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대통령 공약과 국회 논의를 바탕으로 '전 국민 주치의제'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일단 제주도를 시작으로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내년에는 30개 의료기관을 선정해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표면적으로는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의료비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의료시스템을 고려할 때 주치의제는 의료체계 회복의 해법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붕괴를 촉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우리나라의 1차 의료는 서구의 일반의(GP) 제도와 달리 전문의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는 국민들이 전문의 진료를 선호해온 문화적 요인과, 저수가 구조 속에서 개원의들이 생존을 위해 전문 진료를 유지해온 구조적 요인이 맞물린 결과로 보인다.
2025년 2분기 기준 1차 의료를 담당하는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의사는 5만 6236명이며, 그중 전문의가 4만 8293명으로 전문의 비율은 86%에 달하고 있다. 이 중에서 주치의제도 도입 시 일차적으로 주치의를 담당하게 될 가정의학과(5111명)와 내과(8727명) 전문의 수는 1만 3838명으로 전체 의원급 전문의 수에 29%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해당 전문과 진료 대신 피부 미용이나 성형 등 비급여 의료에 종사하는 전문의가 상당수 있어, 실질적으로 주치의를 담당할 수 있는 의사 수는 더욱 부족할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전체 3만 6685개의 의원급 의료기관 중 가정의학과 의원 868개소, 내과 의원 5636개소로 전체 의원급 의료기관 중 가정의학과 및 내과 의원은 18%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주치의제를 도입한다면 주치의를 담당하게 될 의원에서는 과도한 업무량으로 1차 의료는 더욱 혼란해질 것이 예상되며, 기존 1차 의료를 담당하던 나머지 70% 전문과 의원의 역할 혼선이 초래될 것이고 1차 의료기관의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공공의료 인프라의 부족은 이러한 문제를 더욱 심화시킨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의료기관 중 공공의료기관 비율은 약 5.2%에 불과하고, 공공병상 비율도 9.5%에 머물러 있다. OECD 주요국의 공공병상 비율이 대체로 60~80%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은 극히 낮은 수준이다.
이런 상태에서 내과·가정의학과 의원에게 주치의 역할을 기대한다면, 이들에게 추가적인 관리·행정 업무, 예방 관리, 만성질환 추적 등의 업무가 요구되나, 현재의 진료 수가와 인력, 진료 환경으로는 매우 부담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주치의제라는 새로운 제도는 공공부문이 아닌 민간 개원의에게 부담을 전가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필수 의료 공백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과 충돌한다.
의사 수급과 진료 구조 역시 심각한 불균형을 보인다.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는 2023년 기준 약 2.6명으로 OECD 평균(3.7명)에 미치지 못하며, 서울은 인구 1000명당 4.7명인 반면 일부 농어촌 지역은 2명 남짓에 불과하다.
내과 전문의 수만 비교해봐도 인구 10만 명당 평균 13.28명 수준이지만, 서울은 약 26명, 반면 경북·충남·충북·세종 등의 지역은 7~10명대에 머무르고 있다. 이러한 격차 속에서 주치의제를 시행하면 지역 간 의료 접근성 차이가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외래 방문 횟수 및 환자 부담도 고려되어야 한다. 한국인의 연간 외래 의사 방문 횟수는 OECD 평균(약 6~7회)을 두 배 이상 상회하는 15~18회 수준이라는 보고가 있으며, 의료비 중 환자 직접 부담 비중은 약 29%로 OECD 평균의 약 18%보다 높다. 만성질환 관리, 예방 의료, 건강 검진, 추적 관리 등 주치의제의 핵심 과제가 많아지면 이러한 외래 진료량과 환자 부담 구조가 주체들에게 큰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다.
주치의제가 해외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된 사례들은 공공의료의 강한 토대, 정부의 재정 지원, 1차 의료 수가의 충분한 보장 등이 전제였다. 영국 NHS나 독일의 사례처럼 정부가 환자당 관리료(capitation)를 지급하고, 의료 전달체계를 명확하게 설정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반면 우리는 민간 중심 의료체계에 공공 투자가 미비하고, 환자 직접 부담 비율이 높은 상태에서 제도만 도입하려 한다는 점에서 구조적 한계가 명확하다 할 것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주치의제가 의료 전달체계를 회복할 수 있다는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의료 전달체계가 무너진 이유는 주치의가 없어서가 아니라, 저 수가로 인한 왜곡된 진료 구조, 공공의료 인프라의 부족, 필수 의료 기피와 인력 불균형, 수도권 집중과 지역 의료 공백 때문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주치의제라는 제도적 틀만 도입한다면, 지금 간신히 유지되는 의료시스템은 더 빠르게 붕괴할 수 있다.
주치의제가 국민을 위한 제도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속도전이 아니라 현실적 준비와 사회적 합의가 우선되어야 한다. 특히 충분한 재정 지원, 공공의료 확충, 합리적 수가 조정, 의료진과의 신뢰 회복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주치의제는 의료 개혁이 아니라 의료 붕괴의 촉매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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