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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대변인

분당차병원 소아응급센터 박수현 교수
발행날짜: 2023-07-17 05:57:56

분당차병원 소아응급센터 박수현 교수

소아응급전문의로서의 삶에 대하여 다수에게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인력난에 허덕이는 시기, 무언가 좋은 점을 넣어야 할 거 같은데, 아무리 머리를 싸매 보아도 아기들이 이쁘고, 어린이들이 귀엽고 순수하다는 거 외에는 생각나는 게 없었다.

이런 고민을 말하자, 주변에서 "적어도 '주취자'들은 없잖아"라고 말했다. 물론 소아응급실에 주취자는 드물다. 다만 주취 보호자들이 있을 뿐이다.

어느 날 술 냄새가 진동하는 부부가 돌 남짓한 아기를 안고 내원했다. 모임에 갔다가 아기가 다친 거 같다고 하는데 아무리 물어봐도 어떻게 얼마나 다쳤는지 알지 못한다.

검사와 치료가 필요했으나 보호자는 오랜 시간 설명해도 거부했다. 피가 흐르고 봉합이 필요한 상태임에도 막무가내였다. 그리고 의료진에게 욕설을 쏟아냈다. 아기가 듣고 있는데도 거친 말이 높은 언성에 섞여 이어졌다.

결국 '아동학대'로 경찰에 신고했다. 그가 아동학대를 했는지 안 했는지 이 아기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는지 알 수 없다. 이 보호자가 평소 술을 마시는지 오늘만 마셨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아기가 다쳤음에도 그 상황을 알지 못하고, 아기의 다친 상처조차 보지 않고 내원 한 점, 그리고 보호자가 아기를 안고 욕을 하고 있음에도 아기는 익숙한 것처럼 울지 않는 점들이 이상했다.

무엇보다 아기는 보호자의 소유물이 아니다. 의학적으로 치료가 필요한데 보호자가 하기 싫다고 해서 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아동 학대의 사유라고 생각했다. 경찰이 오고도 보호자는 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경찰이 오고, 아기는 간신히 검사와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 다음날, 항의 전화로 응급실 진료에 큰 지장이 있었다. 신고한 보호자의 부모 즉 아기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면서 계속 전화를 했다. 어떻게 자기 자식을 아동학대로 신고할 수가 있느냐고 그 놈이 누군지 당장 말하라는 것이었다. 허위신고를 한 그 놈을 잡기만 해보라고 가만두지 않겠다는 등의 협박이 이어졌다. 실제 찾아오기도 했다.

어린 아기는 아직 언어발달 전 상태라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진들은 진료를 보는 중 수시로 아동학대 가능성을 생각해봐야 한다. 이를테면 다친 기전과 다친 부위가 일치하지 않거나, 보호자 말이 계속 바뀌는 경우, 그리고 다치고 긴 시간이 경과 된 후 내원한 경우 등 이상한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는지를 본다.

또한 아기의 반응을 살펴 양육자와의 애착관계나 낯선 환경이나 자극에 대한 반응을 통해 학대를 의심하기도 한다. 말을 조금 할 수 있는 아이들은 자신에게 발생한 일들이 폭력이고 학대임을 알아채기 어렵다. 심지어 안다고 해도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설명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양육자에게 반기를 들기는 쉽지 않다. 아이들은 양육자에 대하여 절대적 '을'일 수밖에 없다.

예전에 주취자 여성이 응급실로 실려왔는데, 보호자가 초등학생 아이 밖에 없었다. 그 환자는 지속적으로 초등학생 아이에게 욕을 했다. "XX, 너 때문에 내 인생 망했어. 너만 안 낳았어도…" 아이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처음이 아닌 것처럼 옆에서 수발을 들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아동학대로 경찰에 신고하였으나 초등학교 아이가 환자가 아니고 아이가 다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신고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보호자와 분리하여 학대에 관하여 질문해보니 아이는 겁에 질려 엄마가 학대한 적이 없다고 부정하였다. 욕하고 방치하더라도 하나뿐인 가족인데 이마저 빼앗길까 두려운 표정이었다. 술이 좀 깨고 엄마와도 조금 더 이야기해보니 혼자서 경제활동을 하고 아이도 키우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고 어려운 현실을 토로하였다. 결국 수소문을 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자체와 복지시설 연결을 부탁했다.

슬프지만 소아응급실에서 아동학대 의심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다.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상황은 다양하다. 귀찮아서 방임하는 경우도 있고, 삶이 너무 힘들고 우울해서 그 화살이 아기에게 날아가는 경우도 있다. 그 외에도 아기의 발달과 아기의 상황에 대하여 정말 잘 몰라서 무지로부터 비롯되는 경우도 있다. (아이를 재운다고 차에 놓고 다른 곳에 갔다가 심정지가 오는 경우도 있고, 목도 못 가누는 아기를 과하게 흔들고 놀아주다가 뇌출혈이 발생한 경우도 있다) 생명에 지장 없는 경우도 있지만, 다발성 골절, 뇌출혈 등 치명적인 경우도 많다. 굶겨서 영양상태가 안 좋은 경우도 있다.

소아응급실에서 겪는 다양한 상황은 훨씬 더 비극적인 사례가 많다. 아동학대가 사회적 관심을 갖게 되면서 주변 이웃의 신고가 늘고, 경찰의 대응도 더 적극적이고 지자체 지원도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관심이 식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까봐 두렵다. 여전히 아이들은 사회적 약자이고, 스스로 독립적 삶을 살 수 없다. 절대적일 수 밖에 없는 양육자의 학대에 고스란히 노출된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받는다. 일시적이 아닌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의사는 수사할 능력도 판결할 권한도 없다. 그러므로 신고를 했다고 하여 유죄로 확정되는 것이 아니다.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작은 의심만으로 신고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의미가 그 사람이 아동학대를 저질렀다고 낙인찍는 것이 아니다.

학대를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신고를 당했다고 무척 억울할 수 있지만, 다른 아이들을 보호하는 수단일 수 있으니 조금만 더 이해해주고 그 원망을 응급실에 풀어내지 않았으면 한다. 아동학대 신고는 말 못하고 표현이 서툰 아기들을 보호하고 대변할 수 있는 마지막 방어선이다. 진짜 학대에만 신고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과하다 싶게 신고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의료진 또한 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대부분 신고하고 나면 그 대상은 신고자를 찾아내겠다고 하고 전화해서 진료를 못할 정도로 욕을 하고 괴롭힌다. 찾아가겠다고 협박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가만 두지 않겠다고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것은 너무도 무서운 일이다. 신고 후에는 한동안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로 다니고, 응급실 내에서 화장실로 이동하는 것도 두려울 때가 있다. 하지만 신고만으로 원한을 갖는 보호자 뒤에는 신고해주지 않아도 원망조차 하지 못하는 작은 존재들이 있다. 그 아이들이 가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나를 만난 것이라면 그것이 진짜 학대였든 아니었든 소소한 의심 하나만으로 112의 무거운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신고하면 양육자가 몰랐다면 그것이 학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같은 행동을 하지 않으며 조심스럽게 아이를 대할 것이라는 기대, 그리고 적어도 누군가는 관심을 가지고 한동안은 그 아이를 지켜보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커다란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다.

아동학대는 신고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삶이 고되고 경제적 상황이 안 좋은 곳에서는 더 쉽게 방임과 학대가 발생할 수 있다. 안타까운 아이들이 나올 때마다 잠깐의 관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지속적으로 이 아이들을 지킬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오늘도 우리는 소아응급실에서 무거운 마음을 누군가를 의심한다. 혹시라도 말 못하는 그 아이의 마지막 대변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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