 즉 살던 곳에서 품위 있게 늙어가는 삶을 법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취지입니다.1. 흩어진 서비스를 하나로, 패러다임의 전환그동안 의료(병원), 요양(장기요양), 돌봄(복지관) 서비스는 각각 분절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비스 간 연계가 어렵고, 굳이 입원하지 않아도 될 분들이 병원에 머무는 '사회적 입원' 문제도 심각했죠. 이제는 지자체가 '컨트롤 타워'가 되어 대상자를 발굴하고, 건강 상태에 맞춘 '케어 플랜'을 짜서 의료와 생활 지원을 묶어 제공하겠다고 합니다. '병원 중심'에서 '집 중심'으로 복지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거대한 변화입니다.2.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막막함"뿐입니다정책의 청사진은 화려하지만, 당장 돌봄이 필요한 가족을 둔 분들의 현실은 어떨까요?"우리 아버님도 저 서비스를 받게 하고 싶은데, 어디로 연락해야 하나?"우선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전화를 겁니다. 장기요양서비스에 대한 긴 설명을 듣고 나면 "의사소견서를 첨부하라"는 안내가 돌아옵니다. 여기서부터 보호자의 한숨은 깊어집니다. 이미 거동이 불편해 댁에 누워 계신 지 2년, 그동안 대리 처방으로 겨우 버텨온 아버님을 소견서 한 장 받자고 어떻게 병원까지 모시고 갈 수 있을까요?사방팔방 전화를 돌리다 지쳐갈 때쯤, 겨우 방문진료 의원과 연락이 닿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차갑습니다. "소견서 작성을 위한 방문은 불가능하니, 어떻게든 모시고 나오세요." 이쯤 되면 잡고 있던 전화기를 던져버리고 싶은 심정이 됩니다.3. 의료 현장의 괴리, "소를 키울 사람이 없습니다"반대로 통합돌봄의 또 다른 축인 의료계의 입장은 어떨까요? 지역의 의원을 운영하는 원장님은 법안의 취지에 공감해 '일차의료 방문진료 시범사업'에 참여하며 환자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가끔 걸려 오는 전화는 사업 취지와는 무관한 응급 상황 해결 요청뿐입니다.결국, 환자 가족은 "갈 곳이 없다"고 울분하고, 의료진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의료와 복지, 요양을 하나로 묶겠다는 취지는 좋으나 실제 현장에서 발로 뛰며 '소를 키울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4. 말잔치보다 절실한 것은 '실천의 손길'올해 3월부터 사업이 본격화된다고 하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알맹이 없는 정책과 MOU(업무협약)만 남발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양이 목에 걸 방울'의 성능을 평가하는 말잔치가 아니라, 그 방울을 실제로 걸고 책임질 사람의 손길입니다.서울시의사회는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지역 기반 재택의료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의료·요양·복지의 연계체계를 실질적으로 구축하고 있습니다.통합돌봄이 뉴스 속 정책이 아니라, 우리 집 안방과 동네 골목에서 체감되는 서비스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현장의 의사들이 직접 뛰며 실천의 방법을 제시하겠습니다.결국 통합돌봄의 성패는 "누가 소를 키우느냐"가 아니라, "함께 키우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2026-02-02 05:00:00이슈칼럼

기득권의 현대판 음서제, 공정은 어디에?

