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스 내려놓던 환갑의 외과 의사, 왜 함양 응급실로 향했나
[메디칼타임즈=김승직 기자] 대한의사협회 상근부회장과 회장 직무대행을 지낸 외과 전문의가 중앙 의료계를 떠나 경남 함양의 응급실로 돌아왔다.주인공은 함양성심병원 응급실에서 근무 중인 이정근 외과 과장이다. 올해 환갑을 맞은 그는 부산과 함양을 오가며 야간과 주말 응급진료를 맡고 있다.의협에서 주요 현안을 다루던 그가 왜 다시 지역 응급실을 선택했을까. 메디칼타임즈는 6일 함양성심병원 이정근 과장을 만나 그 이유와 현장에서 마주한 응급의료의 현실을 들어봤다.메디칼타임즈는 함양성심병원 이정근 과장을 만나 그가 응급실로 향한 이유와 현장에서 마주한 현실을 들어봤다.의협 3년 마치고 다시 응급실로 "원래 오래 일했던 곳"이 과장은 2021년 5월 제41대 의협 집행부 상근부회장으로 임기를 시작해 총무·국제협력과 조직 운영을 맡았다. 코로나19 이후 의료체계 정상화, 간호법·의료인 면허취소법 대응, 필수·지역의료와 의사인력 논의 등 이필수 집행부의 주요 현안을 함께 다뤘으며, 의료배상공제조합 이사장도 겸했다.임기 막바지인 2024년에는 정부의 의대정원 2000명 증원 발표 직후 이필수 전 회장이 사퇴하면서 약 3개월간 회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의정 갈등이 본격화한 가운데 의협 회무와 세계의사회 관련 일정을 동시에 소화한 뒤 3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다시 경남 지역 응급실로 향했다.이 과장은 "상근부회장으로 일한 3년, 특히 회장 직무대행을 맡았던 마지막 3개월은 내부적인 어려움과 여러 업무가 겹치면서 많이 지쳤던 시간"이라며 "임기를 마친 뒤에는 조금 쉬면서 한적하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에 경남 지역의 응급실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이어 "응급실은 새롭게 선택한 곳이라기보다 과거 김해복음병원 응급실 과장으로 근무했고, 요양병원에 있을 때도 별도로 당직을 설 정도로 오랫동안 일해온 익숙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현재 이 과장은 부산 자택과 함양을 오가며 격주로 근무하고 있다. 근무하는 주에는 평일 오후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야간진료를 맡고 주말에는 장시간 당직을 선다. 한 주 근무시간은 약 120시간으로, 격주 일정을 감안하면 주당 평균 약 60시간을 응급실에서 보내는 셈이다."전화만 받고 거절하지 말자" 직접 보고 수용 여부 판단이번 인터뷰의 계기가 된 것은 지역 119 구급대원들이 바라본 이 과장의 환자 수용 방식이었다. 이 과장이 근무하는 날에는 환자 수용 여부를 비교적 적극적으로 검토해준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하지만 이 과장은 이를 개인의 능력보단 오랜 응급실 근무와 외상환자 진료 경험에서 비롯된 차이라고 설명했다. 구급대가 환자 수용을 문의할 때 전화 내용만으로 가능 여부를 결정하기보다 우선 환자를 직접 확인하고, 함양성심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는 환자인지 또는 상급병원으로 보내야 할지를 판단한다는 것.이 과장은 "구급대원들은 현장에서 응급환자를 빠르게 선별하는 데 익숙하지만, 해당 환자를 어느 수준의 의료기관에서 치료해야 하는지까지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며 "그래서 함양 119에는 가능하면 환자를 먼저 데려오고 제가 직접 본 뒤 우리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는지,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 하는지를 판단하겠다고 이야기해 뒀다"고 말했다.이어 "환자를 데려왔다고 해서 곧바로 우리 병원이 수용한 것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경우 CT 등으로 상태를 확인하고 우리가 치료할 수 있으면 받고, 그렇지 않으면 119가 다음 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이 같은 방식에는 함양의 지리적 여건도 영향을 미쳤다. 환자를 병원에 내려놓은 뒤 검사 결과 전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다시 사설 구급차를 불러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30분 이상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게 이 과장의 설명이다.이에 일부 환자의 경우 초기 검사와 판단이 끝날 때까지 119가 현장에 대기하도록 협조를 구하고 있다. 처음에는 기존 원칙과 맞지 않는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서로 경험이 쌓이면서 이 같은 방식에 익숙해졌다고 했다.이 과장은 "처음에는 대원들도 원칙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했다"며 "하지만 환자 생명이 우선인 만큼 일단 직접 확인한 뒤 우리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다면 바로 다음 병원으로 갈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이야기했다"고 말했다.