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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약 오남용 지정, 진정한 시험대

[메디칼타임즈=문성호 기자]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이달 내로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와 마운자로(터제파타이드) 등 GLP-1 계열 비만 치료제를 '오·남용 우려 의약품'으로 최종 지정하기 위한 절차에 마침표를 찍겠다고 한다. 정상 체중조차 '미용 목적'으로 투여하는 왜곡된 처방 행태에 제동을 걸겠다는 취지에서다.방향성은 타당하다. 보건당국이 사회적 경각심을 울리고 오남용 방지 테두리를 치겠다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제약바이오 업계와 의료계의 시선은 이미 그다음 스텝을 향하고 있다. 이번 조치가 단발성 '보여주기식 행정'에 그칠지, 아니면 일관된 규제 원칙의 시발점이 될지 가늠할 진짜 시험대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당장 코앞에 닥친 첫 번째 관문은 곧 가시화될 '국내 개발 신약'을 향한 잣대다.현재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는 토종 비만 신약들의 막판 허가를 앞두고 기대감이 적지 않다. 비만 치료제 시장의 새로운 대안으로 기대를 모으는 국산 품목 역시 약리학적 기전이나 오남용 위험성 측면에서 해외 다국적사 제품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향후 허가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한미약품 '에페(에페글레나타이드)' 등 국산 신약들에 대해서도 식약처가 지금과 정확히 동일한 잣대와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을지 말이다. 만약 '산업 육성'이나 '토종 프리미엄'이라는 명목 아래 규제의 무게추가 헐거워진다면, 그간 식약처가 강조해 온 국민 건강권 보호라는 명분은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규제의 잣대에 국경이나 출신이 개입될 여지는 없어야 한다.여기에 변수는 더 남았다. 주사제의 불편함을 극복할 차세대 경구용 비만 치료제, 즉 알약 형태의 먹는 GLP-1 제제들의 국내 도입 역시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릴리의 '파운데요(오르포글리프론)'나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필(경구용 세마글루티드)' 등 글로벌 제약사들의 경구제 도입도 이미 가시권에 와 있다.알약 형태로 복용 편의성이 극대화되는 경구제 시대가 열리면, 지금의 주사제 형태보다 오남용의 문턱은 훨씬 낮아지고 시장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주사제일 때는 오남용 우려 의약품으로 강하게 묶어두고, 제형이 알약으로 바뀐다는 이유로 규제의 사각지대를 허용한다면 제도의 실효성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식약처의 이번 마운자로·위고비 오남용 지정은 마침표가 아니라 수많은 변수가 소용돌이치는 시작일 뿐이다.국산 신약 라인업과 경구제라는 파고 속에서, 식약처가 오직 '국민 안전'이라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일관된 규제 철학을 지켜나갈지 의료계와 시장이 지켜보고 있다.
2026-09-21 05:00:00기자수첩

의사에게 돌아온 CT·MRI 급여화의 청구서

[메디칼타임즈=이인복 기자]"예견된 미래였다. 획일적으로 급여권에 넣으면 검사가 폭증할 수 있다고 지적할때는 무시하더니 이제는 의사들이 남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안찍으면 소송당하고 찍으면 삭감당하게 생겼다."국내 굴지 대형병원 영상의학과장의 말이다. 정부가 마침내 CT와 MRI 등 고가 영상 검사 남용을 막겠다며 칼을 꺼내들었다.이미 검사를 진행한 환자에게 불필요하게 '중복 촬영'을 하면서 건강보험 재정이 무너지고 있는 만큼 정부가 바로잡겠다는 의지다.정부가 제시할 기준은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듯 하다. 30일 이내 재촬영이 이뤄졌다면 왜 검사를 또 했는지 의료진이 해명하는 방식이다.실제로 숫자만 보면 정부의 논리는 타당성이 있다. 지난해 이미 CT를 촬영한 환자가 다른 병원에 내원했을때 CT를 다시 찍은 비율은 26.8%를 기록했다. MRI 역시 22만명 중에 13.8%가 재촬영을 진행했다.여기에 들어간 건강보험 급여 비용만 650억원에 달한다. 이 금액이 타당한지 살펴보겠다는 것이 정부의 의지다. CT와 MRI를 실시간 의료 이용 관리 대상으로 두고 재촬영 비율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다.여기까지는 정부의 방향에 이의를 제기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보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정부는 이른바 접근성 향상이라는 목표로 의학계와 의료계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상 검사를 건강보험 급여권으로 편입시켰다.이렇게 되면 불필요한 검사가 많아지며 이용량이 폭증할 수 있다고 의학계와 의료계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부는 이를 묵살했다.결과적으로 급여 적용 이후 촬영 건수는 건강보험이 감당하기 힘들 만큼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로 인해 당초 척추 등까지 적용할 예정이었던 급여 확대 방안은 올스톱된 상황이다.불필요한 검사가 늘어날 수 밖에 없다고 수차례 경고했던 의학계와 의료계의 지적을 무시하고 급여권에 영상 검사를 밀어 넣은 뒤 불필요한 검사를 하고 있다며 이를 통제하는 정책을 내놓은 셈이다.의학계와 의료계가 우려하는 부분도 여기에 있다. 당장은 의료계의 반발을 고려해 재촬영을 고지하는 선에서 정책이 출발하더라도 결국 적성성 평가로 이어지고 삭감의 근거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결국 두가지 서로 다른 정책, 즉 영상 검사를 급여권으로 편입한 정책과 불필요한 중복 검사를 막겠다는 제도가 내포하는 문제는 단 하나의 근원으로 좁혀진다. 누가 이를 판단하는가에 대한 부분이다.이미 대한영상의학회나 대한자기공명의과학회 등 전문가 단체들은 무분별하게 검사를 진행하는 기관과 너무 오래된 기기를 사용하는 병의원을 퇴출 시키기 위해 다양한 자정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하지만 정부는 이미 한 차례 실패한 상황에서도 주도권을 정부가 갖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 검사가 추적 검사인지, 추가 검사인지, 중복 검사인지를 정부가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숙련된 전문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검사를 정부가 막아서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간다. 봐야할 것을 못 본 상태에서 진단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이제 공을 누구에게 줘야 하는지는 명확하다. 또 다시 패스하지 않은 채 나홀로 드리블을 한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가 없다.
2026-09-14 05:00:00기자수첩

경구용 신약의 이유 있는 '비급여 직행'

