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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지질혈증보다 무서운 '스타틴 괴담'

[메디칼타임즈=김민건 기자] "스타틴은 독이다" "LDL 콜레스테롤은 낮출 필요가 없다."근래 온라인에서 확산하는 잘못된 의료정보 사례다. 수십 년간 축적된 임상 근거보다 자극적인 영상 하나가 환자의 치료 결정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다.문제는 이런 정보가 단순한 오해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약물 부작용에 대한 과도한 공포가 치료 거부나 임의 중단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이 발생하기 전에 위험을 낮추는 '1차 예방' 단계의 환자들에게 더욱 우려스러운 일이다.이상지질혈증은 특별한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당장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LDL 콜레스테롤 수치와 심혈관 위험인자에 따라 약물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튜브를 통해 약을 먹으면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는 주장을 접한다면 치료의 필요성을 의심하기 쉽다.아직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이 시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은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시작해야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약물치료를 미루는 동안 동맥경화가 진행될 수 있으며,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이 발생한 뒤에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는다고 해도 잃어버린 기회는 되돌릴 수 없다.진료 현장에서는 잘못된 의료정보 영향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가 의료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환자들이 언급한 잘못된 의료정보 출처로 유튜브를 꼽은 비율이 85.4%로 가장 높았다. 학회는 스타틴에 관한 허위정보가 치료 순응도를 떨어뜨리고 의료진에게 추가적인 설명 부담까지 안기고 있다고 지적했다.물론 스타틴에도 부작용은 있다. 근육통이나 혈당 상승 등이 나타날 수 있고, 환자 상태에 따라 용량 조절이나 약제 변경이 필요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일부 부작용을 근거로 스타틴 자체를 위험한 약으로 규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2022년 국제학술지 란셋에 발표된 대규모 임상시험 통합 분석을 보면 알 수 있다. 근육통이나 근력 저하를 보고한 비율은 스타틴 복용군 27.1%, 위약군 26.6%였다. 스타틴으로 인한 근육 증상이 실제로 발생할 수 있지만, 복용 중 나타나는 모든 근육통을 약물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는 의미다.의료정보라면 이러한 차이를 정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특정 부작용의 위험만 부각하면서 심혈관질환 예방 치료의 혜택을 외면한다면 환자는 균형 잡힌 판단을 하기 쉽지 않다.더욱이 유튜브에서는 전문적인 의학지식이 없는 사람도 건강정보를 생산하고 확산할 수 있다. 일부 연구 결과나 개인의 경험을 일반적인 의학적 사실처럼 전달하는 콘텐츠가 환자의 치료 판단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가 필요하다.의료계도 잘못된 정보에 대한 비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환자가 스타틴을 왜 복용해야 하는지, 실제 부작용은 어느 정도이며 어떻게 관리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야 한다. 학회와 정부, 온라인 플랫폼 역시 신뢰할 수 있는 의료정보가 환자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스타틴이 무조건 안전하다는 설명도, 무조건 위험하다는 경고도 아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치료의 이익과 위험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정확한 정보다.부작용을 과장한 영상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치료를 미루는 이유가 될 수 있다. 그 결과가 예방할 수 있었던 심혈관질환의 발생이라면 책임을 가볍게 볼 수 없다. 조회수를 위해 부풀린 공포가 환자의 예방 기회까지 빼앗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2026-10-26 05:00:00기자수첩

국가필수의약품, 확대보단 안정이 먼저

[메디칼타임즈=허성규 기자]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국민 보건상 필수적인 의약품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국가필수의약품 지정을 지속하고 있다.실제로 식약처는 지난 19일 신생아 호흡곤란증후군 치료제와 백혈병 치료제 등 8종을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신규 지정했다.의료현장의 수요와 공중보건상 필요성을 고려해 관리 대상을 확대하면서 의약품 공급 안전망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하지만 국가필수의약품 지정이 곧 안정적인 공급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실제로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된 이후 공급이 재개된 사례도 있지만, 여전히 공급중단이나 부족 사태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5년 8월까지 국가필수의약품 공급중단 보고는 총 147건에 달했다.특히 국가필수의약품 가운데 일부는 시장 규모가 작거나 수익성이 낮아 제약사들이 생산을 지속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실제로 공급중단 보고 147건 가운데 채산성 문제는 26건, 판매 부진은 22건으로 집계됐다. 경제적 요인으로 인한 공급중단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셈이다.제약사 입장에서는 원료 확보부터 제조시설 유지, 품질관리 등에 상당한 비용을 투입해야 하지만 수요가 제한적인 품목은 이를 감당하기 쉽지 않다.여기에 원료의약품의 해외 의존도가 높거나 공급처가 제한적인 경우에는 외부 환경 변화에 따른 공급 불안 가능성도 커진다.결국 국가가 필수적이라고 인정한 의약품이라면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생산이 중단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물론 정부 역시 국가필수의약품의 공급 안정화를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오는 11월부터는 기존 국가필수의약품 안정공급 협의회를 민관 공동 협의회로 확대·개편할 예정이다.그러나 공급 부족이 발생한 이후 대체 품목을 확보하거나 긴급 도입에 나서는 방식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이를 위해서는 품목별 생산 여건과 시장 규모, 원료 조달 구조 등을 면밀하게 살피고, 경제성이 낮지만 의료현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품목에 대해서는 적정 약가 보장이나 생산 인센티브, 공공 생산 지원 등 실질적인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의료환경 변화에 따라 새롭게 관리해야 할 의약품이 늘어날 수 있어 국가필수의약품 지정 확대 역시 필요하다.다만 이미 지정된 의약품조차 안정적으로 공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정 품목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국가필수의약품 지정은 공급 안정화를 위한 출발점이지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없다.국가필수의약품의 가치는 지정된 품목의 숫자가 아니라 필요한 환자에게 의약품이 끊김 없이 전달될 때 비로소 증명된다.
2026-10-23 12:00:00기자수첩

