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에 실존하는 장벽이 세워진 듯하던 팬데믹이 끝나고, 사람들은 그동안의 단절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 여기저기로 여행을 떠났다. 평소 여행을 좋아하지 않던 사람들마저도 그동안 빼앗겼던 자유를 다시 찾으러 공항으로 향했다. 그렇게 전국적인 여행 열풍이 불던 시절, 홀로 동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동안 나에게 있어 여행은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일이었고, 막상 여행지에서도 그렇게 행복한 기억을 찾지는 못했기 때문이었다. 평균적인 또래들의 삶과 발걸음을 맞추고자 떠났던 몇 번의 여행들은 그다지 자주 들여다보지 않는 앨범 속 사진처럼 형식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낯섦을 그다지 동경하지 않는 성격 탓일까, 혹은 사랑에 빠질 만한 여행지를 아직 찾지 못한 것일까.
몇몇 지인들은 여행을 가기 위해 고된 일상을 버틸 정도로 여행지 곳곳에서 행복을 잔뜩 찾아오는 것만 같았는데, 나는 무엇 때문에 여행지에서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걸까.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에 골몰하면서 나도 모르게 생각했던 것 같다. 답을 찾기 전까지는 여행을 삼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나는 여행을 떠나고 나서야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사실 거창한 목적을 가지고 떠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존경하는 작가님의 강연을 듣고자 했고, 간 김에 관광을 조금이라도 곁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고속버스 안에서 가고 싶은 몇몇 장소를 겨우 추렸고, 그마저도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충동적으로 바뀌었다.
유명세를 믿고 찾아간 몇몇 가게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어떻게 보면 되는 일 하나 없는 여행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경험을 통해 여행이 가지는 가장 강력한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바로 '일상과의 단절'이다.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에 도착한 이후, 우리의 뇌는 매순간 위기 상황에 직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새롭고 낯선 장소에서 수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지도에 의지해서 처음 가 보는 경로를 찾아 헤매고, 새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감각하고 처리하여 기억으로 저장한다. 여행은 휴식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뇌에게는 강행군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이다.
이렇게 뇌가 바쁘게 돌아가는 동안 자연스레 우선순위가 밀리는 것들이 있다. 바로 일상 속에서 끌어안고 있던 걱정과 고민들이다. 뇌의 빈 공간을 귀신같이 침범하던 불청객들은, 새로운 경험을 처리하느라 바쁜 동안에는 언제 있었냐는 듯 잊힌다.
그동안 나는 여행 중에는 무조건 행복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적어도 나에게 있어 여행은, 일상 속 불행과 근심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전까지는 몸은 일상에서 멀어지더라도, 여행지에서는 행복해야만 한다는 새로운 고민에 사로잡혀 정작 새로운 것들을 감각하는 일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했다.
이번 여행은 하루를 어떻게든 가득 채우고자 갖은 애를 쓰던 기존의 여행과는 시작부터 달랐고, 어쩌면 그래서 더욱 마음 편하게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일상 속에서 꼭 필요한 것은, 잠시라도 걱정을 뒤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쉼표'이지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여행일 것이고, 또 누군가에겐 독서가, 공연 관람이, 맛집 탐방이나 스포츠 경기 직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시 과거의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여행을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렇지만 당신만의 '쉼표'를 꼭 찾길 바란다고 전하고 싶다. 마침표까지 가는 길이 너무 버거울 때, 당신만의 아늑한 쉼표에 숨어 휴식을 취할 수 있길 바란다고. 그 쉼표는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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