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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아가는 시간

가톨릭관동의대 4학년 안하은
발행날짜: 2026-07-06 05:00:00

가톨릭관동의대 본과 4학년 안하은

본과 4학년이 되면 두 가지 일이 동시에 닥친다. 국가고시 준비와 동시에 인턴을 할지, 일반의로 지낼지, 어떤 과로 갈지를 정해야 한다. 문제는 이 두 가지가 같은 시기에 겹친다는 점이다. 시험을 코앞에 두고 있으면 진로에 대한 고민은 자연히 뒤로 밀린다. 정작 인생에서 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는데, 그 결정을 위한 생각의 시간은 가장 부족한 시기에 내려야 하는 셈이다.

진로를 정하는 일의 출발점은 결국 나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과가 적성에 맞을지, 어떤 방식의 일과 삶을 원하는지를 답하려면 먼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돌이켜보면 활동 자체는 적지 않았다. 창업에 관심이 있어 네트워킹 행사와 강연을 찾아다니고 창업 경진대회에도 나가봤다. 의료봉사 동아리에서는 다문화 배경을 가진 환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경험을 했고, 투비닥터 활동을 하면서는 행사를 기획하거나 디자인 작업을 맡기도 했다. 분야도, 결도 다른 일들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이 경험들을 다시 떠올려보니, 경험은 그 자체로 답을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는 사람에 대한 정보로 정리되려면, 경험과는 별개의 작업이 한 번 더 필요하다.

의료봉사 동아리에서 다문화 배경을 가진 환자들을 만났던 적이 있다. 그 중 한 명은 한국어가 거의 되지 않는 중년 여성이었다. 진료를 돕기 위해 함께 앉았고,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 우리는 한참을 몸짓과 짧은 단어들로 버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간이 답답하기보다 집중이 됐다. 말 대신 표정을 읽고, 끄덕임의 타이밍을 살피고, 맥락을 통해 의도를 짐작하는 일이 퍼즐처럼 느껴졌다. 진료가 끝날 무렵 그 분이 웃으며 고맙다고 했을 때, 나는 꽤 오래 그 장면을 머릿속에 붙들고 있었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이 즐거움이었는지, 뿌듯함이었는지, 보람이었는지를 한동안 구분하지 않았다. 그냥 좋았다고 뭉뚱그렸다. 그런데 지금 다시 그 장면을 꺼내보면 조금 더 정확한 말이 보인다. 즐거웠던 건 소통 자체의 과정이었다. 말이 막히는 상황에서도 상대를 이해하려고 집중하는 그 순간이 좋았다. 뿌듯함은 그 다음에 왔다. 이렇게 나눠보면 내가 그 시간 동안 보상처럼 느낀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었다는 게 보인다. 뭔가를 완성했을 때가 아니라, 집중해서 맞춰가는 도중에 이미 좋았다는 것이다.

창업 경진대회를 준비하던 시간은 결이 달랐다. 발표 자료를 만들고 팀원들과 논리를 다듬으면서도 분명 몰입했지만, 그 몰입은 과정보다 완성에 가까웠다. 발표가 끝나야 비로소 숨을 쉬는 느낌이었다. 두 경험을 나란히 놓고 보면 내가 어떤 리듬으로 일할 때 더 살아있는지가 조금 선명해진다. 완성보다 과정에 에너지가 붙는 사람이라는 것,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보다 지금 마주한 상대와 맞춰가는 일에서 집중이 일어난다는 것.

이게 진로를 바로 결정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질문을 들고 선택지 앞에 서야 할지는 알 것 같다. 자신에 대한 고민이라는 말이 막연하게 느껴질 때, 거창한 가치관보다 먼저 해볼 수 있는 건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험들 사이의 차이를 보는 것, 같은 '좋음'도 어떤 좋음이었는지 구분해보는 것. 그렇게 쌓인 작은 관찰들이 결국 나라는 사람의 윤곽을 만든다. 경험은 재료이고, 나를 아는 일은 그 재료를 가지고 따로 해야 하는 작업이다. 그 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인 장면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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