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타임즈=박상준 기자]보건복지부의 정신건강복지법 시행령 개정안을 둘러싼 갈등이 학회와 현장을 넘어 대학가로 번지고 있다.
충북대 심리학과 학부생·대학원생 155명은 지난 9월 30일 공동성명을 내고 개정안에 우려를 표했다. 서울대 대학원생(9월 11일), 가톨릭대 심리학과(9월 29일)에 이은 움직임으로, 충북대는 오는 10월 7일 시국선언도 예정하고 있다.
갈등의 뿌리는 '심리상담'이라는 한 단어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쓸 수 있느냐에 있다. 발단은 복지부가 9월 7일 정신건강전문요원 공통업무에 '국가·지자체 등이 시행하는 심리상담 및 재난심리지원 사업의 수행'을 신설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하면서다. 이달 19일까지 의견을 받고 있따.
현행 시행령에서 '심리상담 및 심리 안정을 위한 서비스 지원'은 정신건강임상심리사의 개별업무에만 규정돼 있다. 개정안은 정신건강간호사·사회복지사·작업치료사까지 포함한 4개 직역의 공통업무로 옮기는 것이다.

복지부는 새 업무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실태를 법령에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전문요원들이 2024년부터 심리상담 바우처사업 제공인력으로 참여했고, 재난 현장에서도 핵심 인력으로 활동해 왔다는 이유다.
다만 개정안에는 심리상담의 구체적 범위와 대상, 수행에 필요한 별도의 교육·수련 기준이 담기지 않아 문제점으로 꼽힌다. 복지부는 6월에도 같은 취지의 개정을 추진하다 임상심리사 측 반발로 중단했고, 이후 4개 직역 협의체에서도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각자 의견서를 내는 데 그쳤다.
'심리상담' 주체 업무 확대 논란
반대 측 논리는 '수련의 차이'로 요약된다. 한국임상심리학회 측은 임상심리에는 심리평가와 개인·집단심리치료 과목이, 간호에는 정신간호중재 및 치료, 사회복지에는 사회사업치료, 작업치료에는 정신건강작업치료 중재 과목이 편성돼 있는데, 업무만 공통으로 부여하고 법정 수련과목·시간은 정비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임상심리학회 측은 검증 없이 업무를 넓히면 자살 고위험군이나 중증 정신질환자의 위험 신호를 놓칠 수 있다며 전면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앞서 9월 19일 청와대 인근 집회에는 주최측 추산 약 1,000명이 참여해 이같은 내용을 강조한바 있다.
반대로 찬성 측 논리는 '현장과 법의 괴리 해소'다. 한국정신건강사회복지학회는 입법예고 직후 이미 현장에서 상담을 해 온 전문요원의 역할을 분명히 하는 근거가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대한간호협회 정신간호사회 등도 '현장 실무와 법의 괴리를 바로잡는 정상화'라는 입장이다.
간호협회 측은 지난해 7월 국회 토론회에서 정신건강복지법의 취지가 예방·치료·재활인데 핵심 수단인 심리상담이 공통업무에 빠진 것은 모순이라는 점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6월 당시 임상심리사를 제외한 3개 직역은 개정안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문제는 양측이 같은 단어를 각 직역이 다른 의미로 쓰고 있다는 점이다.
초기면담과 정서적 지지, 사례관리 면담, 자살위험 개입, 외상치료, 장기 심리치료가 모두 '상담'이라는 단어로 묶이면서 직역간 공통업무에 이견차가 존재한다. 초기 면담과 위기 안정화는 간호·사회복지 직역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업무인 반면, 반면 정신병리 평가와 구조화된 심리치료는 좀더 전문적인 다른 층위의 개입인데 이 층위를 나누지 않은 채 단일 업무명으로 통합한 것이 갈등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적용 범위도 논점이다. 개정안이 추가하는 것은 모든 민간 심리상담이 아니라 국가·지자체 등이 시행하는 심리상담 및 재난심리지원 '사업'의 수행이다. 복지부 입장에서는 한정적 조항이다. 그러나 임상심리학회 측은 시행령에 타 직역이 심리상담 주체로 먼저 명시되면 향후 법제화 과정에서 이들을 배제할 명분이 사라진다고 우려한다. 공공사업 한정 조항이 사실상 심리상담 영역 전체의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정부입장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현장 업무와 법적 근거를 일치시켜 직무 충돌과 법적 공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상담 인력 부족을 완화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단점은 상담의 정의와 범위가 없어 수행 기준이 모호하고, 수련 체계는 그대로여서 서비스 질 관리 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자살 고위험군 감별 같은 고난도 개입이 무자격 영역으로 번질 위험도 있다.
임상심리학회는 공통업무가 필요하다면 '정신건강상담'이라는 별도 명칭으로 초기 면담, 정보 제공, 위기 대응, 서비스 연계·사례관리 등으로 범위를 구체화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업무 층위를 분리해 전문성과 접근성을 함께 챙길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해외사례는 어떨까?
공통 업무와 전문성을 동시에 확보한 선례는 해외에 있다. 영국의 IAPT(현 NHS Talking Therapies)는 경증 환자에게 단기 개입을 제공하는 저강도 인력과 심리치료 전문가인 고강도 인력을 나누고, 환자 상태에 따라 단계적으로 연계하는 '단계적 돌봄(stepped care)' 구조다. 업무 명칭과 수련 기준을 층위별로 구분해 접근성과 안전을 함께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은 2015년 공인심리사법을 제정해 심리 업무를 국가자격으로 정리했다. 이 두 사례는 '누가 하느냐'보다 '어떤 개입을 어떤 수련 수준에서 허용하느냐'를 법제화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를 국내에 대입해 공통업무는 '정서지원·초기 면담·위기 안정화·연계'처럼 4개 직역이 이미 수련받은 범위로 한정해 규정하고 평가·감별과 구조화된 심리치료는 별도 수련 요건을 충족한 인력에게 부여하는 것이 적당하다는 안도 나오고 있다.
복지부는 개정안에 대한 의견은 오는 19일까지 받는다는 입장인데, 사실상 6월에 이어 이번에도 직역 간 합의 없이 입법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이어서 입법 후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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