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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자의 행운

순천향의대 3학년 오명인
발행날짜: 2025-07-28 05:00:00

순천향대학교 의대 본과 3학년 오명인
투비닥터 사진팀

흔히들 초심자에게는 행운이 따른다고 한다.

지난 1년간 세상은 의대생들에게 "하고 싶은 건 뭐든 해보라"고 문을 억지로 열어주는 듯했다. 학업을 핑계 삼아 평생 미뤄두던 일들에 의대생들이 '초심자'로서 뛰어들었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로, 행운이 따르던가?

작년 이맘때쯤 나는 대학생 창업 동아리 '메디럭스'에 가벼운 호기심으로 가입했다. 시간이 남아도는 의대생들 사이에서 스타트업은 하나의 유행처럼 자리 잡았고, 마침 헬스케어에 특화된 동아리를 발견하고는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동아리 구조는 단순했다. 약 70명의 팀원이 각자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가장 많은 표를 받은 10명이 팀장이 되어 반 년간 팀을 이끌었다.

의대생이라는 타이틀의 장점이자 단점은, 사람들은 학력 하나로 뭐든지 잘할 것이라 착각한다는 것이다. 암기와 시험에만 익숙해 제대로 된 팀 프로젝트 하나 경험해 본 적 없는 내가 팀장으로 뽑힌 것도, 그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의 얼떨떨한 창업 도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 아이디어는 '웰다잉(Well-dying)'과 '호스피스'였다. 기대수명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말기 판정 이후의 삶에 관심이 높아졌고, "행복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돈을 기꺼이 지불할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웠다. 그러나 창업을 해본 사람은 안다. 모든 '야심찬 아이디어'는 이미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고, 대부분은 진작에 실패했다는 것을. 나 역시 첫 리서치에서 자신감을 잃었고, 피보팅(사업 방향 전환)을 반복하다가 결국 시작점부터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창업에서는 '페인 포인트', 즉 고객이 실제로 느끼는 불편함을 정확히 아는 것이 핵심이다. 내가 내놓은 문제는 뉴스 기사나 나의 직관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우리 팀은 곧바로 인맥을 총동원해 호스피스 환자의 가족, 전담 의사, 간호사 분들을 인터뷰하고 말기 암 환자 카페의 글들을 밤새 읽으며 진짜 '페인 포인트'를 찾았다.

우리는 환자와 가족이 말기에는 '집'에서 머무르길 원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응급상황에서의 부담과 죄책감 때문에 많은 이들이 '병원'을 선택했다. 오히려 우리의 아이디어가 진짜로 필요한 사람들은 그 중간, 예를 들어 신체 활동은 가능하지만, 전신 상태가 약화된 암 환자들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한 홈케어는 어떤 형태일지 고민했다. 재택의료 학회에 직접 참석해 전문가들의 강연을 듣고, 실제로 재택의료를 전문으로 운영하는 병원을 방문해 현장을 견학했다.

하지만 '필요하다'는 것과 '팔린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언젠가는 말기 암 환자를 위한 홈케어 모델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생겼지만, 학생 신분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청사진을 그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방향은 유지하되, 미래의 고객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작고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자고 다시 아이디어 회의를 시작했다. 그 결과, '암 환자의 통증 관리'에 초점을 맞춘 어플 개발로 방향을 바꿨다. 삶의 질과 직결되지만, 상대적으로 간과되던 문제였다.

이 모든 과정과 병행해 우리 팀은 창업 대회에 참가했고, 1차, 2차 심사를 통과해 어느새 최종 데모데이 무대에 서게 되었다.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했고, 솔직히 말하면 결과물은 아직 미완성에 가까웠다. 구체적인 결과물을 눈앞에 보여주기보다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웰다잉, 홈케어의 비전을 제시하면서도 당장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암 환자를 위한 통증 관리 앱'을 보여주었다.

나의 발표는 누군가에겐 애들 장난처럼 보였을 것이다. 데모데이 무대에서 발표를 마친 그 순간까지도 머릿속은 복잡했다. 그러나 발표가 끝난 뒤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그간 헤매고 고민했던 반 년간 절대 헛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고객이 누구인지, 우리가 해결하려는 문제는 무엇인지, 앞으로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적어도 그 질문들 앞에서 나는 막힘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비록 완성된 서비스를 내놓지는 못했지만, 나는 사람을 모았고, 문제를 좁혔으며, 고객의 목소리를 들었다. 창업 용어 하나 모르던 내가 피칭 자료를 만들고, 인터뷰 질문을 고민하며 고치고, 개발자와 디자이너와 함께 MVP를 구현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하나 부딪치며 만든 첫 번째 결과물로, 우리는 결국 창업대회 최종 수상까지 할 수 있었다. 얼떨떨한 얼굴로 커다란 상금 패널을 들고 단체사진을 찍는 그 순간, 수없이 헤맨 시간이 하나의 답처럼 돌아온 듯했다.

초심자는 어설프고 서툴 수밖에 없다. 어설프고, 더디고, 열 번 시도하면 아홉 번은 실패한다. 그러나 그 아홉 번의 실패가 씨실과 날실로 촘촘히 엮여 당신이 내딛어야 할 다음 걸음을 지지한다. 초심자의 행운이란, 새로운 세계에 처음 발을 디딘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로운 실패에서 피어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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