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분쟁에서 형사 절차가 남용되면서 필수의료 붕괴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법조계 우려가 나왔다. 형사 고소·고발이 민사소송에 앞서 전략적으로 활용되는 관행을 고치지 않으면 의료현장 위축이 불가피하다는 진단이다.
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의료분쟁 관련 법·제도 개선방안 모색 공청회'에서 의료분쟁 형사화 억제와 민사 구제 정비가 필요하다는 우려가 나왔다. 형사 고소·고발이 민사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우군'처럼 쓰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서종희 교수는 주제발표에서 우리나라와 해외 주요국 제도를 비교하며 이같이 밝혔다.
서 교수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입건된 의사는 735명에 달했지만, 최종 유죄 판결은 20명에 불과했다. 수치만 놓고 보면 의사의 부담이 크지 않아 보이지만, 수사와 기소 과정에서 수년간 겪는 고초 자체가 의료진을 위축시키는 요인이라는 것.
다만 민사 절차에도 문제가 뚜렷하다고 강조했다. 소송은 장기간 이어진다면 피해자의 고통 역시 커지고 배상액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특히 법원은 인과관계를 보수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환자가 청구한 손해 전부가 인정되기 어렵고, 위자료를 일부 인정하는 방식으로 조정되는 사례가 많다는 것. 결국 현 체계는 환자와 의료진 모두 만족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진단이다.
해외 사례도 소개됐다. 일본은 2004년 '오노 병원 사건'을 계기로 형사 구속에 대한 사회적 반발이 확산되면서 소송 건수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 미국은 징벌적 손해배상과 보험제도로 민사 중심의 분쟁 해결 구조를 갖췄고, 형사책임은 거의 적용하지 않는다. 뉴질랜드는 국가가 무과실 보상제도를 운영하며 분쟁을 소송으로 끌고 가지 않는 체계를 마련했다.
독일의 경우 진료계약을 법전화했지만, 과실·인과관계 판단을 신중히 적용한다. '중대한 과실' 입증은 환자 측에 요구되며, 형사 사건에서는 '의심스러우면 피고인 이익' 원칙이 철저히 지켜진다는 설명이다. 스위스도 특정 직역만 특례를 두지 않고 전문가 일반 기준을 동일하게 적용한다. 형사책임은 고의·중과실로 한정돼 있다.
서 교수는 이 같은 사례를 들어 한국 의료현장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사법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고 진단했다. 형사책임 강화가 해법이 되지 못하는 만큼 민사구제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신속보상 장치를 정비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형사·민사 책임 남용은 결국 필수의료 붕괴와 사회적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그는 "일각에선 한국 의사의 사법 리스크가 낮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나라보다 높거나 비슷한 수준에서 환자를 보호하고 있다"며 "특히 우리나라는 필수의료에서 신속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체계라서,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법적 위험은 오히려 더 크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형사책임을 강화하는 방식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다. 형사 절차 남용은 필수의료 붕괴와 사회적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민사 책임 강화와 효율적 보상 체계로 해결해야 한다"며 "입법기관이 이를 재점검해 사회 전체적으로 합리적인 제도 운영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대한의사협회 의료배상공제조합 의료사법제도개선위원회 김강현 위원은 의료사고에 업무상 과실치사죄가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현실을 문제로 지적했다.
의학의 본질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의사가 선의로 진료하더라도 예기치 못한 악결과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를 형사책임으로 단정하는 것은 의료현장을 위축시킨다는 주장이다. 실제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은 최종 무죄로 결론 났지만, 이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 급감하는 등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불러왔다는 것.
이처럼 형사 구속과 기소는 오히려 의료 불신과 인력 부족을 초래한다는 설명이다. 또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환자 안전사고 보고의 기본 원칙으로 '비징벌성'을 제시하며 징벌적 접근은 신고와 학습을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의료행위 특수성·불확실성을 반영한 형사책임 기준 마련 ▲업무상 과실치사죄 적용 범위를 고의·중과실로 한정 ▲의료사고 조사제도 확립을 통한 재발방지 체계 구축 ▲분쟁의 사후 해결보다 예방 중심 제도 개선 등이 필요하다는 요구다.
