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와 유럽문명의 완충지, 발칸[26]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포스토니아 동굴
기사입력 : 2016-06-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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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이야기가 있는 세계여행'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포스토니아 동굴


로비니에서 슬로베니아국경까지는 1시간, 포스토니아 동굴까지는 2시간반 정도 소요된다고 했다. 문제는 여행할 무렵 급증하는 중동난민들 때문에 국경감시가 강화되어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국경에 늘어선 버스가 없어 출입국수속이 곧바로 진행됐다. 덕분에 포스토니아동굴에는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했고, 4시로 예정되었던 투어를 한 시간 당겨서 시작했다.

포스토니아 동굴은 카르스트지형으로 유명한 슬로베니아에서도 두 번째로 긴 석회동굴이다. 카르스트(Karst)라는 단어는 슬로베니아의 크라스(Kras) 지방을 이르는 독일어이다. 이 지방에는 중생대에 만들어진 석회암이 두텁게 분포하고 있어, 용식작용의 의한 독특한 지형이 많다.

따라서 이 지역을 중심으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같은 지형을 나타내는 용어가 되었다. 석회암이 많다고 해서 모두 카르스트지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주로 방해석(CaCO3) 형태의 탄산염이 60%가 넘어야 되고, 웬만한 구경거리가 되려면 90% 이상 포함되어야 한다. 탄산칼슘이 탄산가스가 포함된 빗물에 잘 용해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카르스트 지형으로는 지상에 만들어지는 돌리네(doline)와 우발라(uvala), 그리고 석회동굴(limestone cave)이 있다. 석회암이 빗물에 용식되어 움푹 파이는 지형을 돌리네라고 한다. 토양 속에 있는 석회암이 용식되어 만들어지는 것을 용식 돌리네(solutino doline)라고 하고 지하에 있는 석회동굴의 천장이 무너져 만드는 함몰 돌리네(collapse doline)가 있다.

돌리네가 2개 이상 결합된 지형을 우발라라고 한다. 돌리네 가운데에는 빗물이 빠져나가는 배수구 역할을 하는 낙수혈(sinkhole)이 있다. 석회암의 틈새로 흘러 든 지하수가 하천으로 연결되면 대량의 석회암이 녹아내리면서 석회동굴이 만들어진다. 이런 동굴에서는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 녹아든 탄산칼슘이 다시 결정을 이루면서 종유석, 석순, 석주 등을 만들게 되는데, 이런 지형을 스펠레오뎀(speleothem)이라고 한다.(1)

포스토냐 동굴로 흘러드는 피브카강
24.12km의 포스토냐 동굴(Postonja cave)은 톰린 미고베츠(Tomlin Migovec)에 있는 깊이 975m 길이 24.9km의 알프스 동굴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석회암 동굴이다.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명소인 포스토냐동굴은 피브카강(Pivka river)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이 동굴은 카르스트지형 연구의 선구자 요한 바이크하르드 폰 발바소르(Johann Weikhard von Valvasor)에 의하여 처음 기술되었으며, 대중에 공개된 것은 1818년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초대 황제 프란시스 1세(Francis I)에 의해서이다.

1872년에는 철로를 개설하였는데, 관광객을 위한 동굴열차로는 세계 최초의 것이었다. 1884년에는 류블라냐보다 앞서서 전기불을 밝혔는데, 이 또한 세계에서 최초로 동굴에 전기를 가설한 것이다. 1945년에는 개솔린으로 움직이던 전동차를 전기 전동차로 교체하여 운행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이곳을 점령한 독일군이 천여드럼의 항공유를 저장하였는데, 1944년 4월 슬로베니아 파르티잔들이 공격하여 파괴하는 바람에 7일 동안이나 불탔다고 한다. 이때 동굴입구의 상당부분이 파괴되고 검게 그을렸다.(2) 가이드에 따라서는 동굴에 전기가 가설되기 이전에 횃불에 의지하여 구경을 하다 보니, 횃불의 그을음이 천장에 들러붙은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i2#이제는 한국어로 된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할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영어로 진행하는 동굴가이드의 안내를 받기로 했다. 아직은 한국어로 진행하는 동굴가이드는 없나보다. 입장권을 내고 동굴에 들어가면 한 칸에 두 명씩 탑승할 수 있는 꼬마열차에 오른다. 출발에 앞서 열차 밖으로 몸을 내밀거나 일어서지 말라는 주의를 받는다. 열차가 들어가는 동굴이 생각보다 협소한 장소도 있나 보다.

일반에 공개되는 거리는 열차로 움직이는 거리를 포함하여 5.3km 남짓인데, 1.5km 정도를 걸어서 구경하고 나머지는 꼬마열차로 이동하면서 구경하는 것이다. 꼬마열차는 생각보다 빠르게 달리기 때문에 열차주변에 있는 종유석들은 눈에 들어왔나 하면 벌써 뒤로 지나기 때문에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다. 열차의 전면을 향해서 찍은 사진을 보니 마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골고다의 언덕 주변의 종유석들
회의실(Conference hall)이라는 이름의 광장에서 꼬마열차를 내렸다. 1819년 성신강림절에는 이곳에서 무도회를 열린 뒤로 무도회홀이라고 부른 적도 있다. 이곳에서 조금 걸어가면 높이 45m의 언덕이 나온다. 거대한 산(Great Mountain) 혹은 골고다의 언덕이라고 부르는 이곳에서 기다리던 가이드를 따라 본격적인 동굴탐방이 시작된다.

