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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가 설계자들이 칼을 거꾸로 들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 마상혁 고문
발행날짜: 2026-06-29 05:00:00

대한병원의사협의회 마상혁 고문

[메디칼타임즈=대한병원의사협의회 마상혁 고문 ] '건강보험 수가 구조 혁신방안'이라는 이름은 기만이다. 6월 17일 정부가 내놓은 이 문서는 혁신이 아니라, 30년에 걸쳐 자신들이 비틀어 놓은 수가 체계의 책임을 의료 현장에 뒤집어씌우는 면피용 청구서일 뿐이다. 불을 지른 자가 소방 호스를 들고 나타나 "여기가 왜 이렇게 탔느냐"고 호통치는 격이다.

숫자부터 따져 보자. 검체검사 190%, CT·MRI 200%, 반대로 입원 57.3%·재활 62%·진찰 70.7%. 정부는 이 수치를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객관적 진실처럼 들이민다. 그러나 이것은 정부 산하 의료비용원가분석위원회가 '종합병원 77곳', 그것도 의원급은 통째로 빠진 표본을 정부 기준으로 계산한 값에 불과하다.

게다가 '원가보전율'은 학계조차 단일한 정의를 합의하지 못한 개념이다. 비용을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같은 행위의 보전율이 수십 퍼센트씩 춤춘다. 깎을 때는 이 흐릿한 잣대를 정밀과학처럼 휘두르고, 올려야 할 때는 슬그머니 치워 버린다. 통계를 권력의 무기로 골라 쓰는 전형적인 행정 편의주의다.

그렇다면 묻는다. 진찰과 입원을 원가의 60%대로 처박아 놓은 그 점수표는 누가 만들었는가. 우리 수가는 상대가치점수에 환산지수를 곱해 정해진다. 상대가치점수는 건정심을 거쳐 보건복지부 장관이 고시하고, 환산지수는 매년 공단과 의료계의 협상으로 결정된다.

다시 말해 검사를 과보상하고 진찰·입원을 원가 이하로 묶은 그 왜곡된 설계도의 저작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보건복지부와 건정심 자신이다. 의원 초진료를 20년 넘게 동결시킨 것도, 인상분을 매년 0.5% 안팎으로 틀어막고 SGR이라는 총량 억제 장치로 의료를 고사시켜 온 것도 정부다. 자기 손으로 망가뜨린 구조를 가리키며 "엉망"이라 비난하는 그 뻔뻔함에는 최소한의 자기반성조차 없다.

검사가 많다는 비난은 더욱 악의적이다. 인구 1천 명당 CT 333.5건이 OECD 평균의 두 배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가 직접 발표한 'OECD 보건통계 2025'는 같은 해 우리 임상의사가 인구 1천 명당 2.66명으로 사실상 꼴찌, 국민 1인당 외래는 연 18회로 OECD 평균의 약 3배, 진료 시간은 4.3분으로 평균(16.4분)의 4분의 1임을 함께 적시한다.

의사는 턱없이 부족하고, 한 명이 폭주하는 환자를 분 단위로 쳐내야 하는 나라에서 검사는 사치가 아니라 짧은 진찰을 메우는 생존의 보완재다. 여기에 진단 지연을 형사처벌로 단죄하는 살벌한 사법 리스크가 방어진료를 강요한다. 그리고 결정타—MRI 검사가 폭증한 진짜 방아쇠는 정부 스스로 당긴 것이다.

보장성 강화 정책(이른바 문재인 케어)으로 2018~2019년 MRI와 초음파를 대거 급여화하며 빗장을 활짝 연 장본인이 정부다. 수요를 폭발시켜 놓고 이제 와 그 수요를 '과잉'으로 낙인찍는 것, 이것이야말로 책임 전가의 완성형이다.

'아낀 돈 2조 원'이라는 표현도 거짓 포장이다. 이것은 절감이 아니라 강탈에 가까운 이전이다. 총진료비를 사실상 묶어 둔 틀 안에서 검사 수가를 깎아 응급·분만을 메우는 제로섬 돌려막기일 뿐, 단 한 푼의 새 재정도 들어오지 않는다. 정작 정부의 건강보험 국고지원은 법정 기준 20%에 한참 못 미치는 13%대에 방치돼 있다.

자기가 내야 할 돈은 떼먹은 채, 의료기관끼리 서로 살을 뜯어 나누라는 것이다. 더 가관인 것은, 깎을 항목은 110%·150%까지 기어이 숫자로 못 박으면서, 원가의 57%짜리 입원료를 언제 정상화하겠다는 약속은 '강화' '지원' '연계'라는 공허한 수사로 얼버무린다는 점이다. 의도가 빤히 보인다. 깎는 것은 확정, 올리는 것은 희망사항이다.

응급실은 환자를 돌려보내고, 분만실은 사라졌으며, 소아청소년과는 원가에 못 미치는 진료로 줄줄이 문을 닫았다. 이 참사는 갑자기 터진 것이 아니다. 수년간의 절규를 묵살한 정책 실패의 필연적 귀결이다. 책임은 명백히 보건복지부와 정치권에 있다.

그렇다면 혁신을 입에 올리기 전에 무릎 꿇고 사과부터 하는 것이 도리다. 그런데도 마치 의료인이 폭리를 취한 파렴치범인 양 몰아세우며 그들의 보상을 깎아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니, 이보다 더한 적반하장이 어디 있는가.

의사는 OECD 꼴찌로 부족하고 의료비(2023년 경상의료비 GDP 대비 8.5%, OECD 9.1%)는 평균에도 못 미치는 나라에서 "저비용 고품질 의료"를 약속하는 것은 산수조차 안 되는 국민 기만이다. 반나절 공청회 한 번 열어 놓고 "충분히 들었다" 자평하며 정책을 밀어붙이는 이 오만이, 미래를 스스로 지워 가는 한국 의료의 민낯이다. 국민이 그 청구서를 떠안기 전에, 책임 소재부터 분명히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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