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타임즈=최선 기자] 병원 현장에서 매일 반복되는 작은 불편이 의료기기와 AI 솔루션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의사와 간호사는 물론 의공학, IT·전산, 행정 등 병원 내 전 직종이 직접 현장의 문제를 찾아 아이디어를 내고, 교육과 멘토링을 거쳐 실제 제품 개발과 사업화까지 이어지는 구조다.
2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병원의료산업박람회(KHF 2026)에서는 학교법인 가톨릭학원·서울성모병원 주최로 사내 혁신 지원 전담 조직인 겨자씨키움센터의 운영 사례 및 사업화 성과가 공개됐다.
2020년 코로나19로 병원의 각종 사업이 중단된 시기에 출범한 겨자씨키움센터는 국내 대학병원 최초의 사내 혁신 지원 전담 조직으로, 의사, 간호사뿐 아니라 IT 전산직, 행정직 등 병원 내 전 직종 구성원의 아이디어를 발굴해 실제 문제 해결과 제품·서비스 개발로 연결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센터의 특징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보다 그 이후의 실행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매년 원내 전 직종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열어 약 20개 팀을 선발하고 6개월간 교육, 1대1 코칭, 멘토링 지원뿐 아니라 상금, 승진, 연구비, 교육 등 인센티브도 제공한다. 이후 최종 심사를 거쳐 데모데이에 진출할 팀을 선정하고 사업화 가능성이 있는 프로젝트는 외부 기업과의 협업과 기술 개발까지 연결한다.

발굴된 아이디어는 의료현장에서 사용하는 제품으로 발전하고 있다. 실제로 KHF 2026 행사장에 마련된 겨자씨키움센터 부스에서는 상용화됐거나 제품화 준비 중인 다양한 아이디어의 구체화 버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누리(NURI)'다. 누리는 가정 호스피스를 선택한 환자와 가족이 집에서 겪는 갑작스러운 통증이나 호흡곤란 등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AI 기반 완화간호 지원 서비스다.
태블릿을 통해 환자가 자연어로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면 AI 간호사가 등장, 환자의 평소 상태와 의료진이 퇴원 시 설정한 처방 범위 등을 바탕으로 대응 방법을 안내한다.
이상락 누리 서비스 대표는 "집에 가서 갑자기 급격한 통증이 오면 가족들이 감정적으로 불안해져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 상황에서 정확한 진통제 사용과 대응을 돕기 위한 AI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가정 호스피스 환자가 퇴원할 때 의료진이 미리 처방한 약물과 용량, 1일 사용 한도 등을 시스템에 설정하고 AI는 그 범위 안에서 현재 상황에 맞는 대응 방법을 제시한다. 환자의 평소 통증 정도를 포함한 개인별 베이스라인과 웨어러블 기기를 통한 심박수, 산소포화도 등 생체정보까지 결합해 환자별 상황을 판단하는 구조다.

간호 현장에서 나온 아이디어도 제품 개발 단계로 빠르게 넘어가고 있다. 'Easy-ABGA'는 응급실 등에서 시행하는 동맥혈 채혈의 실패율과 환자 안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장치다. 동맥은 피부 밖에서 직접 보이지 않아 의료진이 맥박을 촉진해 위치를 추정한 뒤 바늘을 삽입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개발팀은 적외선 기반 혈관 탐지 기술을 이용해 먼저 동맥의 위치와 방향을 시각화하는 데 성공했다. 화면에서는 요골동맥과 척골동맥의 위치가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맥박에 따라 혈관이 움직이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김세영 가톨릭학원 책임간호사는 "동맥이 눈에 보이지 않는 특성 때문에 실패율도 높고 부작용도 발생한다"며 "눈으로 보는 것부터 시작해 최종적으로는 자동 채혈까지 진행해 성공률을 높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현재는 혈관을 시각화하는 단계에서 더 나아가 AI 알고리즘으로 혈관의 깊이와 위치를 추적하고 자동으로 채혈하는 기술까지 개발 범위를 넓히고 있다. 개발팀은 기술 특허를 출원하고 외부 기술기업과 협업 및 투자 유치도 추진하고 있다.
