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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아응급실 의사다

박수현 분당차 소아응급센터 교수
발행날짜: 2023-06-05 05:10:00

분당차병원 소아응급센터 박수현 교수(전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

주변 병원에서 소아응급실 근무 의사 전원이 사직서를 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 소식이 사실임을 증명하듯 환자가 몰아 닥친다. 중증환자는 당연히 받아야 하고, 경증 환자 역시 몰린다. 하루 최소 100여명 이상의 소아응급실 환자를 보고 나면 온몸의 에너지가 모두 고갈되는 '번아웃' 증상이 생긴다. 근무 후에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근무 외에는 최대한 목소리를 아끼지만, 일이 반복되면 쉰 목의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다. 진료를 위해 건강에 득이 될 것이 없지만 고용량의 스테로이드를 투약해서 임시방편으로 목소리를 나오게 하는 경우도 있다.

소아응급실 인력의 위기는 일부 병원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국 최다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우리병원(분당차병원) 역시 학교 전임교원 발령을 받은 교수님이 사직서를 내셨다. 소아응급실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는 게 힘든 이 시기, 이 교수님의 사직은 전체의 분위기를 또 한번 암울하게 가라앉힌다. 나도 진지하게 사직을 고민하고 있지만, 같이 버티고 있는 동료들을 생각해서 오늘도 말을 꺼내지 못한다.

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이자, 소아응급세부 전문의이다. 소아 응급은 의료계의 기피과 중의 기피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선호도가 낮다. 응급의학과에서는 소아를 기피하고, 소아과에서는 응급을 꺼린다.

소아응급은 소아과에서 보는 질환부터 시작해서 소아과 과정에 크게 다루지 않는 외상까지 광범위하게 포함되어 있다. 또한 소아응급실에서는 심폐소생술을 포함한 중증 급성기 질환 환자들을 만나게 된다. 선천성 질환부터 시작해서 희귀한 질병, 외상 마저도 소아는 특이한 부분이 많아 따로 이름을 붙인 경우가 많다. 소아는 연령과 몸무게에 따라 수액속도부터 약 용량까지 다 다르다. 이러한 다양한 환아와 이토록 광범위한 질환을 보는 곳이니 진료가 쉽지만은 않다.

소아응급실을 조금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감정의 쓰레기통'이다. 아이가 아픈 상황에서의 불안과 걱정, 초조함은 응급실에서의 당연한 감정이다. 이에 덧대어 아이들에게서 발생할 수 있는 우발적인 사고나 예측할 수 없는 질병의 진행 과정에서 부모나 보호자들이 스스로 자책을 하면서, 이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엉켜 의료진에게 이를 투사된다. 불안감과 적대감이 뒤엉킨 응급실의 공기는 그것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의료진도 혹시라도 대부분의 경증 환자들 사이에 섞여 있을 중증환자를 찾기 위해 긴장도가 놓아져 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감정들이 뒤섞여 응급실은 모두에게 괴로운 공간이 된다. 응급실에 있는 모든 이들이 긴장으로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데, 추가적으로 저 감정들에 고스란히 노출되게 되면서 피로도는 계속 쌓여간다.

여기서 오해를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응급실에 있는 의료진들은 아픈 이들의 '적'이 아니다. 아픈 환자들의 보호자를 제외하고는 가장 신경 쓰고 걱정해주는 존재이다. 가끔 보호자들에게 설명할 때 "우리 의료진들은 진짜 완전히 같은 '편' 이에요"라는 표현을 쓴다. 수술이나 시술이 필요한 환자들을 위해 타과에 연락할 때도 보호자와 같은 마음으로 누구보다 빨리 봐줬으면, 수술 빨리 할 수 있었으면 하고 간절함을 담는다. 전원을 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보호자 대신 필사적으로 전원을 알아보고 부탁하고 또 부탁을 한다. 이전에 선천적 중증 질환으로 전원을 가야 하는 아이를 서울 경기권에 있는 모든 병원에 전화를 돌린 적이 있다.

"제가 제 운을 모두 여기에 쓴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전원 문의를 했어요."

힘들게 전원 결정이 된 후 보호자에게 한 말이다. 보호자가 울면서 내 손을 잡고 다음에 꼭 자신의 운을 나누어 주리라 약속하셨다. 이처럼 부탁도 해보고, 사정도 해보고, 가끔 큰소리도 내 가면서 협진이나 전원 문의를 할 때의 내 모습은 영락없이 보호자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진료할 때도 오늘보다는 내일 괜찮아 지길 바라고, 약이 아이에게 잘 맞기를 바라고, 아이가 빨리 건강해지길 간절히 바라는 것은 보호자 다음으로 분명 이 아이를 진료했던 응급실 의료진일 테다. 제발 병의 진행이 여기서 꺾이길, 더 이상의 합병증이 오지 않기를 그렇게 매순간 바라면서 우리는 진료를 한다.

응급실에서 수많은 환자들을 보고 그들의 생과 사의 경계에 서서 좋은 죽음을 지켜 주기도, 존엄한 죽음을 지켜 보기도 했고, 때론 어떻게든 그 생명의 끈을 잡아보고자 고군분투한 적도 많으나, 소아 환자들의 죽음 앞에서는 단 한번도 의연할 수 있었던 적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적도 없다. 죽음이 예정된 암이나 희귀병 환아들마저도 그 아이들의 죽음은 너무도 비통하고 가슴 아프다. 아이들은 죽음을 선택한 적도 없으며, 대부분 그 죽음에 대한 예측이 불가하기에 의료진에게도 깊은 슬픔과 괴로움을 짙게 남긴다.

맹세컨데, 단 한번도 이 아이들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으나, 아이들의 숨이 내 손을 벗어나 떠나버리게 되면 그 공허한 자리에 자책감이 남는다. 애초부터 최선이라는 말 자체가 신의 영역이 아닌 인간의 것이기 때문에, '최선'에 포함된 부족함과 완벽하지 못함에 대한 자책감은 소아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료진에겐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환아를 잃었을 때의 고통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럽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고, 눈을 감고 자려고 하면 계속 떠오르고, 무엇을 했으면 좀 더 좋았을 까 끊임없이 머릿속에 그 상황을 재생하고 또 재생하고... 개인적으로는 내 아이를 보고 있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그 어머니는 다음날 일어났을 때 아이가 없을텐데, 나는 내 아이를 보고 있는 것마저 죄책감이 들었다.

의사들은 전공을 선택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한다. 먼저 환자를 직접 볼 것이냐, 아니면 환자를 보진 않지만 진단적인 영역에 들어갈 것이냐를 결정하는데, 나는 무조건 환자를 직접 보는 그리고 응급한 상황에서 환자에게 무엇인가를 해줄 수 있는 흔히 말하는 메이저 바이탈 과를 선택했고 이에 대하여는 단 한 번의 후회도 없었다. 그러나 소아응급실에서 일하면서 환아들을 떠나 보내고 그 고통이 너무 커서 처음으로 이런 나의 선택을 되돌려 생각해봤다.

환자를 잃는 어마어마한 고통에 침식되어 있을 시간이 없다. 애도의 시간조차 충분히 가질 수가 없다. 누군가는 자신의 소중한 아이를 잃었을 텐데, 어느 누군가는 자신의 아이를 우선시해주지 않는다고 소리를 지른다.

감정의 쓰레기통과도 같은 소아응급실, 그곳에서 하루하루 버티는 의료진의 삶과 생각에 대하여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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