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지난 25일 오찬 간담회에서 공직 생활을 정리하며 그간의 성과와 아쉬움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 차관은 "3월 20일이 공무원 생활 중 가장 기뻤던 날"이라며 18년 만의 연금개혁 성공을 첫 번째 성과로 꼽았다. 하지만 이를 개인의 공로로 돌리지 않았다. "물은 99도까지는 끓지 않는다. 연금도 이미 95도쯤 와 있었고, 여러 선배들이 조금씩 올려주신 덕분에 제가 마지막 역할을 한 것뿐"이라고 했다.
6년 넘게 보건 업무를 맡으면서 가장 보람있었던 것은 코로나19 대응이었다고 밝혔다. 2022년 5월 2일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한 것과 전 세계 최저 수준의 치명률을 기록한 것을 주요 성과로 언급했다.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세 부류의 사람들에게 특별한 감사를 표했다. "첫 번째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참아준 국민들과 소상공인들이다. 식당을 열었는데 손님이 못 와도 참아줬다"고 말했다. 이어 "두 번째는 중환자 치료와 선별진료를 담당한 의료진들, 세 번째는 생활치료센터와 보건소에서 활동한 지자체 공무원들"이라고 덧붙였다.
복지부 직원들에 대한 애정도 각별했다. "메르스 때부터 세월호, 코로나까지 직원들이 정말 고생했다"며 "복지부 공무원들은 어려운 국민을 도우려는 마음이 큰 이들"이라고 평가했다.
아쉬운 과제로는 의료전달체계 개편과 의료일원화를 꼽았다. 의료전달체계의 경우 감기는 의원, 수술은 병원, 중증질환은 대형병원으로 역할을 나누는 데 합의했지만 병상 문제로 무산됐다고 설명했다.
더 큰 아쉬움은 의료일원화였다. 2018년 8월 30일 대한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관계자들과 2030년까지 의료일원화를 추진하기로 사인까지 했지만 의협 내부 논의 부족으로 무산됐다. "그때 됐다면 지금의 의대 정원 조정 문제도 훨씬 쉬웠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정책에 대한 현실적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정책은 70%만 되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00% 합의점을 찾기는 어렵다. 70%라도 현장 수용성이 있다면 출발할 수 있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현장 중심 접근으로 성과를 거둔 분야도 있었다. 재택의료 확산이 대표적이다. 지난 2019년 왕진 수가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한 번 거부됐지만 포기하지 않고 왕진을 주로 하는 개원가 직접 따라다니며 현실을 파악했다. 그 결과 재택왕진수가 8만3천원을 책정하고, 환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본인부담률을 30%에서 15%로 낮췄다. "현장에 가보면 답이 있다"는 그의 철학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는 위기임산부를 위한 보호출산제 또한 성과로 꼽았다. 그에 따르면 약국 임신테스트기부터 산부인과 벽면까지 상담전화 1308 홍보에 힘썼다. 작년 7월 19일 시행 이후 110명이 익명으로 보호출산을 신청했고, 베이비박스 이용도 크게 줄었다. "아이 한 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이 있다. 110명을 살린 것"이라며 보람을 나타냈다.
그는 최근 제기되는 보건부 독립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고령화가 심해질수록 의료와 요양은 같이 가야 한다. 연계 서비스가 필요하기 때문에 현재 체계가 더 효율적"이라며 "지금은 고령화라는 더 큰 팬데믹이 오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퇴임 후 계획에 대해서는 "세금 받는 사람이 아니라 세금 내는 사람이 되겠다"며 "제 나이에 0.7을 곱하면 42세다. 앞으로 30년간 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본에서 고령화 정책을 공부하거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등 충전의 시간도 갖겠다고 했다.
인생을 세 개의 풍경화로 표현했다. 그는 "공주에서 나고 자란 시골 풍경화가 첫 번째, 과천을 거쳐 세종으로 온 도시 풍속화가 두 번째, 마지막은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자유롭게 쉬는 게 아니라 어디서든 일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어려운 의정갈등 상황에 대해서는 "매듭을 푸는 것은 새로운 분들이 알아서 할 것"이라면서도 "(젊은의사들이)결국 현장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계와 정부는 국민 건강 보호라는 같은 목적을 갖고 있다. 대화와 소통을 통해 제자리를 찾아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전 차관은 현재 심정을 "감사하고, 안타깝고, 설렌다"고 표현했다. "두려워하면 지고 설레면 이긴다"며 "40년간 세금을 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 같아서 설렌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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