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의료계와 정부 간 갈등을 해소해야 하는 차기 정권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이에 의료계 내부에선 의사단체별로 대선기획 조직이 구성되는 등 어느 때보다 정치권 대응이 활발하다.
특히 대한내과의사회는 이례적으로 대선기획위원회를 구성하고 의료계 중심 정책 제안서를 마련했다. 지난해 의료계 전반을 강타한 정책 혼란을 해결하자는 목표다.
대한내과의사회 대선기획위원회 신창록 위원장은 인터뷰를 통해 지난해 벌어진 사태는 단순히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향후 의료계를 뒤흔들 거대한 후폭풍의 시작이라고 판단했다. 그에 대한 대비로서 정책 기획에 착수했다는 설명이다.
■정책 제안서 마련 배경은 "후폭풍 대비해야"
내과의사회는 지난 2010년부터 매년 전국 지회 임원들과 함께 워크숍을 열고 현안 대응과 정책 제안을 논의해 왔다. 전국 지회에서 약 100여 명의 핵심 임원들이 모여 정책 토론을 벌이는 자리인데, 이번 연도엔 의정 사태 이후 정책 방향에 대한 고민이 특히 컸다는 설명이다.
그 결과물이 두 권의 정책 제안서다. 하나는 1차 의료 활성화를 위한 제안서, 다른 하나는 대선 공약 대응 용 정책집이다.
신 위원장은 "두 책자가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각기 다른 시점과 목적에 따라 사안을 정리했다"며 "1차 의료 활성화는 내과의사회가 오랜 기간 고민해 온 핵심 주제고, 대선 정책 제안서는 대선 정국에 실질적으로 반영되기를 기대하며 준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과의사회가 제안하는 핵심 공약은 '한국형 일차의료' 모델 구축이다. 개원의가 지역사회에서 환자 중심의 연속성 있는 진료를 제공하는 것이 한국형 일차의료라는 설명이다.
신 위원장은 이를 위해 의료전달체계의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정부는 의료전달체계를 손보겠다고 여러 차례 발표했지만, 항상 핵심을 피해가는 정책만 내놨다는 지적이다. 병원별 수익 구조나 인센티브 체계 문제, 국민의 대형병원 선호 심리 등 구조적 장애물을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는 것.
수가 체계 문제도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상대가치 기반 수가 구조는 일차의료가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다.
■주요 정책 공약은 "한국형 일차의료 모델 정립"
현행 수가 산정 방식은 진료의 양과 기술적 복잡성, 시술 시간 등을 기준으로 책정된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고난이도 수술이나 영상검사 등 전문성과 고비용이 투입되는 진료에 유리하다는 것. 반면 만성질환 관리, 환자 상담, 예방 중심의 진료를 주로 수행하는 일차의료는 낮은 상대가치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어 본질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노인 진료에 대한 수가 가산도 주요 공약으로 강조했다. 소아 진료엔 오래전부터 가산이 있었지만,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노인 진료에 대한 배려는 현저히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노인을 조기에 진료하고 합병증을 예방하면 전체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할 수 있는 만큼, 관련 수가 가산은 장기적으로는 효율적 정책이라는 요구다.
커뮤니티케어에서 의료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일차 커뮤니티케어 시범사업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의료의 부재라는 진단이다. 고령 환자에 대한 돌봄은 결국 질환 관리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의료진이 주도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신 위원장은 "정부는 모든 개원의가 일차의료 역할을 하기를 바라지만 정작 현재 제도는 한국 현실에 맞지 않는 외국 사례만을 추종하고 있다"며 "의료현장을 잘 모르는 교수들이 작성한 보고서나 시범사업 중심으로 정책이 추진되다 보니 실제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진짜 필수의료가 무엇인지 국가가 정의해야 한다. 일상에서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개원의의 역할을 필수의료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관 및 정책 반영 노력…정책 갈등 소지도 없애
정책 제안서가 단순한 문서에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력도 한창이다. 내과의사회는 정당, 국회 보좌진, 정책 담당 교수들과의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대선 이후의 계획도 있는데 그동안도 국회와 공청회를 열며 지속적으로 의견을 제안해 왔고, 선거 이후에도 이런 활동이 이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의협 대선기획본부와의 관계에 대해선 의협은 총론 중심, 내과의사회는 각론 중심 정책이라고 구분했다. 의협은 직역 갈등을 우려해 개별 정책에 대해선 언급을 꺼리는 경향이 있지만, 내과의사회는 전문과로서 세부 사안을 명확히 제안하는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신 위원장은 "선거 기간이 상당히 짧아 일일이 만나 뵙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적지 않은 분들이 정책 제안서를 국회 보좌관이나 정책 담당자에게 전달해 주겠다는 식으로 도와주고 있다"며 "기존에도 국회 공청회를 하는 등 정치권과 만남의 기회를 가지면서 우리의 제안을 설명해 왔는데 대선 이후에도 이런 활동이 계속 되리라고 본다"고 전했다.
정책 제안 과정에서 가장 조심했던 부분과 관련해선 직역·전문과 간 갈등 소지를 없애는 일이었다고 강조했다. 정책이 너무 개원가·내과 위주로 편중돼 다른 직역이나 타과의 비판을 받지 않도록 노력했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수차례 회의를 거쳐 표현을 조정하고 오해 소지를 줄였다고도 강조했다.
■교수 중심 정책 우려 "전달체계 바로 세워야"
다만 정부가 교수를 중심으로만 정책을 설계하는 현실은 문제로 지적했다. 연구 관련 영역에선 교수들의 역량이 뛰어날 수 있겠지만, 실제 환자의 삶을 들여다보고 현장의 문제를 파악하는 건 개원의들이라는 설명이다. 정부가 개원의 정책 파트너로 인정해 이들을 반영해야 한다는 요구다.
신 위원장은 "정책 제안에서 갈등이나 오해의 소지가 있을 만한 부분들을 최대한 걸러냈다. 다만 개원의와 교수는 상반된 점이 많다"며 "정책을 만들 때 교수들의 입장만 듣다 보니 의료를 무조건 통제하고 억제하는 쪽으로만 정책이 만들어진다고 본다. 앞으로도 개원가의 입장을 이해하고 편을 들어줄 수 있는 교수를 열심히 찾아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신 위원장은 이젠 개원가의 현실을 반영한, 실현 가능한 정책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대학병원의 과도한 외래 진료로 의료전달체계가 붕괴하는 현실이라는 우려다.
최근엔 이 같은 의료 이용 행태가 일종의 사회적 과시로 여겨지는 상황인데, 경증 환자가 대학병원을 이용할 경우 강력한 제한 조치와 패널티가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신 위원장은 "많은 국민이 대학병원에서 고혈압·당뇨약을 타고 건강검진을 받는 것을 과시하려 한다. 정부와 국회는 '경증으로 대학병원 가는 건 의료 질서를 해치는 행위'라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며 "대학병원이 경증 외래 환자를 오래 보지 못하도록 제도화하고, 경증 환자가 대형병원에 가면 환자에게도 강한 패널티를 부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본인부담금 10~20% 올리는 식이 아니라, 100% 이상 큰 벌금을 부과할 정도로 강력해야 바로잡을 수 있다. 유럽은 경증으로 대형병원 가는 걸 사실상 범죄로 간주한다"며 "이젠 이런 의료 이용 행태를 조정해야 할 때다. 이를 위해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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