[메디칼타임즈=공의모 김영재 사무총장 ] 음서제도. 부모가 귀족이면 자식까지 관직을 세습시킬 수 있는 고려시대 제도이다. 구시대의 악습이라고 생각했던 신분제가 대한민국 의료계에서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면 믿겠는가? 바로 헝가리 해외의대 유학이 '현대판 음서제도' 역할을 하고 있다.해외의대 유학은 헝가리를 필두로 우즈베키스탄, 몽골 등의 국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주로 기득권 의사들이 그들의 자식을 해외의대로 유학을 보낸다. 해외의대 졸업 후 국내 의사면허를 취득하기 위한 것이다. 국내 의대 입학이 불가능하니, 일반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금액을 지불해서라도 유학을 보낸다.'현대판 매관매직'이다. 돈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현지 대통령 취임 기념으로 유학생을 전원 합격시키고, 현지어를 못해 통역사를 구해 병원실습을 도는 것이 해외의대 유학의 현실이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여러차례 지적을 받을 정도로 해외의대의 입학 비리와 교육 부실 문제는 유명하다. 수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면허를 관장하는 보건복지부와 국시원은 해외의대 문제를 방치해 왔다.해외의대 문제의 심각성을 일찍이 인지한 공의모(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의사들의 모임)는 2021년부터 해외의대 문제 해결을 위해 꾸준히 활동해왔으며, 최근 서울시로부터 공의모 활동의 공익성을 인정받았다. 서울시로부터 기부금품 모집을 공식적으로 허가 받은 것이다.  기부금품 모집 허가는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가진다. 정부기관이 공익성을 인정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헝가리의대 소송이 '직역의 이익' 목적이라 허가할 수 없다고 했지만 결국 공익성 입증에 성공했다. 소송은 승소 자체에 목적이 있기도 했지만, 해외의대 유학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 역시 하나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 진행 중인 헝가리의대 소송 서류가 결정적인 근거가 되어 서울시로부터 공익성을 인정받았다. 판결이 나오기 전에도 의미있는 성과를 얻어낸 것이다.젊은 의사와 의대생들이 해외의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반면, 놀라울 만큼 조용히 방관하는 단체가 있다. 바로 대한의사협회다. 의협은 의대 증원에 관련해서는 누구보다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매년 200여 명씩 쏟아지는 해외의대생들에 대해서는 일관적으로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이유는 명확하다. 해외의대에 자식을 유학 보낸 기득권 의사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전 의사협회 집행부에서는 우즈베키스탄 의대를 졸업한 의사가 이사회에 참여하고,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의사협회는 공정함을 주장하는 공의모의 취지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2개월 전, 공의모가 항의방문하여 대한의사협회장에게 직접적으로 의견을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협회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최근 의료계 이슈 대응으로 바빴다고 하기엔,  공의모가 의협에 찾아간 지 5년이 넘었다.지난 달, 박나래의 주사이모 사건이 굉장히 화제가 되었다. 공의모는 비자격자의 무면허 의료행위의 위험성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공익적 목적으로 성명서를 발표했고, 대한민국 모든 언론에서 언급되며 전국민들에게 알려졌다. 마찬가지로, 공익을 위해 해외의대 문제를 전국민들에게 알리고 문제 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이번 서울시의 공익성 인정은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공의모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민 여러분들의 지원과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지금이다. ※공의모(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의사들의 모임 약칭)는 젊은의사들로 이뤄진 단체로 의료계 내 공정성 문제를 중심으로 여러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 본 매체의 편집 방향과는 무관합니다.
2026-01-26 05:00:00이슈칼럼

내시경의 질은 독점이 아닌 구조에서

[메디칼타임즈=가정의학과의사회 김상진 이사 ] 내시경을 둘러싼 논의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질'과 '안전'이다. 이는 어느 한 직역의 전유물이 아니라, 의료에 종사하는 모두가 공유해야 할 가치다. 문제는 이 가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있다. 질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 과연 배제를 통해 가능한지, 아니면 역할과 책임이 정리된 구조를 통해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이다.일차의료와 전문의의 역할은 대립이 아니라 분화의 문제다.일차의료 의사가 시행하는 내시경은 접근성과 연속성을 바탕으로, 환자의 병력과 생활습관을 고려하여 시행되는 선별검사라는 명확한 역할을 가진다. 필요 시 특정 전문의로의 신속한 의뢰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는 전문 진료로 향하는 관문이자 연결고리다. 반대로 특정 분과 전문의는 고난도 진단과 치료, 합병증 관리 등의 역할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이 구조에서 중요한 것은 우열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역할이 분명히 구분되고, 그 역할들이 서로를 보완하며 점검하는 체계가 작동하는가이다. 일차의료 내시경이 체계적인 교육과 질 관리, 명확한 의뢰 기준 속에서 이루어질 때, 이는 전문의 영역을 위협하는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전체 의료 체계의 안정성을 높이는 장치가 된다.자격은 열고, 교육은 닫는 구조의 한계그러나 현재 의료 정책 논의에서 제시되는 방향은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인다. 자격은 다원화하되, 교육과 평가는 단일한 통로로 관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시행은 허용하면서 교육을 제한하는 구조는 스스로 모순을 안고 있다. 내시경의 질은 '자격'만으로 담보될 수 있을까, 아니면 지속적인 교육과 평가를 통해 유지되는 것일까.교육의 통로가 제한될수록 현장에서는 불균일한 경험과 비공식적인 학습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책이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교육과 역량 축적을 제도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일차의료 영역에서의 체계적인 질 관리와 역량 강화는 요원해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국 환자에게 제공되는 내시경의 질 저하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정책의 역할은 배제가 아니라 설계다.정책은 특정 학문이나 직역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정책의 역할은 여러 진료 주체가 존재하는 현실을 전제로, 공통의 기준과 책임 구조 안에서 작동하도록 설계하는 데 있다. 누가 시행하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떤 기준 아래에서 책임질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는가이다. 문을 닫아 관리하는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간단해 보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어렵다.역사가 보여주는 구조의 중요성학문과 의학의 역사를 돌아보면, 발전의 속도가 늦어졌던 시기에는 종종 새로운 접근이나 다른 관점이 제도적 검증의 장에 충분히 올라서지 못했던 공통점이 발견된다. 갈릴오 갈릴레이의 지동설 논쟁 역시, 과학적 논증의 옳고 그름을 떠나 검증의 통로가 제한되어 있었던 시대적 조건과 무관하지 않았다.의학에서도 마찬가지다. 19세기 산욕열 문제를 다루던 시기, 이그나츠 제멜바이스가 제시한 손 위생의 중요성은 이후 의학의 표준이 되었지만, 제도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 과정은 새로운 관찰과 임상적 경험이 제도 속에서 어떻게 검증되고 받아들여지는지가 환자의 예후와 직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이 사례들이 말해주는 바는 단순하다. 질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여러 임상적 접근과 경험이 같은 기준 아래에서 평가되고 책임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는 점이다.결국 중심에 있어야 할 것은 환자다.이 모든 논의의 중심에는 결국 환자가 있다. 환자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소속의 의사가 내시경을 시행했는지가 아니라, 적절한 시기에 안전하게 검사를 받고, 충분한 설명을 들으며, 필요할 때 최선의 전문 진료로 연결되는가이다. 의료 체계가 직역 중심의 논쟁에 머무를수록 환자는 그 논의의 바깥에 놓이게 된다.의학의 역사는 우리에게 반복해서 말해 왔다. 하나의 방식만을 고수하는 체계보다, 여러 역할이 분명히 나뉘고 공통의 기준 아래에서 서로를 점검하는 구조가 더 오래 지속되었다는 사실이다. 일차의료 의사와 특정 분과 전문의가 각자의 자리에서 성장하며 서로를 돕고 견제하는 구조, 그리고 그 모든 판단의 기준을 환자에게 두는 것. 그것이 내시경을 둘러싼 논의가 도달해야 할 방향일 것이다.
2026-01-19 05:00:00이슈칼럼