[메디칼타임즈=문성호 기자]최근 국내 제약바이오 시장을 관통하는 묘한 풍경이 있다. 글로벌 혁신 신약들이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인 '건강보험 급여' 논의는 뒷전으로 미뤄둔 채, 잇따라 '비급여' 시장으로 직행하고 있는 현상이다.실제로 편두통 치료 영역에서는 애브비의 '아큅타(아토제판트)'에 이어 화이자의 '너텍(리메제판트)'까지 경구용 신약들이 급여 논의는 제쳐두고 비급여로 국내 임상 현장을 빠르게 공략하고 있다. 칼시토닌 유전자 관련 펩타이드(CGRP) 수용체 길항제 계열의 이들 경구용 신약은 복용 편의성 측면에서 강점을 지녔지만, 온전히 경제적 부담은 환자가 안고 가는 형국이다.여기에 올해 하반기 국내 출시가 예상되는 에자이의 불면증 신약 '데이비고(레보렉산트)' 역시 마찬가지 행보가 예고되어 있다.이 같은 흐름은 신경질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노바티스의 만성 두드러기 신약 '랩시도(레미브루티닙)' 또한 상대적으로 고가의 비급여로 출시를 강행한 뒤, 현재로서는 "추후 급여 검토를 시작하겠다"는 원론적인 계획만 내놓은 상태다. 결국 당분간은 환자들의 온전한 비급여 부담이 불가피한 구조다.이전 같았으면 신약 출시와 동시에 급여권 진입을 위한 치열한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을 터다. 하지만 어쩌다 이들은 보험 급여라는 '정석 코스'를 마다하고 비급여라는 우회로를 택하게 된 것일까.근본적으로는 국내 급여 제도의 높은 장벽, 특히 경제성평가 과정에서 발목을 잡는 '대조약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현행 제도 아래서는 현실성 있는 약가를 보장받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여기에 글로벌 본사의 약가 정책 등 복합적인 대외 변수들까지 맞물려진 결과다.문제는 이러한 비급여 장기화의 고통이 온전히 환자 몫으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실제로 만성 두드러기 분야의 경우 기존 '졸레어(오말리주맙)'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항히스타민제와의 대조약 설정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국내 허가 이후 여전히 비급여 늪에 머물러 있는 전례가 있다. 혁신 신약이 나와도 그림의 떡인 셈이다.제약사들도 할 말은 있다. 급여 적정성 평가의 문턱을 넘지 못해 수년째 발이 묶이느니, 차라리 비급여로 빠르게 시장에 진입해 치료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 타당하다는 논리다.하지만 비급여 공략이 대세가 될수록 환자들의 경제적 양극화와 치료 소외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와 제약사 모두 환자가 '돈이 없어서 약을 못 먹는' 비극을 방치해선 안 된다. 실효성 있는 약가 제도 개선과 유연한 급여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시점이다.
2026-09-10 12:40:09기자수첩

헌신에 감사하지 않는 사회

[메디칼타임즈=김승직 기자] 정부가 공정과 상식을 외치는 것과 반대로 우리 사회는 점점 이 기치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동안 사회는 누군가의 헌신 위에서 성장해 왔지만, 오늘날엔 이런 희생을 강요하는 분위기다. 감사한 일에 감사하지 않는 것이 공정과 상식인가.최근 한 국회의원이 군의관 복무 단축 요구를 두고 한 발언이 그 예다. 군의관 복무 단축 요구는 의사가 소명의식을 내팽개치고 돈을 벌기 위함이라는 취지였다.이후 대한의사협회, 서울특별시의사회 등 의사단체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졌고, 해당 국회의원은 정제되지 못한 표현이었다며 사과의 뜻을 전했다. 현행 복무 기간이 과도한 점은 공감하지만, 관련 사안이 군의관 수급 문제의 핵심은 아니라는 취지였다는 설명이다.이렇게 논란이 일단락되는 분위기지만 씁쓸함은 남는다. 청춘을 바쳐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이들을 존중하기는커녕, 잠재적인 이기주의자로 매도하는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군의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국방의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의무를 다함에 있어 더 합리적인 선택지를 택하겠다는 것뿐이다.개인의 정당한 권리 주장을 소명의식 부재로 치부하는 잣대는 우리 사회가 누군가의 희생을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지 보여준다.이처럼 희생을 강요하고 헌신을 당연시하는 현상은 사회 전반에 퍼져있다. 개인의 사명감과 헌신에 기대온 필수의료 현장이 붕괴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교권 추락과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무너진 교육 현장도 마찬가지다. 나아가 소방·경찰 등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주요 기반 분야에서도 인력 이탈이 가속하는 실정이다.물론 정부는 국가 주요 기반 시설과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만큼, 비용을 따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과 정당한 보상이 아닌, 개인의 희생과 헌신에만 기대는 구조는 지속 불가능하다.이는 사회학에서 경고하는 사회적 자본 붕괴와 닿아 있다.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상호 신뢰와 호혜성 같은 사회적 자본이 무너질 때 공동체가 위기를 맞는다고 지적했다. 누군가의 헌신을 존중하기는커녕, 이를 누리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는 사회에선 어떤 공적 동기도 싹틀 수 없다는 의미다.조직심리학자 애덤 그랜트가 말한 조직 내 상호성의 원리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타인의 헌신을 당연하게 소비하는 조직에선 결국 기여하는 사람부터 지쳐 떠나고, 공동체 전체의 활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누군가의 헌신은 타인이 함부로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땀 흘리는 이들이 없다면, 모두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은 단 하루도 유지될 수 없다. 당장 아낀 헌신의 대가는 언젠가 더 큰 파국으로, 이자까지 붙어 돌아올 것이다.공정과 상식은 누군가에게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명분이 아니다. 헌신에는 존중을, 책임에는 합당한 보상을 돌려주는 것이야말로 공정이고 상식이다.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그에 따른 권리 주장에 이기주의라는 낙인을 찍는다면, 과연 누가 기꺼이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내어놓겠는가. 누군가의 헌신을 당연하게 소비하는 사회가 아니라, 헌신이 존중받기에 누구나 기꺼이 공동체를 위해 나설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2026-09-07 05:00:00기자수첩

