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비밀번호 변경안내 주기적인 비밀번호 변경으로 개인정보를 지켜주세요.
안전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3개월마다 비밀번호를 변경해주세요.
※ 비밀번호는 마이페이지에서도 변경 가능합니다.
30일간 보이지 않기
  • 의료기기·AI
  • 진단

노인의학과 노쇠의 기원

고상백 교수
발행날짜: 2025-08-25 05:00:00

고상백의 의료인문학 칼럼

우리나라는 이미 전체 인구 중 노인인구가 21%를 초과하여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으며, 2035년이 되면 30%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향후 10년 후에는 전체 노인 인구 중 절반이 75세 이상인 후기 고령기에 접어들 것이다. 노인인구의 노쇠 발생 증가에 따른 사회적 비용의 증가와 노인 당사자 및 주변인의 삶의질 악화, 경제적 부담 등을 심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노인의학이 관심을 받고 있다. 노인의학은 단순히 나이가 드는 생물학적 과정을 연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있고, 인간이 노화를 겪으며 마주하게 되는 신체적·정신적·사회적 변화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한다.

의학은 오랫동안 질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하는 데 주력해 왔지만, 수명이 늘어나는 것만으로 삶의 질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하다. 나이가 들수록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신체의 쇠퇴와 기능 저하가 찾아오고,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관리할 것인가는 현대 사회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노화와 노쇠에 대한 질문이 오늘날의 과학과 의학에서만 제기된 것이 아니라, 이미 고대 그리스 신화 속에서도 상징적 이야기로 등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노화와 죽음을 피하고 싶어 했고, 신화 속 인물들은 바로 그 욕망과 한계, 그리고 역설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대표적인 사례가 티토노스와 게라스이다.

에오스는 새벽의 문을 여는 여신이다. 에오스가 밤의 장막을 걷어내면 태양의 신 헬리오스는 태양마차를 몰고 따라오며 아침을 선사한다. 에오스는 늘 새로운 날을 열고 아침을 밝히는 존재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끝없이 새로움을 갈망하는 성격을 지닌 여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에오스는 불사의 신들보다 오히려 짧고 덧없는 인간의 젊음과 아름다움에 더 끌렸다는 해석이 있다. 한편 아프로디테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도 전승되고 있다. 아프로디테가 에오스와 애로스의 관계에 질투를 느껴, 신이 아닌 인간을 사랑하게 만든 것이다. 여기서 비극이 시작됐다. 신과 인간의 사랑은 공평할 수가 없다. 신은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는 불멸의 존재이고, 인간은 늙음과 죽음이 기다리는 필멸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림. 루이 장 프랑수아 라그르네. 에오스와 티토노스, 1763Louis-jean-francois Lagrenee. Aurora and Tithonus, 1763

그후 에오스는 인간 티토노스를 사랑하게 되었다. 트로이 왕자의 한 사람으로 알려진 티토노스는 뛰어난 미모와 젊음을 지녔고, 에오스는 그에게 깊이 매혹되어 그를 신들의 영역으로 데려간다. 에오스는 사랑하는 이를 영원히 곁에 두고 싶다는 욕망에서 제우스에게 간청했다. 그녀는 티토노스에게 영원한 생명을 달라고 청했고, 제우스는 이를 들어주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치명적인 누락이 있었다. 에오스는 영생은 구했지만 ‘영원한 젊음’을 청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작은 누락은 티토노스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그는 분명 죽지 않게 되었으나, 인간으로서의 시간의 흐름은 멈추지 않았고, 그는 끝없이 늙어만 갔다. 처음에는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쇠약해지고 얼굴은 주름지고, 목소리는 쇳소리로 변했다. 결국 그는 스스로 걸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에오스조차 더 이상 그를 사랑할 수 없게 되었고, 그의 신세를 안타까워한 끝에 티토노스를 매미로 변하게 하여 가둬 두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루이 장 프랑수아 라그르네의 그림에는 늙은 티토노스가 에오스를 붙잡지만 이별을 고하고 있다. 에오스 신화는 이렇게 한 인간의 삶을 통해 영생의 욕망이 얼마나 허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늙어감이 없는 삶이 아니라 늙음 속에서 어떻게 존엄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티토노스의 이야기는 오래 사는 것이 반드시 축복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나이가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삶의 활력과 존엄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과제라는 메시지는 오늘날 노인의학과 노쇠 연구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문제의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는 노화 자체를 의인화한 신도 등장한다. 바로 게라스다. 게라스는 그리스어로 '노쇠' 혹은 '늙음'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된 신으로, 늘 초라하고 쭈그러든 노인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게라스는 미약하고 무력한 모습으로 묘사되지만, 동시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힘을 지닌 존재이기도 했다. 심지어 그 누구보다 강한 영웅인 헤라클레스조차 게라스를 이길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어떤 도자기 그림에는 젊고 건장한 헤라클레스가 주름투성이의 노인 게라스와 마주한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는 인간의 육체가 아무리 강하고 용맹하다 하더라도, 시간이 주는 쇠퇴와 노화라는 힘 앞에서는 결국 무력해질 수밖에 없음을 표현한 것이다. 게라스는 단순히 한 명의 신을 넘어서, 인간의 유한한 조건과 그 필연성을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그리스인들에게 게라스는 삶의 말년에 누구나 마주하는 그림자 같은 존재였고, 이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노쇠(frailty)'와 정확히 연결되는 개념이다. 그의 이름 게라스(Geras)는 노인의학 Geriatric의 어원이기도 하다. 또한 로마이름 세넥투스(Senectus)는 노인노쇠를 뜻하는 senescence의 어원이기도 하다.