추계 넘어 설계로 : 5년 후 위한 제언

[메디칼타임즈=고려의대 정재훈 교수(예방의학교실) ]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의 활동이 종료되었다. 정부 위원회에 참여하는 전문가로서, 그리고 데이터를 다루는 학자로서 지난 기간은 치열한 고민의 연속이었다. 이제 소모적인 논쟁은 뒤로하고, 냉정하게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5년 뒤, 혹은 그 이후 다시 마주할 추계가 단순한 숫자 싸움이 아닌, 한국 의료의 미래를 그리는 설계도가 되기 위해 우리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과제들을 짚어보고자 한다.1. 맞추는 것(Prediction)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Projection)이어야 한다흔히 추계를 미래를 정확히 알아맞히는 예측(Prediction)이나 예보(Forecast)로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10년, 20년 뒤의 미래를 정확히 맞추는 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사인력 수급추계의 본질은 불확실한 미래를 다루는 전망(Projection)에 있다. 즉, 우리의 정책적 선택에 따라 미래가 어떻게 달라질지 시나리오를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다.이번 위원회에서 아쉬웠던 점은 장기 전망에 적합하지 않은 모형을 주된 방법론으로 논의했다는 것이다. 향후 추계에서는 결정론적 모형을 골격으로 삼아야 한다. 현재 추세가 지속된다면(Status Quo) 어떻게 될까?, 특정 정책이 개입되면 결과는 어떻게 변할까?라는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시나리오 기반 접근이 필수적이다. 그래야만 정책 결정자에게 명확한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다.2. 정교한 시나리오를 위한 데이터와 가정의 고도화추계의 품질은 데이터와 가정이 결정한다. ‘미래의 의사는 과거의 의사와 같은 양의 일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AI와 기술 발전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 그리고 워라밸을 중시하는 세대 변화로 인한 노동 투입 감소라는 상반된 변수들이 존재한다. 이번에는 시간 부족으로 이러한 변수들을 깊이 있게 다루지 못했다.다음 추계가 시작될 때 허둥지둥 자료를 모아서는 늦다. 의사협회와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심사평가원의 방대한 데이터를 지금부터 표준화하고 정제해 두어야 한다. 또한, 의사의 은퇴 연령, 진료량 변화, 기술 발전 속도 등 핵심 변수들에 대한 기초 연구가 선행되어야만 설득력 있는 가정을 수립할 수 있다.3. 숫자의 해석: 최댓값이 아닌 최적 추정치에 주목해야과정의 투명한 공개는 중요하지만, 확정되지 않은 숫자가 주는 혼란도 경계해야 한다. 대중과 언론은 종종 여러 시나리오 중 가장 자극적인 최댓값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정책은 가장 발생 가능성이 높고 합리적인 최적 추정치를 기반으로 수립되어야 한다.앞으로의 논의에서는 극단적인 시나리오가 주는 공포보다는, 전문가들이 합의한 가장 현실적인 수치와 그 이면의 맥락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전략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4. 근본적인 질문: 지속 가능한 의료 시스템은 무엇인가마지막으로 전문가의 계산을 넘어 우리 사회가 답해야 할 본질적인 질문이 있다. 추계는 결국 ‘우리가 어떤 의료 환경을 원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종속변수이기 때문이다.세계 최고 수준의 외래 이용 횟수와 낮은 문턱을 자랑하는 현재의 의료 이용 행태는 과연 정상인가? 그리고 이것은 인구 구조가 급변하는 미래에도 유지 가능한가? 과잉된 의료 이용을 조절하여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일 것인지, 아니면 비용 급증을 감수하더라도 현재의 편의성을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결단이 선행되어야 한다.수식과 모델링은 그 결단에 따른 결과를 보여줄 뿐이다. 다음 추계가 시작되기 전까지, 우리는 이 불편하지만 필수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5년 뒤의 추계를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닌 미래를 위한 이정표로 만드는 길이다.
2026-01-12 05:00:00이슈칼럼