비만신약과 발기부전약

[메디칼타임즈=박상준 기자]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5월 5일 GLP-1 계열 비만치료제(리라글루티드, 세마글루티드, 터제파타이드 함유제제)를 오·남용우려의약품으로 지정하겠다며 행정예고를 낸 이후 감감무소식이다. 당초 의견수렴 마감은 6월 26일. 7월로 예고됐던 고시는 석달째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다.오남용 지정 명분은 명확했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기적의 다이어트 주사'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의학적 적응증과 무관한 미용 목적 처방이 급증했다. 해외 직구와 개인 간 거래, 일본 등지로의 원정구매까지 늘었다. 정호 식약처 의약품관리과장이 직접 나서 추진 상황을 설명할 정도로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식약처 규제영향분석서에 담긴 숫자를 보면 왜 이 사안이 무겁게 다뤄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국내 수입금액은 2024년 1699억원에서 2025년 1조709억원으로 6.3배 뛰었다. 시장이 이렇게 크는 동안 정부가 저울질한 건 표시자재 교체비용 2400만원이었다. 공익적 편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자평하면서도, 결론은 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왜그럴까?일단 학회는 오남용약 지정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대한당뇨병학회는 지난 6월 29일 성명에서 정부 취지에 공감한다고 밝혔고, 대한비만학회도 대체로 찬성 입장이다. 다만 학회들은 전문가 협의체 구성, 의학적 적응증에 근거한 처방기준 마련, 불법유통 단속 강화, 치료환자에 대한 공급안정성 확보, 정확한 정보제공, 그리고 급여화 논의 병행 등을 보완책으로 제시한 상태다. 대한비만학회는 학회로서는 처음으로 기자들 앞에 서서 이 문제를 거론했다. 그러면서 오남용의약품 지정이 계속 보류되고 있는데, 이것이 적정 관리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고 애둘러 말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지정이 미뤄지고 있는지는 주요 학회인만큼 잘 안텐데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는 않았다. 4개 학회가 모여 앞서 10가지 보완책을 정리해 전달했다고만 했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많은 전문가가 접근성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학회들도 가장 큰 핵심 안으로 지정 이후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일, 즉 접근성에 대한 해답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발기부전치료제는 별 잡음 없이 오남용우려의약품으로 지정됐다. 만성질환과 무관했기 때문이다. 반면 비만은 대사이상질환이다. 약을 끊으면 체중만 되돌아오는 게 아니라 당뇨, 심혈관질환으로 이어지는 병의 궤적 자체가 바뀐다. 청소년 처방 기준까지 이미 세밀하게 나뉘어 있는 약이다. 지정 이후 처방·유통이 까다로워져 정작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약을 구하지 못하면, 규제가 막으려 한 문제보다 규제가 만든 문제가 더 커진다. 정부가 신중해야 할 지점은 정확히 여기다. 즉 학회가 우려하는 건 규제의 유무가 아니라 규제의 부작용이다.프로포폴은 향정신성의약품에 준하는 강력한 규제를 이미 걸어놨다. 그런데도 오남용은 끊이지 않는다. 지정이라는 딱지 한 장이 오남용을 막아주지 않는다는 증거가 이미 국내에 있다. 규제 강도와 오남용 근절 사이에 정비례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또 한 번 라벨을 붙이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려 한다. 일본은 이 문제를 라벨이 아니라 급여로 풀었다. 비만치료제를 건강보험 급여체계에 편입시키자 가격이 낮아졌고, 비만을 질병으로 보는 사회적 인식 자체가 바뀌었다. 비급여 시장에서 "대수롭지 않게 처방해도 되는 약"이라는 인식이 자란 한국과는 출발선이 다르다.여기에 거버넌스 문제도 겹친다. 오남용 지정은 식약처 소관이지만, 급여화는 복지부 소관이다. 학회가 요구하는 수가지 중 절반 이상이 식약처 혼자서는 답할 수 없는 항목이다. 두 부처가 각자의 소관 안에서만 움직이는 동안, 문제는 부처 사이 틈으로 빠진다. 이런 구조에서 지정 여부만 붙들고 있어 봐야 답이 나올 리 없다. 식약처와 복지부가 지금 붙들고 있는 것은 지정 여부가 아닐 것이다. 지정 이후 치료 접근성을 어떻게 지킬지에 대한 답이 없을 뿐이다. 답이 없으니 지정을 미루고, 미루는 사이 시장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진다. 합리적인 해법을 풀기 어렵다면 비만도 질병이라는 문제로 좀더 빠르게 접근해 급여도 정답이다.
2026-09-07 05:00:00기자수첩

외통수 걸린 제약업계

[메디칼타임즈=허성규 기자] 제약바이오업계를 취재하다 보면 의약품의 '허가'와 '급여'를 둘러싼 고충을 반복해서 마주하게 된다.의약품이 시장에 나오기까지 제약사가 넘어야 할 벽은 하나가 아니다.막대한 시간과 자본을 들여 개발한 신약도 우선 허가라는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허가 이후에는 더 높은 벽이 기다린다. 바로 '급여'다.단일 보험자 체계인 한국 의료 시장에서 급여권에 든 의약품과 그렇지 못한 의약품의 간극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중증·만성질환 치료제 시장에서 '비급여'는 결코 지속 가능한 대안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피부·미용이나 비필수 영역과 달리, 항암제와 희귀난치질환 치료제의 경우 급여권에 진입하지 못하면 시장 확대에 상당한 한계가 생긴다. 높은 약가를 환자가 온전히 부담해야 하는 만큼, 비급여 상태에서는 처방 확대에도 한계가 따른다.아무리 많은 비용을 들여 뛰어난 효능을 입증해도 급여 문턱을 넘지 못하면 출시와 동시에 성장의 한계가 닫혀버리는 셈이다.낮은 약가를 견디지 못해 비급여 출시를 택했던 제약사들이 결국 다시 급여권의 문을 두드리는 이유다.하지만 급여권 진입에 성공해도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진입 과정에서부터 경제성평가와 까다로운 위험분담제(RSA) 등을 거치며 원하는 약가를 받기 어렵다.진입 이후에는 사용량-약가 연동제, 해외 약가 비교 재평가, 실거래가 조사 등 촘촘한 약가 인하 기제가 연이어 쏟아진다. 특히 이번 약가제도 개편처럼 예상치 못한 순간 단행되는 조치로 인해, 오랜 기간 쓰여온 의약품마저 채산성에 큰 타격을 입는다.그렇다고 채산성이 떨어졌다고 해서 공급을 중단하기도 어렵다. 의료 현장의 필수성과 공공적 책임 때문에 철수조차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결국 제약사는 비급여를 선택할 수도 없고, 급여권에 진입해도 안심할 수 없는 '외통수'에 갇혀 버렸다.이러한 약가 인하가 반복되면 기업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던 품목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이는 미래 R&D 재투자 여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건강보험 재정 안정을 위해 약가를 관리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다만, 혁신 치료제가 제 가치를 인정받고, 그 수익이 다시 신약 개발로 이어지는 선순환 생태계 조성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단순히 약가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닌, 기업이 재투자를 이어갈 수 있는 예측 가능하고 합리적인 '적정 가치'를 인정하는 정책적 결단이 필요한 때다.
2026-08-31 05:00:00기자수첩