그림. 미상. 헤라클레스와 게라스, 기원전 480-70Heracles and Geras, BC 480-70

티토노스와 게라스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노화를 조명하고 있다. 티토노스는 죽음을 벗어났으나 끝없는 노쇠의 고통을 겪는 존재로서, 영생의 함정을 보여주고 있다. 게라스는 노화 그 자체를 형상화한 존재로, 강한 자든 약한 자든 가리지 않고 결국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운명을 말하고 있다. 두 이야기 모두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늙음의 문제를 다양한 시각에서 보여주며, 동시에 그 안에서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오늘날 노인의학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왜 늙는가, 어떻게 하면 노화를 단순한 쇠퇴가 아니라 존엄한 삶의 과정으로 만들 수 있는가, 그리고 노쇠를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관리하고 예방하여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현대 의학의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오늘날 노인의학이 다루는 노쇠의 개념은 단순히 나이가 듦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근육과 체력의 감소, 인지 기능 저하, 질병에 대한 저항력의 약화, 그리고 사회적 관계의 축소와 고립 등 다양한 요소가 얽혀 나타나는 복합적인 현상이다. 이런 복합적 노쇠는 신체적인 차원뿐 아니라 심리적·사회적 차원에서도 삶의 질을 심각하게 떨어뜨린다. 그러나 신화에서처럼 단순히 ‘불행’으로만 남는 것은 아니다. 노인의학은 이러한 노쇠의 과정을 이해하고 관리함으로써 노년의 삶이 반드시 고통과 무력함으로만 채워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결국 인간은 늙어가는 존재이지만, 그 속에서도 의미와 존엄, 그리고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은 여전히 남아 있다.

티토노스의 끝없는 노쇠는 영생을 욕망했던 인간의 비극을 보여주지만, 현대의 우리는 영생을 원하기보다 노년의 삶이 보다 건강하고 존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게라스는 인간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노화의 그림자를 상징하지만, 우리는 그 그림자를 지혜롭게 마주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리스 신화 속 오래된 이야기는 오늘날 노인의학의 과제를 다시금 비추는 거울과 같다. 신화와 예술, 그리고 현대의학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결국은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늙어가면서도 어떻게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노쇠를 피할 수 없다면, 그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존엄을 지킬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는 인간의 숙제이며, 오늘날 노인의학은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 있다.

댓글
새로고침
  • 최신순
  • 추천순
댓글운영규칙
댓글운영규칙
댓글은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으며 전체 아이디가 노출되지 않습니다.
ex) medi****** 아이디 앞 네자리 표기 이외 * 처리
댓글 삭제기준 다음의 경우 사전 통보없이 삭제하고 아이디 이용정지 또는 영구 가입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1. 저작권・인격권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2. 상용프로그램의 등록과 게재, 배포를 안내하는 게시물
3. 타인 또는 제3자의 저작권 및 기타 권리를 침해한 내용을 담은 게시물
4. 욕설 및 비방, 음란성 댓글
더보기
이메일 무단수집 거부
메디칼타임즈 홈페이지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방법을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할 시에는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형사 처벌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