통계적 기만, 의료인력 추계의 민낯

[메디칼타임즈=경남의사회 마상혁 공공의료위원장 ] 최근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이하 추계위)가 내놓은 '2040년 의사 1만 1136명 부족'이라는 성적표는 대한민국 보건의료 정책 거버넌스의 파산을 알리는 조종(弔鐘)이나 다름없다. 전문가들이 참여했다는 형식적 명분 뒤에 숨어, 이미 정해진 증원 숫자를 향해 달려간 이번 과정은 '과학적 근거'라는 수사가 얼마나 정치적으로 오용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국가 백년대계를 결정하는 중차대한 정책이 졸속과 기만으로 점철된 것은 의사이기 이전에 정책 전문가로서 참담함을 금치 못할 일이다.가장 먼저 지적해야 할 점은 절차적 정당성의 완전한 상실이다. 추계위는 미래 정책을 결정함에 있어 턱없이 촉박한 일정에 쫓겼다. 15차례의 회의는 심도 있는 논의의 장이 아니라 정부의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전문가 단체들이 위원으로 참여했으나, 이들이 현장의 복잡한 변수들을 피력하고 이를 추계 모델에 반영하는 실질적인 피드백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식 발표 전, 확정되지 않은 수치를 언론에 흘려 여론을 선점하려 한 행태는 정책의 투명성을 스스로 훼손한 행정 편의주의의 극치다. 이는 전문가를 정책의 동반자가 아닌 ‘들러리’로 세워 국민을 기만한 명백한 거버넌스의 실종이다.기술적 측면으로 들어가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번 추계의 주력 모델로 활용된 ARIMA(자기회귀누적이동평균) 모형은 과거의 패턴이 미래에도 반복된다는 가정하에 단기 예측에 최적화된 도구다. 20년 뒤의 장기 수요를 ARIMA로 도출하는 것은 기상청의 일주일 예보 모델로 20년 뒤의 기후 변화를 맞히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학술적 난센스다. 보건의료 환경의 구조적 변화와 AI 도입에 따른 생산성 변화, 정책적 개입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모델을 국가 정책의 근거로 삼는 것은 방법론적 파산 선고나 다름없다. 내부 위원들 사이에서조차 “학부생 보고서 수준”이라는 비판이 쏟아진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이러한 행태는 과거 윤석열 정부 초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하 보사연)의 편향된 보고서를 근거로 증원을 밀어붙였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당시 감사원 감사에서도 지적되었듯, 특정 수치를 만들기 위해 데이터를 재산출하고 가공했던 보사연은 이번에도 과학적 중립성보다는 권력의 입맛에 맞는 결과물을 내놓는 데 급급했다. 이제 보사연은 국책연구기관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심각하게 자문해야 한다. 객관성이 결여된 연구 결과는 정책적 조언이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독소가 될 뿐이다.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장기적인 숫자 놀음에 매몰되어 당장 눈앞의 단기적 정책 보완은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40년의 수급 불균형보다 무서운 것은 현재 진행 중인 필수의료의 붕괴와 지역의료의 공동화다. 정부의 계획대로 대규모 증원을 강행한다면, 그들을 가르칠 교수 요원 확보와 천문학적인 예산 확보는 어떻게 할 것인가? 교육 인프라의 한계를 무시한 숫자의 밀어붙이기는 의학 교육의 질적 파탄을 초래하고, 결국 국민 건강권에 대한 심각한 위해로 돌아올 것이다.지금이라도 정부는 '숫자'라는 신기루에서 깨어나야 한다. 과학의 가면을 쓴 정치적 폭거를 멈추고, 의료계와 실질적인 신뢰 회복을 위한 거버넌스 재구축에 나서야 한다. 불확실한 모델에 근거한 졸속 발표를 철회하고, 장기 전망과 단기 처방이 조화를 이루는 정교한 정책 설계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추계는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을 붕괴시킨 '통계적 기만'의 역사적 증거로 기록될 것이다.
2026-01-05 05:00:00이슈칼럼

