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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엔 1800억 쓰면서 생명 살리는약 1000억도 못 쓰나"

발행날짜: 2026-07-01 05:30:00

[인터뷰] 정욱진 대한폐고혈압학회 회장
"건보 재정 우선 순위 문제 지적…급여 정책 원칙부터 세워야"

[메디칼타임즈=최선 기자]"많이 잡아도 연간 1000억원입니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이게 맞는 건가요?"

26일 폐동맥고혈압 서울 마곡코엑스에서 열린 대한폐고혈압학회 학술대회(PH Korea 2026)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정책 세션이 끝난 후 정욱진 대한폐고혈압학회 회장이 보건당국 관계자를 향해 급여 정책의 원칙을 두고 읍소에 나선 것.

환우회 회장 역시 환우회 임원은 물론 환자들이 지금 이 시점에서도 폐동맥고혈압으로 생명을 잃고 있다며 급여 원칙에 대한 기준을 따져 묻기도 했다. 이른 바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 방안이 쏘아올린 공이다.

탈모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건강보험 재정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논쟁도 함께 커지고 있다. 단순히 탈모 치료를 급여화할 것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을 어디에 먼저 투입해야 하는지가 화두로 떠오른 것.

정욱진 대한폐고혈압학회 회장

폐동맥고혈압(PAH)은 폐혈관 압력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결국 우심부전으로 이어지는 희귀난치질환이다. 치료하지 않으면 5년 후 생존율이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크게 떨어지지만 최근에는 표적치료제가 개발되면서 조기에 적극적인 병용치료를 시행할 경우 장기 생존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질환으로 바뀌고 있다.

문제는 희귀난치질환 환자들은 수억원에 달하는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검증된 치료제를 쓰지 못하고 있다는 것. 상대적으로 생명과 직결되지 않는 탈모 치료를 급여화하는 것이 과연 건강보험의 본래 취지에 부합하느냐는 문제가 자연스레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질문에 대해 대한폐고혈압학회 정욱진 회장은 '탈모 급여 찬반'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핵심은 건강보험이 가장 먼저 보장해야 할 의료의 우선순위를 다시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현재 국내 폐동맥고혈압 치료 환경을 대표하는 사례로 신약 소타터셉트(sotatercept)를 꼽았다. 그는 "환자 한 명에게 3주 간격으로 다섯 차례 투여했는데 치료비만 5000만원이 들었다"며 "효과는 분명했지만 결국 비용 때문에 치료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상태가 유지되고 있지만 계절이 바뀌면 언제든 악화될 수 있어 다시 투여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그때는 환자나 가족이 사실상 전 재산을 털어야 하는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정 회장은 이 같은 생명 유지 치료제는 일반적인 경제성 평가 대상이 아니라 필수의약품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타터셉트는 해당 기전에서 사실상 유일한 치료제로 희귀질환 필수약제는 경제성 평가를 면제한다는 규정이 있는데도 실제로는 적용되지 않는 상황이 많다는 것.

정 회장은 "소타터셉트가 필요한 환자는 많지 않아 국내 치료 대상은 많아야 200명 정도로 예상된다"며 "환자 1인당 연간 약제비를 1억원으로 계산해도 전체 건강보험 재정 부담은 연간 약 200억원 수준에 그친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경우 지난 6월 소타터셉트가 도입된 이후 현재 1000명 정도가 보험 적용을 받아 사용하고 있다. 반면 국내는 일부 신약은 허가를 받고도 급여가 적용되지 않고 있으며, 해외에서 표준치료로 자리 잡은 약제 가운데 국내에 아예 도입되지 않은 사례도 남아 있다.

글로벌 제약사 입장에서는 한국 가격이 다른 국가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낮은 약가를 받아들이기 어렵고 결국 국내 환자들만 치료 기회를 잃는다. 이른바 희귀의약품의 구조적인 '코리아 패싱' 문제다.

그는 "우리나라는 희귀의약품의 약가를 지나치게 낮추려는 경향이 있다"며 "글로벌 제약사 입장에서는 한국 가격이 다른 국가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결국 국내 출시 자체를 포기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벨레트리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에포프로스테놀 계열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약인데 우리나라만 도입되지 않았다"며 "OECD 국가 대부분이 사용하는 약을 한국 환자들만 쓰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플로란은 글로벌 시장에서 철수하는 상황이고 벨레트리가 사실상 대체 약제인데도 국내에는 아직 없다"며 "희귀의약품은 정부가 약가를 계속 낮추려고만 하다 보니 글로벌 제약사가 아예 한국 출시를 포기하는 코리아 패싱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간질성폐질환 관련 폐고혈압(Group 3) 치료제인 타이바소, 만성 혈전색전성 폐고혈압(CTEPH) 치료제 아뎀파스(성분명 리오시구앗)의 적응증 확대, 업트라비(성분명 셀렉시팍)의 적응증 확대 등도 과제로 남았다. 이들 약제를 모두 도입하거나 급여를 적용해도 건강보험 재정 부담은 연간 1000억원이 채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는 실제 재정 부담이 아닌 의지의 문제라는 게 그의 판단.

정욱진 회장은 "탈모 급여에는 연간 1800억원 정도의 재정이 거론되고 있는데 생명을 살릴 수 있는 희귀질환 치료에는 1000억원도 쓰지 못하면서 미용 영역에 더 큰 재정을 투입하는 것이 건강보험의 우선순위에 맞는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행 경제성 평가 방식도 희귀질환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도 풀어야 할 숙제"라며 "30~40대 젊은 환자는 오래 살수록 약을 더 오래 써야 하기 때문에 경제성이 오히려 낮게 평가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살아야 경제활동도 하고 가족도 지킬 수 있는데 생존 자체를 비용으로만 계산하는 방식은 희귀질환자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사회 생산성과 가족을 부양하는 역할 등은 반영하지 않은 채 약값만 계산하는 방식에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무엇보다 그는 약제가 없어서 환자를 잃었던 지난 20년의 경험을 강조했다.

정 회장은 "2005년 처음 폐동맥고혈압 환자를 보기 시작했을 때는 치료제가 하나뿐이어서 2~3년 안에 돌아가시는 분들을 너무 많이 봤다"며 "그 시절 환자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고 회상했다.

그는 "반면 치료제가 늘어난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며 "현재는 3제, 4제 병용치료까지 가능해졌고 소타터셉트까지 사용한 환자는 4년째 거의 정상생활을 하고 있어 약만 제대로 사용할 수 있으면 더 이상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안타깝게 돌아가시는 일은 없게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일본 전문센터의 폐동맥고혈압 5년 생존율은 90% 이상. 우리나라는 약 70% 수준으로 국내 폐동맥고혈압의 5년 생존율은 전체 암 평균 생존율보다도 낮다.

정 회장은 "같은 질환인데 일본에서는 살 수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약이 없어 생존율이 낮다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건강보험의 역할은 재정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 성과를 높이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사들에게 질환과 싸울 무기를 줘야 하는데 지금은 좋은 약이 있는데도 쓰지 못하게 발을 묶어놓은 상황"이라며 "월드컵 경기에서 선수들에게 공도 주지 않고 뛰지 못하게 하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이어 "건강보험과 심사체계도 치료를 막는 감독이 아니라 환자가 최선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감독이 돼야 한다"며 "건강보험이 가장 먼저 지켜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한 사회적 원칙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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