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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료' 이상과 현실의 괴리

김준영
발행날짜: 2020-05-06 05:45:50

김준영 우리여성병원 과장

공보의 3년차를 목전에 둔 겨울, 근무하던 병원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1주일 정도 대기 후 발령이 났다. '시립' 치매 요양병원이라는 곳으로. 첫 출근을 해서 행정 직원들 및 병원장(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유일한 봉직의)과 간단한 인사만 나눈 후 이사장 면담을 하러 갔다. 볕이 잘 드는 멋진 방이었다. 벽면에 있는 커다란 책장에는 감사패며 표창장이 그득했다. 그러고 보니 사무실 이름도 "XX의료재단 이사장실"이다. 왜 민간 의료 재단의 이사장실이 시립 치립 치매 요양병원 내에 있을까? 의문은 곧 풀렸다. 지자체는 이사장이 운영하는 의료 재단에 병원 경영을 위탁했다.

민간 병원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직원은 의료 재단이 직접 고용했고 진료 행위는 민간 병원과 동일 했다. 시립 병원다운 진료를 담보하기 위한 시의 간섭이나 감시는 전무했다. 아니 있었다고 해도 지극히 형식적이라 아무런 영향도 없었을 것이다. 보건소장이 바뀌었다고 한번 들르기는 했는데 마치 유세 나온 정치인처럼 악수만 하고 사라졌다.

공공 의료기관이 전담해야 할 환자가 특별히 더 많지도 않았다. 무연고 치매 노인 치료가 설립 목적의 하나라는데 주말이면 보호자들 차량으로 주차장은 미어터졌고 원내 매점이 독점하는 간식이나 각종 소모품 가격이 비싸다는 불만이 보호자들로부터 종종 터져 나오곤 했다.

내가 느낀 유일한 차이라면 급여가 두 군데에서 들어온다는 것. 기본급은 지자체가 진료 장려금은 병원이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민간병원은 공보의 파견을 받는 대신에 급여는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 시립이라는 이유로 공보의 급여의 일부까지도 지자체가 보조해 주고 있는 셈이었다. 많지도 않은 급여였음에도 말이다.

이사장실의 벽면을 채운 감사패며 표창장 같은 것들은 단지 장식만은 아니었다. 이사장은 관변단체들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이사장과 오랫동안 일해왔다는 총무부장의 말에 따르면 지역에서 여당(지금은 야당이 된 그 당의 전신) 공천을 노리고 있다고 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소위 의료 봉사를 자주 나갔다. 지역 유지나 고위 공무원의 고향 마을이나 이사장이 공천을 받기 위해 공들이는 동네를 주로 찾았다.

봉직의는 병원장님 한 분뿐이고 당연히 가장 많은 일을 하시고 계셨기에 이 봉사에 동원되는 것은 언제나 공보의들이었다. 파견된 공무원인 공보의가 공사 구분이 애매한 의료 봉사에 동원되는 것은 복무규정 위반 소지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 자신도. 봉사를 핑계로 바람 쐬고 일찍 퇴근하는 게 솔직히 싫지만도 않았고.

민간 법인병원들이 대개 그렇지만 이사장이 병원의 주인 행세를 했다. 직업 군인 출신이었는데 출신이라 그런지 권위에 대한 집착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었다. 이사장이 병원에 도착하면 행정 직원들이 병원 정문에 도열해 이사장을 맞이하고 병원을 떠날 때는 이사장의 승용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조폭처럼 허리를 굽힌 채 있곤 했다. 회식 전원 참석, 불참 시 총무부장에게 사유서 제출 같은 살벌한 공지도 내려오곤 했다. 회식에서는 내내 이사장의 자기 자랑이 이어졌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성희롱에 가까운 언행도 있었던 것 같다.

시립 치매 요양병원을 떠난 후 정확히 10년이 흐른 해인 2018년 연말, 지역 뉴스에서 이사장의 이름을 보게 되었다. 병원 부지의 기부채납이 운영권 위탁 조건이었는데 이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검찰 조사를 받게 되었다고. 조사 과정에서 횡령 혐의가 더해져 일이 커진 모양이다. 영어의 몸이 될 뻔했으나 고령이라 이것만은 면했다고. 위탁 계약은 당연히 파기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자체는 또 다른 민간 의료 재단에 병원 경영을 위탁했다. 이사장의 부인은 새로운 의료 재단을 차려 요양병원을 여전히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사장 이름으로 검색을 해 보니 여전히 지역의 관변 단체에 관여하는 모양이었다. 궁금증이 생겨 지역 사정을 좀 아는 지인에게 이사장의 근황을 물어보았다. 재판 결과는 모르겠지만 "별 일 없이 산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공공병원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내가 근무해 보았던 공공 병원은 저 꼴이었다. 공공 병원 공보의를 거친 다른 지인들의 사례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상당수가 민간 병원처럼 운영된다. 공익이 아닌 영리가 앞서는 것은 일상이다.

나는 어떤 사안을 평가할 때 경험을 가장 중시하는 보통의 인간이다. 보통의 인간으로서 공공 의료 기관 확충, 특히 지자체발 공공 의료기관 확충 주장에 대해 백안시하는 것은 나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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