의료진 상해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메디칼타임즈=손문호 위원 ] 의료 현장에서 의료진을 향한 폭언과 폭행, 심지어 중대한 상해 사건까지 반복되고 있다. 진료 결과에 대한 불만, 대기 시간과 비용 문제, 제도에 대한 분노가 그 배경으로 거론되지만, 어떠한 이유로도 의료진에 대한 신체적 위해는 정당화될 수 없다. 이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 시스템의 존립을 흔드는 구조적 위협이기 때문이다.의사는 환자의 적이 아니다. 진료실에서 의료진은 환자와 대립하는 존재가 아니라, 질병이라는 불확실성과 싸우는 동반자다. 그러나 의학의 한계와 제도의 결함에서 비롯된 좌절이 개인 의료진에게 투사되는 순간, 진료는 협력의 공간이 아니라 갈등의 현장으로 변질된다. 폭력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의료의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는 행위다.의료진에 대한 폭력은 단순한 개인 범죄가 아니라 공공재에 대한 침해다. 의료인은 국가가 부여한 면허를 바탕으로 공공의 건강을 위임받은 전문직이다. 그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서는 필수의료와 응급의료가 가장 먼저 붕괴된다. 실제로 폭력 위험이 높은 진료과와 지역에서 의료 인력이 이탈하고, 방어진료와 진료 회피가 일상화되는 현상은 이미 의료 현장의 현실이 되었다.법적·제도적 관점에서도 의료진 폭력은 결코 용인될 수 없다. 의료행위에 대한 불만이나 분쟁은 의료분쟁조정제도, 사법적 판단 등 정당한 절차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그럼에도 폭력이 반복되는 이유는, 의료진 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용과 미온적인 대응이 누적되어 왔기 때문이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그랬겠느냐”는 식의 인식은 폭력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시키는 위험한 신호다.의료진이 안전하지 않은 진료실에서 최선의 판단을 기대하는 것은 모순이다. 폭력이 용인되는 환경에서는 의사도, 환자도 보호받을 수 없다. 의료진에 대한 상해는 개인의 분노 표출이 아니라 사회적 범죄이며,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의료진 보호는 의료인을 위한 특혜가 아니다. 그것은 필수의료를 지키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조건이다. 이제는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 의료진에 대한 폭력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2025-12-29 05:00:00이슈칼럼

실손보험이 의료를 삼키고 있다

[메디칼타임즈=손문호 KMA폴리시 특별위원 ] 실손의료보험은 본래 환자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예기치 못한 의료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그러나 실손보험이 과도하게 확대된 현재, 그 취지는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다. 진료 행위를 통해 이차적인 경제적 이익을 사실상 세금 없이 취득할 수 있는 구조가 고착되면서, 의료현장은 점차 ‘치료의 공간’이 아니라 ‘보험 청구의 무대’로 변해가고 있다.특히 문제의 핵심은 보험사기의 일상화다. 보험사기는 더 이상 일부 일탈의 문제가 아니다. 진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액·반복 청구는 ‘연성 보험사기’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고, 조직화된 의료기관과 다수의 보험설계사가 결합한 구조에서는 경성 보험사기로 진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허위 진료기록, 과잉 비급여, 진단의 확대 해석이 관행처럼 작동한다. 이와 동시에, 실손보험사의 과당 경쟁과 과장된 광고는 환자의 인식 구조를 변화시켰다. “보험이 되니 받아도 된다”는 학습된 인식은 의료쇼핑을 부추기고, 다빈도의 보험금 수령이 당연한 권리처럼 여겨지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 결과 환자는 점점 ‘치료 대상’이 아니라 ‘보험 수익의 매개’로 전락하고 있다.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진료의 본질을 왜곡한다는 점이다. 최선의 의학적 판단에 따른 진료가 아니라, 보험 청구 가능성을 염두에 둔 ‘실손보험 맞춤형 진료’가 의료현장을 잠식하고 있다. 이는 의사의 진료 자율성을 침해할 뿐 아니라, 성실하게 원칙 진료를 지켜온 대다수 의사들을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한다. 이 왜곡된 구조는 이미 자동차보험 진료 영역, 특히 한방병원으로의 환자 집중 현상에서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치료 효과와 무관하게 보험 보장 구조에 최적화된 진료 모델이 선택받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사회 전체가 분담하게 된다.이러한 현실을 방치할 경우, 결과는 명확하다. 진료비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실손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해지며, 결국 그 부담은 성실하게 보험을 유지해온 선량한 국민에게 전가된다. 이는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실패가 만들어낸 구조적 재난이다.이제는 질문해야 한다. 실손보험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환자의 건강을 위한 제도인가, 아니면 의료와 보험이 결합한 또 하나의 수익 산업인가. 의료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보험사기 문제를 ‘개별 사건’이 아닌 시스템 붕괴의 신호로 인식하고, 제도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 의료는 보험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보험은 의료를 보조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이 단순한 원칙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피해자는 결국 환자와 의료진, 그리고 사회 전체가 될 것이다.
2025-12-22 05:00:00이슈칼럼

대한민국 의료의 위기는 언제까지?