바이오 탈 쓴 에스테틱…검증은 제자리

에스테틱 산업이 바이오라는 이름으로 외연을 넓히고 있다. 국가 전략산업으로서의 가치와 글로벌 경쟁력은 강조되지만, 정작 제품의 안전성과 효과를 검증할 제도적 기반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지난 15일 국회에서 열린 '한·중 의료바이오산업 협력' 세미나에서도 이런 모습이 관측됐다. 양국의 의료바이오 협력을 논의하는 자리였지만 보툴리눔 톡신의 국가핵심기술 지정 해제 등 규제 완화와 의료미용 산업단지 조성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에스테틱이 의료바이오라는 이름으로, 국가 차원에서 육성·협력해야 할 산업 분야로 거론된 것.하지만 산업의 외연을 넓히는 것과 그에 걸맞은 검증체계를 마련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공교롭게도 식품의약품안전처 국정감사에서는 인체조직 유래 세포외기질(ECM) 스킨부스터의 규제 공백이 도마 위에 올랐다.현행법상 인체조직은 치료와 재건 목적의 이식재로 관리될 뿐, 단순 조직은행 설립 허가나 미국 FDA 시설 등록이 해당 제품의 미용 목적 안전성과 유효성까지 검증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일부 유통사와 의료기관이 'FDA 원재료 승인', '한국 식약처 허가' 등의 문구를 내세워 소비자의 오인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바이오 기술이 주는 인식과 정부 인허가라는 신뢰가 제품의 실제 효과를 보증하는 것처럼 둔갑해 활용되는 것. 식약처 역시 인체조직의 미용 목적 사용을 승인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지만, 현행법에는 관련 광고를 관리할 규정조차 미비한 실정이다.이 같은 문제는 기능성 화장품 시장에서도 확인된다. 식약처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PDRN 성분을 활용한 화장품의 허위·과장광고 적발 건수는 2023년 7건에서 올해 상반기에만 41건으로 늘었다. 이 중에는 엑소좀과 PDRN의 시너지를 내세워 의약품 수준의 피부 재생 효과를 강조한 사례도 포함됐다.바이오라는 이름이 실제 임상근거보다 소비자의 기대를 자극하는 마케팅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첨단 소재를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효과가 입증되는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가 이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물론 의료미용과 바이오산업의 결합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보툴리눔 톡신처럼 정식 의약품으로 허가받아 치료 목적으로 쓰이는 제제도 있고, 바이오 기술을 활용한 피부 재생과 조직 복원 역시 발전 가능성이 큰 분야다.하지만 임상적 근거도 없이, 첨단 소재라는 간판만 내건 제품들까지 바이오라는 범주로 한데 묶여 용인되는 방식이 적절한진 의문이다.사람의 신체에 직접 적용하는 의료미용의 특성상 철저한 검증과 관리는 필수다. 의료미용을 바이오산업으로 육성하려면 소재의 특성과 사용 목적,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세밀한 안전성 평가 기준부터 마련해야 한다.불명확한 규제는 환자 안전뿐 아니라 기업의 경쟁력도 위협한다. 의학적 근거를 확보한 제품과 홍보에만 의존하는 제품을 구분할 기준이 없다면, 기업의 연구개발 의지가 꺾이고 산업 전반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의료미용의 글로벌 진출과 산업 육성은 필요한 과제다. 하지만 바이오산업 육성이라는 구호가 부실한 검증과 과장된 마케팅을 가리는 가림막이 돼선 안 된다. 산업적 가치에 걸맞은 의학적 책임이 뒷받침되는, 기술이 홍보가 아닌 근거로 평가받을 수 있는 합리적인 제도 정비를 기대한다.
2026-10-21 05:30:00기자수첩

마케팅과 허가 기준 사이, 메워야 할 괴리

[메디칼타임즈=문성호 기자]비만 치료제 시장이 역대급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된 GLP-1 계열 신약까지 가세하며 처방 경쟁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하지만 이들의 마케팅 이면을 들여다보면, 진료실의 의사들과 환자들은 늘 해묵은 딜레마와 마주한다. 바로 국내 의학계의 진단 기준과 보건당국의 의약품 허가 기준 사이에 '구조적 괴리'다.이번 한미약품의 '에페(에페글레나타이드)' 출시 국면에서도 이 엇박자는 어김없이 고개를 들었다. 제약사는 대외적으로 철저한 준법 경영과 안전 사용 가이드를 외치며 선을 긋고 있지만, 막상 일선 마케팅 현장에서는 한국인의 신체 특성에 맞춘 '1단계 비만(BMI 25~30)' 구간의 유효성을 내세울 수 밖에 없다.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우리나라 비만학회가 정한 공식 진단 기준은 'BMI 25 이상'인데, 식약처의 의약품 허가 잣대는 여전히 글로벌 기준인 'BMI 30 이상(또는 동반질환이 있는 BMI 27 이상)'에 묶여 있다. 아시아인·한국인은 서구권에 비해 체지방률이나 만성질환 위험도가 낮지 않아 BMI 25부터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 임상 현장의 목소리다. 하지만 제약사는 마케팅에서 이를 파고들고, 진료실의 의사들은 '치료는 해야 하는데 허가 기준은 높고' 사이에서 줄타기를 강요받는다.사실 이 같은 '기준의 덫'은 비단 비만 치료제만의 문제가 아니다. 항암제부터 희귀질환 치료제, 만성질환 스페셜티 의약품에 이르기까지 국내 보건의료 현장 곳곳에는 글로벌 스탠다드나 낡은 규제 잣대에 발목이 잡혀 '실질적인 임상 현장의 필요성'을 외면당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임상 현장은 시시각각 변화하고 환자들의 질병 양상도 진화하는데, 규제와 제도는 여전히 과거의 틀이나 일률적인 글로벌 기준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신약이 출시될 때마다 마케팅과 규제 사이의 불협화음이 반복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혼선을 떠안는 일선 의료진과 환자들의 몫으로 돌아간다.이제는 보건당국과 제약업계, 그리고 의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에 나서야 한다. 마케팅 공방이나 소모적인 오프라벨 논란을 탓하기에 앞서, 한국인 환자의 질병 특성과 진료 현장의 처방 현실을 유연하게 담아낼 수 있는 합리적인 가이드라인과 제도적 보완이 절실하다.진료실의 의사가 떳떳하게 환자를 살피고, 혁신 신약의 가치가 제대로 발휘될 수 있도록 '기준의 빗장'을 현실에 맞게 고쳐 잡을 때다.
2026-10-19 05:00:00기자수첩

