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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빌린 패러독스에 빠진 의대생들

발행날짜: 2020-09-21 05:45:50

이인복 의약학술팀 기자

애빌린 패러독스(Abilene Paradox). 조지워싱턴대 제리 하비 교수가 내놓은 이 이론은 집단 행동의 아이러니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용어다.

내용은 단순하다. 미국 텍사스에 사위가 방문하자 장인은 가족들이 외식을 기대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이를 제안한다. 하지만 그들이 외식을 가야 하는 곳은 사막을 건너 세시간이 걸리는 애빌린.

사실 사위를 포함해 모든 가족들은 외식보다는 시원한 집에서 편하게 식사를 하고 싶었지만 다른 가족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는 생각으로 외식에 나선다.

그렇게 사막의 모래 바람을 뚫고 더위를 견뎌가며 외식을 다녀온 뒤 식사 자리에 대한 의견을 묻자 가족 모두 외식은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불만을 털어놓는다. 가족들을 위해 내가 희생했노라고 분통을 터트리며. 아무도 외식을 원하지 않았지만 외식을 갔다온 역설적 상황 나온 셈이다.

결국 애빌린 패러독스가 시사하는 바는 간결하다. 집단 사고와 행동의 불확실성이다.

집단이 꾸려지고 우연치 않게 방향성이 정해지면 그곳에 속한 사람은 다른 구성원들이 당연히 모두 이에 동의한다는 것을 전제로 판단해 자신의 의견을 내는 것을 꺼리며 끌려가게 된다. 이로 인해 집단 행동 자체가 '아무도'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 불확실성을 갖는 것.

혹시나 반대 의견을 내면 집단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소외를 당하지 않을까 싶어 누구도 바라지 않은 방향으로 집단이 나아가고 있는 것을 알고서도 모두가 침묵한 채 끌려가는 아이러니가 펼쳐지는 셈이다.

집단 행동을 접고 학교로 돌아간 의대생들을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가 애빌린 패러독스였다. 모두가 원한다고 생각한 그 길을 위해 국시마저 포기하고 거리로 나섰지만 다들 불만과 불평을 터트리며 제자리로 돌아간 지금 그들의 설자리는 모호하다.

의료계를 대표한다며 사인 하나로 집단 행동을 멈춰버린 이도 젊음을 강조하며 화력 지원을 요청하던 이도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대책이 시급하다는 단어만 반복하는 녹음기를 틀어놓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도 애빌린 패러독스는 여전히 의대생들을 지배하고 있다. 당장 필요한 것은 지금이라도 국시 응시를 통해 의사 면허를 받아드는 것이지만 단체 행동을 접은 지금까지 누구도 이 말을 꺼내놓지 못하고 있다.

의학교육의 특수성인 폐쇄성이 상황을 최악으로 몰아가고 있는 셈. 의대 6년, 인턴 1년, 전공의 4년, 이후로도 모교에서 전임의, 교수로 커가는 그 수많은 세월을 함께 하는 폐쇄적인 집단내에서 누구도 감히 먼저 나서 '나는' 국시에 응시하고 싶다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누구라도 퍼스트 펭귄이 되어야 한다. 애빌린 패러독스를 깨는 유일한 길은 누군가 먼저 얼음을 깨고 바다로 뛰어드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국시를 보고 싶다. 누군가의 그 한마디면 패러독스는 순식간에 부서진다. 혹여 누군가는 정말로 애빌린에 가고 싶을 지도 모르지만 돌아가자는 사람을 비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오히려 그 퍼스트 펭귄이 모두를 살릴지도 모를 일이다.

젊은 의사들을 이끌며 집단 행동의 기수로 나섰던 이는 지금 대형병원 교수들을 찾아다니며 전임의 어레인지를 받기 위해 부산하다고 한다. 수십억의 군자금을 놓고서는 내놔라 말아라 잡음이 가득하다. 전쟁에 나섰던 이들이 각자 제 살길을 찾아 나선 지금 홀로 남아 패러독스의 족쇄 따위를 차고 있을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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