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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을 연결하는 터키로…기구한 운명 아야 소피아 박물관(1)

양기화
발행날짜: 2015-12-03 05:10:53

양기화의 '아내와 함께 가는 해외여행Ⅱ'[20]

기구한 운명 아야 소피아 박물관(1)

역사학자 토인비가 '인류 문명의 살아 있는 옥외 박물관'으로 불렀다는 이스탄불로 다시 돌아왔다. 그동안 타고 다니던 버스를 전날 이즈미르에 두고 왔기 때문에 새로운 기사가 버스를 가지고 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아야소피아박물관 부근에 있는 터키식당에서 케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보니 차가 다니는 길까지 나와 구걸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시리아난민 아이라고 한다. 지난 해 대선에서 승리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치적 노림수라는 평가도 있지만, 아랍국가들이나 유럽국가들이 외면한 이들을 받아주었다는 점은 크게 평가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터키의 집권당인 정의개발당은 우리가 터키를 다녀온 뒤, 11월 1일 실시한 총선에서 550석 가운데 316석을 차지하였다. 6월 총선에서는 단독 내각을 구성하기에 18석이 모자란 258석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하면 압승이라고 할만하다. 상황이 바뀐 것은 쿠르드족 반군의 유혈사태 등으로 야기된 안보불안 때문이라고 한다.(1)

이날 점심으로 먹은 닭고기 케밥은 지금까지 먹은 닭고기 요리 가운데 제일이었다. 점심 후 짧은 자유시간에 아내와 터키커피를 마셨다. 처음 마실 때는 텁텁한 듯 진한 커피맛이 좋다. 하지만 절반이 넘어가면 커피가루가 씹혀 불편하다. 터키 스타일은 맑은 위쪽만 마신다고 한다.

터키사람들은 커피를 마신 뒤에 남는 커피가루의 모양을 보고 점을 친다. 커피점은 컵에 남은 커피 가루를 그대로 보는 방법과, 다 마신 후에 컵받침을 뚜껑 삼아 위를 덮고 한번 뒤집은 후에 컵에 남은 것을 보는 방법이 있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옛 말이 있듯이 점사를 잘 풀어내는 일이 중요할 것 같다.(2)

이날은 커피점보다도 커피를 마시는 일이 중요했다. 뜨거운 커피를 식혀가며 마시다 보니 약속시간이 다 되었다. 급하게 집결장소로 갔는데 일행들이 벌써 출발해서 꽁무니가 저만치 가고 있다. 제 시간에 갔는데… 헐레벌떡 쫓아가 겨우 따라 잡는다.

길모퉁이를 돌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히포드럼이다. 블루모스크를 지나 아야소피아 박물관으로 향한다. 이곳은 휴대품 검색을 거친 다음에 입장이 가능하다.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입장하는 순간 성당의 왼쪽 절반을 가득 채운 비계를 발견하고 실망한다.

성당의 내부를 제대로 카메라에 담을 수가 없다. 그래도 웅장한 성당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는데 넓은 성당의 가장자리를 따라 늘어선 기둥을 제외하고는 내부에는 기둥이 하나도 없는 놀라운 공법을 그 옛날 구사했다는 것이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쉬운 것은 174개나 되는 기둥은 새로 깍은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그리스와 로마의 신전에서 뽑아온 것 이란다. 이 성당을 지은 사람들은 이민족의 믿음을 무너뜨린 위에 자신들의 믿음을 세웠던 것이니 제대로 된 믿음이 될 수 있었을까?

이곳은 비잔틴제국 시절에는 아기아 소피아(Hagia Sophia) 성당으로, 오스만제국이 점령한 이후로는 그리스 이름인 아야 소피아(Aya Sofya)사원으로 부르다가 1934년부터는 공식적으로 아야 소피아 박물관으로 부르고 있다. 그래도 성당으로 916년, 사원으로 481년 그리고 박물관으로 81년의 세월을 사랑받아왔으니 참 다행이다.

아야 소피아 박물관의 외관(좌), 내부 돔의 구조(우)
지금 전하는 건물은 세 번째로 세워진 아기아 소피아 성당이다. 목조로 된 첫 번째 성당은 콘스탄티누스2세 황제 시절인 360년 2월에 같은 장소에 세워졌는데, 404년 아르카디우스황제의 아내 에브도시아 황후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인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를 박해하여 추방하는 것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폭동이 일어났을 때 불타버렸다.

두 번째 성당은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에 의하여 415년 10월 세워졌지만, 532년 1월 유스티아누스 1세 황제에 대한 반란이 일어났을 때 역시 불타버렸던 것이다. 반란을 진압한 황제는 제국의 영광과 위엄을 과시하기 위하여 성당이 소실된 지 39일 만에 재건을 시작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라는 그리스도교의 우주관을 구현하도록 했다. 그리하여 동서 길이 77미터, 남북 너비가 71.7미터의 직사각형 구조물 위에 남북지름이 30.9미터의 타원형 돔을 얹게 되었다.

