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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보의일기|'번호'로 먼저 불리는 사람들 속에서

메디칼타임즈
발행날짜: 2016-08-17 05:00:00

제주교도소 김희호 공보의

"자, 번호랑 이름부터 먼저 얘기하세요."

진료실 의자에 앉자마자 열변을 토해내는 환자의 말을 애써 끊어낸다. 간밤에 불편한 것이 많았는지 무언가 억울한 표정이다. 확인된 환자정보를 전자차트로 조회하는데 걸리는 몇 초간의 시간 동안 이 사람은 어떤 연유로 이곳에 왔을지 생각해본다.

나는 법무부 소속 공중보건의사다. 교정기관, 이른바 교도소에서의 복무가 결정되었을 때 사실 적잖이 놀랐었다. 보건소나 보건지소에서 근무하는 대다수의 공보의에 비해 극소수인 교정기관 공보의는 그 존재조차 베일에 싸여있기 때문이다.

처음 이곳에 도착해 교도소 내부를 쭉 둘러보던 때가 생각난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두꺼운 창살문을 차례대로 지나가며 바라본 광경들이 말이다. 조금 촌스러운듯한 단색으로 칠해진 내부, 그 좋은 봄 날씨에도 불구하고 축축하게 느껴지던 습기, 그리고 커다란 번호가 박힌 하늘색 옷들. 이제는 아침마다 지나오는 이 길이 낯설지는 않다.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 것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책상 위에 쌓여있는 진료신청서들이다.

600여명에 달하는 수용자들이 쏟아내는 이것을 마주할 때면 자연스레 한숨이 새어 나오고 만다. 작년부터 공석인 의무관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내가 이곳의 유일한 의사이기 때문이다. 교도소의 제한된 의료자원을 이용해 일차진료를 완수해내야 하는 이 임무가 갓 졸업한 신출내기 의사에게 버거운 걸까? 사명감이나 보람을 제쳐놓고서라도 당장의 부족한 지식과 술기 때문에 의기소침해지는 순간을 자주 겪게 된다.

덕분에 모든 과의 광범위한 내용을 따라가기 위해 평소 읽지 않던 두꺼운 책들도 꺼내고 주변 전문의 선생님들에게도 자문을 구하고 있다. 그렇게 근근이 습득한 얄팍한 지식들로 이따금씩 발생하는 위기들을 넘겨왔다.

각자의 번호를 가진 사람들이 어떤 사정으로 이곳에 왔던 일단 진료실 문턱을 넘게 되면 나에게 있어서 환자다. 갖은 죄명과 진료차트에 표시되는 사건 정보들을 볼 때면 몇 초간 공상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진료에 집중하려 한다.

그렇지 않으면 편견과 차별이 생기게 되고 일에 대한 보람은 물론 의욕까지 상실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덕분인지 수용자들과 나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적어도 멱살잡이가 오가는 촌극은 발생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느낀 몇 가지 우려되는 상황을 언급하고 끝내고 싶다. 먼저 재소자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정신질환자 진료에 대한 부분이다. 비록 정확한 통계를 내본 것은 아니지만 조현병을 비롯한 여러 정신병 환자들의 대부분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추적관리가 안된 상태에서 이곳에 입소하고 있다.

최근 개정된 정신보건법이 시행되면 이러한 사태를 더 가중화 시킬 것이 분명한데 이에 대한 대처는 미흡해 보인다. 정규직 의무관도 부족한 상황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필요성을 논하는 것은 무리한 것일까?

두 번째, 앞으로 교정기관으로의 공중보건의사 배치가 중단될 예정인데 이를 어떻게 대처할 지의 문제다. 그동안 법무부는 교정의료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보다는 공보의 인력을 일선에 배치하는 행정을 펼쳐왔다.

현재 우리 교정을 포함해 몇 개소 이상은 의무관이 공석인 상황이고, 많게는 1000명에 가까운 수용자를 혼자 책임지고 있는 공보의도 있다. 그나마 규모가 큰 교정에는 정규직 의무관이 존재하지만 이분들도 과중한 업무에 혀를 내두르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의사의 사명감만을 바라고 매년 비슷한 지원공고를 낸다면 문제는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추신)저에 비해 훨씬 더 고생하시는 일선의 교정 공보의들이 많습니다. 미쳐 다 언급하지 못했지만 사실 일부 불량한 수용자들 때문에 받는 업무 스트레스에 모두가 공감하고 있습니다. 고성이 오가는 진료현장은 물론 물리적인 위협까지 감수해가며 진료하시는 선생님들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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