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디칼타임즈=경남의사회 마상혁 공공의료위원장] 정부가 지역의료 문제 해결을 위해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천명한 뒤 불과 5개월 만에 그 결과를 발표하였다.
추계위원회와 보정심의위원회라는 절차를 거쳤다고는 하나, 의료인력 수급이라는 고도로 복잡한 문제를 다루기에 5개월은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다. 인구구조의 변화, 질병 패턴의 전환, 의료기술의 발전, 지역별 수요의 편차, 의료인력의 유출입 동태—이 모든 변수를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의료인력 수급 추계는 단순한 산술이 아니라 고도의 전문적 작업이다.
이를 5개월이라는 시간 안에 완성했다는 것은,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절차를 역순으로 밟았다는 합리적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추계위에서 만 명 이상 부족하다는 수치가 나왔고, 이후 보정심에서 이를 줄였다. 그런데 왜, 어떤 근거로 조정했는지는 명확히 공개되지 않았다. 의료인력 추계를 위한 방법론은 국제적으로도 수요기반 모델, 공급기반 모델, 벤치마크 모델, 활용기반 모델 등 다양하며 각각의 전제와 한계가 다른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모델 선정 과정에서 방법론적 논란을 자초하였다.
더구나 이전 정부에서 수행한 추계와 유사한 결과를 반복적으로 발표함으로써,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이 원하는 숫자를 생산하는 주문형 연구기관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연구의 독립성과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는 국책연구기관은 그 존재 가치 자체를 의심받아 마땅하며,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할 정당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다.
정부는 추계위에 의사 출신 위원들이 참여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전문가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었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참여한 전문가들의 증언에 따르면 실상은 정반대였다. 의견이 실질적으로 수렴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으며, 이미 결정된 방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형식적 참여에 불과했다.
보정심의 분위기는 더욱 일방적이었다고 전해진다. 참가자 대부분이 정원 증원에 찬성하는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런 구조에서 반대 의견이 반영될 여지는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전문가 단체가 결국 들러리에 불과했다는 비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거버넌스의 외형은 갖추었되 실질은 부재한, 전형적인 껍데기 민주주의의 표본이다.
현 정부는 시민참여를 유독 강조하고 있으며, 이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의료정책에서 전문가의 목소리를 형식적으로만 수렴하고, 이미 짜놓은 시나리오대로 밀어붙이면서 충분한 의견 수렴이 이루어졌다고 선언하는 것은 시민참여라는 가치 자체를 훼손하는 행위이다. 전문가 참여를 강조하면서 전문가의 목소리를 묵살하는 것, 그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원 확대를 논하기에 앞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교육환경이다. 현재 다수의 의과대학은 강의실 공간부터 부족한 상황이다. 기초의학 및 임상의학 교수 요원은 만성적으로 결원 상태이며, 임상실습 과정의 질적 수준은 수련병원의 여건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러한 기반 위에 정원만 늘리겠다는 것은 부실 교육을 제도적으로 양산하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역사는 이 점에 관하여 이미 한 차례 뼈아픈 교훈을 남긴 바 있다. 1980년대 시행된 졸업정원제가 그것이다. 당시 준비 없이 도입된 정원 확대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다. 새벽부터 등교하지 않으면 강의실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고, 뒷자리에서는 칠판의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해부학 실습에 필요한 시신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겨울에만 제한적으로 실습이 가능했다. 유급률이 치솟았고, 열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해 중도 포기하는 학생이 속출했다.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방치였으며, 의학교육의 이름을 빌린 졸속이었다.
그런데 이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놀라운 발언들이 나오고 있다. 전 보건복지부 박민수 차관은 당시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말하였고, 보정심에 참가한 한 인사는 그때 그렇게 했어도 지금까지 잘 버텨온 것이 아닌가라고 이야기했다고 전해진다.
이 발언들의 저의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열악한 교육환경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인가. 수준 낮은 교육을 용인하자는 것인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의 교육과정에 대충이라는 단어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 과거의 실패를 부정하는 자들이 미래의 정책을 설계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정책의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원이 늘어난 이상 남은 것은 교육의 질에 대한 철저한 관리이다. 교수 대 학생 비율, 실습 시설의 적정성, 임상실습의 질적 수준에 대한 엄격한 평가 기준이 수립되어야 하며, 기준 미달 대학에는 정원 감축을 포함한 실효적 제재가 뒤따라야 한다. 교육의 질 보장은 의과대학 과정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되며, 졸업 후 인턴과 레지던트 수련과정까지 포괄해야 한다.
일정 시간만 채우면 전문의 시험 응시 자격을 자동으로 부여하는 현행 방식은 재검토되어야 하며, 역량 기반 수련 체계로의 전환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학교와 병원 내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에도 사안의 경중에 따라 엄격한 징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의사라는 직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행위에 대해서는 관용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 정책에서 가장 치명적으로 간과된 문제는 시간이다. 지금 당장 정원을 늘린다 하더라도 그 학생들이 모두 졸업하고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한다는 보장이 없다. 설령 합격하더라도, 의과대학 6년에 인턴 1년, 전공의 3년에서 5년을 거쳐 독립적 진료가 가능해지기까지 최소 10년 이상이 소요된다.
