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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개선을 위한 기업의 역할

발행날짜: 2022-10-26 05:30:00

의약학술팀 이인복 기자

전 세계를 흔들었던 코로나 대유행이 바야흐로 엔데믹 시대로 서서히 접어들고 있다.

여전히 풍토병으로 여기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일상회복에 대한 노력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맞춰 산업계에서도 코로나 대유행의 여파가 정상화되고 있다. 코로나가 본격화될때 큰 파장이 일었던 백신 공급은 완전히 정상화됐고 진단 키트 품절 등의 현상도 과거 일이 됐다.

사실 코로나 대유행은 제약업계와 의료산업계에도 역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매출이 수억원에 불과했던 기업이 조 단위 대기업으로 거듭났고 치료제 키워드만 붙으면 주가가 수천 퍼센트씩 널뛰던 시절도 있었다.

그만큼 역사에 남을 정도의 펜데믹 여파는 컸다. 당장 대응해야 하는 일들이 수없이 밀려들어왔고 이에 맞춰 전 세계적으로 규제 기관들도 임기응변의 상황에 몰렸다.

이른바 신속허가나 패스트트랙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과거 같으면 신청조차 불가능했던 검증이 끝나지 않은 기술들이 잇따라 신속허가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나왔고 이 문제는 의학계에서도 수많은 논란을 가져왔다.

과연 이러한 논란은 기우였을까. 최근 진행된 연구 결과를 보면 막상 그렇지도 않은 듯 하다.

국내 연구진이 시중에 가장 많이 유통된 국산 신속항원검사 진단 키트에 대한 정확도를 조사한 연구가 대표적인 경우다.

연구진이 신속진단키트와 RT-PCR을 동시에 받은 환자 5792명을 대상으로 비교 분석한 결과 키트의 민감도는 불과 57.2%에 불과했다.

실제로는 양성이지만 10명 중 많게는 5명이 음성으로 판별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CT값이 낮아질 수록 더욱 심각한 결과를 보였다. CT값이 25 이하일 경우 양성 환자의 절반 이상이 음성으로 분류됐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내놓은 지침에 따르면 신속검사키트는 최소한 민감도 80% 이상, 특이도 97% 이상이 돼야 한다. 결과적으로 여기에 턱없이 모자란 민감도를 가진 기기가 수년간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에 수출된 셈이다.

어찌보면 이는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코로나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규제 기관은 면밀히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할 시간이 부족했다. 기업이 제시한 임상 연구 결과를 100% 믿을 수 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번 연구에 활용된 A사의 키트의 경우 임상시험에서 민감도 90%를 기록했고 이를 기반으로 허가가 이뤄졌다. 하지만 실제 연구 내용을 살펴보면 부실하기 짝이 없다.

불과 수십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이 또한 이미 확진된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설계에도 분명한 구멍이 있었다.

그러나 이 기업을 막연하게 비난할 수도 없는 부분도 있다. 말 그대로 전 세계적으로 경험한적 없는 전염병이 발생했고 당장 대응하기 위한 무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미봉책이라는 것을 알았어도 달리 방법이 없던 셈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러한 핑계를 댈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다. 여전히 코로나 대유행을 이유로 제대로 검증받지 않은 기기가 시장에 나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강도 높은 검증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이러한 가운데 일부 기업들이 코로나와 다른 질환을 동시에 검사하는 이른바 콤보 키트에 대한 패스트트랙을 요구하고 나섰다. 당장 현장에 필요하지만 규제에 막혀 시장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제도가 현장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미봉책을 지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규제 기관은 국민들이 안심하고 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철저하게 검증하는 것이 존재의 이유다. 위기로 인해 혼란스러웠던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놔야 한다.

또한 기업들도 실제 리얼월드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자기 검증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미 코로나 대유행은 엔데믹으로 가고 있고 수년간 쌓여진 데이터는 검증에 충분할 만큼 쌓여 있다. 더 이상 위기라는 핑계로 패스트트랙을 기대해서는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다.

규제 개선은 분명 장기적으로 나아가야할 길이다. 하지만 그 근거는 기업이 만들어 줘야 한다. 위기라는 이유로 민감도 57%짜리의 기기를 시장에 내놨다면 그 위기가 끝나가는 지금 스스로 검증에 임해야 한다. 한번 잃어버린 신뢰는 규제 강화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그건 기업이 만든 스스로의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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