성당 내부에는 기둥이 없는데 이는 교회의 통일성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건물 내부에 기둥을 세우지 않고서도 지름 30.9미터의 타원형 돔을 올려놓는 일은 당시 로마의 건축술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돔의 무게를 줄이기 위하여 다른 벽돌의 12분의 1에 불과한 로도스섬의 공기구멍이 많은 진흙벽돌로 만들었지만 돔의 전체 무게는 여전히 엄청났다. 그런 돔을 무너지지 않게 올려놓은 것은 이오니아 트랄레스 출신인 안테미오스(Anthemios)와 밀레토스 출신인 이시도로스(Isidoros)였다.

두 사람은 건축가가 아니라 기하학과 수학에 정통한 수학자들이었다. 이들은 돔의 무게를 네 개의 커다란 아치로 분산시키고, 아치와 아치가 만나는 곳에 기둥을 세웠다. 그 아치들을 작은 아치와 반원의 돔으로, 그리고 그 아래로 더 작은 아치와 작은 돔으로 이어지도록 하였다. 성당의 내부에는 107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42개의 아치가 하중을 떠받치고 있다.

이런 구조는 지진에 취약하여 557년에 콘스탄티누폴리스 일대를 강타한 지진의 영향으로 558년에는 동쪽 지성소의 돔과 아치가 무너졌다. 아기아 소피아 대성당을 설계한 이시도로스의 조카 이시도로스가 돔의 높이를 7미터 더 높이면서 골조를 강화하고, 남북 쪽의 외벽을 더 두껍게 보강하여 안정을 기할 수 있었다. 16세기에는 오스만제국의 건축가 미마르 시난이 성당의 외부에 네 개의 미나렛을 세워 하중 떠받치도록 보강했다.

지진 등 자연재해가 아기아 소피아 성당을 손상시켰지만 결정적으로 피해를 입힌 것은 사람들이었다. 730년 레오3세 황제가 모세의 십계명에 우상숭배를 금하고 있음을 들어 성상을 파괴하라는 내용을 담은 칙령을 공포한 것이 발단이 된 성상파괴운동이 벌어지는 동안 하기아 소피아 성당에 있는 많은 모자이크와 성화들이 파손되었다. 지금 볼 수 있는 성화들은 9세기 후반에 복구한 것들이다.

아기아 소피아 성당에 가장 커다란 피해를 입힌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도였다. 1204년 갑자기 콘스탄티누폴리스로 쳐들어와 점령한 제4차 십자군들은 도시를 마구잡이로 약탈하였다. 이들은 성당 안에 있던 금은보화는 물론 성유물까지 빼돌려 팔아먹었다. 심지어는 아기아 소피아를 가톨릭 성당으로 바꾸기까지 했다. 그 만행이 오죽했으면 동로마 제국의 동방정교회 신도들은 "십자가 든 악마에 견주면 초승달 이교도가 그래도 사람이다."라면서 두고두고 이를 갈았겠는가.

1453년 콘스탄티누폴리스를 점령한 오스만제국의 술탄 메흐메드2세는 신하와 장군 그리고 이슬람 이맘을 대동하고 아기아 소피아 성당에 도착하였다. 말에서 내린 술탄은 마당의 흙을 한 줌 쥐어 자신의 터번에 뿌려 승리를 내려준 알라에 감사를 표하였다. 성당의 내부를 둘러본 술탄은 병사들의 약탈을 금하고 성당을 모스크로 바꾸라고 명령했다.

이때 선임 이맘은 설교단에 올라 "알라후 아크바르(Allahu Akbar; 알라는 위대하시다)!"라고 외쳤다. 역시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 이슬람의 전통에 따라 내부의 모자이크에 회칠을 하여 성화들을 가리도록 했다.

오스만제국이 성화들을 뜯어내지 않고 회칠을 한 덕분에 우리는 비잔틴제국이 남긴 동방정교의 성화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회칠을 걷어내는 작업은 1932년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회칠한 위에 그려진 문양들 역시 500년이나 내려온 뜻깊은 문화재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되겠다.(3~5)

참고자료

(1) 연합뉴스 2015년 11월 2일자 기사. “터키 총선 대이변…쿠르드 반군 유혈사태가 결정적”
(2) 스텔라 카페 블로그. ‘[세계의 점술] 세계의 점슬 시리즈3 커피점.
(3) 나무 위키. 하기아 소피아.
(4) Wikipedia. Hagia Sophia.
(5) 유재원 지음. 터키, 1만년의 시간여행2, 32-52쪽, 책문,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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