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디칼타임즈=문성호 기자]그동안 다발골수종 치료 현장에서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혁신 신약들이 이제는 전쟁의 최전방인 '2차 치료' 단계로 일제히 전진 배치되고 있다.
과거 4차 이상의 후기 치료 단계에서나 고려되던 이중특이항체(bispecific T-cell engager, BiTE)와 항체-약물 접합체(Antibody-Drug Conjugate, ADC)들이 강력한 임상 데이터를 무기로 치료 차수를 앞당기기 위한 파상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
특히 글로벌 제약사들 간의 주도권 다툼이 치열해지면서, 국내 임상 현장의 처방 패러다임 또한 급변할 조짐이다.
이중특이항체, '기성품' 강점 삼아 전면에
최근 다발골수종 시장에서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은 얀센과 화이자 등 이른바 '이중특이항체' 진영이다. 이들은 치료 선상 경쟁자로 여겨지는 CAR-T 치료제의 강력한 효과를 유지하면서도, 제조 과정 없이 즉시 투여 가능한 '기성품(Off-the-shelf)'의 강점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 중 얀센이 자사 항CD38 항체 '다잘렉스 파스프로(다라투무맙-히알루로니다제)'와 이중특이항체 텍베일리(테클리스타맙) 병용요법을 효과를 확인한 임상 3상 'MajesTEC-3' 연구를 통해 FDA로부터 가속 승인을 받아 2차 치료 시장에 깃발을 꽂았다.
MajesTEC-3 연구 결과, 텍베일리와 다잘렉스 파스프로 병용군은 기존 표준 치료(다잘렉스+포말리도마이드+덱사메타손 등) 대비 무진행 생존기간(Progression-Free Survival, PFS)과 전체 생존율(Overall Survival, OS)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개선을 보였다.
세부 지표를 살펴보면, 병용군의 3년 PFS는 83.4%에 달해 대조군(29.7%)을 압도했다. OS 또한 병용군이 83.3%를 기록하며 대조군(65.0%)과 큰 격차를 벌렸다.
이에 뒤질세라 시장 경쟁자인 화이자도 최근 임상 3상 'MagnetisMM-5' 연구의 중간 분석 결과를 공개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이전 치료 경험이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엘렉스피오(엘라나타맙) 단독요법을 기존 표준요법 '다라투무맙-포말리도마이드-덱사메타손(DPd)'과 비교한 결과, PFS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며 2차 치료 진입의 명분을 확보했다.
동시에 화이자는 주요 2차 평가변수인 전체 생존기간(OS) 평가를 위한 추적 관찰을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간 분석 시점에서 아직 데이터가 충분히 성숙(Mature)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화이자는 이번 데이터를 바탕으로 글로벌 규제 당국과 적응증 확대를 위한 논의를 시작할 계획이며, 상세 데이터는 향후 개최될 주요 국제 학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경쟁자로 평가되는 텍베일리보다 한 발짝 늦었지만 빠르게 추격, 글로벌 시장 경쟁이 재점화되는 양상이다.
임상 현장에서는 이번 결과가 다발골수종 치료 패러다임에 미칠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엘렉스피오는 미국과 한국 등에서 4차 이상의 치료를 받은 환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혈액내과 교수는 "다발골수종은 재발이 잦고 차수가 거듭될수록 반응률이 급격히 떨어지는 질환"이라며 "가장 강력한 무기를 앞단에 배치해 재발을 늦추는 것이 환자 예후에 결정적이라는 점이 입증되고 있는 만큼, 이중특이항체 기반 치료제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다만, 이는 미국을 필두로 한 글로벌 시장의 이야기다. 국내는 아직 4차 치료에서 급여를 논의 중인 상황"이라며 "정부의 급여 정책 또한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벼랑 끝에서 돌아온 브렌렙, ADC 성공 이어갈까
이중특이항체들의 임상현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가운데 한때 시장 입지가 불안정했던 GSK의 ADC 계열 치료제 '브렌렙(벨란타맙 마포도틴)'의 가세는 경쟁에 가장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사실 브렌렙은 지난 2020년, 4회 이상의 치료를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한 DREAMM-2 연구를 통해 BCMA 타깃 최초의 ADC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하지만 확증 임상인 DREAMM-3에서 일차 평가변수인 PFS 개선 입증에 실패하며 FDA 가속승인이 철회되는 등 부침을 겪었다.
벼랑 끝에 몰렸던 브렌렙을 구한 것은 '병용요법' 전략이다. 최근 공개된 DREAMM-7 3상 임상에서 브렌렙 병용군(BVd)은 대조군 대비 PFS를 3배가량(36.6개월 vs 13.4개월) 연장시키는 임상적 효과를 선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최근 국내에서도 2차 치료 적응증을 확보하며 국내 비급여 출시에 성공했다.
임상 현장 전문가들은 브렌렙의 복귀를 반기는 분위기다. 특히 이중특이항체나 CAR-T 치료제가 가진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혈액내과 김진석 교수는 "T세포가 건강할 때는 이중특이항체 등이 효과적일 수 있지만, T세포가 망가져 있고 전신 상태가 허약한 환자들에게는 ADC가 더 적합한 옵션이 될 수 있다"며 "BCMA 타깃 약제는 모두 감염 위험이 있지만, 브렌렙의 중증 감염 위험은 약 10% 수준으로 이중특이항체나 CAR-T 대비 월등히 낮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특히 '외래 진료 편의성'을 ADC의 최대 강점으로 꼽았다.
그는 "이중특이항체는 병실 부족 등의 이슈로 외래에서 시작하기 어렵지만, ADC는 입원 없이 외래에서 투여가 가능하다"며 "병실이 없는 경우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ADC를 써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현장의 고충을 전했다.
가장 우려가 큰 안과 부작용(각막 이상)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발생 빈도는 높지만 약제 조절을 통해 회복 가능하다"며 "국내 대학병원은 안과 협진 체계가 잘 갖춰져 있어 관리가 용이하며, 부작용이 걱정되어 효과(PFS)가 좋은 약제를 포기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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