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와 환우회가 힘을 합친다. 해외에서 널리 쓰이고 있고 근거도 있지만 규제에 묶여 한국에서만 유독 쓰기 어렵다는 게 이들의 하소연. 이에 사용 허가 추가 요청서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보내 '규제 유연성'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질환이 생명에 직결돼 있는 중한 질병이라면 환자의 절망감과 초조함은 비할 데가 없다. 5년 생존율이 대략 50% 안팎으로 진행성 간암이나 폐암 말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보고되는 폐동맥고혈압(PAH)의 이야기다.
상품명 시알리스로 잘 알려진 발기부전 치료제 성분 타다라필은 이미 해외에서 폐동맥고혈압 치료제로도 명성이 높다. PDE5 효소를 억제해 혈관을 확장하고 혈액 순환을 돕는 작용을 해 폐동맥고혈압 치료에도 효과를 나타낸다.
해외에서는 폐동맥고혈압 치료제로 공식 승인돼 널리 쓰이지만 국내는 발기부전 치료제로만 국한된다. 문제는 뭘까. 전문가에게 규제 현황 및 개선안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해외에선 승인부터 근거까지 축적…한국은 규제에 발목
타다라필은 PAH 환자의 운동 능력 향상과 증상 개선, 임상 악화 지연에 효과를 입증한 약물이다.
실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09년 타다라필을 PAH 치료제로 승인한 바 있다. 하루 40mg을 복용하면 WHO 기능 분류 II~III 환자의 증상 개선과 운동 능력 향상, 임상적 악화 지연이 확인됐다. 부작용은 기존 실데나필과 유사한 수준으로 평가됐다.
유럽연합(EU)도 2008년 타다라필을 PAH 치료제로 승인, 2009년 애드서카(Adcirca)라는 제품명이 공식 등록됐다. 최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마시텐탄과 타다라필을 결합한 단일 정제 복합제 유반시(Yuvanci)를 PAH 치료제로 2024년 승인했다. 연구 결과, 이 복합제는 단일제 대비 폐동맥저항(PVR)을 유의하게 낮추는 것으로 나타나 환자의 복약 편의성을 높였다.
이번 해외 사례는 타다라필이 PAH 치료에 효과적인 약물임을 입증하며, 한국에서도 적응증 확대 근거로 활용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국내에서는 아직 발기부전용으로만 허가돼 있어, 환자 접근성은 제한돼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대한폐고혈압학회 박재형 정책이사(충남의대 심장내과)는 "폐동맥고혈압 환자들은 해외에서 이미 승인돼 널리 쓰이는 타다라필을 한국에서도 쓰고 싶어 하지만, 적응증이 발기부전으로만 제한돼 있어 처방이 어렵다"며 "국내에서 새로운 적응증을 허가받으려면 임상시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는 타다라필은 특허가 만료돼 이미 제네릭까지 나온 마당에 제약사가 임상에 투자할 동기가 거의 없다는 것"이라며 "폐동맥고혈압 환자 수가 적어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판단 때문에 더더욱 제약사 입장에선 임상을 할 유인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환자들은 이미 효과가 입증된 약을 쓰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라며 "여러 RCT로 효과를 입증해 해외에서 허가도 됐고 관련 근거가 쌓이면서 주요 지침들도 타다라필의 초기 병용을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적응증 확대가 쉽지 않은 이유로는 식약처가 해외 임상자료만으로 바로 허가를 내줄 수 없고, 법적·규제적 근거에 따라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점이 꼽힌다.
식약처는 ICH-E5 가이드라인과 유사한 기준을 적용해 외국 데이터를 인정할 때 인종·집단 차이를 검증하도록 요구한다. 즉, 단순히 해외 논문이나 라벨을 제출한다고 바로 적응증을 줄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것.
외국 임상자료를 제출할 경우 브리징 자료, 국내 인구를 대상으로 한 약동학(PK)·약력학(PD) 비교, 안전성 프로파일 등의 보완자료가 필요하며, 이 과정이 충족돼야만 적응증 확대가 가능하다.
해외 근거만으로 국내 허가를 내주면 인종 차이 등 안전성 문제를 놓칠 수 있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자료 제출이 필요하고 희귀질환·미충족 의료수요 약제라도 사전 협의와 자료 보완 없이는 심사가 진행되기 어렵다는 것이 식약처의 입장. 반면 학회의 판단은 다르다.