이어 "지금은 함양뿐 아니라 산청이나 거창, 남원, 장수 쪽에서도 제가 근무하는 날 환자를 보내는 경우가 있다"며 "전화로 들은 내용만으로 결정하기보다 직접 환자를 보고 어느 병원에서 치료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판단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이정근 과장은 응급실이 익숙한 공간이라면서도, 법적 부담·배후진료 한계로 응급의료 체계가 위기를 맞은 상황을 우려했다.환갑에도 응급실 진료 "손 떨리는 날 오기 전까진 해야"올해 환갑을 맞은 이 과장은 현재도 응급실에서 외상환자를 직접 진료하고 있다. 안면부를 봉합할 때 사용하는 6-0 나일론 봉합사 역시 아직 별도의 루페나 돋보기 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외과를 선택하게 된 계기도 소개했다. 처음부터 외과를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다. 인턴 당시 정신건강의학과도 생각했지만 수술실을 경험하면서 진로가 바뀌었다.이 과장은 "인턴 때 정신건강의학과를 돌 때는 머리는 아팠지만 가슴이 뛰지는 않았다"며 "그런데 수술실에서 과장님이 환자의 배를 열고 직접 장을 잡아보라고 했는데 그 순간 가슴이 뛰었다. 그래서 외과를 선택했다"고 말했다.이어 "응급의학과가 전국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할 무렵 수련을 받았고, 외과 의사로서 응급실에서도 오랫동안 근무했다"며 "개인 의원을 운영할 때도 병상을 두고 야간에 응급환자가 오면 직접 진료할 정도로 응급실은 의사 생활에서 익숙한 공간이었다"고 설명했다.현장에서 언제 물러날지는 정해두지 않았다. 아직은 진료에 큰 어려움이 없지만 나이가 들면서 눈이나 손이 따라주지 않는 때가 오면 자연스럽게 물러나겠다는 생각이다.이 과장은 "지금은 돋보기나 루페 없이도 얼굴을 봉합할 수 있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눈이 침침해지고 손이 떨리는 때가 오면 그때는 물러날 시기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환자를 안 받는 이유부터 봐야" 법적 부담·배후진료 한계지역 응급실로 돌아온 뒤 이 과장이 체감하는 응급의료의 문제는 과거 의협에서 제기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단순히 의사 부족이나 의료진의 환자 수용 의지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특히 의료진이 자신의 역량을 넘어서는 중증환자를 수용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법적 책임에 대한 부담과, 응급처치 이후 실제 수술이나 입원치료를 이어갈 배후진료 역량을 주요 문제로 꼽았다.이 과장은 "병원은 환자를 봐야 운영되는 곳인데도 환자를 받지 못한다면 왜 그런 판단을 하는지를 먼저 봐야 한다"며 "자신의 역량을 넘어서는 환자를 받았다가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책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면 처음부터 수용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이어 "맹장수술이나 뇌출혈 수술 자체가 불가능한 병원이라면 해당 환자를 받을 수 없다"며 "치료가 불가능한 병원으로 환자를 우선 보내는 것은 오히려 적절한 치료 시기를 늦출 수 있는 만큼 이를 단순한 수용 거부로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해법으로는 응급의료진이 판단에 따라 진료할 수 있도록 법적 안전망을 마련하는 동시에, 실제 치료를 이어갈 수 있는 배후진료 체계를 명확히 구축해야 한다고 봤다.또 응급의료기관을 양적으로 확대하기보다, 권역별로 뇌혈관이나 외상 등 특정 중증질환을 책임질 병원에 인력과 재원을 집중해 환자가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만드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병원 간 이송체계도 보완 과제로 꼽았다. 119가 병원 간 이송을 맡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사설 구급차 등 환자 이송체계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이 과장은 "응급의료 문제는 단순히 의사 숫자를 늘린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의료진이 안전하게 진료할 수 있고 환자를 보내야 할 경우 실제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연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이어 "현재 의료 체계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일부 제도를 고치는 방식보다 전체적인 구조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정책을 만드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바뀌지만 그 결과는 의료현장에 계속 남는 만큼 현장에서 오랫동안 환자를 본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