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정사태 이후 사직 전공의가 '방문진료' 택한 이유는
[메디칼타임즈=김승직 기자]의정 사태로 전공의들이 떠났다는 세간의 비판과 달리, 많은 전공의가 대학병원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환자 곁을 지키고 있다. 의사와 환자, 정부 사이의 신뢰가 급속히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들 사이에서 "의료의 본질은 환자를 끝까지 지켜보는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메디칼타임즈는 전공의 사직 후 정다운재택의료센터에서 방문진료를 하고 있는 장재영 씨를 만나, 그가 방문진료를 택한 이유와 현장에서 마주한 현실, 그리고 앞으로의 고민을 들어봤다.메디칼타임즈는 전공의 사직 후 정다운재택의료센터에서 방문진료를 하고 있는 장재영 씨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병원 대신 지역사회 향한 전공의…왜 방문진료인가서울대병원 전공의였던 장재영 씨는 의정 사태로 사직한 이후 지역 방문진료를 택했다. 정부의 일방적 정책에 대한 저항과 함께 전인적 진료가 어려운 현 의료 시스템의 한계를 느끼면서다. 그는 의대 시절부터 방문진료 봉사 동아리 활동을 해왔는데, 이때부터 환자를 보는 것에 있어 전인적 접근의 필요성을 깨달았다는 것.장씨는 "현 체계에선 자신이 속한 분야엔 매우 높은 전문성을 갖출 수 있지만, 분절화된 의료체계 안에서 환자를 통합적으로 진료하는 것에 한계가 느껴졌다"며 "내과만 봐도 그 안에서도 소화기내과 분과가 있고, 그 안에서도 위장관만 다루거나 그중에서도 위식도역류질환만 연구하는 식이었다"고 설명했다.이어 "이런 구조에선 자신이 전공하지 않은 분야에 대해 방어적인 진료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사람이 아픈 것은 단순히 신체 기능의 문제만은 아니다"라며 "환자의 사회·경제적 배경이나 유전적 요인, 혹은 일시적인 환경적 어려움까지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런 복합적인 요소들을 함께 바라보는 전인적 접근을 추구하고 싶었다"고 전했다.지금 같은 고도 분화된 의료체계에선 환자의 삶을 전인적으로 이해하고 치료하는 길이 제한적이라는 진단이다. 특히 지역사회 1차 의료를 책임지는 의사들이 통합적 시야를 갖지 못하면, 결국 환자 개개인에 대한 진료의 질도 낮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그가 강조한 건 '케어의 철학'이었다. 단기적인 치료를 넘어 환자의 삶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의료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가장 적합한 전공이 가정의학과였고, 가장 알맞은 현장이 방문진료였다는 것.그는 방문진료를 하며 마주한 현장은 병원 진료실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고 말했다. 병원에선 혈액검사 수치나 영상의학 결과 등 객관적 지표를 통해 환자의 호전 여부를 판단한다. 하지만 방문진료에선 환자의 식사량, 움직임, 표정 같은 일상 속의 변화가 치료의 성과로 드러난다는 것.■방문진료 의미는 "숫자가 아닌 삶을 보는 진료"그는 한 예로, 매월 정기적으로 방문 중인 환자의 사례를 들었다. 이전엔 혼자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환자가 어느 날은 스스로 앉았고, 식사도 전보다 두세 숟가락 더 먹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런 변화는 병원에서 말하는 '수치의 호전'으론 설명되지 않지만, 환자의 기능 회복과 삶의 질 향상이라는 방문진료의 의미를 보여준다는 설명이다.또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로 임종을 앞둔 말기 암 환자의 가정 방문을 꼽았다. 당시 환자는 통증이 심해 응급실에 다녀올 정도였지만, 호스피스 병상은 없었고 요양병원도 받아주지 않아 집에서 고통을 견디는 상황이었다.장씨는 이 환자에게 진통 조절을 위한 처방을 시행하고, 보호자와 임종기 환자 돌봄에 대한 상담을 진행했다. 며칠 후 환자는 가족의 곁에서 임종했고, 유족은 그에게 연락해 감사를 전했다. 진료실 밖에서 이뤄진 만남이 환자와 그 가족에게는 의료 이상의 의미로 남은 것.그는 "한 달에 한 번 환자를 만날 때마다 병원에서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 감동적인 변화를 느낀다"며 "한 번은 암이 급격하게 퍼져 통증이 매우 심한 환자였는데, 온 가족이 집에 모여 있어 저와 간호사가 집안에 들어가는 것 자체도 부담스러웠다"고 설명했다.이어 "하지만 최대한 통증을 줄일 수 있는 약을 처방했고, 보호자분들께 임종을 앞두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환자와 보호자 각자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오랜 시간에 걸쳐 설명드렸다"며 "며칠 뒤 환자분은 가족들과 함께 계시다 임종하셨고, 이후 보호자분이 따로 연락을 주셔서 감사 인사를 전하셨다. 그럴 때 의사로서 정말 큰 보람을 느낀다"고 회상했다.장재영 씨는 방문진료를 하며 일상에서 환자가 보이는 변화에 큰 감동을 느낀다고 말했다.하지만 일차의료 방문진료 시범사업이 내년 본사업 전환을 앞두고 있음에도, 그동안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돼 온 구조적인 문제는 여전했다. 사직 전공의로서 방문진료에 직접 참여 중인 그 역시, 제도적 비현실성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특히 수가 체계가 현장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 지적됐다. 방문진료는 의사와 간호사가 한 팀을 이뤄 환자 가정으로 이동하지만, 교통비와 인력 투입에 비해 책정된 수가는 낮다.진료 외에도 상담이나 문자 대응 등의 관리 행위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이에 대한 수가는 인정되지 않는다. 