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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지를 다시 이을 수 있다면

박성우
발행날짜: 2019-01-03 05:30:20

우리가 몰랐던 성형외과의 세계…박성우의 '성형외과노트'[30]

삶의 의지를 다시 이을 수 있다면

레지던트 2년차는 일은 바쁘지만 마음은 텅 비어있던 날들이었다.

1년 차 때 심하게 부림을 당해서인지 2년차가 돼서는 도저히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병원 안이든 밖이든 어떠한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성형외과 의사로 당찬 포부를 지녔던 것은 유통기한이 한 달도 가지 못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병원이라는 공장에서 나는 하나의 소모품이라고 스스로를 폄하했다. 힘든 수련과 고된 노동의 보상을 취미와 여가에서 찾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힘들게 버티는 이 순간들이 과연 나에게 득일까 하는 의구심이 도무지 떠나질 않았다. 환자를 대하던 초심도 희미해졌다. 2013년 겨울, 외래가 끝나갈 즈음 치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병동에 열상 환자가 있으니 연락 받으면 가보라는 것이다. 응급실에서도 찢어진 환자가 있으면 꿰매는 게 성형외과 주치의의 일이었다. 또 병원 내에서 낙상, 부딪혀서 상처를 입는 환자나 간호사, 의사를 꿰매는 것도 성형외과 주치의가 하게 되는 일이었다. 치프 선생님의 전화가 끊어진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종양내과 병동에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희 병동에 자해하다 팔목에 여러 군데 열상이 생긴 환자가 있는데, 빨리 좀 부탁드릴게요."

"팔목이요?"

"네. 오늘 새벽에 화장실에서 과일 깎는 칼로 손목을 막 그으셨어요. 상처는 깊지 않은 것 같은데, 일단 드레싱은 해놨어요."

"환자는 괜찮나요?"

"일단 처치실에 있는데, 지금은 많이 안정은 되셨어요."

"알겠습니다. 성형외과 수쳐 세트랑 실은 일단 5 - 0 PDS랑 6 - 0 에칠론 모두 준비해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웬일인지 병동 수간호사님이 직접 전화를 했다. 보통 담당 간호사가 노티하는 것과 달랐다. 아마도 새벽에 병동이 꽤나 시끄러웠던 것 같았다. 자해 환자라니, 낙상 환자나 부딪힌 환자는 종종 봤어도 자해 환자는 처음이었다. 혹시나 해서 윗연차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자살 시도로 팔목에 라세레이션 환자인데 어떻게 해야 돼요 ?" "아터리동맥 터진 거 아니지?"

"예. 지혈돼서 괜찮다고 하는 것 보니 그런 건 아닌 거 같아요. 내과 주치의도 그 정도는 구분하겠죠."

"그럼, 가서 상처 깨끗이 세척하고 텐던힘줄이나 그래도 모르니 혈관 괜찮은지 한번 보고, 그냥 꿰매도 돼."

"실은 5 - 0랑 6 - 0 쓰면 돼요 ?"

"너무 깊지 않으면 6 - 0만 해서 피부만 꿰매."

통화를 마치고 우리 병동과 정 반대편에 있는 종양내과 병동으로 향했다. 단순 상처가 아니어서 그런지 양 내과 병동 간호사들이 나를 반겨 주었다. 처치실에는 50대 후반의 환자가 침대에 힘없이 기대어 있었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아저씨가 수척한 모습으로 나를 보고 웃었다. 혹여 다시 자살 기도를 할까 봐 주치의가 처치실에서 보자고 했던 모양이다.

병실과 달리 처치실에는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오가며 업무를 본다. 문을 닫으면 개인 방이나 다름없는 병실에 환자를 두기에는 걱정이 들 법했다.

환자 옆에 있던 부인이 같이 반겨주었다.

"환자분, 성형외과 의사인데 상처 좀 볼 수 있을까요?"

압박 붕대와 거즈를 들쳐보니 도합 20개가 넘는 자해상이 있었다. 우선 드레싱을 보면서 출혈이 심하지 않은 것 같아 안도했는데 상처를 보니 상황이 달랐다. 종양내과에 입원하여 오랜 항암 치료로 힘이 없었는지 상처 자체는 깊지 않았다.

상처를 깊게 낼 힘이 없어서 목숨을 끊지 못한 상황을 보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안쓰러웠다. 상처의 갯수로 봐도 단순히 난동을 피우기 위한 상처는 아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진행된 폐암이 기도까지 전이되면서 기도를 압박하여 호흡곤란 때문에 입원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고 했다. 기관절개술을 해서 임시방편으로 호흡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말도 하지 못했다.

숨 쉬는 것이 너무 힘들고 가족들에게 폐만 끼치는 것 같다고, 그래 서 새벽 1시에 간이 침대에서 자고 있던 부인 몰래 화장실로 나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것이다.