숙제만 잔뜩 남긴 복지위 국감

[메디칼타임즈=김민건 기자] 올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답보다 숙제가 더 많이 남았다. 의료 현장의 오랜 문제가 다시 등장했고,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도 드러났다. 정부는 개선을 약속했지만 현장에서 언제, 어떻게 달라질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가장 무거운 숙제는 필수의료다. 아주대병원 소아응급센터 압수수색 논란에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경찰청과 협의해 수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피해자 권리 보장과 응급의료체계 보호가 실제 현장에서 양립할 수 있는 해법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지난 8월 복지부로 이관된 지역 국립대병원 역시 부산대병원 의사직 충원율이 77.5%(정원 1380명 중 1070명)에 그치는 등 필수의료 현장이 녹록지 않았다. 정부가 내놓은 채용 자율성 확대와 인건비 지원이 지역 내 인력 빼오기에 그치지 않으려면, 인력 유출과 맞닿은 비급여 관리 역시 관리급여 전환에 따른 풍선효과를 막아야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환자 접근성과 직결된 과제도 남았다. 희귀질환 치료제 등재기간 단축 시범사업의 경우, 심사기간뿐 아니라 허가 후 급여 신청까지 환자가 기다리는 전체 기간을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에 정 장관이 통계적 관리 검토를 약속했다. 정식 도입을 추진 중인 임신중지 의약품 또한 처방 기관, 투약 후 관찰 기준, 건보 적용 등 현장의 혼란을 막을 구체적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정부의 관리·감독 능력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의약품 판촉영업자(CSO)는 조사대상 2만여 곳 중 첫 실태조사 응답률이 약 2%(396곳)에 그쳤고, 위탁계약 자료 약 98만건도 표준화되지 않아 분석에 한계를 보였다. 특수관계 간납사를 통한 이익 집중과 불투명한 유통구조 문제 역시 오는 12월 실태조사와 내년 초 관리 방안 마련이 예고됐지만 기존 규제의 한계를 어떻게 넘어설지가 관건이다.안전관리 체계도 허점을 노출했다. 처방이 급증한 비만치료제 위고비·마운자로는 향정신성 식욕억제제와 병용 시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의 효능군 중복 경고가 울리지 않았고, 코로나19 당시 닥터나우를 통해 약 113만건 이뤄진 비대면진료 약 배송도 복약지도와 안전성 평가 자료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약 배송 제도화는 의견 수렴 단계라지만 과거 경험에 대한 면밀한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특히 인체조직을 미용 목적으로 쓰는 ECM 스킨부스터는 지난해 식약처 국감에 이어 올해 복지부·식약처 국감에서도 규제 공백이 도마에 올라, 지난 1년간 무엇이 달라졌는지 묻게 했다.법 개정이나 부처 협의가 필요한 사안도 있어 모든 책임을 정부에게만 돌릴 수는 없고, 국회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날카로운 질의로 정부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은 국정감사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러나 지난해 지적한 문제가 올해도 반복됐다면 의원들 역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오는 2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종합감사가 열린다. 앞선 감사에서 드러난 문제들은 결코 가벼운 숙제가 아니다. 국회는 같은 지적을 되풀이하기보다 구체적인 이행 시간표를 따져 묻고, 복지부는 '검토하겠다'는 원론적 답변을 넘어 실질적인 해법을 들고나와야 한다. 올해 국정감사가 지난해와는 달랐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 그 답을 보여줄 종합감사를 기대한다.
2026-10-16 05:00:00기자수첩

ECM '시체주사' 오명 벗으려면

[메디칼타임즈=김승직 기자] '시체주사'. 최근 인체조직 기반 세포외기질(ECM) 스킨부스터를 둘러싼 논란에서 등장한 표현이다. 사망자가 기증한 피부조직을 원료로 사용한다는 사실이 자극적인 명칭으로 소비되는 모습이다.실제론 기증받은 피부조직을 가공해 세포외기질을 활용하는 제품이지만, 이런 차이가 소비자의 불안까지 해소하진 못한다. 관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제품의 안전성과 윤리성을 둘러싼 논쟁도 커지고 있다.지난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이런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ECM 스킨부스터가 미용 목적으로 활용되면서도 의약품이나 의료기기에 준하는 안전성·유효성 검증을 받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인체조직의 비영리 원칙과 상업적 활용 사이의 괴리도 문제로 지적했다.이에 보건복지부 정은경 장관은 기존 조직이식과 구분되는 관리체계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협의해 관리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ECM 스킨부스터에 아무런 규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행 인체조직 관련 법령에 따라 기증자 적합성 검사와 조직은행 관리 등의 규제를 적용받는다.쟁점은 치료와 재건에 사용하던 인체조직을 가공해 피부 미용 목적으로 주입하는 경우에도, 기존 조직이식 중심의 관리체계를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다. 원료의 관리와 개별 제품의 안전성·유효성 검증은 구별해야 할 문제기 때문이다.이런 불확실성은 시장의 신뢰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쪽에선 인체조직의 오랜 임상 경험을 근거로 안전성을 강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시체주사'라는 자극적인 표현으로 위험성을 부각한다.여기에 피부 재생과 탄력 개선 등 효과를 강조하는 제품 홍보까지 더해지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선 무엇이 객관적으로 검증된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업체의 주장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명확한 기준이 부족한 상황에서 제품에 대한 평가가 과장된 홍보와 자극적인 논란에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이 이번 논란의 본질이다.규제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품의 가공 정도와 사용 목적에 따라 어떤 안전성·유효성 자료를 요구할 것인지, 시술받는 환자에게 원료의 출처와 부작용 가능성을 어디까지 설명해야 하는지 명확히 해야 한다.제품의 효능을 홍보할 때 사용할 수 있는 표현과 이상사례를 확인하고 관리하는 절차 역시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무조건 규제를 강화하거나 모든 ECM 제품을 의료기기로 분류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제품별 특성을 고려해 필요한 검증 수준을 정하고, 그 결과를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산업계에도 이런 기준은 필요하다. 관련 기업들이 제품 개발과 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지만,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반복된다면 충분한 근거를 확보한 제품까지 부정적인 인식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규제 기준이 불명확할수록 기업들이 쌓아온 임상 경험과 기술적 차별성을 객관적으로 평가받기도 어려워진다. 명확한 기준은 소비자를 보호하는 동시에 검증된 제품과 그렇지 않은 제품을 구분하고, 시장의 신뢰를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시체주사'라는 표현이 ECM 스킨부스터 시장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언어가 돼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이런 표현을 단순한 오해로 치부하는 것만으로는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제품의 안전성과 효과를 판단할 객관적 기준이 마련돼야 불필요한 불안도 줄이고 합리적인 선택도 가능해진다. ECM 스킨부스터 시장에 지금 필요한 것은 성장 가능성을 강조하는 홍보나 자극적인 논란이 아니라, 무엇이 검증됐고 무엇을 더 확인해야 하는지 분명히 하는 규제체계다.
2026-10-12 05:00:00기자수첩

