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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안 된 특사경 권력, 누가 책임지나

경남의사회 마상혁 공공의료위원장
발행날짜: 2026-06-01 05:00:00

경남의사회 마상혁 공공의료위원장

[메디칼타임즈=경남의사회 마상혁 공공의료위원장] 건강보험공단이 특별사법경찰관(특사경)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부정수급과 허위청구를 근절하겠다는 명분은 그럴듯하고, 건강보험 재정 누수가 심각하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책의 명분보다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제도가 정말 필요한지를 따져보았는가 하는 것이며, 설령 필요하다 해도 지금 우리 공직 사회는 사법권을 올바르게 행사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특사경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논거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건보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이미 강력한 선제적 차단 수단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청구 데이터 전수 분석, DRG 이상 패턴 탐지, 현지조사권, 환수처분권, 요양기관 지정취소 연계권이 그것입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연간 수십억 건의 청구를 전산 심사합니다. AI 기반 이상청구 탐지 시스템 고도화, 청구 코드 조작 패턴 데이터베이스 구축, 의·약학 전문가 검토단 확대는 수사권 부여보다 비용 대비 효과가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범죄 탐지를 위해 수사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미 범죄를 탐지하고 있는데 처벌 수단을 자기 손에 쥐려는 것이 공단특사경의 본질입니다.

이것은 수사기관이 아닌 징수기관이 원하는 구조입니다. 수사권은 범죄 예방이 아닌 범죄 이후 처벌 수단입니다. 예방·탐지 시스템을 먼저 갖추지 않고 처벌 수단을 먼저 도입하는 것은 정책 순서의 역전입니다.

급여 청구 문제는 본질적으로 행정법적 사안입니다. 형법의 최후수단성(ultima ratio) 원칙상 행정조사→행정처분→환수의 경로로 해결해야 하며, 형사화는 어디까지나 예외여야 합니다. 의료기관의 급여 청구 문제는 기존에도 행정조사와 행정처분으로 해결해 왔습니다.

공단특사경이 도입되면 단순한 청구 기준 해석 오류나 경미한 실수도 손쉽게 형사사건으로 비화될 수 있습니다. 이는 형사법의 최후수단성 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며, 의료현장 전반을 잠재적 형사문제화시키는 구조적 위험성을 내포합니다.

대법원 역시 명문 규정 없이 유사 업무라는 이유만으로 특사경 권한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25도11546). 직무범위와 주체를 명확히 특정하지 않으면 권한 남용 또는 무권한 수사 논란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구조적 이해충돌입니다. 공단은 건강보험 재정을 관리하는 기관입니다. 재정 누수를 줄여야 한다는 조직적 유인이 매우 강합니다. 그런 기관이 동시에 수사권을 갖는다면, 단속 성과가 곧 재정 성과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과잉수사와 무리한 처벌 압력은 예고된 수순입니다. 공단은 현재도 급여 지급, 비용 심사, 환수 처분 등 행정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수사권이 추가되면 조사·처분·수사 기능을 하나의 기관이 동시에 행사하게 되며, 재정 건전성이라는 목표가 수사 과정에 개입하여 수사 공정성에 근본적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수사·기소 분리 및 검사 지휘권 약화라는 형사사법 구조 변화와 결합될 경우 공단특사경은 사실상 독립적 수사기관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중수청 설치로 수사가 검사 지휘 없이 독립적으로 이루어지고, 공소청 설치로 기소가 수사 관여 없이 사후 판단하는 구조에서, 특사경에 대한 기소 억제 기능은 실질적으로 약화됩니다. 의사의 형사 리스크는 구조적으로 증가하고, 의료사고 형사특례가 있어도 실질적 보호 효과는 약화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공단특사경이 도입되면 경찰·특사경·심평원 현지조사가 동일 사건에 중복으로 이루어지는 3중 수사 구조가 현실화됩니다. 의료기관은 과도한 방어 비용과 인력 소모에 시달리게 되고, 공소청은 특사경 수사 관여 통제 기능을 상실하여 불기소·보완 재검토 기능이 약화되며, 수사기관과 공소청 간 책임 경계가 불분명해집니다.

무엇보다 수사 가능성이 상존하는 환경에서 고위험 환자 기피와 고난도 시술 회피가 확산되고, 외과·응급의학·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분야가 집중 타격을 받아 의료 공백이 현실화될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국민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입니다.

