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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계 넘어 설계로 : 5년 후 위한 제언

고려의대 정재훈 교수(예방의학교실)
발행날짜: 2026-01-12 05:00:00 업데이트: 2026-01-12 08:50:02

고려의대 정재훈 교수(예방의학교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의 활동이 종료되었다. 정부 위원회에 참여하는 전문가로서, 그리고 데이터를 다루는 학자로서 지난 기간은 치열한 고민의 연속이었다.

이제 소모적인 논쟁은 뒤로하고, 냉정하게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5년 뒤, 혹은 그 이후 다시 마주할 추계가 단순한 숫자 싸움이 아닌, 한국 의료의 미래를 그리는 설계도가 되기 위해 우리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과제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1. 맞추는 것(Prediction)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Projection)이어야 한다

흔히 추계를 미래를 정확히 알아맞히는 예측(Prediction)이나 예보(Forecast)로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10년, 20년 뒤의 미래를 정확히 맞추는 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사인력 수급추계의 본질은 불확실한 미래를 다루는 전망(Projection)에 있다. 즉, 우리의 정책적 선택에 따라 미래가 어떻게 달라질지 시나리오를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다.

이번 위원회에서 아쉬웠던 점은 장기 전망에 적합하지 않은 모형을 주된 방법론으로 논의했다는 것이다. 향후 추계에서는 결정론적 모형을 골격으로 삼아야 한다. 현재 추세가 지속된다면(Status Quo) 어떻게 될까?, 특정 정책이 개입되면 결과는 어떻게 변할까?라는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시나리오 기반 접근이 필수적이다. 그래야만 정책 결정자에게 명확한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다.

2. 정교한 시나리오를 위한 데이터와 가정의 고도화

추계의 품질은 데이터와 가정이 결정한다. ‘미래의 의사는 과거의 의사와 같은 양의 일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AI와 기술 발전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 그리고 워라밸을 중시하는 세대 변화로 인한 노동 투입 감소라는 상반된 변수들이 존재한다. 이번에는 시간 부족으로 이러한 변수들을 깊이 있게 다루지 못했다.

다음 추계가 시작될 때 허둥지둥 자료를 모아서는 늦다. 의사협회와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심사평가원의 방대한 데이터를 지금부터 표준화하고 정제해 두어야 한다. 또한, 의사의 은퇴 연령, 진료량 변화, 기술 발전 속도 등 핵심 변수들에 대한 기초 연구가 선행되어야만 설득력 있는 가정을 수립할 수 있다.

3. 숫자의 해석: 최댓값이 아닌 최적 추정치에 주목해야

과정의 투명한 공개는 중요하지만, 확정되지 않은 숫자가 주는 혼란도 경계해야 한다. 대중과 언론은 종종 여러 시나리오 중 가장 자극적인 최댓값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정책은 가장 발생 가능성이 높고 합리적인 최적 추정치를 기반으로 수립되어야 한다.

앞으로의 논의에서는 극단적인 시나리오가 주는 공포보다는, 전문가들이 합의한 가장 현실적인 수치와 그 이면의 맥락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전략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4. 근본적인 질문: 지속 가능한 의료 시스템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전문가의 계산을 넘어 우리 사회가 답해야 할 본질적인 질문이 있다. 추계는 결국 ‘우리가 어떤 의료 환경을 원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종속변수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외래 이용 횟수와 낮은 문턱을 자랑하는 현재의 의료 이용 행태는 과연 정상인가? 그리고 이것은 인구 구조가 급변하는 미래에도 유지 가능한가? 과잉된 의료 이용을 조절하여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일 것인지, 아니면 비용 급증을 감수하더라도 현재의 편의성을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결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수식과 모델링은 그 결단에 따른 결과를 보여줄 뿐이다. 다음 추계가 시작되기 전까지, 우리는 이 불편하지만 필수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5년 뒤의 추계를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닌 미래를 위한 이정표로 만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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