크기보다 방향: 약가 인하의 생존법

[메디칼타임즈=허성규 기자] 국내 제약업계가 약가 인하와 매출원가 상승, 인건비 부담 등을 호소하는 가운데서도 올해 초부터 생산시설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이 같은 생산시설 투자는 단순히 생산량을 늘리는 데서 벗어나고 있다.수요가 늘어나는 품목에 맞춰 생산능력을 미리 확보하거나 자동화 설비를 도입해 제조 효율성을 높이는 등 생산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글로벌 시장 진출이나 수탁생산 등 새로운 사업 기회에 대응할 수 있는 생산 기반을 갖추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다.특히 에스티팜, 유한양행처럼 생산능력 확대가 실제 글로벌 수주로 이어지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선제적으로 확보한 생산 기반이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받아내는 경쟁력으로 연결되는 셈이다.다만 최근 기업들이 비용 절감과 사업 효율화에 나서는 상황에서 생산시설 투자가 이어진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기업들이 당장 필요한 생산량뿐 아니라 향후 시장 변화와 사업 기회까지 염두에 두고 생산 기반을 미리 갖춰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결국 약가 인하 시대에 생산시설 투자를 바라보는 기준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얼마를 투자했는지, 생산능력을 얼마나 늘렸는지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생산하기 위해 투자했는지, 실제 수요가 있는지, 확보한 생산능력을 얼마나 빠르게 수주와 매출로 연결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지는 상황이다.특히 약가 인하가 본격화될수록 제조원가를 낮추는 능력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같은 제품을 같은 가격에 판매하더라도 생산 효율성과 수율, 자동화 수준에 따라 실제 수익성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의약품을 제조·공급하는 제약사에게 생산은 결국 본업의 핵심이고, 그 생산 경쟁력이 사업의 기본이 될 수밖에 없다.공장을 짓는다고 해서 생산시설의 가동률이 저절로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시설을 확보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시설을 무엇에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이다. 약가 인하와 비용 상승이라는 부담 속에서도 생산시설 투자를 이어가는 제약사들이 결국 어떤 성과를 만들어낼지는 지켜볼 일이다.투자 규모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곳에 생산능력을 확보하고 이를 실제 매출과 수익으로 연결하는 능력이 경쟁력을 가를 기준이 될 것이다.
2026-10-06 05:00:00기자수첩

임신중지약 원내조제, 법적 빈칸부터 채워야

[메디칼타임즈=김민건 기자] 정부가 임신중지 의약품 도입 시점을 2027년 1분기로 밝혔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현대약품이 허가 신청한 미프지미소정을 심사 중이다. 도입 초기 2년 동안은 의료기관에서 의사가 직접 처방·조제하는 방침이 정해졌다.이번 결정은 2019년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7년 넘게 정식 도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약을 언제 들여오느냐도 중요하지만 먼저 채워야 할 빈칸이 있다.문제의 출발점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여성의 자기낙태를 처벌한 형법 제269조 제1항과 함께 제270조 제1항 가운데 '의사'에 관한 부분만 헌법불합치로 판단했다.당시 청구인은 업무상승낙낙태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였고, 헌재의 심판대상 역시 제270조 제1항 중 '의사'에 관한 부분으로 한정됐다.형법 조문에는 지금도 의사와 함께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등이 적혀 있다. 이에 정부는 약사가 임신중지약을 조제할 경우 현행 형법상 처벌 가능성이 있다는 법무부 유권해석을 원내조제 방침의 근거 중 하나로 제시했다.정부가 초기 2년간 약국이 아닌 의료기관에서 의사가 직접 조제하도록 한 배경에 안전성 관리와 함께 이 같은 법적 논란이 깔려 있는 셈이다.그렇다면 의사가 외래 환자에게 임신중지약을 직접 조제할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인 약사법상 근거는 무엇인가. 현행 의약분업 체계에서 의사의 직접 조제는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만큼 어떤 법적 근거와 절차를 적용할 것인지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정부가 약사 조제를 제한하는 근거로 제시한 법무부 유권해석도 보다 분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형법 제270조 제1항의 법적 불확실성이 문제라면 해당 조항을 어떻게 정비할 것인지, 법 개정에 앞서 2년간 원내조제를 먼저 시행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해야 한다.안전관리 문제도 있다. 정부는 제약사가 제출하는 위해성관리계획을 토대로 의료계와 사용 지침을 만들고, 심평원의 의약품 유통보고를 통해 모니터링하겠다고 했다.하지만 한 의료기관에서 처방과 조제가 동시에 이뤄질 경우 환자 단위의 반복·중복 처방은 어떤 방식으로 걸러낼 것인지, 투약 이력과 이상반응을 실제 진료현장에서 어떤 체계로 관리할지 보다 구체적인 설계가 필요하다.정부는 원내조제 기간인 2년 동안 안전성을 살피고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 여부를 지켜본 뒤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다는 계획이다.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거나 안전성 우려가 확인되면 원내조제 기간을 연장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무엇을 기준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갈지, 연장 여부는 누가 어떤 절차로 판단할지 명확히 정해둘 필요가 있다. 임신중지약을 둘러싼 논쟁은 오랫동안 찬성과 반대에 머물렀다. 이제는 조금 다른 질문을 해야 한다.약을 들여올 것인가를 넘어 형법과 모자보건법 정비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들어오는 약을 누가, 어떤 근거로 조제하고 어떻게 안전하게 관리할 것인가다.
2026-09-28 05:00:00기자수첩