인간적인 AI와 3류 인간

[메디칼타임즈=최선 기자] 다양한 컨벤션, 전시회를 취재하면서 'AI 천하'를 실감한다. 의료기기 전시회든, 의학 관련 학술대회든 '인공지능'이란 키워드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기 때문이다. 행사의 성격이나 주제 등 겉보기만 다를 뿐 어떤 형태로든 인공지능이 주인공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흥미로운 건 현실 세계 곳곳에 AI가 도입, 활용되는 단계에 접어들면서 과연 AI가 인간을 대체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 조금씩 희석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코엑스에서 개최된 국제병원의료산업박람회(KHF 2026)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봤다.진단이나 치료에서 주로 사용될 것이란 인식과 달리 AI는 실로 광범위한 임상 영역에서 활용된다. 전시장 곳곳을 서빙 로봇이 돌아다니는가 하면 임종을 앞둔 환자를 위한 가정용 AI 호스피스 서비스도 개발됐다. 호스피스 AI는 태블릿을 통해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면 AI 간호사가 등장, 환자의 평소 상태와 의료진이 퇴원 시 설정한 처방 범위 등을 바탕으로 대응 방법을 안내한다.응급실의 접수와 초진 사이 공백을 줄이는 AI 문진·환자분류 솔루션은 물론 간호사를 위한 AI 스케쥴러도 개발됐다. 간호사의 근무 선호도와 역량, 필요한 인력 등을 설정하면 AI가 근무표를 생성한다. AI 근무표 도입 이후 조사 결과 근무표 작성 시간은 43%, 작성 부담은 74.5% 감소했고 근무가 공정하다는 인식은 65%로 나타났다.AI 음성인식 기술로 실시간 간호기록을 입력·인증·저장하는 전자간호기록 서비스도 실제 임상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다. 서비스 도입 후 인식 설문 결과 환자 안전 사고 예방을 위해 이를 사용한다는 비율이 업무의 효율성 향상을 위해 사용한다는 응답에 두배에 달했다.초기에 업무의 효율성과 편리함을 위해 AI 서비스가 도입됐지만 지금은 오히려 AI가 수고로움을 대신해준 덕택에 간호 시간이 늘어났고 이는 다시 환자 안전 강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됐다는 게 사용자들의 전언이다.AI가 인간의 일을 빼앗는 게 아니라, 인간이 남긴 경험을 보존하는 경우도 있다. 고려대의료원의 RAG 챗봇은 선임 간호사의 노하우를 AI에 담았다. 후배 간호사가 궁금한 것을 묻으면 AI가 축적된 현장 지식을 찾아준다. 사람을 밀어내는 AI가 아니라, 사람의 경험이 사라지지 않게 하는 AI다.적어도 임상 현장에서 만큼은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인간이 하기 힘들어 방치됐거나 인간의 수고로움이 필요했던 영역, 개인의 희생과 열정에만 의존해야 했던 그런 빈틈을 채우고 있다는 판단이 든다. AI 사용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우려는 기우에 가깝다는 것. 오히려 AI가 인간의 개입이 필요했던 빈틈들을 채우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다운, 너무나 인간적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그런 의미에서 AI를 바라보는 관점과 방향은 다소 수정될 필요가 있다. 일자리 대체 가능성을 두고 논쟁이 지속되는 사이에도 병원 내 태움 문화 등 일자리를 떠나게 만드는 건 오히려 '인간'이었던 사례를 수도 없이 봐 왔기 때문이다.인간을 도구로 보는 공감 능력이 결여된 소시오패스, 기계적인 인간에 의해 자행되는 괴롭힘으로 누군가는 공황장애를 앓았고, 누군가는 항우울제까지 먹으며 버텼다는 괴담에 가까운 이야기를 듣고 또 봤다. 3류 인간들에 의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례는 여전히 차고 넘친다.어쩌면 AI 시대의 진짜 경쟁자는 AI가 아닐지도 모른다. 가장 두려운 것은 인간의 자리를 빼앗는 AI가 아니라, 인간의 자리에서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인간일 수 있다. 그런 까닭에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다소 불편한 질문이 남는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AI 시대에 비인간적인, 너무나 기계적인 인간들을 어찌할 것인가."
2026-08-24 05:00:00기자수첩

시지바이오 뷰티냐 혁신이냐 기로

[메디칼타임즈=문성호 기자]시지바이오를 둘러싼 인수합병(M&A) 논의가 한창이다. 당초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IMM프라이빗에쿼티(PE)와 주식매매계약(SPA) 체결 직전 단계까지 갔으나 세부 조건에 대한 이견으로 협상이 최종 결렬된 이후, 현재는 미국계 PEF인 TA어소시에이츠가 새로운 우선협상대상자로 낙점돼 물밑에서 재협상이 진행 중이다.이달 말 매각의 최종 향방을 가를 만료시한이 다가오는 가운데, 이번 거래는 단순히 개별 기업의 주인이 바뀌는 차원을 넘어 한국 의료산업의 체질 개선을 판가름할 시험대로 떠오르고 있다.이번 인수전을 바라보는 안팎의 시선은 확연히 갈린다. 국내 자본 시장과 일부 투자업계는 시지바이오가 지닌 안정적인 에스테틱(뷰티) 포트폴리오와 탄탄한 현금 창출력(캐시카우)에 여전히 높은 점수를 준다. 뷰티 사업 부문은 상대적으로 빠른 시일에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글로벌 빅파마나 대형 헬스케어 펀드가 주목하는 '블록버스터 혁신'의 잣대와는 거리가 있다. 반면, 글로벌 무대와 해외 투자자들의 시선은 골 대체제 '노보시스(Novosis)'를 비롯한 정형외과 및 첨단 재생의료 파이프라인의 차별성과 글로벌 확장성에 전적으로 쏠려 있다.실제로 노보시스는 이미 세계 무대에서 확실한 방점을 찍어왔다. 글로벌 리더인 존슨앤드존슨(J&J) 메드테크 등과 손잡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주요국은 물론, 최근 북미 및 호주 시장까지 독점 유통 및 사업화 계약을 확장하며 글로벌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세계 두 번째이자 국내 최초로 개발된 골형성 단백질(rhBMP-2) 탑재 골대체제인 노보시스는, 전 세계에서 수십만 건 이상의 수술에 쓰이며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해왔다. 단순한 미용 목적의 제품군과는 차원이 다른, 글로벌 빅파마가 먼저 알아보는 파이프라인의 저력을 증명해낸 셈이다.그럼에도 국내 자본과 글로벌 자본이 산업을 바라보는 시각과 호흡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한국 의료기기 및 바이오 산업은 상대적으로 내수 중심의 단기 성과에 치중하는 경향이 짙은 반면, 글로벌 무대에서는 차별화된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한 중장기적 연구개발(R&D)과 전 세계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긴 호흡이 필수적이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요구하는 높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뷰티 사업의 수익성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J&J와의 협력으로 입증된 노보시스처럼 명확한 차별성을 지닌 혁신 파이프라인을 세계적 스탠더드로 키워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결국 국내 PE와의 협상 결렬을 딛고 물밑에서 이어지는 이번 글로벌 PEF와의 재협상 과정에서 도출될 최종 결과물은 시지바이오를 넘어 국내 의료기기 및 바이오 산업 전체의 미래를 가르는 변수다. 자칫 단기적인 자금 회수나 실적 압박만을 좇는 방향으로 딜이 매듭지어질 경우, 기업의 장기 성장 잠재력과 기술 개발 동력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 반면, 기술의 본질적 가치를 인정하고 글로벌 네트워크와 장기 투자를 담보하는 결과물로 이어진다면, 이번 M&A는 K-메디컬이 아시아의 틈새 시장을 넘어 세계 시장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8월 말경 판가름 날 이번 매각 재협상은 단기적인 거래 성과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혁신 신약과 첨단 의료기기를 외치면서도 정작 자본의 논리 앞에서는 쏠쏠한 뷰티 사업의 캐시카우에만 눈이 멀어 있는 것이 우리 제약 및 의료산업, 자본시장의 자화상이자 현주소다. 우수한 원천 기술을 품은 국내 바이오 기업이 자금력의 한계와 단기 압박을 극복하고 진정한 글로벌 리더로 거듭날지, 아니면 기존의 틀에 머물지 판가름할 중요한 분기점이다.
2026-08-18 05:00:00기자수첩

