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2026학년도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을 철회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물러섰지만, 전공의 추가 모집은 정원의 10%에도 못 미쳤고, 의대생 복귀 역시 멈춰선 상태다. 수개월간 이어진 공백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정부는 복귀 유인책을 수차례 반복하고 있다. "불이익은 없다",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젊은 의사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단순히 소통의 부족, 또는 정책의 미세 조정 문제만으로 이 집단적 침묵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왜 전공의와 의대생은 복귀하지 않냐는 질문이 대중들로부터 나오는 게 이상치 않다. 원점이 됐으니 표면적으론 모든 게 '원상 복구'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정작 그럴까.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멈춰 선 이유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번 사태는 그들에게 하나의 깨달음을 안겼다. 진짜 두려움은 '정원 확대'라는 정책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정책의 근거와 과정 없이, 실권자 몇 명의 말 한마디로 의료계의 생태계 전체가 뒤집힐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움의 기저에 자리한다. 의대를 선택한 결정, 혹은 인생의 방향성이 권력자의 의지에 따라 하루아침에 롤러코스터를 탈 수 있다는 불안감. 그것이 이들을 멈추게 한 결정적 요인이다.
이러한 불신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제도와 신뢰의 문제다. 정책 결정이 예측 가능하고 투명한 절차를 따르지 않는다면, 어떤 논리도 통하지 않고, 어떤 약속도 믿기 어렵게 된다. 정부가 말을 바꾸면 현실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면 또 다른 현실이 찾아온다는 경험은 젊은 의사들로 하여금 '룰이 바뀌는 불합리한 게임판엔 아예 들어가지 않겠다'는 판단을 내리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지금 논의돼야 할 것은 단순히 의사를 더 뽑을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자꾸 '얼마나'의 문제에 매달리지만, 젊은 의사들이 던지는 질문은 '어떻게'의 문제에 가깝다. 왜, 어떤 근거로, 누구의 참여 속에서 정책이 결정되는가. 그 방식이 정의롭고 일관되며 예측 가능한가. 심판의 자의적 해석과 관점에 의해 룰 자체가 바뀌지는 않는가.
필수의료 기피에 대한 오해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흔히 젊은 의사들이 힘든 과를 기피한다고들 하지만, 실제론 다르다. 필수의료를 피하는 게 아니라, 고된 노동과 헌신에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건강보험 체계에 대한 기피'가 바른 말이다.
선배들의 삶을 지켜본 젊은 의사들은 지금의 구조 안에서 필수의료는 자아실현과 보람의 대상이 아니라, '희생만 강요당하는 자리'라는 인식에 눈을 떴다. 손해보고 밑지는 '불합리한 게임'이 지속되면 플레이어는 그렇게 게임판을 떠난다.
결국 문제의 뿌리는 '신뢰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제도가 아닌 정치적 의사 결정, 대화가 아닌 일방통행식 발표, 투명한 조율이 아닌 즉흥적 선언이 지금의 의료계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설득의 언어가 작동하지 않는 것은, 그 언어를 믿을 수 없는 구조 속에서 내뱉기 때문이다.
이제는 전면적인 거버넌스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책은 수용의 대상이 아니라 참여의 결과여야 한다. 방법을 함께 모색하고, 실행의 정당성을 논의하고, 사후 평가가 가능해야 한다. 의대생과 전공의가 복귀하느냐 마느냐를 묻기 전에, 그들이 다시 시스템을 믿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먼저다.
지금 필요한 건 명령이 아니라 설계이고, 통보가 아니라 신뢰다. '불합리한 게임'이 지속되면 지켜보던 플레이어는 게임판을 떠난다. 전공의·의대생의 미복귀는 바로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게임판의 현실을 보여준다. 신뢰 없는 시스템에선 복귀가 아니라 탈출이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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