폐동맥고혈압학회 관계자는 "제약사 입장에서는 특허가 끝난 타다라필에 대해 국내 임상을 새로 시작할 동기가 없다"며 "국내 시장 규모가 작고, 임상 수행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희귀질환의 경우에는 보다 유연한 규제 적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외 사례를 보면 일본은 외국 임상 근거를 기반으로 소규모 브리징 PK 연구만으로 적응증 확대를 허용한 바 있다"며 "유럽 EMA도 희귀질환 약제에 대해 조건부 허가를 내주고 사후조사로 보완하도록 하고 미국에서도 NIH나 FDA가 공익적 적응증 확대 연구를 지원하는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안전성을 이유로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입장은 이해하지만 제약사가 움직이지 않으면 절차가 시작조차 되지 현행 구조로는 '사각지대'에 놓은 환자를 구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
이에 대한폐동맥고혈압학회와 환우회 파랑새가 직접 나서기로 결정했다.
해외 근거와 임상자료를 기반으로 타다라필의 폐동맥고혈압 적응증 확대를 요청하는 의견서를 조만간 식약처에 제출할 계획이다.
학회 관계자는 "오죽 답답하면 환우회까지 직접 나서겠냐"며 "이미 20년 이상 글로벌 근거가 축적된 약을 한국에서 다시 임상으로 증명하라는 건 비합리적"이라고 호소했다.
■"분초가 생명인데…" 테넥테플라제 1년 넘은 사용 승인 절차
비슷한 일이 뇌졸중 영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한국 뇌졸중 환자들은 새로운 혈전 용해제인 테넥테플라제(TNK)를 눈앞에 두고도 정식 사용이 어렵다는 하소연이 나오는 것.
원인은 국내 승인과정의 구조적 제약과 제약사의 자료 제출 방식 때문이다. 뇌졸중학회에 따르면, 테넥테플라제는 심근경색 치료제로 2003년 국내 승인을 받았지만, 국내에서는 심근경색 발생 시 시술 병원으로 곧바로 이송되는 체계 덕분에 사용량이 극히 적었다. 결국 제약사는 심근경색 관련 국내 공급을 2024년 철수했고, 심근경색 적응증은 사실상 사문화됐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뇌졸중 치료에서도 테넥테플라제가 효과가 있다는 근거가 쌓이면서 사용 사례가 늘고 있다. 미국 FDA와 유럽에서는 심근경색이 아닌 뇌졸중 적응증으로 승인돼 있으며, 일본과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도 뇌졸중에서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다. 국내에서는 뇌졸중 적응증으로 새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베링거는 제넨텍 등 해외 임상자료를 기반으로 제출해야 하고, 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데이터까지 종합해야 하는 등 자료 제출 과정이 복잡하다. 게다가 식약처 내 심사 인력이 제한적이어서, 여러 근거와 임상 자료를 검토하는 데 시간이 지연되고 있다.
대한뇌졸중학회 김태정 홍보이사(서울대병원 신경과)는 "테넥테플라제 뇌졸중 적응증은 작년 8월 허가 신청이 제출됐지만 1년이 넘도록 심사가 진행 중에 있다"며 "학회 내부에서는 올해 안에 결정될 가능성이 낮고, 내후년까지 지연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승인 이후 급여 협상까지 고려하면 실제 환자 사용까지는 1~2년이 추가로 걸릴 수 있다"며 "뇌졸중과 같은 시간이 생명인 질환에서, 약물 사용 여부가 예후를 크게 바꾸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이런 지연은 환자에게 직접적인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학회 역시 '제도의 유연성'을 주문하고 있다.
김태정 이사는 "분초가 생명을 바꾸는 질환인데, 승인 절차가 너무 길어 환자가 제때 약을 못 쓰는 상황이 반복된다"며, "뇌졸중 같이 생명이 걸린 질환의 경우 우선순위를 두고 행정을 유연하게 운영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해외에서 이미 근거가 충분히 축적된 약제라도, 국내 규제와 승인 절차, 제약사의 제출 부담 등 여러 구조적 요인 때문에 환자 접근성이 제한되는 것은 실익이 없다는 것. 이미 중국, 태국, 호주, 미국, 유럽은 이미 테넥테플라제를 급성 뇌경색 표준치료에 포함시켰고, 일부 국가는 알테플라제를 거의 완전히 대체했다는 점은 한국의 규제 유연성의 시급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판단이다.
김 이사는 "식약처의 심사 인력 부족 등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환자 생명이나 예후에 직결된 질환에선 환자 접근성이 최대한 보장될 필요가 있다"며 "해외 근거를 적극 활용하고, 공공 주도의 보완적 임상이나 신속·조건부 승인, 승인 우선순위 제도 등 절차를 앞당길 수 있는 구조가 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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