종합병원에 근무하다 보면 별의별 환자를 다 본다. 그중에는 꼭 죽겠다고 난동을 피우는 환자들이 있다. 그런 경우 병동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면서 떼쓰는 아이처럼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지만 아저씨는 그러지 않았다. 힘들었을 결정과 아픈 가장의 모습이 그려졌다. 아저씨가 조금이라도 기력이 남아 있었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아저씨에게는 어떠한 나무람도 비난의 눈길도 보내지 않았다. 대신 상처를 깨끗이 소독하고 마취하고 꿰맬 준비를 했다.

"다행히 상처가 깊은 것 같지는 않아요. 손바닥 쥐었다 폈다 해보시고 움직여보세요. 힘줄이나 혈관 손상은 없는 것 같아요. 일단 봉합은 하는데 나중에라도 손가락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거나 팔목 움직임이 이상하면 다시 상처를 열어봐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아저씨는 괜찮다고 손사래 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깊은 상처들은 꿰매고요. 얕은 상처들은 저절로 낫게 하는 게나을 것 같아요. 실로 꿰매는 것도 다 실밥 자국 남을 수 있어서 꼭 꿰매야 하는 것만 꿰맬게요. 안 아프게 국소 마취할 건데 그때만 조금 아프실 거예요."

아저씨는 씨익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아픈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듯했다. 그렇게 1시간 동안 정성을 들여서 상처를 봉합했다. 혹여 내가 대충 꿰매는 모습을 보이면, 자신이 폐암 말기 환자라서 의사가 대충 한다고 생각할 것 같아 한 바늘 한 바늘 정성을 들였다.

응급실에서 얼굴 이외에 상처로 내원한 환자를 성형외과 의사가 봉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응급실 의사가 봉합한다. 아저씨의 상처도 응급실에 내원했다면 우리가 진료할 이유가 없는 환자였다. 하지만 여기서 되돌아가면 아저씨가 낙심할까 봐 두려웠다.

"환자분, 여기 상처가 많아서 나중에 흉터는 남을 거예요. 아무리 성형외과 의사가 꿰매도 흉터 없이 꿰매기는 힘들어요. 그래도 나중에 다 낫고 퇴원하셔서 생활하실 때 팔에 상처 보이면 흉하잖아요. 최대한 흉터 안 나게 정성들여서 꿰맸어요."

왜 자살 시도를 하셨나고, 병은 치료하면 된다고 병원 의료진 믿고 따라오면 된다는 말들은 싫었다. 아저씨는 나를 보며 씩 웃으며 자신의 상처를 내려보았다. 몇몇 남은 얕은 상처들과 함께 드레싱을 했더니, 내 손을 꼭 잡으며 고맙다고 하셨다. 기관절개술 때문에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입 모양은 고맙다고 말하고 있었다.

"암 치료 마무리 잘 하시고요. 여기 봉합한 것 실밥 제거하고 몇 개월 후에 레이져 치료도 필요하면 받으세요. 그러면 흉터는 훨씬 좋아질 거예요. 제가 아기 얼굴 꿰매듯 봉합했으니, 다시 또 상처 내면 안 돼요. 아셨죠?"

"여보 들었지 ? 선생님이 흉터 안 남게 정말 이쁘게 꿰매주었잖아."

나는 그날 누군가 당신에게 정말 고마워한다면 비록 말은 못할지라도 그 마음이 절절하게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담당 간호사에게 소독하는 법을 알려주며 인턴이나 주치의에게 챙겨달라고 했다.

아저씨와 아 주머니에게는 10일 후에 실밥 빼러 다시 오겠다고 인사했다. 그렇게 또 다시 쳇바퀴 돌듯 10일이 지나갔다. 그때부터 조금이나마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던 것 같다. 10일 후 찾아간 아저씨는 밝은 얼굴로 병동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전히 기도를 압박하는 암 덩어리 때문에 말씀하시기는 힘들었지만 반가워하는 기색은 숨겨지지 않았다.

꿰맸던 상처는 다행히 잘 아물었고 손가락이나 팔목도 잘 움직일 수 있었지만 항암치료 때문에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날의 상처에서 실밥을 제거했다. 일부러 챙긴 샘플용 흉터 연고도 하나 드렸다.

"환자분, 흉터는 남겠지만 이 연고 매일 빼먹지 말고 꾸준히 바르면 좋아질 거예요. 나중에 퇴원하시고 상처가 흉하면 성형외과 외래로 오세요. 보통 몇 개월 지나야 레이저 할 수 있지만, 그때까지는 이 흉터 연고 꾸준히 바르세요."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여보 나중에 레이저 치료도 받으러 갑시다."

아저씨는 자해했던 손으로 OK 사인을 보내며 알겠다고 하셨다. 얼마 후 아저씨가 퇴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미 폐암인데다 주변 장기로까지 전이되어 그리 오래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약속대로 흉터 치료를 받으러 오시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아저씨의 삶을 조금이나마 연장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었다. 자해한 상처가 나을수록 병마로 찢어졌던 아저씨의 마음도 같이 낫기를 바랐다. 나를 반기던 아저씨의 서글서글한 눈매가 방황하던 내 마음에 새로운 의지를 주었듯 말이다.

※본문에 나오는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동의를 통해 그의 저서 '성형외과 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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