유한양행과 대한축구협회

박상준 취재보도본부장[메디칼타임즈=박상준 기자]유한양행이 창립 100주년을 맞아 차기 대표이사를 저울질하고 있다. 후보는 셋이다. 39년 근속한 이병만 경영관리본부장, 영업·약품사업 라인의 유재천 부사장, 그리고 2023년 외부에서 합류해 렉라자 상업화를 이끈 김열홍 R&D 총괄사장. 이사회는 늦어도 9월 중순까지 한 명을 확정해야 한다.이 인선이 유독 관심이 많고, 덩달아 중요한 이유는 하나다. 유한양행에는 오너가 없다. 유일한 박사의 유지에 따라 지분 상당수는 공익법인 몫이고, 후계는 혈연이 아니라 이사회의 판단으로 결정된다. 오너가 있는 회사라면 결과가 나빠도 버틸 언덕이 있다. 유한양행에는 그런 언덕이 없다. 이사회가 잘못 뽑으면, 그 책임을 물을 대주주도 없다. 그래서 이번 선택은 더 엄격해야 한다.내부인이냐 외부인이냐는 사실 부차적인 질문이다. 39년 근속이 자격이 되지 않는다. 외부 영입이라는 신선함도 자격이 되지 않는다. 시장과 투자자, 경쟁 제약사들이 보는 기준은 단 하나, 취임 이후 무엇을 만들어냈느냐다. 매출, 파이프라인, 기술수출, 주가. 이 네 가지 외에 이사회가 명분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없다.기준이 흐려지면 어떻게 되는지는 최근 한국 축구가 잘 보여줬다. 홍명보 감독은 2024년 대표팀 사령탑에 복귀했다. 선임 당시 외국인 후보와 나란히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지만 최종적으로는 대한축구협회 위원장에게 위임된 판단으로 홍 감독이 낙점됐고, 절차의 투명성을 둘러싼 논란은 임기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결과는 2026년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홍 감독은 성적 부진을 이유로 자진 사퇴했고, 국회 청문회까지 불려 나가 선임 과정의 특혜 의혹에 대해 해명해야 했다. 선임 기준이 애매하면, 결과가 나빴을 때 책임 소재도 애매해진다. 조직 전체가 그 대가를 치른다. 반대로 다케다제약은 결과로만 승계를 결정했다. 235년 역사의 이 일본 제약사는 2015년 처음으로 외국인 크리스토프 웨버를 CEO에 앉혔다. 글로벌화를 내걸고 해외 M&A와 외국인 경영진 영입에 나서던 시점이었다. 2019년 67조원을 들인 샤이어 인수 직후 주가는 20% 가까이 빠졌고 신용등급도 강등됐다. 국적도, 인수 리스크도 논란거리였다. 하지만 다케다는 그해 매출이 전년 대비 57% 늘며 세계 매출 10위권 제약사로 올라섰다. 결과가 논란을 덮었다. 2025년, 다케다 이사회는 다시 성과를 기준으로 미국 사업부를 이끌던 줄리 킴을 만장일치로 차기 CEO에 선임했다. 국적도, 성별도, 순혈주의도 따지지 않았다. 성과를 낸 사람이 다음 자리에 앉았을 뿐이다. 유한양행은 이 두 사례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지, 변화를 통해 어떤 결과를 보여줄 것인지가 중요하다. 유한에 따라붙는 꼬리표. 변화를 두려워 하는 조직이다. 이 변화를 이끌어낼 새 대표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유한양행 이사회에 묻고 싶다.내부 승진을 택한다면, 그것이 조직 안정을 위한 결정인가, 아니면 결과를 묻는 절차를 회피하기 위한 결정인가. 외부 인사를 택한다면, R&D 성과 하나만으로 경영 전반을 맡길 준비가 됐다고 확신하는가. 어느 쪽이든 이사회가 답해야 할 질문은 같다. 임기 중 결과를 못 내면 어떻게 할 것인가.답은 이미 나와 있어야 한다. 결과를 내지 못하면 물러난다. 이 원칙을 인선 발표와 동시에 명문화해야 한다. 완곡한 임기 보장이나 조직 안정 논리로 결과 없는 3년, 6년을 버티게 해서는 안 된다. 주인 없는 회사가 지켜야 할 유일한 규율은 결과에 대한 책임이다. 그 규율이 흔들리면, 100년을 쌓아온 유한양행의 신뢰도 함께 흔들린다.사장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결과로 보여주는 자리다. 
2026-08-10 05:00:00기자수첩