지난 10년 동안 지역의료는 어떻게 버틸 것인가. 이에 대한 구체적 대책이 전무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방의 응급실이 문을 닫고 있고, 산부인과가 사라지고 있으며, 소아과가 폐업하고 있다. 10년 뒤를 위한 정책은 있으되 오늘의 위기를 넘길 방안은 없다는 것, 이것이 이 정책의 가장 근본적인 모순이다.
더 깊은 차원에서 보면, 지역의료 붕괴는 의사 수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 붕괴라는 거시적 구조 변동의 한 단면이다. 인구 감소, 고령화, 젊은 층의 수도권 집중, 지방 경제의 위축, 생활 인프라의 열악함…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얽힌 구조적 문제를 의과대학 정원 확대라는 단일 처방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위험한 단순화이다.
많은 정치인과 국민이 의사 머릿수만 늘리면 된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의사 수가 늘어나도 지역에 머물 유인이 없으면 그들은 수도권으로 향한다. 이것은 예측이 아니라 이미 확인된 사실이며, 세계 여러 나라의 경험이 이를 거듭 증명하고 있다.
일본은 2008년 이후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꾸준히 늘려 현재 약 9,400명 수준에 이르렀으나, 도쿄와 오사카 등 대도시 집중 현상은 완화되지 않았다. 특정 지역에서 일정 기간 근무할 것을 조건으로 입학정원을 배정하는 지역 테두리제를 도입했지만, 의무 기간 종료 후 도시로 이동하는 비율이 높아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국은 2018년 의과대학 정원을 25%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으나, 교육 인프라가 따라가지 못해 계획대로 증원하지 못한 대학이 다수 발생했다.
현재도 전체 의사의 약 30%를 해외 출신 의사에 의존하고 있으며, 지방의 의사 부족은 여전히 심각하다. 호주는 2000년대 중반 정원을 대폭 확대한 결과 도시 지역에서는 의사 과잉의 조짐이 나타나는 반면, 원주민 거주 지역과 농촌의 의사 부족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캐나다는 다양한 인센티브 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전문의 수련 후 지역 복귀율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미국은 의대 정원을 늘려도 레지던시 자리가 동반 확충되지 않아 병목이 발생하고 농촌 지역의 의사 부족은 수십 년째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들 국가의 공통된 교훈은 단 하나이다. 의사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지역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지역 정착 유인 체계, 교육 인프라 확충, 수련 체계 개혁, 지역 사회 기반 강화가 함께 가지 않으면 늘어난 의사는 그저 대도시의 의사를 한 명 더 늘릴 뿐이라는 것이다.
2025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조원준 전 정책수석이 전문 기자 간담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현재 추진되고 있는 의료정책은 민주당식 의료정책이 그대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이 정책이 순수한 공익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계산의 산물임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일련의 과정에서 전문가 참여를 강조하면서도 원래 가지고 있던 시나리오대로 진행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 해석이다.
대통령은 의료정책에 관한 전문가가 아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의료 현장과 학계의 전문가들과 충분히 소통하고, 급하게 서두르지 않으며 신중하게 정책 결정을 내렸어야 했다. 의료인력 수급이라는 복잡한 문제를 대통령의 한마디로 방향이 정해지고 속도가 결정되는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은, 전문성에 대한 경시이자 국가 정책 결정 과정의 심각한 왜곡이다. 정책의 세부 사항은 전문가와 관료의 영역이며, 이를 존중하는 것이 책임정치의 기본이다.
정부가 결정한 이상 이 정책이 취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만약 이 정책이 실패할 경우—지역의료가 개선되지 않거나 오히려 악화되는 경우, 부실 교육으로 인한 의료사고가 증가하는 경우, 의료인력의 수도권 쏠림이 심화되는 경우—그 책임은 누가 지는가가 사전에 명확해야 한다.
책임정치와 책임행정의 원칙에 따라, 정책 결정에 참여한 모든 주체가 자신의 판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추계위와 보정심에 참여한 학자들에게도 묻는다. 정권의 눈치를 보며 소신을 접었는가, 아니면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며 원칙에 기반한 의견을 개진했는가. 당신들의 판단이 틀렸을 때, 그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국민을 기만하는 거버넌스로 설계된 정책은 반드시 실패한다. 형식만 갖춘 전문가 참여, 결론이 정해진 추계, 교육환경을 무시한 정원 확대, 10년의 공백에 대한 무대책, 지방 붕괴라는 구조적 원인에 대한 외면—이 모든 것이 겹쳐 정책은 실패를 향해 가고 있다. 그리고 그 부담은, 언제나 그렇듯,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전문가적 판단이며, 투명한 과정, 실질적 참여, 책임 있는 결정이라는 세 가지가 담보되지 않는 한, 어떤 정책도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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