[메디칼타임즈=서울특별시의사회 송정수 부회장 ] 대한민국의 의료는 지금 거대한 변곡점에 서 있다. 오랜 시간 세계 최고 수준의 진료 역량과 국민건강보험 체계를 바탕으로 '의료 접근성 세계 1위'라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그 이면에는 심각한 균열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필수의료 붕괴, 지방의료 공백, 저수가 구조, 필수 의료인력의 부족, 그리고 정부와 의료계의 불신과 불통이 복합적으로 얽혀 우리 사회의 근본적 의료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가장 심각한 문제는 필수의료 인력의 붕괴다. 산부인과, 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등 생명을 다루는 분야는 업무 강도와 위험도는 높지만 보상은 턱없이 낮고, 법적·사회적 책임은 가혹하도록 과중하다.젊은 의사들이 이러한 분야를 외면하면서 필수 진료 공백은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지방 중소병원은 인력 확보에 실패해 분만실, 응급실, 중환자실 운영이 중단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의료계 내부 문제가 아니라 국민 생명과 직결된 사회적 위기다.최근 쟁점이 되는 ▲한의사 X-ray 사용 허용 ▲성분명 처방 의무화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 고시 ▲의료기사 단독개원 허용법안 추진 등의 문제는 의사들의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전문가 집단인 의료계와 아무런 합의 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는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국회는 의료계와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강력하게 추진하는 실정이다.역사적으로 볼 때 의약분업, 의학전문대학원제도, 의대정원 2000명 증원 등 의료계와 합의 없이 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진행된 대부분의 의료정책은 원래 목적했던 그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또한 역대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저수가 구조와 과도한 규제는 병의원의 경영난을 심각하게 만들었다. 현재의 건강보험 중심의 의료체계는 국민에게 우수한 진료에 저렴한 진료비를 제공하는 장점이 있지만, 의료기관에는 치솟는 인건비와 시설투자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남긴다.특히 중소병원과 개원가는 인력비 상승과 물가 부담 속에 하루하루 버티기조차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의료가 공공재라고 부르는 정부는 그 명분 아래 지속 가능한 보상 구조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필수의료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의료 생태계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정치권과 의료계의 불신과 대립도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의료인력 확충, 공공의료 강화, 지역의료 강화, 의료비 절감 등을 명분으로 여러 정책을 추진하지만, 의료계는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하지도 않고,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만을 고려하고, 현장의 현실을 외면한 일방적 접근이라고 반발한다.또한 정부와 정치권과 일부 이익단체는 의사들의 반발을 밥그릇 싸움이나 집단이기주의로 내몰며 의사들을 매도하고 있으며 의사집단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의도적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의료정책은 대립과 감정이 아닌, 과학적 근거와 상호 신뢰 위에 세워져야 한다. 생명을 다루는 의료는 정치적 실험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결과로 다루어져야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의료에는 여전히 희망의 불씨가 살아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진과 의료기술과 IT 인프라를 갖추고 있으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보여준 의료진의 헌신과 대응력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디지털 헬스케어, 인공지능 진단, 정밀의학 등 새로운 기술혁신이 의료의 효율성을 높이고 접근성을 확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크다. 특히 AI 기반 영상진단, 맞춤형 유전자 치료,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질병 예측 등은 의료현장의 부담을 덜고, 환자 중심의 치료로 나아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앞으로의 과제는 분명하다. 첫째, 필수의료 인력에 대한 실질적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위험수당, 전담 인력 확충, 근무환경 개선 등 현실적인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둘째, 의료수가의 합리적 조정과 지속 가능한 보상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단순히 인력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의료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셋째, 의료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소통 강화가 절실하다. 정부는 의료계와 진정성 있는 대화로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의료의 본질은 생명을 지키는 일이며 그 중심에는 항상 사람, '환자와 의료인'이 있다. 정부의 정책도, 의료계의 노력도 결국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한 목표 아래 만날 때 의미가 있다. 대립과 불신을 넘어 협력과 신뢰로 나아간다면, 대한민국 의료는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위기는 때로 새로운 도약의 출발점이 되는 기회가 된다. 지금이 바로 그 변화를 위한 시간이다.
2025-12-15 05:00:00이슈칼럼

