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시 남구에 자리한 세명기독병원을 찾았다. 병원 본관을 중심으로 뇌병원, 암병원, 정형성형병원, 웰빙센터 등 5개 건물이 연결된 건물들은 대학병원 부럽지 않은 규모였다. 실제로 734병상 규모에 130명의 전문의가 근무하는 이곳은 포항 지역 최대 규모의 종합병원이다.
올해로 75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명기독병원은 단순히 규모만 큰 것이 아니다. 지역 내에서 대학병원급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며 명실상부한 거점병원 역할을 해내고 있다. 병원 곳곳을 둘러보며 만난 직원들과 의료진의 표정에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한국전쟁 속 천막진료소에서 시작한 75년 역사
세명기독병원의 시작은 75년 전 한국전쟁의 혼란 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초대 설립자인 한영빈 박사다. 일제강점기 만주국에서 국비장학생으로 의학을 공부한 그는 해방 후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다.
"우리 부친은 원래 부산으로 가려고 배를 탔는데, 배에 물이 들어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포항에 내리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게 인연이 돼서 지금까지 이어진 거죠."
한동선 병원장이 들려주는 창립 스토리는 한편의 드라마다. 한 박사는 포항에 정착하면서 천막을 치고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고,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지역민들을 위한 의료서비스를 지속하면서 병원으로 성장해갔다.
당시 제대로 된 의료시설이 전무했던 포항에서 한 박사의 천막진료소는 없어선 안될 존재였다. 작은 천막에서 시작된 의료봉사 정신이 오늘날 700여 병상 규모의 병원으로 발전한 원동력이 됐다.
1996년 전문의 12명에서 현재 130명으로, 30년간의 놀라운 성장
현재 병원을 이끌고 있는 한동선 병원장이 1996년 병원에 합류할 당시 상황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의사(전문의)는 12명, 건물도 지금의 본관 하나뿐이었다. 당시 병원 규모도 1500평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그로부터 30년, 병원은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현재는 2만여 평 규모에 130명의 전문의가 근무한다. 10배가 넘는 성장이다. 하지만 한 병원장은 "키우려고 키운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단언했다.
"저는 그냥 불편을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진료가 늦어진다고 하면 의사를 늘리고, 대기실이 좁다고 하면 공간을 확장하고, CS(전산화단층촬영)가 늦어진다고 하면 장비를 추가로 도입하고... 그렇게 하나씩 불편사항을 해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금 모습이 됐죠."
이런 철학은 병원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각 센터마다 설치된 '애니큐 센터'가 대표적이다. 수술 전 환자와 보호자가 충분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별도의 쾌적한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다른 병원들이 공간 부족을 이유로 상담실을 줄이는 추세와는 정반대의 행보다.
대학병원급 전문센터로 지역의료 '선도'
세명기독병원을 둘러보면서 인상적인 것은 전문센터별 특화 운영이다. 각 센터가 대학병원 수준의 의료진과 장비를 갖추고 있어 환자들이 서울이나 대구까지 나가지 않아도 최고 수준의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심장센터의 위상은 최근 지역심뇌혈관질환센터 지정으로 더욱 확고해졌다. 올해 6월 26일 개소식을 마친 직후 주말 사이에 급성 심근경색 환자 7명이 몰려온 일화는 이 센터의 위상을 보여준다.
"개소식을 축하한다는 듯이 급성 심근경색 환자가 주말 사이에 7명이나 왔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었어요. 그만큼 지역에서 우리를 믿고 찾아주신다는 뜻이죠."
한 병원장의 설명처럼 이곳 심장내과는 9명의 전문의가 24시간 교대로 응급심장질환에 대응하고 있다. 대학병원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인력 규모다. 특히 PET-CT 장비는 대게 대학병원의 경우 대기 시간이 긴 반면 바로 검사할 수 있다는 부분이 강점이다.
정형외과는 더욱 세분화돼 있다. 상지관절센터, 하지관절센터, 척추센터로 나뉘어 각각 전문의들이 특화 진료를 담당한다. 18명의 정형외과 전문의가 근무하는 규모도 놀랍지만, 특히 상지관절 분야의 명성은 전국적이다.
"상지관절 쪽은 전국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유명해서 경기도에서도 환자가 찾아옵니다. 제3차 병원에서도 의뢰해서 보내주고요."
뇌병원은 아예 별도 건물로 운영 중이다. 1층은 신경외과, 2층은 신경과로 구성돼 있으며, 신경외과 전문의 5명과 신경과 전문의 4명이 24시간 뇌혈관 응급질환에 대응한다. 혈전제거술, 코일색전술 등 최첨단 뇌혈관 시술도 언제든 가능한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밤에도 중풍 환자가 오면 바로바로 혈전제거술을 시행합니다. 이런 시스템을 유지하는 건 정말 쉽지 않아요. 사실 적자예요. 하지만 지역 의료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하고 있습니다."
