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덧 칼럼을 기고하기 시작한 지 약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겠지만, 처음으로 글을 쌓아가며 시간을 가늠하던 기간이어서인지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지면을 어떤 이야기들로 채워 나가면 좋을지, 긴장과 설렘을 동시에 느끼며 고민을 이어가던 날들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7편의 글을 써왔다는 게 새삼스레 놀랍기도 합니다.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 바로 독서에 대한 글들인데요. 아무래도 제 가장 오래된 관심사인 동시에 지금의 저를 만든 관심사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어떤 이유로, 어떻게, 어떤 책을 읽어왔으며, 무엇 때문에 계속 읽고 있는지, '독자'로서 살아온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제게도 어릴 때의 기억은 희미한 잔상처럼 남아있지만, 흐릿한 기억 속에서도 책을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적절한 높이의 책장에 꽂힌 전집과 언제든 들을 수 있는 카세트테이프까지 있었으니, 풍족한 독서 생활을 꾸릴 수 있게 도와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스마트폰보다 독서를 더 먼저 시작한 세대의 마지막 구성원 중 한 명으로 태어날 수 있었던 것도 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심심함을 타개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던 어린 시절, 책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매번 색다른 흥밋거리를 제공해 주는 고마운 존재였습니다.
중고등학생 때는 이전처럼 마음 편히 책을 읽지는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마치 책을 읽는 시간이 공부할 시간을 낭비하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독서량은 이전에 비해 줄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여전히 제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진로를 정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장대익 교수님의 『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을 포함한 다양한 과학 서적을 통해 과학과 연구에 대한 흥미를 싹틔울 수 있었고, 김승섭 교수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 을 읽고 의학의 역할이 눈앞의 환자를 치료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 사회 구성원 전체의 건강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의대 진학이라는 목표 또한 가질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글도 쓰고 있는 것 또한 어쩌면 그 시기에 절 찾아와 준 책들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입시를 마치면 책을 많이 읽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대학 입학 후에도 한동안은 그다지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여러모로 정신이 없던 시기이기도 했고, 또 다른 관심사에 몰두하느라 잠시 독서를 등한시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저를 다시 독서의 세계로 인도한 책들은, 오히려 이전에는 잘 읽지 않았던 문학, 특히 소설들이었습니다. 잘 읽지도 않던 소설들이 그때의 제게 왜 그렇게도 필요했는지를,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명확히 알 것 같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저는 모든 것에 일종의 '정답' 내지는 '더 나은 선택'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명확한 정답과 절대적인 기준치가 있는 입시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체득된 이러한 사고방식은, 꽤 견고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대학 입학 후, 그렇게 바라던 자유를 얻었음에도 저는 오히려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었고, 미숙한 지금의 선택이 미래의 후회를 불러올지 두려워 어느 것도 쉽게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시기를 거치며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자신을 정답이라는 틀에 끼워 맞추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틀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탐색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는 것을요. 그런 깨달음을 얻고 또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 바로 소설이었습니다. 소설, 특히 장편 소설은 여러 인물의 생애를 조망하도록 합니다.
그 과정에서 인물은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하게 되죠. 그중 일부는 '정답'에 가까워 보이기도 하고, 어떤 선택은 마치 '오답'처럼 비춰집니다. 하지만 소설을 끝까지 읽어 내려가면 알게 됩니다. 중요한 건 '선택 그 자체' 보다는 '그 선택 이후의 삶' 라는 것을 말입니다. 세상에 옳고 그른 선택이란 것은 없습니다. 그저 선택만이 있고, 그 이후의 삶이 펼쳐질 뿐입니다. 답 그 자체보다도 답안을 써 내려가는 과정이, 또한 그 답안을 정답으로 만들어 나가는 이후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저는 소설을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책을 읽고 또 많은 경험을 하면서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저는, 책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우고 이를 제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이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도 어쩌면 선물 같기도, 한편으로 운명 같기도 한 책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책장을 넘기며 발견할, 페이지 너머 펼쳐질 선명한 세상들을 기대하면서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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