의료사고와 의료범죄 구분해야

[메디칼타임즈=김승직 기자] 사고(事故):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범죄(犯罪): 법규를 어기고 저지른 잘못.이 두 단어는 누군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을 때 사용된다. 다만 그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그 결과를 내려고 했는지에 따라 용처가 달라진다.다만 복잡한 현대 사회에선 사고와 범죄의 의미가 혼동되는 경우가 많다. 의도치 않은 일이라고 해도 그 결과가 누군가의 생명이나 신체적 피해로 이어지면, 피해자나 대중은 이를 범죄와 다름없이 받아들이곤 한다.특히 의료 행위나 운전·산업 현장 등 사람의 생명과 신체를 다루는 직업군에선 훨씬 높은 수준의 주의 의무가 요구된다. 따라서 이 의무를 다하지 못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판단되면 '업무상 과실치사상'이라는 범죄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다만 현재 의료사고를 두고 논란이 이는 지점은, 그 결과가 '순수한 사고'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과실'인지를 명확히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하지만 의료계에선 최근 국회에서 이뤄진 의료사고 이력 명시 제도 관련 논의가 그 경계를 허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지난 29일 국민의힘 이소희 의원 주최로 열린 국회 토론회에선, 고의적이거나 중대한 과실이 인정돼 실형·집행유예 등 형사 처벌을 받은 의료사고를 공개하는 방안이 다뤄졌다. 이를 통해 환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한편, 의료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취지다.하지만 환자마다 제각각인 인체를 다루는 의료 행위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내포한다는 게 의료계 우려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발생하는 불가항력적인 사고가 형사 고소로 이어져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것.더욱이 수천 건의 고난도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와, 중증 환자를 보지 않는 분야 의사의 임상적 위험도 차이는 크다. 의료사고에 대한 정의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 이력을 낙인처럼 공개한다면, 의료진은 고위험 수술이나 응급·중증 환자 진료를 기피할 수밖에 없다.물론 환자단체의 주장처럼 환자의 알 권리와 의료인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해한다. 과거 중대 의료과실이나 무면허 대리수술 등 안타까운 사건들이 반복됐음에도, 현행 체계에서는 환자가 사전에 위험성을 인지할 방법은 없다시피 하다.현장 의사들 역시 본인들도 파렴치한 범죄자들과 한 공간에서 일하는 것이 소름 끼친다고 입을 모은다. 의도를 가지고 문제를 일으킨 범죄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데 이견을 가진 이들은 없다.하지만 모든 판결 이력을 기계적으로 공개하는 방식이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접근방식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사선에 뛰어든 의사와 부도덕한 범죄를 저지른 의사를 같은 선상에 놓는 오류를 낳는다.규제가 명확한 기준 없이 행정 편의주의적으로 도입될 때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결국 우리 모두가 책임져야 한다. 그 책임이 필수의료 붕괴라면 더욱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정부 관계자가 자칫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수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의료는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 영역인 만큼 투명한 정보 공개는 중요하다. 하지만 관련 제도가 의사로 해 고난도 진료를 회피하게 만드는 가림막이 돼선 안 된다. 환자의 안전망을 지키면서도 현장의 의료진이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합리적인 논의를 기대한다.
2026-08-03 05:30:00기자수첩

칼뽑은 제약사들 성과로 증명해야

[메디칼타임즈=허성규 기자] 국내 주요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체질 개선과 불황 극복을 위해 '조직 개편'의 칼을 뽑아 들고 있다.가장 눈에 띄는 흐름은 단연 자회사를 안으로 품어 자원의 효율성을 높이는 '흡수합병'이다.실제로 휴온스, 일동제약, 동아쏘시오홀딩스 등이 자회사를 흡수합병하며 지배구조 단순화와 중복 비용 줄이기에 나섰다.자회사를 연이어 흡수합병 한 휴온스나, 연구개발 자회사로 출범한 유노비아를 흡수한 일동제약의 경우 대표적인 R&D 비용의 효율화 사례가 될 것이다.이는 고금리와 약가 인하 압박 속에 판관비를 줄이고, 분산되어 있던 R&D 수치를 본사로 합산해 '혁신형 제약기업' 지위와 약가 혜택을 사수하겠다는 복안인 셈이다.또한 동아쏘시오홀딩스의 경우에도 든든한 캐시카우인 동아제약을 흡수합병해 신성장 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투자에 속도를 더한다는 방침이다.반면 이런 흐름과 반대되는 모습도 있다.종근당 등은 R&D 파이프라인이나 특정 전문 사업부를 별도 법인으로 분사하는 스핀오프 전략으로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다.이는 연구개발과 관련한 트랙에 맞춰 자회사를 나눠,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외부 투자를 유연하게 유치해 신약 개발의 전문성과 스피드를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으로 보인다.겉으로 보면 하나는 '통합'이고 다른 하나는 '분리'여서 정반대의 행보처럼 보이지만 취재 현장에서 느낀 두 흐름의 본질은 결국 하나다. 바로 자원의 '집중'과 개발 '속도'의 극대화다.결국 이들의 결정은 어려워지는 대내외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인 동시에 향후 성장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다.이는 자회사를 합쳐 비용을 아끼는 것도, 별도 법인으로 떼어내 자율성을 주는 것도 모두 R&D와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방안이기 때문이다.다만 이런 노력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결국 이후에 나오는 'R&D 개발 등의 성과가 뒷받침돼야 한다.이는 R&D 성과나 신규 투자를 통한 성장 동력 확보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합병은 단순 지배구조 개편으로, 스핀오프는 조직 파편화라는 결과로만 남기 때문이다.이에 구조 재편을 통해 '얼마나 선택과 집중에 성공했는가', 그리고 '시장과 환자가 체감할 수 있는 R&D 성과를 얼마나 빠르게 끄집어내는가'만이 숙제로 남은 상태다.글로벌로 향하는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방향성을 생각해본다면, 이런 구조적 개편과 결단은 지속돼야 한다.이에 새롭게 판을 짜는 기업들이 차별화된 성과로 정당성을 증명하고 업계에 좋은 선례를 남겨주길 기대해본다.
2026-07-27 05:00:00기자수첩

자가면역 급여가 낳은 '치료 성공의 역설'

[메디칼타임즈=문성호 기자]이달부터 성인 중증 원형탈모증 치료제 '올루미언트(바리시티닙, 릴리)'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됐다. 그동안 고가의 약제비 전액을 비급여로 부담해 온 환자들에게는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정부는 급여 전환 이전부터 비급여로 약제를 복용 중이던 기존 환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경과규정'도 함께 마련했다. 최초 투여 시작 시점에 현행 급여 기준(기존 치료 실패 이력 및 SALT 50점 이상 등)을 충족했음을 과거 약제 투여 기록이나 환부 사진 등 객관적 자료로 입증하면 최대 2년간 급여를 인정하겠다는 취지다.그러나 임상 현장에서는 벌써부터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제도의 취지와 달리 실질적인 급여 장벽이 너무 높다는 지적이다.가장 큰 걸림돌은 '최초 투여 시점'의 증빙 자료 확보다. 비급여 진료 당시에는 향후 급여 전환을 염두에 두지 않기 때문에, 임상 현장에서 심평원 가이드라인에 정확히 부합하는 수준의 환부 사진이나 구체적인 평가지표 기록을 체계적으로 보존해 둔 경우는 드물다. 결국 증빙 서류의 미비나 미흡으로 인해 급여 승인에서 탈락하는 환자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이러한 현상은 올루미언트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중증 아토피 치료제 '듀피젠트(두필루맙, 사노피)'를 비롯해 건선 치료제 등 고가의 자가면역질환 생물학적 제제들이 급여권에 진입하거나 대상 범위를 확대할 때마다 반복됐던 패턴이다.이들 약제는 급여 적용 시 EASI(아토피), SALT(원형탈모) 등 수치화된 평가지표와 환부 사진을 필수 조건으로 요구한다. 보건당국 입장에서는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 속에서 중증 환자를 선별하고 재정 누수를 막기 위한 합리적 통제 장치일 수 있다.하지만 이 엄격한 '객관적 기준'은 역설적으로 이미 치료 효과를 보고 있는 환자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비급여로 약제를 꾸준히 복용해 증상이 크게 호전된 환자들은 최초 시점의 완벽한 서류 기록이 없으면, 현재 상태가 양호하다는 이유로 급여 전환 대상에서 제외되는 모순이 발생한다.결과적으로 환자가 급여 혜택을 받기 위해 일정 기간 치료를 중단하고, 증상이 다시 악화돼 기준 점수를 충족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비합리적인 상황이 유도된다. 실제로 자가면역질환 위주 임상 현장에서는 이러한 부작용이 지속적으로 보고돼 왔다.정부가 설정한 기준이 통제 편의성에 치우치면서, 성실하게 치료에 임해 건강을 회복 중인 환자가 오히려 행정적 불이익을 받는 모순적인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신약의 급여 적용은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고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급여 설계 단계에서 임상 현장의 실질적인 진료 환경과 기존 치료 환자들의 현실을 보다 유연하게 반영할 수 있는 보완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6-07-20 05:00:00기자수첩

