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그린 의정갈등…신뢰 회복 골든타임 얼마 안 남아"
[메디칼타임즈=김승직 기자]의대 증원 사태로 촉발된 의정 갈등이 마무리됐지만 그 여파가 계속되면서 의료 현장의 피로도 또한 극에 달하고 있다. 정부는 의료 개혁 완수를 강조하고 있지만 의료계에선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 대한 불신과 우려의 목소리가 여전하기 때문이다.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 김성근 대변인은 의정 간 신뢰 회복과 의료 공백 사태 해결을 위한 물리적 '골든타임'이 아직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를 위해선 정부의 근본적인 태도 변화와 정책 방향 전환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9일 김성근 대변인은 현 의정 갈등 상황에 대해 지난 2024년 윤석열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증원 발표가 신뢰를 무너뜨린 결정적 계기였다고 회상했다. 2020년 의정 합의를 통해 어렵게 쌓아 올린 신뢰가 붕괴하면서 갈등이 악화일로를 걸어왔다는 것.대한의사협회 김성근 대변인은 인터뷰를 통해 의정 간 신뢰 회복과 의료 공백 사태 해결을 위한 물리적 '골든타임'이 아직 남아있다고 강조했다.■흔들리는 이재명 정부 신뢰도 "원점 재논의"이재명 정부 출범 당시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기대감이 있었지만, 최근 검체검사 위수탁제도 개편이나 관리급여 도입 등이 의료계와 실질적 협의 없이 추진되면서 다시금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다.김 대변인은 "의정 간 신뢰 회복과 의료 공백 사태 해결을 위한 골든타임은 아직 남아있지만, 이는 정부의 과감한 결단이 필수적"이라며 "지금이라도 현장의 현실을 반영하는 의료정책을 의료계와 충분히 협의하며 설계하는 것이 신뢰 회복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이어 "대한의사협회는 의료 정상화와 지속 가능한 의료체계 구축을 위해 정부나 국회, 시민단체와의 소통을 닫지 않고 있다"며 "단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의료 정상화의 골든타임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사회가 모두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체절명의 시점"이라고 강조했다.정부가 시사한 2026년도 의대 모집인원 조정 가능성에 대해선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정원을 늘려놓은 상태에서 모집인원만 줄이는 것은 언제든지 변경 가능한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이다.김 대변인은 오히려 지난 11월 발표된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근거로, 의대 증원 정책에 대한 원점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감사원 조사를 통해 정책 결정 과정의 절차적 위법성과 전문가 협의 과정의 왜곡, 부당한 업무개시명령, 국고 손실 등의 문제가 사실로 확인된 만큼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요구다.그는 "감사원 결과는 지난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 추진 과정 전반에 심각한 비합리성이 존재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며 "정부는 이러한 심각한 문제점들을 정책에 반영하고, 객관적이고 타당한 자료와 통계를 기반으로 의대 정원 증원 문제를 원점 재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의대 교육 현장 어쩌나…성분명처방도 문제내년도 의대 교육 현장에 대한 우려도 컸다. 휴학한 의대생들의 복귀가 허용되면서 유급생과 신입생이 섞여 약 7500명이 동시에 수업을 들어야 하는 상황은 사실상 '교육 불가능' 상태라는 진단이다. 이는 단순히 한두 학번의 문제가 아니라, 길게는 10년 이상 의학교육의 부담으로 작용하며, 수련 과정까지 포함하면 더 긴 시간의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것.김 대변인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무총리 산하 '의료정상화 시스템 구축위원회'와 의대교육자문단을 대체할 '의학교육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교육 여건을 정밀 진단해 수용 가능 인원을 현장 실사를 통해 재산정하고, 트리플링 사태에 대비한 구체적인 분반 수업 운영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그는 "의대 교육은 강의실뿐만 아니라 기초의학 실습실, 임상 실습 시설 등 다양한 인프라가 필수적"이라며 "무너지는 교육 인프라에 긴급 재정을 투입하지 않으면 교육의 질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미래 의사의 전문성 저하와 국민 의료서비스 질적 저하로 직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정부 필수의료 정책인 공공의대와 지역의사제에 대해서도 쓴소리했다. 현 지역·필수의료 공백 문제의 원인은 의사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환자가 없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는 것. 이를 외면한 채, 인력만 늘리는 방식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다.