또 환자 관리료 또한 일정 기간 이상 방문이 지속돼야만 지급되기 때문에, 오히려 환자가 호전되면 수익이 주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는 것.의사 참여를 어렵게 만드는 개원가 인력 구조도 한계로 지적됐다. 대부분 1인 개원 체계인 동네의원 현실에서 간호사나 사회복지사와 함께 방문진료를 수행하기란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우려다. 이 때문에 방문진료가 더 필요한 의료취약지가 오히려 외면받는 현실이다.■수가의 벽, 인력 한계 "방문진료 제도 보완 절실"환자를 의료기관으로 연계하는 과정도 문제다. 방문진료 수요자를 체계적으로 발굴하는 것에 한계가 있고, 연계 창구가 일원화되지 않아 실제 수요가 있음에도 의료기관으로 원활히 연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에 현장에서 지역의사회 차원에서 인력을 공유하거나, 정부가 직접 환자를 배치하는 방식을 요구하고 있으나, 아직 제도화된 것은 없다는 비판이다.그는 "방문진료는 직접 방문하는 것 외에도 환자를 전화나 문자로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행위가 수가에 반영되지 않아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환자 관리료 같은 경우도 6개월간 매달 방문해야 지급된다. 하지만 환자들의 상태가 좋아지면 이 서비스를 받을 이유가 없어 현실과는 괴리가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이어 "방문진료 요청 역시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추천해줬다거나, 지역 의료복지센터에서 추천을 해줬다거나 중구난방이다. 어떤 분은 병원 동영상을 보고 알아서 연락을 주신 경우도 있었다"며 "이렇게 창구들이 통일돼 있지 않다 보니, 실제로 수요는 많은데도 효과적으로 연계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이렇게 의사들의 참여가 저조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방문진료가 간호사를 중심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과거 간호법 논의 당시 '재택간호 전담기관 개설' 등의 조항이 포함되며 간호계의 방문진료 주도 움직임이 논란이 된 바 있다.한의계 역시 일차의료 방문진료 시범사업에서 한의사들의 참여율이 의사의 2배 수준인 것을 지속해서 강조하는 등 영역 확대를 꾀하는 상황이다.장재영 씨는 방문진료 제도 개선 필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관련 영역에 대한 의사들의 관심을 촉구했다.다양한 직역이 함께하는 방문진료의 특성상, 의사의 참여가 미비할 경우 타 직역의 역할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는 것. 장씨 역시 방문진료에 있어 타 직역의 노력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환자를 보는 것에 있어 의료적인 판단은 의사가 내리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또 이를 위해 의대에서부터 방문진료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등 젊은 의사들이 지역사회 진료에 조기 노출될 수 있는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그는 "많은 친구가 이런 모델이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 방문진료는 체력도 요구되기 때문에, 오히려 젊은 의사에게 적합할 수 있다"며 "의사들이 방문진료에 더 많이 참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은 참여하는 분들이 소수인데, 실제로 방문진료를 해보면 여기서만 느낄 수 있는 의사로서의 보람과 효용감이 있다.이어 "진료실 밖 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더 많은 의사가 참여했으면 한다"며 "간호사들도 방문진료에서 굉장히 열심히 해주고 계시지만, 결국 환자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의료적인 판단이고 그 판단은 의사가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 영역에서 의사들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역할을 해주셨으면 한다"고 강조했다.■의정 사태 속 의사·환자 신뢰 회복 "방문진료가 가능성"마지막으로 그는 현 사태로 의사와 환자 간 신뢰가 훼손되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특히 환자와 1대1로 밀접하게 있어야 하는 방문진료 현장에 있으면서 이런 관계의 붕괴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는 우려다.다만 반대로 방문진료가 환자와 의사가 다시 신뢰를 쌓는 기회가 될 수 있는 만큼, 현 사태가 하루빨리 종식돼 배움의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희망했다.그는 "환자들은 우리가 떠날까 걱정하고, 의사는 이 환자가 언제 나를 비난할지 몰라 두려워한다. 이런 감정들이 쌓이면 결국 방어적으로 진료할 수밖에 없게 된다"며 "의정 사태 이후로 신뢰가 많이 무너졌다고 느낀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괜찮지만, 그 감정이 환자에 대한 불신으로 번져선 안 된다. 우리는 결국 환자 곁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이어 "그런 점에서 방문진료는 환자와 다시 신뢰를 쌓는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앞으로 더 공부하고 돌아와 방문진료가 환자의 생존율을 어떻게 바꾸는지, 삶의 질을 어떻게 개선하는지 연구하고 싶다"며 "가정의학과 수련을 다시 이어가면서, 단순히 의사가 아니라 방문진료 전문가로서의 실천도 함께 해나가고 싶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