이곳을 두고 현대 영국 조각의 개척자 헨리 무어(Henry Moore)는 ‘자연의 가장 훌륭한 미술관’이라고 했다. 유연한 곡선이 특징인 그의 작품들을 보면 포스토니아 동굴에서 만나는 자연의 위대한 작품들의 선과 흡사하다는 느낌이 든다.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러시아다리(좌), 피사의 사탑(우)
가이드를 따라나선 동굴 투어는 한 마디로 장관이었다. 종유석은 동굴의 조건에 따라서 자라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정답은 없는 셈인데, 대체로 100년에 1cm 정도 자란다고들 한다. 석회동굴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종유석들은 적어도 수천년의 세월에 걸쳐 조금씩 만들어진 것이다. 느림의 미학으로는 절정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석회동굴에서 종유석들이 부러져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이곳은 보존상태가 아주 좋다. 다만 시멘트를 타설하여 탐방로를 만든 것이 옥의 티라고 할까? 아름다운 석순과 종유석의 모습에 홀리다 보면 걸음이 꼬여 휘청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깊이를 알 수 없어 컴컴한 동굴 속 계곡 위에 걸려 있는 다리를 건널 때는 바짝 긴장하게 된다.

이 다리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포로로 잡힌 러시아군인들을 동원하여 건설했다고 해서 ‘러시아 다리’라고 부른다. 다리 위에서는 컴컴한 가운데 희미한 조명을 받는 피사의 사탑이 계곡 속에 숨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스파게티홀(좌상), 파라다이스홀의 석주(좌하), 다이아몬드(우)
계곡을 건너면 파라다이스 동굴이다. 동굴 초입에 있는 스파게티홀은 천정에 온통 스파게티 면발 같은 종유석이 늘어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파라다이스 동굴을 지나는 사이에 가이드가 불을 끄는 시간이 있다. 키스타임이라고 웅성거렸지만, 사실은 종유석에서 석순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소리를 듣는 시간이다.

종유석마다 물방울이 맺히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물방울 소리들이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 영겁의 세월을 지나는 동안 멈춤 없이 이어져 온 시간의 소리이기도 하다. 조금 더 가면 뻐꾸기라고 해서 두드리면 소리가 나는 종유석이 있다. 속이 비어있기 때문에 정도에 따라서 다른 소리를 낸다. 이어서 다이아몬드라는 이름의 순백색의 석순을 만난다. 바로 옆에 서 있는 황갈색의 석순과는 달리 우유 빛깔의 석순은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불빛의 일부가 투과된다고 해서 다이아몬드라고 부른다.(3)

동굴투어가 끝나고 모이는 장소는 엄청나게 넓은 콘서트홀이다. 무려 1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장소에서는 콘서트가 열리기도 하는데, 피에트로 마스카니(Pietro Mascagni),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 등을 비롯해서 슬로베니아 오케스트라가 다양한 협연을 열었다고 한다. 콘서트 홀 가운데 서서 소리를 내면 어디까지 갔다가 돌아오는지 모를 반향이 환상적이다.

휴먼피쉬(위키피디아에서 인용함)
콘서트홀에 있는 작은 수조에서 양서류 살라만다의 일종인 옴(Olm)을 볼 수 있다. 유럽에서는 오로지 동굴에서만 서식하는 척삭동물이다. 대부분의 양서류와는 달리 어류처럼 물속에서만 산다. 뱀처럼 긴 몸통에 네 발이 달려 있으며 물속에서 살고 있는 특이한 종으로 파충류와 양서류 그리고 어류의 특징도 아우르고 있는 독특한 동물이다.

동굴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눈이 퇴화되어있고 피부에 멜라닌색소가 없어 하얀색이다. 백인의 피부를 닮았을 뿐 아니라 수명도 인간과 비슷하게 80-100살 정도 살 수 있대서 휴먼피쉬라고 하나보다. 슬로베니아에서는 젖은 땅을 파고든다고 해서 모체릴(močeril)이라고도 부른다.

길이 30cm 정도의 휴먼피쉬는 지하동굴의 물이 넘칠 때면 물 밖으로 휩쓸려 나오는 바람에 사람들 눈에 띄기도 했는데, 사람들은 공룡의 새끼라고 믿었다. 이렇게 지상으로 나온 휴먼피쉬는 빛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어간다.

포스토냐 동굴 안을 흐르는 피브카강의 여울목
동굴입구에 가까워지면서 꼬마열차는 작은 계곡을 건너는데 엄청난 양의 물이 계곡을 따라 동굴 속으로 흘러들고 있다.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가이드의 말로는 슬로베니아에는 두 개의 세계가 있다고 한다. 지상의 세계와 지하동굴의 세계. 슬로베니아전역에 얼마나 많은 지하동굴이 있는지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동굴 밖으로 나오면서 ‘참 다행이다!’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렸을 적에 읽은 쥘 베른의 소설 '지구속 여행'이 생각났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슬란드의 사화산 분화구를 통해서 들어간 지하세계에는 1억 5천만년 전에 사라진 생물들이 살고 있었던 것인데 슬로베니아의 지하세계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그 비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웃한 크로아티아의 북부 크라피나 동굴과 빈디자 동굴에서 발견한 네안데르탈인 유골에 있다.

라이프치히대학의 스반테 페보교수는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DNA와 핵DNA의 염기서열을 분석하여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낸 과정을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에 담았다. 발칸여행길에 흥미롭게 읽은 책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포스토냐동굴 어딘가에도 네안데르탈인의 유골이 숨어있지 않을까?

참고자료

(1) 지리세계. 석회암과 카르스트 지형.
(2) Wikipedia. Postonja cave.
(3) 오동석. 두루가이드-크로아티아 여행 바이블-동유럽 발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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