현직 부장판사 역시 의료분쟁의 형사소송화가 의료현장을 위축시키는 요인이라고 짚었다. 우리나라는 의료분쟁조정중재가 필수 절차가 아니어서 중대한 사건 대부분이 법원으로 넘어가고, 환자 측은 증거 확보를 위해 형사고소부터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대구지방법원 이종길 부장판사는 이런 경향으로 인해 매년 수백 명의 의사가 경찰·검찰 조사를 거쳐 장기간 형사재판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필수의료 기피와 방어진료로 이어져 환자 안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우려다.
그는 제도 개선의 기본 방향으로 환자 피해에 대한 신속한 회복을 보장하면서도, 일정한 경우 의료진의 형사책임을 면제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관련 예시로는 응급의료법의 선의의 구조자 조항을 들었다.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형사책임을 면제하거나 감경하는 제도를 의료사고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것.
이와 함께 교통사고처리특례법처럼 보험 가입이나 피해자와의 합의가 이뤄지면 공소를 제기하지 않는 특례를 마련하되, 고의·중과실 사고는 예외로 둬야 한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 의료배상책임보험 가입 의무화 등 관련 제도를 활성화하고, 진료과목별 중과실 기준을 명확히 설정할 기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또 위험이 큰 필수의료 분야에 대해선 국가와 사회가 공동책임을 지는 무과실보상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부장판사는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인한 의료사고의 경우는 특례의 예외로 인정하는 법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고의나 중과실 의료사고 의료진에겐 엄중한 민·형사상 책임을 부과하되 의료진의 경과실에 대해선 형사책임을 폭넓게 면제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종합보험 제도 등으로 환자의 피해를 신속히 구제하는 방향도 환자 측의 고통을 줄이고 필수의료 붕괴를 막을 방안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런 입법적 제도 개선은 의사들이 방어적 의료행위에서 벗어나 응급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적극적인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는 의료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전했다.
국회에서도 의료분쟁 조정제도와 공적 배상체계 강화의 필요성에 공감대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조원준 보건복지수석전문위원은 환자들이 소송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지 않으면 갈등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핵심은 의료분쟁이 애초에 소송으로 가지 않게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선 환자와 의료인 모두에게 신뢰성·충분한 보상이 전제된 조정제도가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관련 제도가 미비하니 환자·의료인 모두 불필요한 소송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그는 필수의료 분야에서 나타나는 특수성을 강조했다. 소송 리스크가 커질수록 젊은 의사들이 해당 과를 기피하게 되고, 이는 인력 부족으로 이어져 결국 환자가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하는 악순환을 초래한다는 것.
관련 분야에서의 의료분쟁은 단순한 민·형사 갈등 차원이 아니라 환자와 의료인이 모두가 공멸할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우려다. 위험이 집중된 필수의료 분야를 중심으로 새로운 보상·책임 체계를 마련하지 않으면 국민 피해로 직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개선 방향으로 ▲의료사고 관련 기초 통계와 연구의 공동 기준 확립 ▲조정제도의 역할 확대 ▲민간 공제조합을 넘어선 공적 배상체계 구축 ▲필수의료 분야에 한정한 형사처벌 기준 완화 등을 제시했다. 다만 완벽한 제도를 한 번에 만드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특정 필수과목 등 제한된 영역에서부터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는 제언이다.
조 수위원은 "제도 논의를 안심하고 이어가려면 먼저 기초 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해 현황과 조건에 대한 신뢰 가능한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며 "그 위에서 조정제도의 역할과 기능을 대폭 확대하고, 지금까지 의사협회 공제조합이 맡아온 민간 영역을 넘어 공적 배상체계 개편 논의가 병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필수의료 분야만큼은 형사처벌 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필수의료가 아닌 곳이 없다는 반론도 있지만, 오히려 좁은 범위에서라도 합의를 이끌어 신뢰를 확보하면 다음 단계로 제도화가 훨씬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며 "처음부터 완벽한 틀을 만들기보다 제한된 영역에서 출발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강조했다.
ex) medi****** 아이디 앞 네자리 표기 이외 * 처리
댓글 삭제기준 다음의 경우 사전 통보없이 삭제하고 아이디 이용정지 또는 영구 가입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1. 저작권・인격권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2. 상용프로그램의 등록과 게재, 배포를 안내하는 게시물
3. 타인 또는 제3자의 저작권 및 기타 권리를 침해한 내용을 담은 게시물
4. 욕설 및 비방, 음란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