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만 의사 인력 추계 갈등 반복되나…"일본에 해답"
[메디칼타임즈=최선 기자]의사의 인력 추계를 두고 의료계와 정부가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 가운데 의사 수를 총량 중심에서 지역, 분야별 배치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일본의 경우 다원적 거버넌스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구조를 의사인력 정책의 핵심으로 해 매번 갈등을 되풀이하는 한국과 '구조적인 차이'를 보인다는 것.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일본의 의사 수 결정 정책과정을 분석한 연구보고서 '일본의 의사 수 결정을 위한 정책과정 분석'을 발간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강태욱 성신여대 교수를 연구책임자로 해 일본 의료정책 체계와 의사인력 정책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한국 의사인력 정책에 대한 시사점을 도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연구진은 일본이 약 70년에 걸쳐 의료법을 중심으로 의료계획, 지역의료구상, 의사확보계획 등을 유기적으로 발전시켜 왔으며, 의사 수 '총량' 관리 중심에서 지역·분야별 '배치' 중심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 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다원적 거버넌스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구조가 일본 의사인력 정책의 핵심 특징으로 제시됐다.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의료인력 정책은 단일 부처가 주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후생노동성·문부과학성·재무성·총무성 등 여러 부처가 역할을 분담하는 다원적 거버넌스 체계로 운영된다. 이른바 '4P 모델'을 통해 의료 수요 계획, 인력 양성, 재원 승인, 정책 집행이 분산·조정되며, 부처 간 상호 견제와 협력을 통해 정책 독점을 방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또한 의사인력 정책은 공식 심의기구인 '의료인력수급 분과회'를 중심으로 논의·결정된다. 해당 기구에는 이해관계자가 균형 있게 참여해 정책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이고 있으며,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한 합의 중심 운영을 통해 정책 집행 과정에서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점이 강조됐다.일본은 지난 50여 년간 의사 증원과 감축을 반복하는 정책 변화를 경험했다. 연구진은 이 과정에서 일본이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으로 "의료 문제는 의사 수의 절대량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꼽았다.이에 따라 일본은 의대 정원 조정에만 의존하기보다, 의사 배치 메커니즘 개선, 근무 여건과 처우 개선, 교육 제도 개편을 병행하는 포괄적 접근을 추진해 왔다. 의료인의 자율성과 정책적 유인을 결합한 제도 설계를 통해 정책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확보한 점도 주요 특징으로 분석됐다.보고서는 지역정원제가 지역 간 의료인력 편재를 단기적으로 완화하는 데는 일정 부분 기여하지만, 의료 소수지역의 절대적 의사 부족 해소와 장기적 지역 정착을 보장하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의무복무 기간 종료 후 도시로의 이탈, 교육 여건 악화에 따른 의료 교육 질 저하 우려, 직업 선택의 자유 침해, 지역 내부의 세부 의료 격차 해소 한계 등이 구조적 문제로 제시됐다.일본 의사확보계획의 핵심 도구로는 '의사편재지표'가 소개됐다. 이 지표는 단순한 의사 수가 아니라 실제 진료 활동량을 반영한 '표준화 의사 수'와 지역별 의료 수요를 고려한 '표준화 수진율비'를 결합해 산출된다. 여기에 환자 유출입 보정까지 반영해, 지역 거주지를 기준으로 의료 수요를 재계산하는 방식이다.연구진은 일본이 이러한 객관적 지표를 통해 의료 인력이 부족한 지역을 명확히 파악하고, 주관적 판단이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될 여지를 최소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6년 주기의 환자조사, 의료인 통계 작성, 중장기 의료 수요 예측 모델 고도화 등 의료 통계 인프라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왔다.의료정책연구원은 일본 사례를 통해 한국 의사인력 정책 역시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과 합의형 거버넌스 구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의사 수 증가가 의료비, 지역 편재, 인구 구조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의료·노동경제학적으로 분석하고, 상충되는 정책 입장을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연구진은 "의사인력 정책의 정당성은 단순한 행정적 결정이 아니라, 전문가 집단의 전문적 자율성을 존중하고 이를 정책 형성 과정의 핵심 요소로 반영할 때 확보될 수 있다"며 "객관적 데이터에 기반한 수요 추계와 현장의 실무 경험을 함께 반영하는 거버넌스 구조가 한국형 의사인력 정책의 중요한 방향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