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와 유럽문명의 완충지, 발칸[24]
크로아티아 속의 작은 이탈리아, 풀라(2)
기사입력 : 2016-05-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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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이야기가 있는 세계여행'
크로아티아 속의 작은 이탈리아, 풀라(2)


로마광장에서 동쪽으로 난 좁은 길의 양쪽으로 늘어선 가게들이 막 문을 열기 시작한다. 그 길의 끝에 돌로 된 문이 서 있다. 세르기우스 개선문(Arch of the Sergii)이다. 개선문하면 프랑스 파리에 있는 에투알 개선문(Arc de triomphe de l'Étoile)이 퍼뜩 생각난다.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하여 착공되고 그의 사후에 완공된 높이 50m의 개선문은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영광의 상징이기도 하다. 에투알 개선문은 우리나라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조선말 개화파의 중심이던 서재필은 오랜 세월 이어져왔던 중국에 대한 사대(事大를 청산하고 조선의 자주독립국임을 만방에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사대의 상징인 모화관과 영은문을 헐고 그 장소에 독립문과 독립관을 세우자는 운동을 추진했다. 백성들의 헌금을 모아 세운 높이 14.28m, 폭 11.48m의 독립문은 파리의 에투알 개선문을 모델로 한 것이다.(1)

세르기우스 개선문의 정면(좌), 세르기우스 개선문의 뒷면(우)
개선문(凱旋門, Triumphal Arch)은 전쟁터에서 승리해 돌아오는 황제 또는 장군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대문 형식의 건축물이다. 그 기원에 대하여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승전을 하고 돌아오는 군대를 맞는 개선식장으로 향하는 길을 꾸민 장식에서 발전한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개선문은 고대 로마에서 많이 세워졌는데, 아치형의 통로인 공랑(拱廊)에 원주(圓柱) 등을 배치하고 조각을 더하여 화려하게 꾸미는 형식은 제정 로마의 초기부터 있었다. 로마의 티투스 개선문처럼 큰 아치 하나로 된 단공식(單拱式)에서 출발하여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처럼 큰 아치를 중심으로 좌우에 작은 아치를 곁들인 삼공식(三拱式)이 있다.(2)

풀라에 있는 세르기우스 개선문은 세리기(Serigii) 가문의 세 형제, 특히 29군단의 사령관으로 악티움해전에서 승리를 거둔 루시우스 세르기우스 레피두스(Lucius Sergius Lepidus)를 기리기 위한 것으로 로마 식민지 초기에 풀라의 군항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기원전 31년에 벌어진 안티움 해전은 카이사르의 사망 이후에 로마공화정의 권력을 독점하려는 양대 세력이 격돌하여 승패를 가른 전쟁이다. 카이사르의 유일한 양자 옥타비아누스와 카이사르의 부하였던 안토니우스는 레피두스와 함께 2차 삼두정을 구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토니우스가 아내인 옥타비아누스의 여동생을 버리고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와 야합하면서 두 사람은 일전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그리스의 악티움 해협에서 조우한 두 사람의 함대가 격전을 벌인 끝에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함대가 밀려나면서 전투가 종료되었다. 전쟁이 끝난 다음 옥타비아누스는 로마 최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로 등극했다.(3)

단공식 아치의 양편으로는 쌍으로 된 코린트식 기둥을 세운 세르기우스 개선문은 풀라의 구시가를 감싸는 성벽의 문으로 양편으로는 성벽의 흔적이 남아있다. 원래는 개선문의 위에 레피두스와 두 형의 입상(立像)이 있었다고 한다.

개선문의 앞뒤에 있는 비명은 미소년들과 화관들로 장식한 띠로 둘러졌다. 띠 아래로는 말이 끄는 전투용 전차를, 그리고 기둥의 위쪽 귀퉁이에는 날개가 달린 승리의 여신을 새겼다. 이런 장식들은 아시아의 영향을 받은 후기 헬레니즘양식이다.(4) 세르기우스 개선문 앞의 공간은 포르토라타(Portorata) 광장이다.

