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손의료보험은 본래 환자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예기치 못한 의료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그러나 실손보험이 과도하게 확대된 현재, 그 취지는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다. 진료 행위를 통해 이차적인 경제적 이익을 사실상 세금 없이 취득할 수 있는 구조가 고착되면서, 의료현장은 점차 ‘치료의 공간’이 아니라 ‘보험 청구의 무대’로 변해가고 있다.
특히 문제의 핵심은 보험사기의 일상화다. 보험사기는 더 이상 일부 일탈의 문제가 아니다. 진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액·반복 청구는 ‘연성 보험사기’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고, 조직화된 의료기관과 다수의 보험설계사가 결합한 구조에서는 경성 보험사기로 진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허위 진료기록, 과잉 비급여, 진단의 확대 해석이 관행처럼 작동한다. 이와 동시에, 실손보험사의 과당 경쟁과 과장된 광고는 환자의 인식 구조를 변화시켰다. “보험이 되니 받아도 된다”는 학습된 인식은 의료쇼핑을 부추기고, 다빈도의 보험금 수령이 당연한 권리처럼 여겨지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 결과 환자는 점점 ‘치료 대상’이 아니라 ‘보험 수익의 매개’로 전락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진료의 본질을 왜곡한다는 점이다. 최선의 의학적 판단에 따른 진료가 아니라, 보험 청구 가능성을 염두에 둔 ‘실손보험 맞춤형 진료’가 의료현장을 잠식하고 있다. 이는 의사의 진료 자율성을 침해할 뿐 아니라, 성실하게 원칙 진료를 지켜온 대다수 의사들을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한다. 이 왜곡된 구조는 이미 자동차보험 진료 영역, 특히 한방병원으로의 환자 집중 현상에서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치료 효과와 무관하게 보험 보장 구조에 최적화된 진료 모델이 선택받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사회 전체가 분담하게 된다.
이러한 현실을 방치할 경우, 결과는 명확하다. 진료비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실손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해지며, 결국 그 부담은 성실하게 보험을 유지해온 선량한 국민에게 전가된다. 이는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실패가 만들어낸 구조적 재난이다.
이제는 질문해야 한다. 실손보험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환자의 건강을 위한 제도인가, 아니면 의료와 보험이 결합한 또 하나의 수익 산업인가. 의료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보험사기 문제를 ‘개별 사건’이 아닌 시스템 붕괴의 신호로 인식하고, 제도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 의료는 보험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보험은 의료를 보조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이 단순한 원칙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피해자는 결국 환자와 의료진, 그리고 사회 전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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