망치를 든 정부와 두더지 의료정책

[메디칼타임즈=최선 기자] 관리급여 만큼 직설적인 제도가 있을까. 민간사업자의 의료서비스를 '관리'하겠다는 의중이 이토록 노골적으로 드러난 정책은 좀처럼 보기 드물다.관리급여는 정부가 비급여 남용을 막겠다며 꺼내든 카드다. 도수치료처럼 과잉 이용 우려가 있는 비급여를 건강보험 체계 안으로 편입해 가격과 이용 횟수를 관리하겠다는 것이 핵심. 문제는 취지를 이해한다고 쳐도 그 명분도, 정책 수단도 납득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복지부는 실손보험 손해율을 근거로 들었다. 일부 가입자의 과도한 도수치료 이용으로 보험사 부담이 커지고, 결국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져 선량한 가입자까지 피해를 본다는 것. 보험사의 손해가 결국 사회적 비용인 만큼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과연 그럴까.실손보험은 애초에 위험을 분석하고 이를 가격에 반영한 금융상품이다. 손해율이 높아지면 보험사는 보험료를 조정하고, 자기부담금을 높이거나 보장 범위를 바꾸고, 새로운 상품을 출시하며 시장에서 균형을 찾는다. 실제 실손보험도 1세대에서 4세대까지 손해율 변화에 맞춰 구조를 지속적으로 바꿔왔다. 치료 제한을 위해 보험사들이 약관과 다른 무리한 소송을 자구책으로 내세운다는 소식도 심심찮게 들린다. 원칙적으로 보험사의 손익은 보험사가 책임져야 할 영역이다. 손해율이 높아졌다고 민간보험의 손실을 공적 규제의 명분 삼아 의료서비스를 직접 관리하겠다고 나선 것은 정책의 주체와 대상이 뒤바뀐 것처럼 보인다. 금융당국이 보험료 조정이나 상품 개편을 유도했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보건당국이 상품이 아닌 의료서비스의 공급과 가격, 이용량을 직접 통제하겠다는 발상은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도수치료 남용과 보험사기, 과잉진료를 방치하자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의사의 의학적인 판단과 소비자의 수요를 위축시키고 의료기관의 자율성과 경쟁을 제한하면서 얻는 사회적 편익이 더 크다는 건 무엇으로 입증할 것인가. 그런 엄정한 검증없이 민간보험의 손해를 사회적 손실로 규정, 시장에 개입하겠다는 논리는 의료기관을 '관치'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나오기 힘들다.보건당국의 선의를 믿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그들이 만든 구조적 원인에는 유독 관대한 모습을 오랫동안 봐 왔기 때문이다.건강보험 수가는 원가에 못 미친다. 보험 진료만으로 적자 상태에 빠진 의료기관 사례는 차고 넘친다. 충분치 않은 급여 보상 속에서 의료기관이 비급여로 경영을 보완하려는 유인이 생긴 것은 정부 정책이 만든 결과이기도 하다. 때려 잡겠다는 과잉과 남발을 빚어낸 건 결국 행정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뜻.치료 남용이 문제라면 보험사기와 과잉진료를 단속하면 된다. 손해율이 문제라면 보험사가 상품을 개편하면 된다. 저수가로 인한 의료기관의 비급여 의존 및 행위량 부풀리기가 문제라면 수가체계를 손보면 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구조적 왜곡은 그대로 둔 채 관리급여라는 손쉬운 처방을 내놓았다. 원인은 놔둔 채 결과만 규제하는 건 오진이다.의료정책은 어느새 두더지 잡기 게임을 닮아간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원인을 고치기보다 눈앞에 드러난 현상부터 때려버린다. 비급여가 늘면 비급여를 규제하고, 검사 이용이 늘면 검사 기준을 강화한다. 왜 그런 행태가 반복되는지, 어떤 제도가 그런 유인을 만들었는지는 좀처럼 돌아보지 않는다.문케어를 통해 CT·MRI 급여를 대폭 확대하며 의료 접근성을 높이겠다고 했던 그 정부가 재정 부담이 커지자 최근 CT·MRI를 '과보상'이라며 새 타깃으로 설정했다. K-제약·바이오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선정, 마중물을 붓겠다던 그 정부가 슬그머니 제네릭의 약가 산정률을 53.55%에서 45%로 낮추는 개편안을 내놓기도 했다. 문제가 생기자 자아비판 대신 망치를 휘두른 셈.원인을 그대로 둔 채 결과만 통제하는 정책은 또 다른 왜곡을 낳는다. 관리급여 시행을 앞두고 벌써 도수치료 축소로 물리치료사의 대량 실직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도수치료 접근성이 떨어지고 국민 불만이 커질 때, 더 이상 물리치료사를 구하기 어려워지는 시기가 올 때 정부는 어떤 규제로 새로운 두더지를 내려칠 것인가. 눈 가리고 휘두르는 망치질에 누더기 정책이 되지 않길 빌어볼 수밖에.
2026-07-13 05:00:00기자수첩

