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폐동맥고혈압(PAH) 신약 소타터셉트의 국내 허가 이후, 이달 추가 임상 3상에서 '게임 체인저'로서의 면모를 재확인했지만 임상 현장에선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뛰어난 효과만큼이나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신약이라는 점에서, 급여 적용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진단 때문. 우려는 결코 기우가 아니다.
미국 등 여러 국가에서 1995년부터 쓰인 에포프로스테놀조차 국내 도입이 안 됐고, 2009년 미국 FDA가 폐동맥고혈압 치료제로 승인한 타다라필 역시 국내에선 여전히 '발기부전 치료제'로 묶여 있다. 전문가들이 "소타터셉트마저 같은 운명을 겪을 수 있다"고 입을 모으는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닌 셈.
폐동맥고혈압 치료의 최전선에서 진료지침 마련과 정책 개선 등에 앞장서온 세종충남대학교병원 박재형 병원장(대한폐고혈압학회 총무이사)을 만나 소타터셉트 3상의 의미와 국내 제도적 한계, 개선 방향을 물었다.
■뛰어난 임상 결과? "환우들 기대감, 되레 실망감으로"
폐동맥고혈압 치료의 새 전환점으로 평가받는 소타터셉트(상품명 윈레브에어)는 단순히 혈관을 '열어주는' 수준을 넘어, 질환의 병태 생리를 근본적으로 겨냥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최근 국제학술지 NEJM에 게재된 임상 3상 'HYPERION' 결과(DOI: 10.1056/NEJMoa2508170)에 따르면, 진단 1년 이내의 초기 환자에게 소타터셉트를 병용 투여했을 때 임상 악화 위험이 위약군보다 76% 낮아졌다(HR 0.24).

기존 약제가 혈관 확장에 초점을 맞췄다면, 소타터셉트는 혈관 재형성(Vascular Remodeling)에 직접 작용해 질환 진행 자체를 늦추거나 되돌릴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별점이다.
박 원장은 "이번 임상은 진단 초기 환자를 대상으로 한 첫 근거라는 점에서 임상적 의미가 매우 크다"며 "HR 0.24는 매우 극적인 수치다. 폐동맥고혈압이 시간이 지날수록 되돌리기 어려운 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조기 개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결정적 연구"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소타터셉트는 액티빈 신호를 억제해 혈관 재형성을 조절하는 새로운 기전으로, 기존 치료제와 병용 시 훨씬 근본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HYPERION 연구는 '실패'가 아닌 '성공으로 인한 조기 종료'라는 점에서도 이례적이다. 기존 연구에서 이미 소타터셉트의 우월한 효과가 반복적으로 확인되자, 위약군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부적절하다고 판단된 것.
박 원장은 "이 정도면 임상적으로 완성도 높은 결과라 할 수 있다"며 "부작용으로 코피나 모세혈관 확장증이 보고되긴 했지만, 치명적인 수준은 아니다. 생명과 직결되지 않는 이상, 이득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연구로 조기 진단과 초기 병용치료의 필요성이 명확히 입증됐다"며 "앞으로 치료 전략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환자가 증상이 심해진 뒤가 아니라, 가능한 한 빠른 시점에서 다중 기전 치료를 병행하는 게 생존율 향상에 결정적"이라고 강조했다.
의미 있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내 환자들의 기대감은 우려감으로 흐르고 있다. 소타터셉트는 지난 7월 식약처 허가를 받았지만, 아직 급여 적용은 이뤄지지 않았다. 비싼 몸값 때문에 실제로 환자들이 쓸 수 있는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것.
박 원장은 "우리나라는 여전히 초기 2제 병용치료조차 보험에서 허용하지 않는다. 한 가지 약을 쓰고 3개월이 지나야 두 번째 약을 추가할 수 있는 구조"라며 "명확한 근거와 효과가 입증된 신약조차 보험 적용이 어려운 현실은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1바이알당 약 1만4천 달러(한화 약 2천만 원), 연간 3억 원의 약제비가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국내에서도 연간 약 1억 원이 들 것으로 전망되면서 환자들의 기대감이 실망감 내지 우려감으로 변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3주마다 한번씩 평생 투약해야 하는 약을 환자가 자비로 감당할 수는 없다"며 "급여가 되지 않으면 사실상 사용할 수 없는 약이기 때문에 결국 그림의 떡이 되는 구조"라고 했다.
■급여·적응증 확대 규정 경직성, 환자 예후 악화로 돌아와
박 원장은 국내의 제도적 경직성도 문제로 꼽았다.
그는 "타다라필처럼 이미 해외에서 폐동맥고혈압 치료제로 확립된 약조차 국내에서는 발기부전용으로만 허가돼 있다"며 "특허가 끝난 약은 제약사가 임상을 할 유인이 없는데, 식약처는 제약사 주도로만 임상을 거쳐야만 적응증 확대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대한폐고혈압학회와 환우회 파랑새는 최근 의견서 형식으로 해외의 허가 규정, 적응증 확대 규정 등을 제시, 식약처의 유연한 규제 완화를 주문했지만, 식약처는 이를 반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런 구조에서는 제약사가 손을 놓으면 환자 접근성이 완전히 막힌다"며 "희귀질환만큼은 외국 임상 근거를 인정하고, 조건부 허가나 브리징 연구를 통해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결국 국가는 약가를 깎는 데 집중할 게 아니라,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가 돈 때문에 치료를 못 받지 않게 해야 한다"며 "그것이 진정한 건강보험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박 원장은 마지막으로 "소타터셉트는 단순한 신약이 아니라, 폐동맥고혈압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첫 단추"라며 "하지만 지금의 제도 구조가 그대로라면, 그 단추조차 채워지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정부와 학계, 제약계가 함께 현실적인 해법을 찾아야 할 시점"이라며 "이번 임상이 보여준 건 단순한 약효가 아니라, 언제 치료하느냐의 문제로 조기 개입이 환자 예후뿐 아니라 환자의 삶, 이에 수반되는 사회적 비용을 바꾼다는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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