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흔한 환자를 가르치지 않는 의료
대한병원의사협의회 마상혁 고문내 진료실에는 다른 병원에서 받은 호흡기 PCR 검사 결과지를 들고 오는 보호자가 있다. 열이 난 아이의 콧물 검체에서 병원체 서너 개가 양성으로 나왔다는 결과지다. 감기로 항생제를 처방받아 먹은 뒤 진료실에 오는 아이도 있다.보호자는 이 가운데 무엇이 아이를 아프게 했는지 묻는다. 결과지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검사를 낸 의사가 답해야 하지만, 그 해석을 체계적으로 배운 의사는 드물다. 나는 이것을 개별 의사의 태만으로 보지 않는다. 우리 의료가 가장 흔한 환자를 가르치지 못한 결과다.정부의 의료개혁은 중증·응급 진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4년 9월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을 확정했다. 2027년까지 3년 동안 건강보험 재정 약 10조 원, 해마다 약 3조 3000억 원을 투입하는 사업이다. 참여 병원은 중증 진료 비중을 70%까지 높이고 일반병상을 줄인다.중증 환자에게 재원을 먼저 쓰는 판단은 옳다. 그러나 이 설계는 경증 진료를 비워 둔 채 출발했다. 상급종합병원이 중증 환자에 집중하려면 경증 환자를 1·2차 의료기관이 제대로 진료해야 한다. 경증 진료의 질을 높이는 정책은 이 설계 어디에도 없다. 현장의 전문가와 충분히 논의하지 않고 짧은 기간에 만든 정책은 이런 고리를 놓친다.외래에서 가장 흔한 질환 가운데 하나가 호흡기 감염이다. 건강보험 통계에서 급성기관지염은 2008년, 2014년, 2015년 외래 진료인원 1위였고, 2023년에는 2위였다. 감기는 의학 용어로 급성상기도감염이며, 대부분 바이러스가 원인이어서 항생제를 권하지 않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평가에서 감기 항생제 처방률은 2002년 73.33%였고, 이후 20여 년 동안 절반 수준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이 처방률이 2022년 32.36%에서 2023년 41.42%로 다시 올랐다. 2026년 7월 공개된 2025년 평가의 전체 평균은 43.54%였다. 한국의 항생제 사용량은 2023년 OECD 회원국 가운데 두 번째로 많았다.현장에서는 사법 리스크를 이유로 든다. 세균 합병증을 놓쳐 소송을 당할까 봐 항생제를 미리 쓴다는 것이다. 이 불안은 실재한다. 하지만 항생제를 쓰지 않는 판단을 근거와 함께 배운 적이 없는 의사에게는 항생제가 가장 쉬운 방어 수단이 된다. 지금의 수련 체계는 그 판단을 배울 기회를 주지 않는다. 수련의 중심은 대학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이고, 그곳에 오는 환자는 이미 걸러진 중증 환자다. 열이 난 지 하루 된 아이를 수없이 보면서 검사와 항생제를 쓰지 않을 근거를 익힐 자리가 수련 과정에 없다.호흡기 PCR 검사의 양성 결과도 해석이 필요하다. 암스테르담의 한 연구에서 증상 없는 아이의 28%에서도 바이러스가 하나 이상 검출됐다. 1세 미만에서는 이 비율이 47%였다. 같은 연구에서 RSV는 증상 없는 아이에게서 드물게 검출됐다. 스웨덴 연구는 리노바이러스처럼 증상 없는 아이에게서도 자주 나오는 바이러스는 양성 결과를 해석하기 어렵다고 보고했다. 네덜란드 델프트의 임상시험에서는 PCR 결과를 빨리 알려 줘도 입원 기간과 항생제 사용 기간이 줄지 않았다.양성은 원인과 같은 말이 아니다. 병원체 서너 개가 함께 나온 결과는 더 그렇다. 어느 병원체가 지금의 열을 일으켰는지, 어느 것이 지난 감염의 흔징인지 결과지만으로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열만 나면 호흡기 PCR 검사부터 내는 진료가 흔하다. 이 검사를 기관마다 어떻게 정도관리하는지 공개된 정보는 찾기 어렵다. 여러 병원체가 함께 양성일 때 어떻게 해석할지 다루는 교육도 찾기 어렵다.연수교육도 이 공백을 메우지 못한다. 내가 참석해 온 연수강좌는 중증 질환과 새로운 치료법을 다룬다. 감기 아이를 어떻게 진찰하고 언제 항생제를 쓰지 않을지 다루는 강좌는 보지 못했다.보호자도 이 공백의 피해자다. 검사를 많이 하고 약을 많이 주는 진료가 꼼꼼한 진료로 보이는 구조에서 보호자는 그 차이를 가려낼 수 없다. 보호자에게는 검사 결과가 무엇을 뜻하고 무엇을 뜻하지 않는지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다. 의사가 설명할 수 없는 검사는 처음부터 내지 않아야 한다.진료 행태는 교육보다 보상 구조가 결정한다는 반론이 있다. 진찰에는 보상이 적고 검사에는 보상이 붙는다. 이 지적은 타당하다. 하지만 수가를 바꾼다고 적정 진료의 기준이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무엇이 적정한지 배운 의사가 있어야 바뀐 수가가 바른 진료로 이어진다. 보험자의 적정성 평가가 20여 년 동안 처방률을 낮춘 성과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평가는 처방의 결과를 잴 뿐 판단하는 능력을 길러 주지 않는다. 교육과 보상은 함께 고쳐야 한다.의과대학은 학생 실습에 1차 의료기관 실습을 필수 과정으로 넣어야 한다. 전공의 수련에도 의원 외래 수련을 정식 과정으로 두어야 한다. 학회는 감기와 발열 진료를 연수교육의 정례 과목으로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호흡기 PCR 검사의 시행 기준을 정하고, 검사 기관의 정도관리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가장 흔한 환자를 제대로 보는 의사가 늘어야 상급종합병원도 중증 환자에 집중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