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타임즈=이한수 기자] 글로벌 인공지능(AI) 투자 경쟁의 여파가 의료기기업계의 부품 조달로 번지고 있다.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증설로 반도체 수요가 늘면서 국내 의료 AI 분야에서도 핵심 부품 확보와 원가 관리 부담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만 국가과제를 통해 필요한 자원을 지원받은 기업은 중단기 영향이 없다는 입장이다. 병원 현장에서는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한 선정 과정과 짧은 장비 대여 기간이 연구의 제약으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7일 국내 한 AI 기업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 AI 산업의 급격한 성장으로 반도체 수요가 크게 늘면서 실제 현장에서도 일부 핵심 부품을 원하는 시기에 확보하기 어려워지고 가격도 상당 폭 상승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수요가 반도체 공급에 영향을 주면서 국내 의료기기 AI 기업의 부품 조달과 원가 관리 부담도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다른 국내 AI 기업은 국가과제를 통해 중앙처리장치(CPU)와 메모리 등을 현물로 지원받았다며 "중단기적으로는 영향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과제를 수행 중인 한 병원 관계자는 과제에 선정되는 것부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장비를 현물로 지원하는 방식 외에 대여하는 방식도 있지만, 대여 기간이 생각보다 짧아 연구를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정해진 대여 기간 안에 성과를 제시해야 하다 보니 단기간에 결과를 보여줄 수 있는 연구 위주로 진행하게 되는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해외에서는 의료기기업계의 반도체 조달 부담이 수치로 확인되고 있다. 미국첨단의료기기협회(AdvaMed)가 8월 17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협회 조사 응답기업의 75%가 메모리 반도체 관련 제약을 경험했다. 가격 상승을 보고한 기업은 88%, 공급 물량 배정이나 특정 부품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기업은 63%였다.
협회는 의료기기 분야가 전 세계 메모리 수요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약 1~2%로 추산했다. 영상진단장비부터 환자감시장치, 주입펌프, 인공호흡기, 수술로봇까지 메모리를 사용하지만 전체 구매 수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은 셈이다.
의료기기는 부품 대체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안전성과 성능 검증, 품질 검토, 변경 내용에 따른 규제 절차 등이 동반될 수 있어 대체 부품이 있더라도 적용까지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 협회의 설명이다.
글로벌 장비기업의 실적에도 비용 상승이 반영됐다. GE헬스케어는 7월 29일 발표한 2분기 실적에서 메모리 반도체와 유가, 운송비 상승을 수익성 부담 요인으로 명시했다. 메모리와 유가·운송비, 기타 부품 가격 상승 등을 합친 연간 비용 부담은 약 2억5000만달러로 추산했다.
병원의 구매 비용에도 여파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 엘카미노헬스의 데브 무로 최고정보책임자(CIO)는 7월 24일 미국 병원 전문매체 베커스 호스피털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대형 AI 기업들의 투자가 칩과 메모리 공급을 압박하면서 병원 IT 비용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로 CIO는 인프라 하드웨어와 단말기, 소프트웨어·클라우드 서비스 등에서 20% 이상 가격이 오르는 사례를 언급했다. 해당 병원은 공급업체에 가격 인상분 중 AI 인프라 비용 증가와 업체의 이익 확대에 따른 부분을 구분해 설명하도록 요구하기 시작했다.
메모리 시장에서는 가격 상승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9월 30일 보고서에서 반도체 업체들이 고성능 서버용 제품에 생산능력을 우선 배정하면서 공급 부족이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 4분기 범용 D램 계약가격은 전분기 대비 10~15%, 낸드플래시는 15~20%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부품 조달 부담을 설명한 국내 AI 기업 관계자는 "의료기기는 안정적인 품질과 공급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부품 수급 불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제품 생산과 공급에 미치는 영향은 제품별로 차이가 있는 만큼 안정적인 공급 체계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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