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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백령도 유일무이한 남자 산부인과 의사다"

메디칼타임즈
발행날짜: 2016-09-14 05:00:04

공보의일기 백령병원 허지만 공보의

의사들의(특히 남자 의사들의) 산부인과 기피, 그리고 의대생의 남학생 비율 감소와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인한 군필자 증가로 산부인과 공중보건의사 수급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올해 신규 산부인과 공보의는 전국에서 6명밖에 배출되지 않았는데, 보건복지부는 이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고심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최대한으로 열악한 의료 취약지를 중심으로 공보의들을 배치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내가 근무하고 있는 서해 '최북단 섬 백령도'다.

백령도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는 지리적 위치나 천안함 피격사건 등 사건으로 북한이 많이 떠오르는 것 같다.

이 섬은 서울보다 개성, 평양이 더 가까우며 본래 황해도에 속해 있어서 그런지 과거 페이스북에선 백령도에서 위치서비스를 하면 North Korea로 떴다는 이야기도 있는 등 여러모로 북한과 가까운 곳이다.

그래서 막연하게 위험한 지역으로 생각되기 쉽지만 막상 섬의 일상은 한적하고 평화로운 편이다. 그러나 섬을 돌아보면 곳곳에 군사시설이 들어서 북한과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긴장과 평화가 공존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백령도의 주요 의료 시설은 백령병원, 백령보건지소, 제6해병여단 의무중대가 있다. 백령병원은 인천광역시의료원 소속으로 이 섬에서 가장 큰 의료시설이지만 육지의 대형병원과는 아무래도 많은 차이가 있다.

도서지역 특성 상 업무환경이 열악해 외부에서 페이닥터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마취통증의학과(병원장)와 치과를 제외한 나머지 과는 공보의가 배치되어 있고 이 들의 유무에 따라 진료과목이 새로 생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올해는 내과, 소아청소년과, 성형외과, 산부인과, 응급실, 신경과, 비뇨기과 7명의 공보의가 배치되어 근무 중이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하면 나는 이 섬의 유일한 산부인과 의사라는 뜻이다.

처음 백령도에 들어왔을 때가 떠오른다. 섬에 내리자마자 산모가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바로 병원으로 이동해 오후부터 첫 근무를 시작했다.

백령병원 산부인과는 작년까지 페이닥터가 있었는데, 그분이 퇴사하고 내가 발령받기까지 대략 6개월 정도 섬에 산부인과 의사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산부인과 의사 공백기에는 산모들이 매번 산전진찰을 위해 배를 타고 내륙으로 이동하거나 그냥 산전진찰을 받지 않고 지내면서 산부인과 의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백령도는 산모가 거의 없고 부인과 환자들이 조금 있겠지 생각했지만 예상과는 달랐다. 백령도에도 산모가 있었다, 아니 생각보다 더 많았다.

백령도에는 총인구 5443명, 가구수 2999가구(2015.12월 말 주민등록 기준)가 살고 있다. 주민 수와 비슷한 정도의 군인 및 군인 가족이 살고 있다. 약 1만명 정도의 인구가 상주하고 있는 셈이다.

군인가족 중에는 젊은 부부도 많아 산모도 있고, 이로 인해 많진 않지만 꾸준하게 산부인과에 대한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 산모는 첫 임신 진단부터 시작해 이후 초음파검사, 임신 초기 더블검사, 중기 쿼드검사, 임신성당뇨 검사, 비수축검사 등 거의 매달 간격으로 꾸준히 산부인과에서 산전진찰을 받는다.

산부인과 의사가 없으면 백령도의 산모들은 매번 배를 타고 육지로 나가 진찰을 받고 와야 하는데 이게 또 쉬운 일이 아니다.

백령도 배편은 인천에서 오전 7시 50분 또는 오전 8시 30분에 출항해 백령도에 도착, 백령도에서 다시 오후 12시 50분 또는 1시 30분에 출항해 인천으로 돌아온다. 배만 왕복 8~9시간 정도 소요되는 거리도 문제지만, 그마저도 하루에 출항 시간이 정해져 있어 한번 육지로 나가 진찰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 2박 3일을 투자해야 한다.

이마저도 안개나 파도가 심하면 결항되기 십상이라 육지에 나가기가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백령병원에 상주하는 산부인과 공보의가 한 명 배치돼 초음파 기계 및 검사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산모들이 꼭 육지에서 해야 할 검사가 아니라면 섬 안에서 훨씬 편리하게 산전진찰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아쉬운 점은 백령병원에서 산전진찰을 할 수 있어도 분만을 하긴 어렵다는 점이다. 2000년 이전에는 매년 평균 25건의 분만이 있었다. 출생지가 백령도인 사람이 꽤 있었던 것이다.

이후 분만 건수는 하락해 2005년도 이후에는 한 해 1~2 건 정도의 분만만 있거나 분만이 없는 해도 생기더니 결국 2013년 마지막 분만 이후 3년 동안 백령도에서 출생한 태아는 없는 상태이다.

백령병원은 2014년 초 신축 공사를 완료해 30병상 규모 및 최신식 수술실과 분만실을 갖추었다. 즉 신축 이후 한번도 분만실을 써보지 못 한 것이다. 신축한 병원에서 3년만에 신생아의 울음 소리가 들린다면 그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산부인과 과장으로 발령받은 뒤 은근한 압박이 있기도 하지만 분만을 받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선배 의사들은 공중보건의사 시절 타전공 전문의도 섬에서 교과서를 찾아보면서 덜덜 떨며 분만을 받았다는 모험담(?)을 이야기 하곤 하지만, 이젠 시절이 바뀌었다. 의료 사고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의사의 무과실에도 배상책임을 묻는 요즘 시대에 의사는 방어적인 진료를 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분만은 예측하기 힘든 과정 중 하나다. 자연 분만이 잘 될 것으로 예상 돼도 난산이나 태아가사 등으로 갑작스럽게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고, 분만을 잘 하고 나서도 산후 출혈로 산모의 생명이 위태로워진다던가, 만삭으로 태어나 특별한 문제 없던 신생아도 갑작스런 이상이 관찰되어 신생아중환자실에 며칠 더 입원하는 경우도 많이 봐왔다.

따라서 시설이 있고 산부인과 전문의 한 사람이 의지가 있다고 해서 분만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분만실에 익숙한 간호사도 필요하며, 신생아를 봐줄 소아과 전문의 선생님의 의지도 중요하다.

그 외 응급 수술을 할 수 있는 인력도 필요하고, 위급 상황 시 백업(신생아 중환자실, 동맥색전술 등)을 해줄 수 있는 상급병원 등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야 산모가 안전하게 출산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도서 지역의 특성상 이와 같은 인력을 항시 갖추기는 어렵고 상급병원도 인하대병원, 길병원과 협력하고 있지만 위급 시 빨리 이송하기는 쉽지 않다.

공보의로 근무하면서 도서지역에도 산모가 있고 산부인과 의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열악한 환경에 있지만 산모들이 더 고생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도시보다 산모 수가 적은 만큼 한분 한분에게 더 시간을 많이 들이고 챙기면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보람을 느끼고 있다.

산모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남자 산부인과 의사라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었을텐데 오시는 분들 다 이야기가 잘 통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배속의 아기가 건강하게 잘 커서 모두들 순산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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