방치되어 온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의료생협(생활협동조합 형태 의료기관) 문제가 대표적입니다. 명의 대여, 조합원 자격 위장, 비의료인 실질 운영, 보험청구 허위화가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음에도 현행 규제 체계에서 사실상 방치되어 왔습니다.

공단이 진정으로 재정 누수를 차단하려 한다면, 특사경이라는 새로운 권한 창설이 아니라 이미 문제가 드러난 의료생협에 대한 현지조사와 행정처분 강화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새 수단을 요구하기 전에 기존 수단을 제대로 쓰지 않는 이유를 먼저 설명해야 합니다.

현장의 현실은 또한 냉혹합니다.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법경찰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민원인이 관련 법령과 고시를 출력해 감독관에게 설명해야 하는 주객전도 상황이 벌어집니다. 단기 교육 수료만으로 자격을 부여하고 2~3년마다 부서를 옮기는 순환보직 문화 속에서 전문성이 쌓일 리 없습니다. 사법권을 가진 순간 일부 공무원들은 민원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전제하고 접근합니다.

압박식 심문, 고압적 언사, 위협에 가까운 분위기 조성이 이루어지고, 정작 민원인에게 진술 거부권조차 제대로 고지되지 않는 사례가 보고됩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역시 허가권이라는 막강한 행정 권력을 이미 쥐고 있음에도 기업 측이 법령 근거 조항을 설명하며 심사관을 사실상 교육하는 구조가 반복됩니다.

전문성 없는 권력이 탄생하면, 동일한 행위가 어떤 담당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범죄가 되기도 하고 아무 문제가 없기도 한 자의적 법 집행이 일상화됩니다. 압수 대상이 진료기록, 처방내역, CCTV, 메신저 기록까지 확대될 경우 환자의 민감한 개인정보가 대량 노출될 위험이 있으며, 이는 의료법상 진료 비밀 보호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은 분명합니다. 단순 수료 방식의 교육을 법조인·전문가가 참여하는 엄격한 자격시험으로 전환하고, 합격하지 못하면 사법권을 부여하지 않는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특사경 직위를 순환보직 대상에서 제외하고 최소 5년 이상 해당 분야 경력자에 한해 자격을 부여해야 합니다.

권한 행사에 대한 사후 감독을 기관 내부 자체 조사에 맡겨서는 안 되며, 독립 외부 기관이 정기적으로 감독하고 결과를 공개해야 합니다. 조사 전 과정을 영상 녹화하고 민원인에게 권리를 서면으로 고지하는 것을 법적 의무로 규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조건이 갖춰지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공단과 심사평가원의 데이터 기반 탐지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방치되어 온 의료생협 불법 구조를 정리하며, 현지조사권과 환수처분권을 제대로 행사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공단특사경 문제는 이미 국회에서 수차례 논의된 사안입니다. 그때마다 결론은 같았습니다. 보험자인 공단에 사법권을 부여하는 것은 권한의 범위를 넘는다는 판단이었고, 이는 여야가 합의한 내용입니다. 법제사법위원회를 반복적으로 통과하지 못한 것은 단순한 절차적 지연이 아닙니다. 입법부가 숙의를 거쳐 내린 판단이며, 삼권분립의 관점에서 사법권의 민간 준공공기관 위임에 대한 헌법적 우려가 반영된 결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단이 특사경 도입을 반복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국회의 판단을 존중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여야가 모두 우려하는 사안을 행정부 주도로 관철시키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민을 위한 제도라면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의 반복된 판단을 겸허히 수용해야 합니다. 국회가 틀렸다고 주장하려면, 그 판단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근거를 국민 앞에 먼저 제시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그런 근거는 제시된 바 없습니다.

결국 이 질문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여야가 합의하여 거듭 제동을 건 제도를 지금 이 시점에 다시 밀어붙이는 것이 과연 국민을 위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재정 누수 차단이라는 명분 뒤에 공단 조직의 권한 확대라는 목적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합니다. 국민의 이익과 기관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을 때, 정책은 반드시 국민의 편에 서야 합니다. 그것이 공공기관 존재의 근거이며, 지금 공단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책임입니다.

행정 문제는 행정으로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며, 형사는 최후의 수단이어야 합니다. 순서가 틀렸습니다. 권한은 준비된 자에게만, 그리고 다른 수단이 모두 소진된 이후에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법치주의의 기본이며, 지금 이 논의에서 가장 먼저 되새겨야 할 원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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