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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는 갔지만, 우리는 남았다

경북의대 이진규 졸업생
발행날짜: 2026-01-19 05:00:00

경북의대 졸업생 이진규

2025년 12월 31일 밤 11시 50분. 의사가 응급실 당직을 서며 모니터 화면을 내린다. "2040년, 의사 1만 명 부족" 창밖에서는 새해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들리고, 복도에는 앰뷸런스 사이렌이 날카롭게 울린다.

'2040년이면 나는 몇 살이지? 그때도 나는 응급실에 남을 수 있을까?'

거리는 환호성으로 가득하지만, 응급실의 공기는 여전히 긴장으로 팽팽하다. 온 세상이 지난해를 마무리하고 다가올 해를 반기는 지금, 나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우리 의료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2년 전에도 숫자가 있었다. 2000명 증원. 그때도 정부는 과학적 근거를 내세웠고, 의료 현장은 현실의 목소리를 외쳤다. 이번에도 숫자가 나왔다. 5개월간 12차례 회의 끝에 나온 1만 명 부족. 더 정밀해 보이지만 회의록을 읽다 보면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문장들과 마주친다.

"충분히 토의하고 많은 것을 반영하면 최상이겠지만 시간적인 걸 고려 안 할 수도 없다", "마지막 회의를 앞둔 시점에서 시간 부족을 이유로 새로운 분석이나 대안 검토는 사실상 배제되고 있다", "이렇게 가도 되는 건지 솔직히 모르겠다"

한 위원은 이와 같이 위원회의 존재 이유를 묻기도 했다.

의사 인력 추계가 완벽할 수는 없다. 어느 나라에서든 정치적 요소가 개입되기 마련이고,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다. 다만, 2년 전에도 이번에도 충분히 다뤄지지 못한 것들이 있다. 근로기준을 훨씬 웃도는 의사들의 실제 노동량, 그리고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AI가 바꿀 의료 현장의 미래.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 필수 의료 전공을 망설이는 젊은 의사들의 고민과 원가에도 한참 못 미치는 현재 수가 구조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병원들의 현실 또한 그 숫자 안에는 담기지 못했다.

추계 과정을 들여다보면, 여러 현실적 제약이 보인다. 한 위원이 회의록에서 밝혔듯 시간의 압박 속에서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기 어려웠고, 교육 여건이나 수련 환경, 교수진 확보와 같은 요소들이 깊이 있게 다뤄지지 못했다. 과학적 추계를 목표로 시작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여러 변수가 제한적으로만 반영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쉽지만,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어렵다. 그렇기에 단순히 이 위원회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싶지 않다. 대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는 정말 의사 숫자만 늘리면 되는 걸까?'

우리도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의사 증원에 대한 의료계의 우려가 모두 틀린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숫자 논쟁에만 매몰되어 정작 환자들이 겪는 불편은 뒷전이 된 것은 아니었는지 묻게 된다.

많은 의료진이 이미 알고 있듯, 답은 시스템이다.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의사 수는 평균보다 적을지 모르나, 의사 1인당 감당하는 외래 진료량은 평균의 몇 배에 이른다. 제왕절개 수술 수가가 67만 원에 불과한 현실, 강남에서 개업하는 것과 영덕에서 일하는 것 사이의 거대한 격차를 그대로 둔 채 단순히 의사의 숫자만 늘리는 정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왜곡된 의료 전달체계, 수가 현실화, 수련 환경 개선과 같은 숙제들이 산더미처럼 남았다.

거리의 환호성은 점점 멀어진다. 새해의 첫 시간, 응급실엔 여전히 환자가 온다. 2026년 1월 1일 아침. 지난 밤의 고민들은 잠시 뒤로한 채, 나는 여느 날과 같이 병동 회진을 돌며 환자에게 묻는다.

"어젯밤 잘 주무셨어요?"

통계는 틀릴 수 있고, 정책은 바뀔 수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아픈 사람 옆에 서 있는 사람은 의사라는 사실이다. 매일 아침 병동에 출근해서 환자의 이름을 부르고, 상태를 확인하고 보호자에게 설명하며 때로는 함께 울어 주는 그 마음은 숫자에 보이지 않는다. 새해 첫날도, 의사는 환자 곁에 있다.

2040년에 의사가 정말 1만 명 부족할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2026년 오늘, 나는 환자를 볼 것이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통계는 내일을 말하지만, 우리는 오늘을 견딘다.

2040년의 숫자가 아니라, 2026년 환자의 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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