비만약 오남용 지정, 진정한 시험대

[메디칼타임즈=문성호 기자]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이달 내로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와 마운자로(터제파타이드) 등 GLP-1 계열 비만 치료제를 '오·남용 우려 의약품'으로 최종 지정하기 위한 절차에 마침표를 찍겠다고 한다. 정상 체중조차 '미용 목적'으로 투여하는 왜곡된 처방 행태에 제동을 걸겠다는 취지에서다.방향성은 타당하다. 보건당국이 사회적 경각심을 울리고 오남용 방지 테두리를 치겠다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제약바이오 업계와 의료계의 시선은 이미 그다음 스텝을 향하고 있다. 이번 조치가 단발성 '보여주기식 행정'에 그칠지, 아니면 일관된 규제 원칙의 시발점이 될지 가늠할 진짜 시험대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당장 코앞에 닥친 첫 번째 관문은 곧 가시화될 '국내 개발 신약'을 향한 잣대다.현재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는 토종 비만 신약들의 막판 허가를 앞두고 기대감이 적지 않다. 비만 치료제 시장의 새로운 대안으로 기대를 모으는 국산 품목 역시 약리학적 기전이나 오남용 위험성 측면에서 해외 다국적사 제품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향후 허가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한미약품 '에페(에페글레나타이드)' 등 국산 신약들에 대해서도 식약처가 지금과 정확히 동일한 잣대와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을지 말이다. 만약 '산업 육성'이나 '토종 프리미엄'이라는 명목 아래 규제의 무게추가 헐거워진다면, 그간 식약처가 강조해 온 국민 건강권 보호라는 명분은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규제의 잣대에 국경이나 출신이 개입될 여지는 없어야 한다.여기에 변수는 더 남았다. 주사제의 불편함을 극복할 차세대 경구용 비만 치료제, 즉 알약 형태의 먹는 GLP-1 제제들의 국내 도입 역시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릴리의 '파운데요(오르포글리프론)'나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필(경구용 세마글루티드)' 등 글로벌 제약사들의 경구제 도입도 이미 가시권에 와 있다.알약 형태로 복용 편의성이 극대화되는 경구제 시대가 열리면, 지금의 주사제 형태보다 오남용의 문턱은 훨씬 낮아지고 시장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주사제일 때는 오남용 우려 의약품으로 강하게 묶어두고, 제형이 알약으로 바뀐다는 이유로 규제의 사각지대를 허용한다면 제도의 실효성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식약처의 이번 마운자로·위고비 오남용 지정은 마침표가 아니라 수많은 변수가 소용돌이치는 시작일 뿐이다.국산 신약 라인업과 경구제라는 파고 속에서, 식약처가 오직 '국민 안전'이라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일관된 규제 철학을 지켜나갈지 의료계와 시장이 지켜보고 있다.
2026-09-21 05:00:00기자수첩

의사에게 돌아온 CT·MRI 급여화의 청구서

[메디칼타임즈=이인복 기자]"예견된 미래였다. 획일적으로 급여권에 넣으면 검사가 폭증할 수 있다고 지적할때는 무시하더니 이제는 의사들이 남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안찍으면 소송당하고 찍으면 삭감당하게 생겼다."국내 굴지 대형병원 영상의학과장의 말이다. 정부가 마침내 CT와 MRI 등 고가 영상 검사 남용을 막겠다며 칼을 꺼내들었다.이미 검사를 진행한 환자에게 불필요하게 '중복 촬영'을 하면서 건강보험 재정이 무너지고 있는 만큼 정부가 바로잡겠다는 의지다.정부가 제시할 기준은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듯 하다. 30일 이내 재촬영이 이뤄졌다면 왜 검사를 또 했는지 의료진이 해명하는 방식이다.실제로 숫자만 보면 정부의 논리는 타당성이 있다. 지난해 이미 CT를 촬영한 환자가 다른 병원에 내원했을때 CT를 다시 찍은 비율은 26.8%를 기록했다. MRI 역시 22만명 중에 13.8%가 재촬영을 진행했다.여기에 들어간 건강보험 급여 비용만 650억원에 달한다. 이 금액이 타당한지 살펴보겠다는 것이 정부의 의지다. CT와 MRI를 실시간 의료 이용 관리 대상으로 두고 재촬영 비율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다.여기까지는 정부의 방향에 이의를 제기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보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정부는 이른바 접근성 향상이라는 목표로 의학계와 의료계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상 검사를 건강보험 급여권으로 편입시켰다.이렇게 되면 불필요한 검사가 많아지며 이용량이 폭증할 수 있다고 의학계와 의료계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부는 이를 묵살했다.결과적으로 급여 적용 이후 촬영 건수는 건강보험이 감당하기 힘들 만큼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로 인해 당초 척추 등까지 적용할 예정이었던 급여 확대 방안은 올스톱된 상황이다.불필요한 검사가 늘어날 수 밖에 없다고 수차례 경고했던 의학계와 의료계의 지적을 무시하고 급여권에 영상 검사를 밀어 넣은 뒤 불필요한 검사를 하고 있다며 이를 통제하는 정책을 내놓은 셈이다.의학계와 의료계가 우려하는 부분도 여기에 있다. 당장은 의료계의 반발을 고려해 재촬영을 고지하는 선에서 정책이 출발하더라도 결국 적성성 평가로 이어지고 삭감의 근거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결국 두가지 서로 다른 정책, 즉 영상 검사를 급여권으로 편입한 정책과 불필요한 중복 검사를 막겠다는 제도가 내포하는 문제는 단 하나의 근원으로 좁혀진다. 누가 이를 판단하는가에 대한 부분이다.이미 대한영상의학회나 대한자기공명의과학회 등 전문가 단체들은 무분별하게 검사를 진행하는 기관과 너무 오래된 기기를 사용하는 병의원을 퇴출 시키기 위해 다양한 자정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하지만 정부는 이미 한 차례 실패한 상황에서도 주도권을 정부가 갖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 검사가 추적 검사인지, 추가 검사인지, 중복 검사인지를 정부가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숙련된 전문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검사를 정부가 막아서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간다. 봐야할 것을 못 본 상태에서 진단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이제 공을 누구에게 줘야 하는지는 명확하다. 또 다시 패스하지 않은 채 나홀로 드리블을 한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가 없다.
2026-09-14 05:00:00기자수첩

