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호사를 시작으로 의료기사, 조산사 등 직역의 면허 범위 확대 움직임이 이어지며 의사 면허체계가 흔들리고 있다.
의정갈등 이후 국회가 잇따라 각 직역별 업무범위를 조정하면서, 의료현장에는 "면허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번지고 있다.
특히, 간호사 진료지원 제도화 이후 의료기사와 조산사, 문신사 등으로까지 업무 확장 논의가 잇따르며 면허체계 전반이 빠르게 재편되는 양상이다.
■ 전공의 공백으로 급물살 탄 '간호법'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급물살을 탄 '진료지원간호사(PA간호사) 법제화'다.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 이후 병원 진료 공백이 현실화되자, 정부는 그동안 의료계 반발로 미뤄왔던 ‘간호사 진료지원업무 수행에 관한 규칙’ 입법을 전격 추진했다. 해당 규칙은 진료지원간호사의 업무 범위, 교육 체계, 책임 구조 등을 명문화한 것이 핵심이다.
PA 간호사는 이미 대부분의 상급종합병원에서 의사 업무를 실질적으로 보조해왔지만, 법적 근거가 없어 불법 의료행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전공의 공백 사태로 수술과 응급진료가 마비되자, 정부는 결국 일부 의사업무를 간호사가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며 사실상 합법화했다.
정부는 당초 54개 업무행위를 제시했지만, 의료계 반대 등으로 일부 축소해 총 43개 항목으로 최종 확정지었다. 삭제된 항목은 PICC 삽입 및 중심정맥관 삽입 등 고난이도 시술 등이다.
하지만 골수천자 및 복수천자, 체외순환 보조장비(ECMO, VAD, IABP 등) 운영 준비 및 관리, 동맥혈 천자 및 말초동맥관(A-line) 삽입 지원 등 그동안 의사만의 영역으로 여겨진 수많은 행위가 포함됐다.
■ 의료기사 법률 개정...초기 간호법 단독 개원 우려 재현
간호법에 이어 여야가 의료기사의 업무범위 확대에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의료계 내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의사의 지도 아래에서만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던 의료기사의 역할을 '처방·의뢰'에 따라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이 추진되면서, 일각에서는 단독 개원으로 가는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현행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은 의료기사를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등으로 규정하며, 이들이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지도 하에' 업무를 수행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과 국민의힘 최보윤 의원이 공동 발의한 개정안은 이 문구를 '지도 또는 처방·의뢰 하에'로 바꾸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의사의 직접적인 지휘·감독이 없어도 처방이나 의뢰가 있으면 의료기사가 해당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입법 취지는 업무 범위 현실화에 있다. 의원실 측은 "현행 규정이 현장의 진료 시스템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의사의 처방에 따라 정해진 업무를 수행하고 이를 기록·보존함으로써 의료기사 업무의 안전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간호법 제정 초기 당시 제기됐던 '단독 개원' 논란과 구조가 유사하다.
지난 2021년 당시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이었던 현 김민석 국무총리는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의사·치과의사의 '지도'가 있을 때만 수행하는 것이 아닌, '처방·의뢰' 때도 업무를 수행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간호법을 대표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 또한 비슷한 내용의 입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의사의 직접적 통제(감독) 없이도 독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기는 것으로, 의사가 한 번 처방을 내린 후 그 실행은 다른 사람이 독자적으로 해도 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법률안 공개 후 대한간호협회를 제외한 대한의사협회 등 13개 직역단체는 '보건복지의료연대'라는 단체를 결성해 강력히 반대했으며, 결국 최종 폐기됐다. 현재 법제화된 간호법과는 다른 내용이다.

의사협회는 의료기사 법률 개정안을 두고 의사의 면허권을 침해하고 국민의 생명·안전에 위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추후 의료기사가 업무를 독자적으로 수행하도록 업무 범위를 확장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라며 "의사 면허 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시도이자 의료체계 안정성을 해치는 입법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의료기사뿐만 아니라 조산사 제도 개선 논의도 병행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은 조산사에 의한 ‘방문조산’을 의료기관 외 의료업 허용 범위에 포함시키는 내용의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조산사 임무 확대, 면허시험 응시자격 완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은 조산사에 의한 방문조산을 의료기관 외 의료업 허용 범위에 추가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조산사 임무 확대, 면허시험 응시자격 완화, 방문조산 허용 등이 골자다.
서영석 의원은 "의료취약지의 산부인과 의사 및 분만 인프라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 문신사법 허용 후 '미용 시술'까지 비의료인 허용 우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향후 이러한 업무 범위 확대 움직임이 '미용분야'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러한 내용은 보건복지부가 지난 2024년 의대 2000명 증원과 함께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처음 담겼다.
당시 복지부는 국민 건강 관점에서 해외사례나 정책 등을 연구하고 사회적 논의를 거쳐 미용의료시술 자격을 비의료인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당시 해외 사례를 주요 근거로 들었다. 해외 일부 나라는 이미 의료적 필요성이 낮고 안전성 확보가 가능한 일부 미용의료시술에 대해 별도의 자격제도 및 관리체계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영국은 보톡스 등 비수술 미용시술의 경우 비의료인에게 일부 허용하고 있으며, 지난 2022년 비수술 미용시술 제공자 및 영업장에 대한 라이선스 제도 도입 권한을 확보한 바 있다. 미국 역시 주별 법령에 따라 간호사(NP, RN) 등에게 보톡스·필러 주사 시행을 허용하고 있다.
의료계는 정책 공개 직후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피부과의사회 등은 "전 세계에서 비의료인의 불법 의료시술로 인한 실명, 피부 괴사, 사망 등이 다수 발생하고 있다"며 "무분별한 미용 의료시술 증가로 국민 건강 위협이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복지부는 추가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며, 구체적 추진을 보류했다.
하지만 최근 정부는 문신사법을 통해, 그동안 법적으로 의사에게만 허용해왔던 문신 행위를 비의료인에게 허용했다. 그동안 법적으로 의사만 할 수 있었던 행위를 비의료인에게 공식적으로 개방한 첫 사례다.
문신사법은 문신을 의료행위에서 분리하고,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국가시험을 통과한 면허 문신사에게 시술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료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움직임이 단순한 직역 간 갈등을 넘어 의료인력 면허체계 전반의 재정비 문제로 확대될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의료현장의 구조적 문제는 내버려두고 계속해서 면허 확장이라는 쉬운 해법만 꺼내 들고 있다"며 "결국 의사 면허 범위를 간호사, 의료기사, 조산사 등까지 쪼개서 시장 논리로 풀겠다는 것인데 이러한 방향은 국민 건강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의료행위 책임 주체가 모호해지면 환자 안전은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며 "직역 간 영역 다툼이 아닌 의료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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