2017년 개원한 암병원은 지역 의료에 대한 사명감으로 오픈했다. 한 병원장은 "지역 환자분들이 서울이나 대구까지 가서 경제적, 신체적 부담을 겪는 것이 안타까워서 만들었다"고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암병원은 진단부터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재활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최첨단 방사선치료기 2대를 보유한 것은 이 규모 병원으로는 드문 일.
"일부 대학병원들도 방사선치료기를 한 대만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는 두 대를 운영하고 있어요. 환자들이 치료 대기시간 없이 바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웰빙센터 건물에서 통합면역센터까지 갖추면서 암 환자들은 원스톱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지역 암 환자들에게는 그야말로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로봇수술과 AI로 '미래 의료' 준비
최근 세명기독병원은 로봇수술센터를 개설해 미래 의료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 의정갈등 시점에 경북대에서 이직한 비뇨기과 전문의를 영입하면서 본격적인 로봇수술을 시작했다. 6개월 만에 비뇨기과와 일반외과에서 200여 건의 로봇수술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처음 시작치고는 나쁘지 않은 성과입니다.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한 병원장은 로봇수술 확대 계획도 밝혔다.
세명기독병원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는 AI(인공지능) 도입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마트병원을 목표로 AI를 활용한 진료시스템 혁신, 영상의학과 판독 보조, 진료 보조 시스템 등 도입을 검토 중이다.
한 병원장은 "직원들에게도 ChatGPT 같은 AI 도구를 적극 활용하라고 권하고 있다"며 미래 의료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서비스 로봇 도입도 검토 중이다. 병원 내 약물이나 물품 배송을 로봇이 담당하게 해 직원들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또한 세명기독병원은 사립병원이지만 공공의료기관 못지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응급의료센터 운영이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만 18명을 두고 있어 대학병원급 응급의료체계를 자랑한다.
"다른 대학병원들도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18명 없는 곳이 많아요. 저희는 지역 응급의료를 책임진다는 자세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수익성이 낮아 다른 병원들이 축소하거나 없애는 진료과목도 꿋꿋이 유지하고 있다. 수부외과가 대표적이다. "예전에는 수부외과 전문의가 많았는데 최근 들어 줄어들고 있어요. 하지만 수부 환자가 계속 있으니가 우리가 해야죠. 환자들이 어디로 가겠어요?"
한 병원장은 "가장 큰 공공의료는 지역의료와 필수의료를 책임지는 것"이라며 "응급의료센터 운영하고 모든 필수 진료과목을 유지, 24시간 응급환자에 대응할 수 있는 의료 인프라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공공의료"라고 강조했다.
직원 만족도 높은 조직문화…의료진도 장기근속
세명기독병원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의료진의 장기근속이다. 10년 이상 근무한 전문의만 30~40명에 이른다. 이는 지역 중소병원 장기근속 의사를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할 때 이례적인 일.
"수익성을 너무 강조하지 않습니다. 의사들에게 비급여나 실손보험 연계를 강요하지 않아요. 자꾸 그런 압력을 넣으면 결국 오래 근무하기 어렵고 병원 이미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죠."
한 병원장의 인사관리 철학이다. 실제로 이 병원에서는 직원들이 자신이나 가족이 아플 때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을 이용하는 비율이 높다고 자부했다.
병원 내에는 직원 소리함, 마일리지 제도, 직원 가족이 운영하는 온라인 장터 등 직원 복지를 위한 다양한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주택 제공, 적정 수준의 급여 등 복리후생도 충실하다.
그래서일까. 이 병원에는 노동조합이 없었다. "노조가 없는 병원 중에서는 저희가 제일 큰 곳 중 하나일 겁니다. 직원들의 요구사항이 있을 때 최대한 반영하려고 애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세명기독병원은 규모, 시설을 넘어 지역의료에 대한 진정한 사명감과 환자 중심의 의료철학이 녹아있었다.
한영빈 박사가 75년 전 천막진료소에서 시작한 '환자를 위한 의료'라는 초심이 세대를 넘어 이어지면서, 포항 지역 의료의 중심축 역할을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의료라는 게 본질적으로 어려운 사람, 아픈 사람을 도와주는 일이니까 정말 잘해야 합니다.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신뢰받는 의료를 해야 한다는 게 저희의 철학입니다."
이는 세명기독병원이 75년간 지켜온 의료철학이다. 지역 거점병원으로 묵묵히 제 역할을 해나가고 있는 세명기독병원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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