울리크스 카페 테라스에 앉아 있는 제임스 조이스
개선문까지 일행을 안내한 가이드로부터 자유 시간을 얻었다. 필자가 개선문을 촬영하는 동안 아내는 개선문 바로 옆에 있는 울리크스(Uliks)라는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 있는 제임스 조이스의 좌상을 발견했다. '율리시스'로 유명한 아일랜드 출신 소설가 제임스 어거스틴 앨로이셔스 조이스(James Augustine Aloysius Joyce, 1882~1941)가 이곳에 앉아 있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스물두 살이 되던 해 만난 노라 바너클과 함께 사랑의 도피행에 오른 조이스는 런던, 취리히, 트리에스테를 거쳐 풀라에 정착하고 베를리치(Berlitz) 외국어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는 이듬해 트리에스테로 옮길 때까지 풀라에서 사는 동안에 '더블린 사람들'에 포함된 단편 '자매', '이블린', '경기가 끝난 뒤', '진흙'을 썼다.

카페 이름 울리크스(Uliks)는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에서 따온 것인데, 카페가 들어있는 건물에 조이스가 영어를 가르치던 베를리치 외국어학교가 들어있었다고 한다. 건물 입구에 있는 대리석 명판에는 크로아티아어와 영어로 이렇게 적혀 있다.

"1904년에서 1905년까지 아일랜드의 유명한 작가 제임스 조이스가 이 건물에서 영어를 가르쳤다.(In 1904-05 James Joyce, the famous Irish author, taught English in this building.)"

조이스의 학생들은 주로 풀라 해군기지에서 근무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해군장교들이었는데, 일하는 것에 비하여 수입은 형편이 없었기 때문에 풀라에서 보낸 시간들이 조이스에게는 그리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5)

성심 박물관
아내와 나는 개선문까지 온 길을 되돌아가기로 했다. 중간에 박물관표시를 보았기 때문이다. 좁은 골목으로 나있는 돌계단을 숨차게 오르다보니 작은 갤러리가 있다. 2011년에 문을 연 스베타 스르카(Sveta Srca) 갤러리는 성모와 예수의 성심교회(Church of the Hearts of Jesus and Maria)를 개조하여 문을 연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말로는 성심박물관이라고 옮길 수 있겠다. 풀라 고고학박물관의 부대전시공간이다. 풀라 고고학박물관은 계단을 따라 더 가면 원형경기장 아래에 있다고 했다. 원형경기장으로 갈 예정이니 시간이 되면 보기로 하였는데, 이곳도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듯하여 발길을 돌려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 축복의 성모마리아 승천 대성당과 티토공원에 잠시 머물었다가 원형경기장으로 향했다.

풀라 경기장의 정면
풀라 경기장(Pula Arena)은 남아있는 200여개의 로마시대 원형경기장 가운데 여섯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며, 가장 보존상태가 좋아서 네 개의 측면 탑과 세 개의 로마건축양식의 기둥이 모두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경기장이기도 하다.

풀라 경기장은 로마에 있는 콜로세움과 비슷한 기원전 27년부터 기원 68년에 이르는 사이에 지어졌다. 석회암으로 지은 외벽은 바다 쪽만 3층으로 되어있고, 나머지는 2층으로 지어 경사를 이루고 있다. 가장 높은 곳은 29.4m에 달한다. 타원형으로 된 경기장은 긴 축이 132.45m 짧은 축이 105.10m이다.

풀라 경기장의 내부모습(위키피디아에서 인용함)
양쪽으로 나뉘어 있는 관람석은 40층의 계단으로 되어있어 2만3천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67.95 x 41.65m 크기의 장방형 경기장은 철제문으로 구분되어 있다. 네 개의 탑에는 각각 2개의 수조가 있어서 분수에 물을 공급하거나 관람객들에게 물을 뿌리기도 했다는데, 경기에 흥분한 관중의 열기를 식히려는 장치였던가 보다.

경기장은 모두 열 다섯 개의 문이 있고, 주통로의 지하에는 동물들이나 선수들이 드나드는 지하통로가 있었다.(6) 경기장의 지하에는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을 비롯하여 당시에 사용되던 기구 등을 전시하고 있다고 했다.(7)

시간에 쫓겨 풀라 경기장을 돌아보지 못하고 약속장소로 갔지만, 일행 가운데 몇 분은 15분이나 늦게 나타났다. 슬로베니아 국경을 넘을 때 시간이 많이 소요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그때서야 끄집어낸 가이드에게 할 말을 잃었다.

참고자료

(1) 위키백과. 독립문.
(2) 위키백과. 개선문.
(3) 나무 위키. 악티움 해전.
(4) Wikipedia. Arch of the Sergii.
(5) Sara Whitestone. James Joyce and the Golden Gate of Pula.
(6) Wikipedia. Pula arena.
(7) Der Reisende - Travels in Germany. 크로아티아 풀라 (2013.6.11~6.13) - ③ 원형 경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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