경구용 신약의 이유 있는 '비급여 직행'

[메디칼타임즈=문성호 기자]최근 국내 제약바이오 시장을 관통하는 묘한 풍경이 있다. 글로벌 혁신 신약들이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인 '건강보험 급여' 논의는 뒷전으로 미뤄둔 채, 잇따라 '비급여' 시장으로 직행하고 있는 현상이다.실제로 편두통 치료 영역에서는 애브비의 '아큅타(아토제판트)'에 이어 화이자의 '너텍(리메제판트)'까지 경구용 신약들이 급여 논의는 제쳐두고 비급여로 국내 임상 현장을 빠르게 공략하고 있다. 칼시토닌 유전자 관련 펩타이드(CGRP) 수용체 길항제 계열의 이들 경구용 신약은 복용 편의성 측면에서 강점을 지녔지만, 온전히 경제적 부담은 환자가 안고 가는 형국이다.여기에 올해 하반기 국내 출시가 예상되는 에자이의 불면증 신약 '데이비고(레보렉산트)' 역시 마찬가지 행보가 예고되어 있다.이 같은 흐름은 신경질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노바티스의 만성 두드러기 신약 '랩시도(레미브루티닙)' 또한 상대적으로 고가의 비급여로 출시를 강행한 뒤, 현재로서는 "추후 급여 검토를 시작하겠다"는 원론적인 계획만 내놓은 상태다. 결국 당분간은 환자들의 온전한 비급여 부담이 불가피한 구조다.이전 같았으면 신약 출시와 동시에 급여권 진입을 위한 치열한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을 터다. 하지만 어쩌다 이들은 보험 급여라는 '정석 코스'를 마다하고 비급여라는 우회로를 택하게 된 것일까.근본적으로는 국내 급여 제도의 높은 장벽, 특히 경제성평가 과정에서 발목을 잡는 '대조약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현행 제도 아래서는 현실성 있는 약가를 보장받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여기에 글로벌 본사의 약가 정책 등 복합적인 대외 변수들까지 맞물려진 결과다.문제는 이러한 비급여 장기화의 고통이 온전히 환자 몫으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실제로 만성 두드러기 분야의 경우 기존 '졸레어(오말리주맙)'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항히스타민제와의 대조약 설정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국내 허가 이후 여전히 비급여 늪에 머물러 있는 전례가 있다. 혁신 신약이 나와도 그림의 떡인 셈이다.제약사들도 할 말은 있다. 급여 적정성 평가의 문턱을 넘지 못해 수년째 발이 묶이느니, 차라리 비급여로 빠르게 시장에 진입해 치료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 타당하다는 논리다.하지만 비급여 공략이 대세가 될수록 환자들의 경제적 양극화와 치료 소외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와 제약사 모두 환자가 '돈이 없어서 약을 못 먹는' 비극을 방치해선 안 된다. 실효성 있는 약가 제도 개선과 유연한 급여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시점이다.
2026-09-10 12:40:09기자수첩

헌신에 감사하지 않는 사회

[메디칼타임즈=김승직 기자] 정부가 공정과 상식을 외치는 것과 반대로 우리 사회는 점점 이 기치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동안 사회는 누군가의 헌신 위에서 성장해 왔지만, 오늘날엔 이런 희생을 강요하는 분위기다. 감사한 일에 감사하지 않는 것이 공정과 상식인가.최근 한 국회의원이 군의관 복무 단축 요구를 두고 한 발언이 그 예다. 군의관 복무 단축 요구는 의사가 소명의식을 내팽개치고 돈을 벌기 위함이라는 취지였다.이후 대한의사협회, 서울특별시의사회 등 의사단체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졌고, 해당 국회의원은 정제되지 못한 표현이었다며 사과의 뜻을 전했다. 현행 복무 기간이 과도한 점은 공감하지만, 관련 사안이 군의관 수급 문제의 핵심은 아니라는 취지였다는 설명이다.이렇게 논란이 일단락되는 분위기지만 씁쓸함은 남는다. 청춘을 바쳐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이들을 존중하기는커녕, 잠재적인 이기주의자로 매도하는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군의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국방의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의무를 다함에 있어 더 합리적인 선택지를 택하겠다는 것뿐이다.개인의 정당한 권리 주장을 소명의식 부재로 치부하는 잣대는 우리 사회가 누군가의 희생을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지 보여준다.이처럼 희생을 강요하고 헌신을 당연시하는 현상은 사회 전반에 퍼져있다. 개인의 사명감과 헌신에 기대온 필수의료 현장이 붕괴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교권 추락과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무너진 교육 현장도 마찬가지다. 나아가 소방·경찰 등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주요 기반 분야에서도 인력 이탈이 가속하는 실정이다.물론 정부는 국가 주요 기반 시설과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만큼, 비용을 따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과 정당한 보상이 아닌, 개인의 희생과 헌신에만 기대는 구조는 지속 불가능하다.이는 사회학에서 경고하는 사회적 자본 붕괴와 닿아 있다.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상호 신뢰와 호혜성 같은 사회적 자본이 무너질 때 공동체가 위기를 맞는다고 지적했다. 누군가의 헌신을 존중하기는커녕, 이를 누리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는 사회에선 어떤 공적 동기도 싹틀 수 없다는 의미다.조직심리학자 애덤 그랜트가 말한 조직 내 상호성의 원리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타인의 헌신을 당연하게 소비하는 조직에선 결국 기여하는 사람부터 지쳐 떠나고, 공동체 전체의 활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누군가의 헌신은 타인이 함부로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땀 흘리는 이들이 없다면, 모두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은 단 하루도 유지될 수 없다. 당장 아낀 헌신의 대가는 언젠가 더 큰 파국으로, 이자까지 붙어 돌아올 것이다.공정과 상식은 누군가에게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명분이 아니다. 헌신에는 존중을, 책임에는 합당한 보상을 돌려주는 것이야말로 공정이고 상식이다.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그에 따른 권리 주장에 이기주의라는 낙인을 찍는다면, 과연 누가 기꺼이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내어놓겠는가. 누군가의 헌신을 당연하게 소비하는 사회가 아니라, 헌신이 존중받기에 누구나 기꺼이 공동체를 위해 나설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2026-09-07 05:00:00기자수첩

