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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의료의 재건? 꿈 깨시라

발행날짜: 2025-09-22 05:00:00

의약학술팀 최선 기자

자동차 사고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모든 자동차의 운행을 금지하자고 하면 어떨까. 항공기 사고를 막기 위해 비행기를 띄우지 말자고 주장한다면 어떨까. 건설 현장 역시 작업을 전면 중단하면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늘상 사고가 일어나지만 위험을 관리하며, 불가피한 사고를 사회적으로 수용하는 쪽의 효용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건설 현장 사망사고에 대한 영업이익 5% 이내 과징금 부과 및 영업정지, 등록말소 등 강력한 규제 법안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규제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념과 철학의 산물이다.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가 규제의 형태로 드러났을 뿐. 그리고 그 규제는 단순한 규제로 끝나지 않는다. 작용-반작용처럼 사회에 유형, 무형의 변화를 수반한다.

수익이 낮은데도 등록말소의 위험이 있다면 이를 회피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사고는 반드시 예방 가능하다"는 구호 아래 처벌을 강화해봤자 불가항력적이거나 불가피한 사고는 늘상 일어날 수밖에 없다. 안전망을 아무리 촘촘히 엮어도 갑작스러운 지반 붕괴, 예측 불가능한 기상 변화는 남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 강한 처벌과 불가피하거나 불가항력적인 위험의 예방은 상관성이 없다. 강력한 처벌은 고위험 공정의 회피와 발주 축소로 이어지고 이는 국민들의 주거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의료 현장도 이와 닮았다. 의사들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사실이 있다. 무과실 의료사고는 일정 비율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 아무리 진료지침을 준수하고, 아무리 첨단 장비를 동원해도, 환자 개개인의 특이 체질이나 숨겨진 기저 질환, 돌발적 합병증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 인간의 몸과 자연의 상태 안에는 예측 불가능성이 도사리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고는 반드시 예방 가능하다"는 구호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겐 의료사고란 늘 개인(의사)의 잘못으로 환원된다는 점이다. 환자의 예후가 좋지 않으면 곧장 과실 여부가 쟁점이 되고, 법정에서는 전문가조차 입증하기 어려운 경계선 사건마저 개인 의사의 잘못으로 몰린다.

의료계의 대응도 비슷해질 수밖에 없다. 고위험 환자를 기피하며 방어진료를 하는 것이 그간의 자구책. 그 이후의 대응이 바로 필수의료의 포기였다. 전문의 수가 줄고, 젊은 의사들이 기피하는 필수의료 과목에서 줄곧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한 보호막을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보호막이 없으면 의사들은 떠난다. 필수의료가 사라지고 나면 결국 피해는 대다수 국민이 짊어지게 된다. 그렇게 사람이 먼저라던 강력한 규제는 오히려 엉뚱한 피해자를 양산한다.

선진국 사례는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일본의 무과실 산과 분만 보상제도, 스웨덴의 국가 환자보험 제도 등이 그래서 의미 있다. 사고를 개인의 잘못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감당해야 할 위험으로 분담하는 철학이 정책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 체계에서는 의료인이 고위험 환자를 꺼리기보다, 사회적 보상과 제도적 보호를 바탕으로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 구조가 있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사고는 반드시 예방 가능하다"는 이상을 규범으로 삼고 있다는 걸 보면서 한참을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을 통제 가능한 대상으로 보고, 규제와 처벌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 그런 사고를 인재로만 해석하는 철학이 유지되는 한, 필수의료의 축소와 기피는 불가피할 따름이다.

현실은 복잡하다. 그런 한계를 부정하는 이념은 치기다. 그래서 아름다운 구호가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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