내시경 질평가 불균형 다학회 참여가 해법

[메디칼타임즈=가정의학과의사회 강준호 부회장 ] 국가 암검진기관 평가는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 검진의 질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는 장치이자, 공공의 신뢰를 뒷받침하는 핵심 기반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검진 분야는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도록 각 전문과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어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예컨대 진단검사의학 검사나 폐암 검진에서는 해당 전문의가 전담하며, 타 전문과가 개입하지 않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형성돼 있다. 임상 현장에서도 다른 과의 전문의가 해당 영역을 수행하지 않기 때문이다.그러나 내시경 검사와 간암 초음파 검사는 상황이 다르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가정의학과, 외과, 내과 등 다양한 전문과 의사들이 두 검사를 활발히 시행하고 있으며, 여러 학회가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인력을 양성해 왔다. 특히 간암 초음파 검진은 특정 학회가 독점적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다양한 전문과의 교육 프로그램이 폭넓게 인정되는 개방적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반면 내시경 질평가는 이와 대조적으로 특정 학회 중심의 폐쇄적 구조가 고착화돼 있다. 위·대장암 검진에 여러 전문과 의사들이 참여함에도, 평가 체계는 한 학회에 집중되어 있어 제도 운영의 형평성과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그 핵심에는 평가 구조 자체의 문제가 자리한다. 현재 내시경 질평가에서 평가 기준을 마련하는 연구 집단과 실제 기관을 평가하는 집단은 사실상 동일한 조직이다. 즉, 기준 설정과 평가 시행이라는 두 축이 분리되지 않은 채 동일한 이해관계 안에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이런 구조에서는 해당 학회가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만 제도적으로 우선하고, 타 학회의 교육 평점은 인정받지 못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결국 다양한 전문과가 현실에서 내시경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제도는 특정 학회의 교육만을 기준으로 삼는 불균형한 체계가 되었고, 평가에서도 해당 학회 회원들에게 독과점적 혜택이 돌아가는 구조가 형성됐다.이는 실제 의료 현장과도 괴리된 평가 방식이다. 지금까지 1·2·3차 의료기관에서 가정의학과·외과·일반내과를 포함한 다양한 전문과 의사들이 내시경 검사에 참여하며 우리나라 위·대장암 검진 체계의 높은 성과를 이끌어 왔다. 그럼에도 현행 제도는 이러한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물론 부분적 진전도 있었다. 가정의학회와 외과학회의 내시경 인증 자격이 국가 암검진 평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정작 해당 학회들이 시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의 평점은 여전히 인정되지 않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의결 과정에서 특정 학회의 반대가 작용해 '자격은 인정하되 교육은 배제하는' 모순적인 구조가 유지됐다고 한다. 이는 제도의 근본적 문제를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절반의 개방'에 그친 것이다.이 문제는 단순한 학회 간 이견 조정의 차원을 넘어선다. 공공제도의 공정성, 더 나아가 국민이 제도를 신뢰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만약 공공건설 입찰의 평가위원 전원이 특정 건설사 출신이라면 그 평가 결과를 신뢰하기 어려울 것이다. 의료 평가도 마찬가지다. 공정한 평가는 '누가 만들고 누가 평가하는가?'라는 구조적 질문에서 출발한다.국가 암검진기관 평가는 국민에게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검진을 제공하기 위한 제도다. 그렇기에 그 기준과 과정은 개방적이고 다학제적이어야 한다. 다양한 학회가 참여하는 평가 전문가 풀을 구성하고, 평가 기준을 투명하게 검증하며, 학회 간 교육 프로그램을 상호 인정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은 특정 학회의 권한을 제한하려는 것이 아니다. 제도의 공정성과 국민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의료의 본질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다. 여러 전문과의 경험과 역량이 함께 반영될 때 검진의 질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 국가암검진 내시경 분야의 평가가 진정으로 국민 건강을 위한 제도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폐쇄적 구조를 넘어 공정하고 열린 체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공정한 평가에서 신뢰가 시작되고, 신뢰 없는 제도는 지속될 수 없다.
2025-12-10 05:30:00이슈칼럼

페이크닥터의 위험성

[메디칼타임즈=손문호 특별위원 ] 손문호 특별위원대한의사협회의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과거 TV 의료상담 이후 홈쇼핑·예능으로 활동 영역을 넓힌 일부 의사를 닥터+엔터테인먼트의 합성어 대신 쇼닥터라 명명했다. 의학적 검증보다 흥행을 우선할 때 환자에게 미치는 해를 직관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이제 판이 더 복잡해졌다. 사람이 아닌, AI가 만든 가짜 의사가 온라인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현상을 페이크 닥터라 부르려 한다. 이름을 붙이는 이유는 명확하다. 문제를 정확히 지칭해야 치료, 즉 규제와 자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왜 페이크 닥터인가쇼닥터의 출발점엔 실존 인물이 있다. 과장·선정성이 문제일 뿐 최소한의 책임 주체가 존재했다. 반면 페이크 닥터는 실체 없는 권위 탈취가 핵심이다. 합성 얼굴과 음성, 의사 가운과 병원 배경, ‘OO의대·전문의’ 같은 레이블을 덧씌워 신뢰를 흡수하고, 초저가 미끼와 쿠폰으로 개인정보를 빨아들인 뒤 텔레마케팅·유사의료로 전환한다. 책임을 추적하기 어렵고, 플랫폼 경계를 넘나들며 빠르게 복제된다. 피해는 지연치료·오진 위험, 과잉지출, 개인정보 유출로 직행한다.분류가 필요하다: 세 가지 유형1. 쇼닥터: 실존 의사가 방송·판매 현장에서 과장과 과도한 확신을 남용.2. 페이크 닥터: AI·배우·아바타가 의사로 인식되게 연출된 콘텐츠. 실체·책임 회피가 구조적 특징.3. 리얼 닥터: 실명·면허·소속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근거에 기반해 설명하는 전문가.이 분류는 처방을 가른다. 쇼닥터는 자율규범+사전심의 강화로, 페이크 닥터는 표시·검증·책임의 시스템으로 다뤄야 한다.시민과 현장을 위한 간명한 식별법• 5초 체크: ①실명·면허·소속 부재 ②“기적·부작용 0·100%” 절대표현 ③근거 링크 없음 ④초저가+마감 재촉 ⑤“혜택 예약”으로 개인정보 요구—두 가지 이상이면 시청을 멈추고 신고하라.• 30초 점검(전문가·기관): 면허 진위(번호·전문의과·소속), 가이드라인·논문·임상등록 유무, 영상의 합성 신호(입모양·음성 싱크 불일치, 광택 패턴 반복), 신생 채널의 비정상 노출·댓글 폭증.규범을 새로 깔자: 표시–검증–책임4. 표시(Feat_AI 라벨 의무화)모든 의료·건기식 관련 영상에 Feat_AI(생성/편집 포함) 배지를 좌상단 전 구간 노출. 배지를 누르면 '어떤 구간이 AI인지, 의사 실명·면허 검증 링크, 광고주·제작사' 팝업이 떠야 한다.5. 검증(C2PA·워터마크·면허 QR)영상엔 C2PA 메타데이터와 비가시 워터마크를 심어 업로드 단계에서 자동 점검하고, 보건당국이 제공하는 면허 진위 QR/API를 프로필·랜딩에 부착한다.6. 책임(성과형 집행·플랫폼 연대책임)단속의 성과지표를 ‘삭제 건수’가 아니라 라벨 누락 차단율, 재노출율, 면허검증 클릭률, DB 브로커 차단 건수로 전환해 분기별 공개. 반복 위반 채널은 수익배제→추천제외→계정말소로 단계 제재한다. 또한 “비의료인이 의료인으로 인식되게 하는 AI/배우/아바타 광고”를 명시 금지해야 한다.의료계의 역할의료계는 스스로의 언어로 신뢰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학회·의사회는 카테고리별 금지 문구(절대표현·초저가 미끼)와 근거 제시 템플릿(가이드라인·논문·임상등록)을 공개하고, 병·의원 홈페이지와 프로필에 면허 QR을 일괄 부착하자. 동시에 환자 교육용 한 장 체크리스트를 상시 배포해 ‘먼저 의심하고, 바로 확인하고, 함께 신고’하는 문화를 만들자.이름을 붙여야 보인다. 쇼닥터는 과장에 취한 허용된 위험이었다면, 페이크 닥터는 신뢰를 탈취하는 무허가 위험이다. ‘표시–검증–책임’의 새 규칙을 깔아, 가짜 권위의 경제학을 끝내자. 의사 가운은 흥행의 소품이 아니라, 과학과 윤리의 상징이어야 한다.
2025-12-08 05:00:00이슈칼럼