김 대변인은 "지역 의료 붕괴는 지역 소멸과 맞닿아 있다. '지역에는 의사가 없는 게 아니라 환자가 없다'는 자조 섞인 말 안에 들어있는 의미를 정책 당사자들은 파악해야 한다"며 "의료전달체계 재정립 없는 인력 증원은 중증 환자의 수도권 쏠림 현상을 막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대신 그는 실질적인 해법으로 필수의료 종사자에 대한 법적 보호 강화를 제시했다. 우리나라는 의사의 형사 기소 건수가 선진국 대비 매우 높은 수준으로, 응급의료 결과가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벌과 거액의 배상 판결이 잇따르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설명이다.이와 함께 지역 의료기관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공공정책수가 신설을 주문했다. 행위별 수가제의 한계를 보완해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필수적인 응급·중증·분만·소아 진료 인프라 유지 자체를 보상해야 한다는 제언이다.김 대변인은 지역·필수의료 문제 해법으로 필수의료 종사자에 대한 법적 보호 강화와 지역 의료기관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강조했다.김 대변인은 "고의나 중대 과실이 없는 응급의료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것은 의료진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 대한 안전장치"라며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보상 시스템을 구축해 의료진과 환자, 그 가족 모두를 보호하는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최근 불거진 성분명 처방 도입 논란에 대해선 환자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며 절대 수용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같은 성분이라도 약동학적 특성이나 환자 반응이 다를 수 있는데, 의사의 판단 없이 대체조제가 이뤄지면 심각한 치료 실패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그는 "성분명 처방은 진단과 처방의 주체인 의사의 책임을 무시하고 의료체계의 기본 원칙을 무너뜨리는 제도"라며 "의약분업 이후 국민 불편과 비용 증가에도 제도에 대한 재평가 없이 성분명 처방을 추진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불법 대체조제 신고센터 운영 등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비판했다.■현 정국 어떻게 푸나…다각도 소통 나선 의협다만 현 정국을 풀기 위해 소통은 불가피하다. 김 대변인은 그 방식과 관련해, 공식 브리핑 외에도 물밑에서 치열한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국회 보건복지위 위원, 복지부 실무진, 교육부, 총리실, 대통령실 등 전방위적인 접촉을 통해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일각에서 제기되는 '집행부 대응이 너무 온건하다'는 비판에 대해선 전략적 신중함을 강조했다. 현장의 절박함과 분노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의료계 전체의 이익과 국민 파장을 고려해 때로는 단호하게, 때로는 협상을 통해 실질적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판단이다.김 대변인은 "범대위 출범 이후 아젠다별 분과위원회에서 활발히 대응하고 있으며, 정부·국회와의 논의를 통해 의료계 의견이 반영되도록 할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총궐기 등 대응 수위를 높일 수 있다. 성분명 처방 대국민 인식 조사처럼 사회와의 소통을 꾀하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회원들이 진료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설명했다.의료계 내부 갈등 조정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개원의·교수·봉직의 등 직역 간 이해관계가 다르지만, 대화를 통해 공통분모를 찾아 단일대오를 형성하는 것이 대변인의 역할이라는 설명이다.그는 "정부가 충분한 논의 없이 정책을 강행하는 상황에선 의료계가 하나로 뭉쳐야 한다"며 "범대위를 중심으로 투쟁 구심점을 강화하고 체계적인 의견 수렴 구조를 마련했다. 각 직역의 목소리를 반영해 최대한의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마지막으로 김 대변인은 의협이 단순한 이익단체를 넘어 국민 건강을 수호하는 전문가 단체임을 강조했다. 정부와의 갈등이 직역 이기주의로 비치는 현실을 경계하며,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정책 대안 제시에 주력하겠다는 다짐이다.김 대변인은 회원들을 향해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으로 반영되도록 근거와 데이터로 치열하게 대응하고 있다"며 "의료의 본질을 지키는 일은 우리 모두가 함께할 때 가능하다. 의사 사회 내부가 단단하게 화합해야 협회도 힘을 받을 수 있다. 인내와 지지,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이어 국민을 향해서도 "의사들은 질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라며 "의료정책이 잘못되면 그 피해는 의사가 아닌 환자에게 돌아간다. 현장의 문제를 정확히 전달하고 올바른 대안을 제시해 국민에게 신뢰받고 존중받는 전문가 단체로 거듭나기 위해 더욱 경청하고 소통하겠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