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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탓이 아니에요

분당차병원 소아응급센터 박수현 교수
발행날짜: 2023-08-14 05:00:00

분당차병원 소아응급센터 박수현 교수

의과대학 실기 시험에 '나쁜 소식 전하기'라는 항목이 있다. 일반적 응급실에서는 주로 심정지 환자나 말기 암 환자, 패혈증 환자 등에서 죽음이나 짧은 기대여명을 전달할 때 쓰인다. 하지만 소아응급실에서는 '폐렴', '요로감염', '맹장염', '장중첩증', '뇌수막염'과 같은 일반적인 진단명을 전달할 때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세상이 무너지는 거 같은 표정을 짓는 보호자들이 많다. 캐나다의 전문의이면서 의료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롭 버크만은 나쁜 소식은 환자의 미래에 대한 전망에 큰 영향을 끼치는 모든 정보라고 정의하였다. 즉, 환자나 보호자의 기대에 어긋나는 사실은 모두다 나쁜 소식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작은 아기가 요로감염이라고 진단하면 절반에 가까운 엄마들은 "제가 아기 기저귀를 잘 못 갈아준 것인가요? 아니면 밑을 잘 닦아주지 못해서 그런 건가요?" 라고 묻는다. 보호자는 시간을 되돌려 보고 되돌려 보면서 이 작은 아기가 겪는 고통의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으려고 한다. 장중첩증이나 맹장염 혹은 다른 시술이나 수술을 받아야 하는 진단명은 더하다.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으면 엄마들은 대부분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아이가 먹은 음식이나 아이의 생활 습관들 중 엄마가 실수 한 것이 있는지를 되새기고, 일을 하는 엄마의 경우 자신의 부재로 인하여 아이가 방치된 거 아닌지 자신의 탓을 한다.

아이에게 크고 안정적인 존재인 엄마의 부정적 감정은 아이들을 극도로 불안하게 만든다. 낯선 병원에 와서 진료와 검사 과정을 겪은 아이들은 안 그래도 긴장감이 높은 상태이다. 아이들에게는 생소한 질환임에도 엄마의 반응을 통해서 굉장히 큰 위기가 닥쳤다고 생각한다. 병원에서 보호자의 자책은 아이가 치료되는 과정에서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성적인 판단과 사고를 저해하여 결정을 내리지 못하거나, 현실을 부정하면서 다른 방법을 찾고 싶다고 치료 거부, 치료 지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울함의 감정은 자책을 넘어서 다른 이에게 투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부부싸움, 고부간 갈등, 그외 다른 가족 구성원간의 갈등과 원망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많은 경우에서 병원 안에서는 의료진에게 그 책임을 돌리기도 한다. 작고 불쌍하고 연약한 아이를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할 거 같은데, 그것을 병원 안에서 표출하다 보니 엉뚱한 방향으로 분출되게 되는 것이다. 지나치게 과도한 요구로 이어지거나 의료진을 싸워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 적대하게 된다.

응급실 내 환자가 많은 상황에서 우리 아이만 봐 달라고 5분에 한번씩 의료진을 부르는 경우도 있고, 의료진이 늦으면 아이를 방치했다고 화를 낸다. 아이 코를 빼 달라, 침대가 불편하다고 하거나 아이가 먹고 싶은 특정 음식을 구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또한 수액을 잡기 위해 신중하게 보고 있는 간호사에게 애를 얼마나 울려야 직성이 풀리겠냐고 소리를 지르고, 수술을 위해 금식해야 한다는 의사에게 애를 굶겨 죽일 생각이냐고 욕을 하기도 한다. 중증 질환 아이 대신 무조건 자기 아이를 봐 달라고 터무니 없는 요구도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세상에 어떻게 그런 사람이 있냐고 반응할 수도 있지만 이는 정말 어쩌다 한번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 매 근무때마다 접하는 보호자 중 한 명이다.

부부가 이혼을 할 때 큰 사건이 생겨서 이혼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서 양말을 뒤집어 벗거나, 수도꼭지를 잘 잠그지 않는 등 아주 사소한 문제들이 쌓여서 헤어질 결심을 한다고 한다. 의료진도 마찬가지다. 큰 사건을 겪으면서 사직을 결심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극 소수이다.

대부분은 사람들의 비난과 욕과 부정적인 감정들을 받아내면서 점점 마음이 깎여 나가고, 그 마음이 조금도 남지 않게 되면 사직을 결심하게 된다. 일하면서 주변에 많은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상처를 받고 현장을 떠나는 것을 목격했다. 남은 이들은 마음이 다 깎여 남아있지 않은 그들을 붙잡을 수가 없다.

이 슬픈 비극과 같은 사건의 중심에는 보호자의 자책감이 숨어있다. 조금만 더 빨리 알았으면, 혹시라도 부모가 아이 아픈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닌지, 아이 옆에 있어주지 못해 이렇게 된 것은 아닌지 돌이켜보면 후회되는 일들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아픈 아이 옆에서 보호자들은 연거푸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를 반복한다. 아이들은 어른처럼 아픈 것을 엄청 참지 못한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대신 아픔에 솔직한 것이 아이들의 특징이다. 엄마, 아빠가 인지한 그 순간이 중요한 것이니, 지레짐작해서 후회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일하는 엄마, 아빠가 일하는 대신 아이 옆에 있었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질환은 별로 없다.

대부분 아이들의 질환은 예측도 어렵고 원인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 아이들의 질환은 절대 엄마나 아빠 탓이 아니다. 아직은 양육자의 도움이 있어야만 생활이 가능한 지극히 의존적일 수 밖에 연약한 존재인 아이가 아프니 지켜주지 못한 것 같고, 건강하게 키워주지 못한 거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 수 있다.

부모라면 이 마음에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자책을 하기 보다 우리 아이가 아픔을 이겨내고 잘 치료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그 순간 부정적인 감정을 보여주기 보다 사랑으로 안아주고 옆을 지켜줘야 한다. 그 긍정적인 생각과 태도들이 의료진에게도 힘이 되고, 아이 또한 안정되고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적절하게 치료 받고 갈 수 있는 지름길이 되리라 믿는다.

"절대 엄마 탓이 아니에요. 그 누구의 탓도 아니에요. 탓하기 보단 한번 더 안아주세요. 옆에서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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