비만신약과 발기부전약

[메디칼타임즈=박상준 기자]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5월 5일 GLP-1 계열 비만치료제(리라글루티드, 세마글루티드, 터제파타이드 함유제제)를 오·남용우려의약품으로 지정하겠다며 행정예고를 낸 이후 감감무소식이다. 당초 의견수렴 마감은 6월 26일. 7월로 예고됐던 고시는 석달째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다.오남용 지정 명분은 명확했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기적의 다이어트 주사'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의학적 적응증과 무관한 미용 목적 처방이 급증했다. 해외 직구와 개인 간 거래, 일본 등지로의 원정구매까지 늘었다. 정호 식약처 의약품관리과장이 직접 나서 추진 상황을 설명할 정도로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식약처 규제영향분석서에 담긴 숫자를 보면 왜 이 사안이 무겁게 다뤄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국내 수입금액은 2024년 1699억원에서 2025년 1조709억원으로 6.3배 뛰었다. 시장이 이렇게 크는 동안 정부가 저울질한 건 표시자재 교체비용 2400만원이었다. 공익적 편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자평하면서도, 결론은 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왜그럴까?일단 학회는 오남용약 지정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대한당뇨병학회는 지난 6월 29일 성명에서 정부 취지에 공감한다고 밝혔고, 대한비만학회도 대체로 찬성 입장이다. 다만 학회들은 전문가 협의체 구성, 의학적 적응증에 근거한 처방기준 마련, 불법유통 단속 강화, 치료환자에 대한 공급안정성 확보, 정확한 정보제공, 그리고 급여화 논의 병행 등을 보완책으로 제시한 상태다. 대한비만학회는 학회로서는 처음으로 기자들 앞에 서서 이 문제를 거론했다. 그러면서 오남용의약품 지정이 계속 보류되고 있는데, 이것이 적정 관리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고 애둘러 말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지정이 미뤄지고 있는지는 주요 학회인만큼 잘 안텐데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는 않았다. 4개 학회가 모여 앞서 10가지 보완책을 정리해 전달했다고만 했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많은 전문가가 접근성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학회들도 가장 큰 핵심 안으로 지정 이후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일, 즉 접근성에 대한 해답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발기부전치료제는 별 잡음 없이 오남용우려의약품으로 지정됐다. 만성질환과 무관했기 때문이다. 반면 비만은 대사이상질환이다. 약을 끊으면 체중만 되돌아오는 게 아니라 당뇨, 심혈관질환으로 이어지는 병의 궤적 자체가 바뀐다. 청소년 처방 기준까지 이미 세밀하게 나뉘어 있는 약이다. 지정 이후 처방·유통이 까다로워져 정작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약을 구하지 못하면, 규제가 막으려 한 문제보다 규제가 만든 문제가 더 커진다. 정부가 신중해야 할 지점은 정확히 여기다. 즉 학회가 우려하는 건 규제의 유무가 아니라 규제의 부작용이다.프로포폴은 향정신성의약품에 준하는 강력한 규제를 이미 걸어놨다. 그런데도 오남용은 끊이지 않는다. 지정이라는 딱지 한 장이 오남용을 막아주지 않는다는 증거가 이미 국내에 있다. 규제 강도와 오남용 근절 사이에 정비례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또 한 번 라벨을 붙이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려 한다. 일본은 이 문제를 라벨이 아니라 급여로 풀었다. 비만치료제를 건강보험 급여체계에 편입시키자 가격이 낮아졌고, 비만을 질병으로 보는 사회적 인식 자체가 바뀌었다. 비급여 시장에서 "대수롭지 않게 처방해도 되는 약"이라는 인식이 자란 한국과는 출발선이 다르다.여기에 거버넌스 문제도 겹친다. 오남용 지정은 식약처 소관이지만, 급여화는 복지부 소관이다. 학회가 요구하는 수가지 중 절반 이상이 식약처 혼자서는 답할 수 없는 항목이다. 두 부처가 각자의 소관 안에서만 움직이는 동안, 문제는 부처 사이 틈으로 빠진다. 이런 구조에서 지정 여부만 붙들고 있어 봐야 답이 나올 리 없다. 식약처와 복지부가 지금 붙들고 있는 것은 지정 여부가 아닐 것이다. 지정 이후 치료 접근성을 어떻게 지킬지에 대한 답이 없을 뿐이다. 답이 없으니 지정을 미루고, 미루는 사이 시장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진다. 합리적인 해법을 풀기 어렵다면 비만도 질병이라는 문제로 좀더 빠르게 접근해 급여도 정답이다.
2026-09-07 05:00:00기자수첩