'최악의 독감'은 착시…방역당국 직무유기

[메디칼타임즈=경남의사회 마상혁 공공의료위원장 ] 최근 언론에서는 "최근 10년 새 독감(인플루엔자) 유행이 가장 심각하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자극적인 헤드라인은 국민의 불안을 가중시키지만, 진료 현장에서 체감하는 실상은 다르다. 올해 독감은 유난히 독하거나 환자가 폭증한 것이 아니라, 단지 예년보다 '일찍' 시작되었을 뿐이다. 실제로 지난주까지 북새통을 이루던 소아청소년과 외래는 현재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이는 매년 반복되는 전형적인 유행 패턴이다.문제는 지금부터다. 소아·청소년 환자가 줄어들면 바이러스는 필연적으로 성인과 고령층으로 이동한다. 우리는 이미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고령층의 감염 폭증이 초래한 지난 2025년 1월의 '화장장 대란'을 기억하는가? 노인 인구의 독감 감염은 단순한 호흡기 질환을 넘어 폐렴 합병증과 기저질환 악화로 이어지며, 이는 곧 초과 사망(Excess Mortality)의 급증을 의미한다.그러나 우리 방역 당국의 시계는 멈춰 있다. 앞으로 B형 독감이 유행할지, 새로운 아형(Subtype)이 출현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질병관리청의 대응은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코로나19 당시에는 정확도가 떨어질지언정 유행 예측 모델을 발표하며 대비하려 노력했으나, 매년 막대한 사회경제적 손실을 야기하는 인플루엔자에 대해서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가장 심각한 문제는 데이터의 '해상도'다. 현재의 인플루엔자 의사환자(ILI) 분율 조사는 고열과 기침 등 증상만으로 집계하는 표본 감시 체계다. 이는 실제 확진자 수와 큰 괴리가 있으며, 지역별 유행의 편차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부산에서 유행이 끝났는데 서울은 시작일 수 있고, 농촌과 도시의 양상이 다름에도 당국은 뭉뚱그려진 전국 평균치만 바라보고 있다. 정확한 데이터가 없으니 정교한 대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이러한 '깜깜이 방역'은 거버넌스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현장의 전문가들은 실시간으로 환자 추이를 감지하지만, 이 정보가 정책 입안자에게 전달되는 통로는 막혀 있다. 방역 공무원들은 전문가의 제안을 정책에 반영하기보다, 기존의 관행을 답습하는 데 급급하다. 실시간으로 지역별 환자 발생을 파악할 수 있는 조직을 신설하고, 전문가들이 임상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통합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고령층의 감염 실태를 정밀 조사하고, 고위험군에 대한 백신 접종 강화 등 선제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독감은 감기보다 조금 독한 병이 아니다. 매년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감염병이다. 언제까지 "손 씻고 마스크 쓰라"는 원론적인 계몽에만 머물 것인가? 방역 당국은 이제라도 책상물림 행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문가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즉각 반영하는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제2의 화장장 대란을 막고, 국민의 생명과 사회적 비용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2025-11-24 05:00:00이슈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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