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고령화와 함께 치매는 국가적 과제가 됐다. 최근 아밀로이드 베타를 표적으로 하는 신약들이 등장하며 '치료'의 길이 열렸지만, 여전히 '조기 발견'은 높은 벽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목소리만으로 치매를 잡아내는 에이블테라퓨틱스의 음성 데이터 기반 인공지능(AI) 분석 소프트웨어 '스픽(Spick)'이 식약처 혁신의료기기로 지정되며 의료진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기대감도 부쩍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 치매 진단 소프트웨어가 혁신의료기기로 지정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 실제 허가가 된다면 치매를 진단하는 인지 평가 소프트웨어 1호 타이틀로 임상적 성능과 접근성, 기술 혁신성을 모두 입증하기 때문이다.
에이블테라퓨틱스 김형준 대표를 만나 음성 기반 치매 진단의 기술적 원리 및 과제, 향후 비전을 직접 들었다.
■어눌함과 떨림 속에 숨겨진 '치매의 지문'
혁신의료기기 지정의 가장 큰 기술적 의의는 '단독 소프트웨어'로서의 독자적 성능을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김형준 대표는 "기존의 치매 진단 보조 도구들이 대부분 MRI나 CT 같은 거대 장비 내에 탑재되어 영상을 분석하는 보조적 형태였다면, 스픽은 소프트웨어 그 자체로 치매를 진단하는 국내 첫 번째 혁신의료기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대표는 "모바일이라는 친숙한 도구를 활용하기 때문에 기존 진단 도구들이 가졌던 공간적, 물리적 한계를 극복했다"며 "병원을 넘어 어르신들의 일상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인지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라이프 로그' 진단 시대를 연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존의 치매 진단은 고가의 MRI 영상을 판독하거나 의료진이 종이 문진표를 들고 환자와 대면하는 방식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스픽은 환자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대고 말을 하는 것만으로 인지 상태를 분석한다. 김형준 대표는 이 과정에 담긴 기술적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김 대표는 "치매 환자들은 정상인과 구분되는 발화적 특징, 즉 어눌함이나 머뭇거림,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과 자신감 없는 말투 등을 보인다"며 "우리는 단순히 말투를 분석하는 것을 넘어, 개인의 고유한 습관을 배제하고 질환 특유의 '발화 지문'을 추출하기 위해 11가지 정밀한 피처(Feature)를 종합 분석한다"고 설명했다.
알고리즘의 신뢰도는 방대한 임상 데이터에서 나온다. 2018년부터 시작된 연구는 11개 종합병원이 참여한 두 차례의 다기관 임상을 거쳤다. 김 대표는 "현재 1만 2,500여 건의 고품질 임상 데이터를 학습 데이터로 확보했다"며 "이 데이터들이 음성 속에 숨겨진 치매의 지문을 찾아내는 AI의 핵심 자산"이라고 말했다.
실제 성능은 숫자로 증명됐다. 확증임상시험 결과, 스픽은 인지장애 민감도 85.7%를 기록하며 기존 표준 선별 도구인 MMSE 대비 환자 발견율을 약 20%p나 끌어올렸다.
김 대표는 "의사의 최종 진단을 '골드 스탠다드'로 볼 때 80% 이상의 일치율을 보인다는 것은 1차 선별 도구로서의 권위를 확보했다는 뜻"이라며 "특히 비가역적 단계로 넘어가기 전인 경도인지장애 환자를 조기에 발견해 신약 처방의 적기를 잡아줄 수 있다는 점에서 임상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성능 개선은 현재 진행형…"LLM-멀티모달 결합, 산학연 협력"
에이블테라퓨틱스의 시선은 단순한 음성 분석에만 머물지 않는다. 현재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민감도를 끌어 올리기 위한 차세대 연구에 돌입했다. 그 중심에는 LLM(거대언어모델)과 멀티모달 기술이 있다.
김 대표는 향후 연구 방향에 대해 "민감도를 90% 이상으로 올리기 위해 LLM과 멀티모달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며 "현재 보유한 음성 DB의 절반을 MIT 미디어랩과 일본 자이스트(JAIST) 등 세계적 연구기관에 오픈해 공동 연구를 진행 중에 있다"고 밝혔다.

그는 "기존 딥러닝 방식에 LLM 기반 모델을 결합하면 지금보다 훨씬 정교한 진단 성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여기에 음성뿐만 아니라 드로잉(그림 그리기), 아이 트래킹(시선 추적)이라는 세 가지 바이오마커를 결합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자가 화면에 그림을 그릴 때의 펜 압력이나 속도, 질문을 읽을 때의 눈동자 움직임 등을 종합 분석하면 병원에서 MRI와 혈액검사를 병행하는 것과 같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 전용 기기 없이 오직 스마트폰 하나만으로 이 모든 검사가 가능하다는 점은 의료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요소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이러한 기술은 산업적으로도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스픽은 병원용 의료기기를 넘어 TV, 로봇, 공기청정기 등에 탑재되는 헬스케어 서비스로 확장 중이다.
김 대표는 "지자체와 협업하는 'AI 인지콜'은 의료 취약계층 어르신들에게 전화를 걸어 대화만으로 인지 건강을 관리하는 모델"이라며 "지자체 입장에서는 치매 관리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어르신들은 집에서 편안하게 스스로를 돌볼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년 의료기기 승인 후 병원 처방이 본격화되면 데이터가 쌓일수록 성능이 강해지는 성장의 선순환이 일어날 것"이라며 "스픽을 통해 치매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관리 가능한 질환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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