외통수 걸린 제약업계

[메디칼타임즈=허성규 기자] 제약바이오업계를 취재하다 보면 의약품의 '허가'와 '급여'를 둘러싼 고충을 반복해서 마주하게 된다.의약품이 시장에 나오기까지 제약사가 넘어야 할 벽은 하나가 아니다.막대한 시간과 자본을 들여 개발한 신약도 우선 허가라는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허가 이후에는 더 높은 벽이 기다린다. 바로 '급여'다.단일 보험자 체계인 한국 의료 시장에서 급여권에 든 의약품과 그렇지 못한 의약품의 간극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중증·만성질환 치료제 시장에서 '비급여'는 결코 지속 가능한 대안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피부·미용이나 비필수 영역과 달리, 항암제와 희귀난치질환 치료제의 경우 급여권에 진입하지 못하면 시장 확대에 상당한 한계가 생긴다. 높은 약가를 환자가 온전히 부담해야 하는 만큼, 비급여 상태에서는 처방 확대에도 한계가 따른다.아무리 많은 비용을 들여 뛰어난 효능을 입증해도 급여 문턱을 넘지 못하면 출시와 동시에 성장의 한계가 닫혀버리는 셈이다.낮은 약가를 견디지 못해 비급여 출시를 택했던 제약사들이 결국 다시 급여권의 문을 두드리는 이유다.하지만 급여권 진입에 성공해도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진입 과정에서부터 경제성평가와 까다로운 위험분담제(RSA) 등을 거치며 원하는 약가를 받기 어렵다.진입 이후에는 사용량-약가 연동제, 해외 약가 비교 재평가, 실거래가 조사 등 촘촘한 약가 인하 기제가 연이어 쏟아진다. 특히 이번 약가제도 개편처럼 예상치 못한 순간 단행되는 조치로 인해, 오랜 기간 쓰여온 의약품마저 채산성에 큰 타격을 입는다.그렇다고 채산성이 떨어졌다고 해서 공급을 중단하기도 어렵다. 의료 현장의 필수성과 공공적 책임 때문에 철수조차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결국 제약사는 비급여를 선택할 수도 없고, 급여권에 진입해도 안심할 수 없는 '외통수'에 갇혀 버렸다.이러한 약가 인하가 반복되면 기업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던 품목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이는 미래 R&D 재투자 여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건강보험 재정 안정을 위해 약가를 관리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다만, 혁신 치료제가 제 가치를 인정받고, 그 수익이 다시 신약 개발로 이어지는 선순환 생태계 조성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단순히 약가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닌, 기업이 재투자를 이어갈 수 있는 예측 가능하고 합리적인 '적정 가치'를 인정하는 정책적 결단이 필요한 때다.
2026-08-31 05:00:00기자수첩

인간적인 AI와 3류 인간

[메디칼타임즈=최선 기자] 다양한 컨벤션, 전시회를 취재하면서 'AI 천하'를 실감한다. 의료기기 전시회든, 의학 관련 학술대회든 '인공지능'이란 키워드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기 때문이다. 행사의 성격이나 주제 등 겉보기만 다를 뿐 어떤 형태로든 인공지능이 주인공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흥미로운 건 현실 세계 곳곳에 AI가 도입, 활용되는 단계에 접어들면서 과연 AI가 인간을 대체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 조금씩 희석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코엑스에서 개최된 국제병원의료산업박람회(KHF 2026)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봤다.진단이나 치료에서 주로 사용될 것이란 인식과 달리 AI는 실로 광범위한 임상 영역에서 활용된다. 전시장 곳곳을 서빙 로봇이 돌아다니는가 하면 임종을 앞둔 환자를 위한 가정용 AI 호스피스 서비스도 개발됐다. 호스피스 AI는 태블릿을 통해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면 AI 간호사가 등장, 환자의 평소 상태와 의료진이 퇴원 시 설정한 처방 범위 등을 바탕으로 대응 방법을 안내한다.응급실의 접수와 초진 사이 공백을 줄이는 AI 문진·환자분류 솔루션은 물론 간호사를 위한 AI 스케쥴러도 개발됐다. 간호사의 근무 선호도와 역량, 필요한 인력 등을 설정하면 AI가 근무표를 생성한다. AI 근무표 도입 이후 조사 결과 근무표 작성 시간은 43%, 작성 부담은 74.5% 감소했고 근무가 공정하다는 인식은 65%로 나타났다.AI 음성인식 기술로 실시간 간호기록을 입력·인증·저장하는 전자간호기록 서비스도 실제 임상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다. 서비스 도입 후 인식 설문 결과 환자 안전 사고 예방을 위해 이를 사용한다는 비율이 업무의 효율성 향상을 위해 사용한다는 응답에 두배에 달했다.초기에 업무의 효율성과 편리함을 위해 AI 서비스가 도입됐지만 지금은 오히려 AI가 수고로움을 대신해준 덕택에 간호 시간이 늘어났고 이는 다시 환자 안전 강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됐다는 게 사용자들의 전언이다.AI가 인간의 일을 빼앗는 게 아니라, 인간이 남긴 경험을 보존하는 경우도 있다. 고려대의료원의 RAG 챗봇은 선임 간호사의 노하우를 AI에 담았다. 후배 간호사가 궁금한 것을 묻으면 AI가 축적된 현장 지식을 찾아준다. 사람을 밀어내는 AI가 아니라, 사람의 경험이 사라지지 않게 하는 AI다.적어도 임상 현장에서 만큼은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인간이 하기 힘들어 방치됐거나 인간의 수고로움이 필요했던 영역, 개인의 희생과 열정에만 의존해야 했던 그런 빈틈을 채우고 있다는 판단이 든다. AI 사용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우려는 기우에 가깝다는 것. 오히려 AI가 인간의 개입이 필요했던 빈틈들을 채우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다운, 너무나 인간적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그런 의미에서 AI를 바라보는 관점과 방향은 다소 수정될 필요가 있다. 일자리 대체 가능성을 두고 논쟁이 지속되는 사이에도 병원 내 태움 문화 등 일자리를 떠나게 만드는 건 오히려 '인간'이었던 사례를 수도 없이 봐 왔기 때문이다.인간을 도구로 보는 공감 능력이 결여된 소시오패스, 기계적인 인간에 의해 자행되는 괴롭힘으로 누군가는 공황장애를 앓았고, 누군가는 항우울제까지 먹으며 버텼다는 괴담에 가까운 이야기를 듣고 또 봤다. 3류 인간들에 의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례는 여전히 차고 넘친다.어쩌면 AI 시대의 진짜 경쟁자는 AI가 아닐지도 모른다. 가장 두려운 것은 인간의 자리를 빼앗는 AI가 아니라, 인간의 자리에서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인간일 수 있다. 그런 까닭에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다소 불편한 질문이 남는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AI 시대에 비인간적인, 너무나 기계적인 인간들을 어찌할 것인가."
2026-08-24 05:00:00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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