Vein Probe로 명명된 혈관 탐지기는 이미 상용화됐다. 적외선을 이용해 피부 아래 혈관을 화면에 표시하는 장비로, 혈관의 굵기와 방향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혈관이 얇거나 깊어 숙련된 의료진도 찾기 어려운 환자에게 보조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윤화영 가톨릭학원 영업팀장은 "혈관의 방향과 굵기를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실제로 바늘을 어디까지 넣을지는 사람의 영역"이라며 "숙련도가 낮은 초급 간호사의 교육이나 채혈실, 응급실, 소아과 등 다양한 의료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환자 이송 과정의 불편함을 해결한 'RTG Pole Hub'도 대표적인 사례다. 중환자실에서는 환자에게 여러 개의 수액과 수액주입 펌프가 연결돼 있는데, 환자를 검사나 시술실로 옮길 때마다 수액백과 펌프를 이동침대의 지지대에 다시 장착해야 했다.
RTG Pole Hub는 이 과정을 단순화한 클램프형 장치다. 수액백과 펌프가 연결된 이동형 지지대를 그대로 침대에 고정할 수 있어 이송 준비 시간을 줄이고 간호사의 신체적 부담을 낮추는 것이 목적이다.
오종효 가톨릭학원 팀원은 "검사나 시술을 갈 때마다 수액백과 수액주입 펌프를 하나하나 옮겨야 해 시간도 많이 걸리고 간호사도 힘들었다"며 "임상 현장에서 직접 겪었던 불편함을 조금 없애거나 간소화할 수 없을까라는 아이디어에서 개발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제품은 현재 서울성모병원 중환자실에서 실제 사용되고 있으며, 초기 제품에서 경량화와 사용 편의성을 개선했다. 알루미늄 합금을 적용하고 클램프 구조를 고도화해 이동 과정에서 안정적으로 지지되도록 했다. 현재 양산이 가능한 수준까지 개발됐으며 유통과 사업화를 위한 외부 업체를 찾고 있다.
이밖에도 겨자씨키움센터의 개발 트랙에는 현장의 미충족 수요를 직접 겨냥한 다양한 제품이 포진해 있다. 휠체어 환자의 소변백 관리 문제를 해결하는 'CAUTI ZERO', 치과 진료와 중환자실, 방문돌봄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구강관리 보조장치 'ZeroD', 기침을 정밀 분석하는 AI 기반 '콜록', 응급실의 접수와 초진 사이 공백을 줄이는 AI 문진·환자분류 솔루션 'FASTRIAGE', 비위관의 안전한 고정을 돕는 '럭키비키' 등이다.
특히 이들 아이디어의 출발점은 거창한 연구실이 아니라 임상 현장이다. 간호사가 환자를 옮기면서 느낀 불편, 채혈 과정에서 반복되는 실패, 중환자 관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번거로움처럼 매일 반복되는 문제가 개발의 출발점이 됐다.
겨자씨키움센터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거대 대학병원은 의사, 간호사, 의료기사, 연구자, 행정직 등 다양한 직종이 수직적으로 얽혀 있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와도 실제 실행까지 이어지기 쉽지 않다. 오랜 기간 유지된 업무 방식과 조직의 경직성이 혁신의 장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센터는 이 문제를 개인의 열정에만 의존하지 않고 조직 차원에서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는 '구조'로 해결했다. 아이디어를 내는 구성원에게 교육과 연구비, 멘토링을 제공하고 외부 기업과 연결해 기술을 고도화한다.
겨자씨키움센터 한재훈 매니저는 "센터는 사업화 가능성이 확인되면 기술이전과 제품화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한다"며 "아이디어를 낸 구성원의 재능과 전문성을 발굴해 퍼스널 브랜딩과 인재 육성으로 연결하는 것도 센터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은평성모병원 의공학팀은 코로나19 당시 인공호흡기 정보를 하나의 화면에서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중앙 모니터링 시스템을 개발했다"며 "인공호흡기별로 각각 확인해야 했던 기존 방식을 개선한 것으로, 가톨릭대학교 직원 최초로 1억 5000만원 규모의 기술이전 성과까지 거뒀다"고 강조했다.
이어 "센터가 처음부터 사업화를 목표로 했던 것은 아니지만 2021년부터 공모전이 이어지면서 100개 이상의 아이디어가 축적됐다"며 "이제는 이를 병원 밖으로 가져가 실제 시장과 연결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고 올해 KHF 2026에 14개 팀이 참여한 것도 이 같은 변화의 결과"라고 했다.
병원 내부의 아이디어를 외부에 공개하고 기업과 투자자, 의료산업 관계자들과 연결하면서 병원 구성원이 직접 기술을 개발하고 사업화하는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
센터의 궁극적인 목표는 '플랫폼 병원'이다. 진료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전통적인 병원을 넘어 의료진과 직원이 가진 전문성, 임상 데이터, 기술과 아이디어가 외부 기업 및 산업과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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