관리급여와 썩은 손가락

[메디칼타임즈=이인복 기자]"대학병원 교수가 신은 아니잖아요? 14번을 다른 곳에서 치료하다 결국 대학병원까지 온 환자를 딱 한번만에 완치시키라는 얘기인가요?"국내 굴지의 대형병원 교수의 말이다. 정부가 이른 바 '관리급여'라는 새로운 규제 절차를 신설하면서 의료계를 넘어 사회적으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진료비 폭증을 막기 위해 수가를 일률화하고 주 2회, 연 15회로 횟수를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도수치료에서 시작된 이 제도는 신경차단술과 온열치료 등 이미 다른 치료를 조준하고 있다. 의료계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는 이유다.물론 정부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도수치료는 이미 수년전부터 비급여 진료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실손보험과 맞물린 과잉진료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일부 의료기관의 부도덕한 사례들이 공개되며 사회적 문제로 번지기도 했다.배경이 어떠하든 진료비 폭증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됐고 사회적 요구도 임계점에 다다랐다. 어떤 방식으로든 정부가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문제가 된 셈이다.문제는 방식이다. 이 치열한 논란 속에서 정부는 가장 쉬운 길을 택했다. 말 그대로 건수 자체를 토막내는 방식이다. 가장 원천적이지만 가장 획일적이다.중증환자도, 경증환자도 주 2회를 넘을 수 없다. 대학병원에 입원한 환자도 연 15회, 개원가에 걸어 들어간 환자도 연 15회다. 환자의 상태도, 질환의 특성도, 의료기관의 역할도 다르지만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오로지 단 하나의 틀에 갇힌다.이러한 획일적 규제는 결국 참사를 불러오고 있다. 이미 서울의 굴지 대학병원은 아예 7월부로 도수치료 운영을 중단했다. 이미 도수치료가 예정된 환자들도 대체 치료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중단 선언이다.빅5병원으로 꼽히는 모 대학병원도 교수 회의를 통해 대체할 방법을 찾고 있다. 이미 치료가 결정된 환자는 그대로 유지하되 새롭게 도수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은 다른 재활치료로 유도하는 방식이다.문제는 이러한 대학병원에서 도수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은 경미한 교통사고 등으로 동네 의원에 걸어가는 환자들과 완전히 결이 다르다는 점이다.이들 대부분은 중증 뇌졸중 등으로 거동이 불가능하거나 사지마비 등 중증 신경계 질환을 앓고 있다. 대학병원에서 밀려나면 연 15회건, 연 150회건 상관없이 단 한번도 도수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다는 의미다. 개원가에서 이 환자들을 받아줄리가 없기 때문이다.다음 관리 급여 후보로 제시되는 신경차단술 또한 마찬가지다. 신경차단술은 척추 신경 주변에 스테로이드를 직접 주입하는 위험도 있는 침습 시술이다. 특히 대학병원까지 찾아온 환자들은 이미 수차례 의원,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차도가 없거나 그곳에서 감당할 수 없어 전원을 보낸 사람들이다.같은 이유로 대학병원들이 신경차단술을 포기하는 상황이 오면 이들은 국내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잃게 된다. 가장 원천적이지만 가장 획일적인 규제의 그늘이다.정부는 이미 2019년 신경차단술 과잉진료와 진료비 폭증을 막기 위해 적정성 평가를 위한 기준을 마련하고 관련 연구 등을 통해 근거를 확보한 바 있다. 하지만 일부 의료계의 강한 반발로 세상에 나오지 못한 채 서랍에 잠들었다. 결국 그로부터 7년 후 관리급여라는 유례없는 규제 방안이 탄생했다.최근 의료의 트렌드는 정밀의료, 최소침습이다. 이미 정부와 의료계는 최소침습의 시기는 놓쳤다. 그렇다면 이제는 정밀하게 병변을 도려내는데 집중해야 한다. 함께 힘을 합쳐 문제가 되는 지점을 정확하게 겨냥하고 한방에 도려내야 한다.과잉진료가 문제라면 과잉진료를 줄여야 한다. 남용이 문제라면 남용을 막아야 한다. 하지만 재발을 막는다며 과도하게 메스를 들이대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의료계 또한 썩은 손가락은 빨리 잘라내야 한다. 그것도 그것도 내 손가락이라고 끝내 감싸안으면 결국 손을 잃고, 팔이 잘린다.
2026-07-06 05:00:00기자수첩

옐로스톤 늑대의 역설

[메디칼타임즈=김승직 기자] 1900년대 미국 옐로스톤 지역에서 정착민들이 목축을 시작하며 인근 늑대를 모조리 사살하는 일이 있었다. 늑대가 사라지면 민가가 습격당하거나 가축이 죽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에서다.결과는 참담했다. 천적이 사라진 초식동물이 폭증해 풀과 나무를 모조리 먹어 치우면서 숲은 황폐해졌고, 결국 생태계 전체가 붕괴했다.의사들이 작금의 정부 수가 개편을 반대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28일 '국민의 치료권, 의사의 진료권을 침해하는 관리급여 반대 궐기대회'를 열고 정부의 수가 개편과 비급여 관리 정책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이번 개편의 핵심은 과잉검사·치료를 줄여 의료비를 절감하고, 이 소아·분만, 중증·응급 등 필수의료 영역에 분배하겠다는 것이다. 즉 과보상은 깎고 저보상은 채우겠다는 취지다.저가치 의료 후보 지표로는 ▲영상 검사 ▲진단·선별 검사 ▲근골격계 시술·수술 ▲심혈관 검사 및 시술 ▲고위험·저가치 약물 사용 ▲암 선별 검사 ▲수술 전 평가 검사 등이 제시됐다.구호는 그럴듯하다. 정부 입장에선 과보상 영역이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위협하는 늑대로 보일 수 있다. 이 늑대를 잡아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를 살려야 한다는 데 이견을 가질 국민도 적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보호 계획 이면에 생태계 전체를 황폐하게 만들 독이 숨어 있다면 어떨까.현재 대한민국의 수가는 기본 진찰료나 수술비만으론 원가를 보전하기 힘든 기형적인 구조다. 그동안 일선 병·의원들은 기본 진료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검사 등 수익이 남는 영역에서 메우며 병원을 유지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관련 수가를 대폭 깎아버리면, 병원 전체 경영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의료계 입장에서 과보상이란 늑대는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한 안전 장치다.결국 과보상을 잡아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는 선택이, 필수의료를 제공해야 할 병원을 위험에 빠뜨리는 셈이다. 의료계가 이번 개편을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라며 반대하는 이유다.필수의료 분야 수가 인상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다른 진료과의 수가를 삭감해 이를 충당하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늑대를 쫓아내 초식동물을 보호한다고 숲이 정상화되지 않듯, 한쪽의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으론 전체 의료 인프라의 붕괴를 막을 수 없다.물론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 안에서 효율적인 분배를 고민해야 하는 정부의 고충은 이해한다. 만성적인 적자 구조를 개선하고 비정상적인 수가 체계를 바로잡는 것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하지만 생태계 전체에 미칠 나비 효과를 무시한 채, 일률적으로 재원을 뺏고 얹는 방식이 적절한지 의문이다.의료는 파이를 나누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필수의료를 살리는 길은 국민 생명을 지키기 위한 국가적 투자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별도 국고 지원 등 근본적인 대책 없이 내부 출혈 경쟁만 강요하는 것은 폭탄 돌리기에 지나지 않는다.정책의 성공은 현장의 수용성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선 한쪽에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의료 생태계 전반이 공존할 수 있는 상생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생태계의 균형을 외면한 채 단순히 늑대를 쫓아내는 인위적인 통제가 아닌, 숲 전체를 살피는 합리적인 수가 제도 정비를 기대한다.
2026-06-29 05:00:00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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