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 처벌법 만드는 꼴" 응급 의사 93% 미수용법 반대
[메디칼타임즈=김승직 기자] 이른바 '응급실 미수용 방지법'으로 불리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면서 현장 응급의학 전문의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환자 수용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응급실 과밀화와 인프라 부족이라는 근본적 원인을 외면한 채 의료진의 법적 부담만 가중할 수 있다는 비판이다.29일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개정 법률안의 문제점과 현장 혼란 우려를 제기했다.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응급의료법 개정안 법사위 통과를 우려했다. 지난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응급의료법 개정안은 과거 발의된 8개 법안을 통합·조정한 보건복지위원회 대안이다. 응급환자의 이송과 수용 체계를 개편하고, 수용이 곤란한 경우의 통보 의무와 수용 병원 지정, 응급의료종사자의 형사책임 감면 등을 규정하고 있다.'정당한 사유'기준 모호 "처벌 위한 고무줄 잣대 우려"이날 의사회는 개정안에 명시된 '정당한 사유'의 모호성을 문제 삼았다. 시설·인력·장비 부족이나 최종 치료 전문의의 부재 등을 수용 곤란 사유로 인정하더라도, 이를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진단이다.특히 기존 수용 거부 금지 규정과 복지부의 수용 곤란 지침 역시 현장과의 충분한 합의 없이 마련됐다고 지적했다. 명확한 판단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정당한 사유를 규정하는 것은 사후 판단에 따라 의료진의 법적 책임을 묻는 고무줄 잣대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다.이 밖에도 '응급실에서 다른 진료과 전문의의 수술 진행 여부나 진료 가능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수용 곤란 여부를 지체 없이 보고'하도록 하는 조항 역시 현장의 물리적 한계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 같은 의무는 실제 진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정 업무를 늘리면서, 의료진의 법적 부담을 가중할 수 있다는 우려다.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효도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를 법에 넣는 순간 효도하지 않는 사람을 처벌하는 목적으로 쓰일 수 있다"며 "정당한 사유 없이 환자 수용을 거부하지 못한다는 것 역시 당연한 말이지만, 법에 들어가는 순간 현장에서는 환자를 거부하면 처벌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고 지적했다.이어 "수용 곤란의 정당한 사유는 입증이 불가능하다. 시설·인력·장비가 얼마나 부족해야 수용 곤란으로 인정되는지, 이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도 불분명하다"며 "응급실에선 다른 진료과 전문의가 수술 중인지, 다른 업무를 하고 있는지조차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어려운데 이를 지체 없이 보고하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응급의학 전문의 약 3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설문 응답자 93% 법안 반대 "최종 치료 인프라 시급"실제 의사회가 연휴 기간 현장 응급의학 전문의 약 300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93%가 이번 개정안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응답자의 96%는 수용 곤란 상황을 지체 없이 통보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답했으며, 119 사전 연락 폐지에 대해서도 95%가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개정안 시행 이후 응급실 미수용 문제가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는 92%가 부정적으로 응답했다. 또 86%는 면책 조항이 마련되더라도 실제 법적 위험이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의사회는 형사책임 감면 범위가 충분하지 않고 민사책임에 대한 우려도 남아 있어 의료진이 체감하는 법적 위험을 해소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응급실 미수용 문제의 핵심은 환자를 수용할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최종 수술이나 처치를 제공할 배후 진료 역량이 부족한 현실에 있다는 설명이다.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구급차에서 병원으로 이송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뿐 아니라 환자에게 필요한 최종 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인프라 확보가 중요하다는 것.이 회장은 현장 응급의학 전문의의 판단을 수용 곤란의 정당한 사유에 반영하고, 민형사상 면책을 위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와 함께 응급실 과밀화 해소와 취약지역 인프라 개선, 유연한 인력 운영을 선결 과제로 제시했다.아울러 법안 조율과 후속 시행규칙 개정, 응급의료 발전계획 수립 과정에 현장 응급의학 전문의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이 회장은 "응급처치가 필요한 환자는 절대 거부하지 않는다. 다만 최종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황에서 해당 의료기관이 적절한 치료를 제공할 수 없다면 환자를 수용하는 것이 맞는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며 "환자를 응급실에 빨리 데려다 놓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환자에게 필요한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이어 "지난 5년간 현장 응급의학 전문의의 판단을 정당한 수용 곤란 사유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며 "의사가 환자를 직접 진료해야 한다는 데 당연히 동의한다. 다만 진료 이후 어떻게 할 것인지와 의료진에 대한 면책이 확실히 정해져야 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 의료진을 신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