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타임즈=문성호 기자]"신약이 건보재정 악화의 주범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단순한 약가 억제가 아니라 치료 성과와 장기적인 의료비 절감 효과를 종합적으로 바라봐야 할 때다."
30일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실 주최로 열린 '중증질환 신약 접근성 확대와 건강보험 재정효율화 전략 토론회'에서는 고가 신약의 등장에 따른 치료 성과 중심의 합리적인 보상과 재정 효율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논의가 펼쳐졌다.

이날 발제와 토론에 나선 의료계 및 정부·유관기관 전문가들은 중증·희귀질환 치료제의 급여 적정성을 평가할 때 약가 인하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실제 임상 현장의 치료 성과와 사후 평가를 연계하는 체계적인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신약 지출 늘었지만…환자 수 증가·치료 기회 확대 함께 봐야"
발제자로 나선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권용진 교수는 국내 중증질환 의료비 지출 현황을 분석하며 약가·급여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제언했다.
권 교수에 따르면, 건강보험 진료비는 2021년 95조 4000억원에서 2024년 116조 2000억원으로 증가했으며, 같은 기간 전체 약품비도 약 22조원에서 27조 7000억원으로 늘어났다. 산정특례 환자 약품비 역시 2021년 5조 6000억원에서 2024년 7조 5000억원으로 약 1조 9000억원 증가했다.특히 암 환자에서 약품비 증가세가 뚜렷했다.
암 환자 전체 약품비는 약 3조 100억원에서 4조 1400억원으로 37% 이상 늘었고, 1인당 약품비도 227만원에서 270만원 수준으로 증가했다. 항암제 지출 역시 2조원대 초반에서 3조원 이상으로 불어났다.
그러나 권 교수는 이러한 지출 증가를 단순히 '고가 신약만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환자 수 증가와 치료 기회 확대, 신약 사용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 만큼, 단순 약품비 지출 규모를 넘어 환자가 얻는 건강 성과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권 교수는 "약가정책 역시 일률적인 가격 인하에서 벗어나 치료 성과와 가치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재설계해야 한다"며 "제네릭 의약품은 가격 경쟁을 강화하고 필수의약품은 안정적 공급 기반을 확보하는 한편, 혁신신약에 대해서는 치료 성과에 따른 적정한 보상을 제공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약의 경우 비용효과성을 평가하되 환자 접근이 지나치게 늦어지지 않도록 신속등재 제도를 활용하고, 등재 이후 실제 임상 현장에서 확보된 데이터를 토대로 효과와 재정 영향을 재평가하는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허가돼도 치료까지 장벽"… 항암제·희귀질환 접근성 사각지대
의료현장에서는 신약이 허가된 이후에도 실제 환자에게 도달하기까지 거쳐야 하는 행정적·제도적 장벽이 여전히 높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중앙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김희준 교수는 항암제의 허가와 급여 사이의 시차 문제를 짚으며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 개선을 촉구했다.
김 교수는 "국내 허가된 항암제조차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이후 건강보험 급여 적용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며 "해외에서는 이미 사용 중인 혁신적인 치료제가 국내에서는 급여되지 않아 환자들이 치료 기회를 놓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김 교수는 ▲임상적 유용성이 확인된 항암제의 신속한 급여 적용 ▲위험분담제 활용 확대 ▲조건부 급여 도입 등을 제시했다. 초기 임상에서 치료 효과가 확인됐으나 장기 데이터가 부족한 치료제는 우선 환자에게 조기 적용한 뒤, 실제 치료 성과를 평가해 가격이나 급여 조건을 사후에 조정하는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또한 김 교수는 "신약의 가치를 평가할 때 단순히 약제비용만 비교할 것이 아니라, 입원 및 응급실 이용 감소, 간병 부담 완화, 환자의 사회·경제적 활동 유지 등 치료를 통해 부수적으로 절감되는 사회적 비용까지 폭넓게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희귀질환 분야의 시급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이범희 교수는 희귀질환 환자 수가 꾸준히 늘고 있음에도 여전히 사용 가능한 치료제가 제한적이며, 해외 허가 약물조차 국내 도입 과정에서 과도한 행정 절차로 가로막혀 있다고 꼬집었다.
환자 수가 적은 희귀질환의 특성상 제약사의 자발적인 국내 허가·급여 신청 유인이 낮을 수밖에 없는 만큼, 의료진이나 환자 개개인이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명백하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해외에서 이미 쓰이고 있지만 국내 정식 허가나 급여 이전 단계에 있는 치료제에 환자들이 조기에 접근할 수 있도록 '조기접근프로그램(Early Access Program)' 등을 적극 활성화하고, 정부와 유관 기관이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신약 접근성 확대 공감…사후평가·재정 효율화 병행"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재정 효율화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유관기관과 정부의 입장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약제관리실 김형민 부장은 "지난 2006년 선별등재제도 도입 이래 위험분담제와 경제성평가 면제 특례 등 중증·희귀질환 신약의 접근성을 넓히기 위한 제도가 지속적으로 확대돼 왔다"며 "2026년 현재는 위험분담제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약가 유연계약 제도를 통해 환자에게 꼭 필요한 신약이 적기에 공급될 수 있도록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약가 협상 과정에서 제약사와 시의성 있는 합의를 이루고 등재 이후 성과 평가를 정교화해 재정 건전성과 환자 치료 기회 보장을 모두 잡겠다고 덧붙였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이소영 약제관리실장 역시 "신약의 가치를 평가할 때 환자 1명을 바라보는 미시적 관점과 5000만을 바라보는 거시적 관점 사이에서 늘 고민이 깊다"며 "최근 신약 등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시범사업을 도입하는 등 환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제도적 속도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정부를 대표해 참석한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김민정 사무관은 희귀·중증질환 환자의 접근성을 높이는 정책을 지속하면서도 고가 신약이 건보 재정에 미치는 영향 역시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사무관은 "최근 5년간 희귀질환과 항암제 건강보험 약제비는 증가했으나, 정부는 약제비 증가 속도보다 희귀·항암제 급여 적용이 더 빠르게 늘고 있도록 보장성 확대를 병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속한 급여와 혁신성에 대한 가치 인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며 "이를 위해 희귀질환 신속등재 시범사업을 비롯해 약가유연계약제, 위험분담제, 경제성평가 면제 등 여러 제도를 가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희귀질환 신속등재 시범사업의 대상이 제한적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새로운 제도를 시범 도입한다는 것은 본격적인 제도화를 위한 전초라고 생각한다"며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겠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좋은 선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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