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타임즈=이인복 기자]인공지능(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개인정보 보호에 방점을 두고 있던 의료 데이터 규제의 무게 중심이 빠르게 이동하면서 기회가 열리고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소버린 AI 등 세계 각국이 AI 개발 등을 목적으로 가명 정보 활용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 병리에서도 길이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19일 서울 코엑스에서 막을 올린 KHF 2026에서 진행된 '디지털 병리 AZ 컨퍼런스'에서는 보건의료 데이터 규제 변화가 디지털 병리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날 연자로 나선 법무법인 명륜 김상순 변호사는 현재 개인정보 보호를 둘러싼 법과 제도가 과거와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단 가장 큰 변화는 개인정보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다. 과거에는 개인정보를 어떻게 안전하게 보관하고 보호할 것인지 규제의 핵심이었다면 AI와 빅데이터 산업이 발전하면서 이제는 이를 어떻게 안전하게 활용할 것인가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상순 변호사는 "특히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가명정보가 자리하고 있다"며 "개인을 직접 식별하기 어렵도록 처리한 정보에 대해서는 통계 작성과 과학적 연구, 공익적 기록 보존 등의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길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대규모 병리 슬라이드를 기반으로 AI를 개발하고 연구해야 하는 디지털 병리 분야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변화다.
AI의 성능 자체가 얼마나 많은 양질의 데이터를 학습하느냐에 좌우된다는 점에서 데이터 활용 범위가 곧 기술과 산업의 경쟁력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상순 변호사는 "실제로 개인정보보호위원회도 최근 가명정보 처리 가이드라인을 개정하며 이러한 방향성을 더욱 명확히 하고 있다"며 "최초 개인정보를 수집했던 목적과 완전히 동일하지 않더라도 통계 작성과 과학적 연구 등 법에서 허용하는 범위에서는 가명정보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기준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법 위반에 대한 우려로 데이터를 묶어두기보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전제로 연구와 산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길을 넓혀주고 있다는 의미다.
사법부 역시 이러한 변화에 힘을 싣고 있다는 것이 김상순 변호사의 설명이다. 실제로 최근 대법원은 개인정보보호법상 정보주체에게 처리정지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가명처리 자체의 정지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판단을 내린 바 있다.
김상순 변호사는 "대법원은 이 과정에서 데이터 관련 신산업 육성이 범국가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으며 AI와 클라우드, 사물인터넷 등 신기술을 활용하기 위해 데이터 이용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점을 판단의 근거 중 하나로 제시했다"며 "보수적인 사법부 또한 현재 상황에서 데이터의 중요성을 인정한 것"이라고 전했다.
개인정보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두던 과거와 달리 사법부 역시 데이터의 활용 필요성에 일정 부분 방점을 찍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김 변호사는 "과거에는 개인정보 보호라는 부분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지금은 데이터 활용을 통한 새로운 부가가치와 산업 발전이라는 부분이 중요해지고 있다"며 "개인정보 보호라는 가치가 후퇴한 것은 아니지만 가명정보라는 새로운 통로를 통해 보다 유연하게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가 변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디지털 병리와 AI가 결합하면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기존 개인정보 보호 체계는 누가 정보를 수집하고 보관하고 있으며 이를 누구에게 제공했는지를 중심으로 책임 소재를 판단해 왔다.
하지만 생성형 AI를 비롯한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구조만으로는 책임 소재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AI는 데이터를 수집하는 단계와 이를 학습하는 단계, 모델 내부에서 처리하는 단계, 최종적으로 결과를 출력하는 단계에서 개인정보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다.
이에 따라 과거와 같이 개인정보를 보유한 기관이나 기업에 모든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는 AI 시대의 개인정보 활용을 규율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상순 변호사는 "생성형 AI 환경에서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학습하고 모델에서 처리하고 출력하는 각 단계마다 개인정보가 사용되는 양상이 달라진다"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과연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정답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재 개인정보 처리자라는 하나의 개념만으로는 이러한 모든 과정을 설명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며 "각 단계별로 권한과 의무, 책임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디지털 병리를 둘러싼 규제 역시 개인정보보호법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러한 변화에 대한 지속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병리 데이터와 AI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담당하는 개인정보보호법은 물론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소관 법령, 생명윤리법, 보건의료기술진흥법, 인공지능기본법 등이 서로 맞물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데이터가 단순한 개인정보를 넘어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자산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과거에는 데이터가 개인의 프라이버시라는 인격권적 측면에서 주로 논의됐다면 이제는 AI와 산업 혁신을 위한 핵심 자산으로 가치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김상순 변호사는 "이제 데이터는 단순히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의 문제를 넘어 기업의 혁신 경쟁력이자 국가의 역량과 연결되는 자산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AI 학습을 위한 데이터 활용 또한 개인정보 보호와 산업적 활용뿐 아니라 데이터 주권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맞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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