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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의 수술…두 환자의 빛과 그림자

박성우
발행날짜: 2016-07-22 05:00:35

인턴의사의 좌충우돌 생존기…박성우의 '인턴노트'[44]

협의 수술

환자 명단을 출력하여 새벽 6시 55분 외과 회의실에 도착한다. 책상을 정리하고 선생님 숫자에 맞춰 의자를 준비한다. 책상 위에 회진 명단을 깔끔하게 정돈한다. 7시, 선생님들이 회의실로 모이는 대로 아침 미팅이 시작된다.

"10월 15일자 테이블 미팅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ICU 환자부터 보겠습니다."

4년 차 레지던트 선생님이 차례대로 환자를 호명한다. 주치의 선생님들은 자신이 맡고 있는 환자가 호명되면 간단한 브리핑을 한다. 수술 이후 특별히 합병증은 없었는지 식이 진행은 잘하고 있는지 시행한 검사 중에 이상 소견은 없는지 재빠르게 짚고 넘어간다.

나는 옆에서 아침에 X-ray 사진을 찍은 환자들이 있으면 재빠르게 사진을 모니터에 띄운다. 이전 X-ray와 오늘 새벽의 X-ray를 비교하며 장폐색증이 호전되고 있는지 토의한다.

100여 명이 넘는 환자들의 브리핑은 25분 안에 끝난다. 이어 당일 수술 일정을 확인한다. 각 수술실 상황에 따라 어느 선생님이 준비하고 어느 선생님이 스크럽을 설지 정해진다.

"인턴샘은 오늘 E10번 방 준비하고, 그 방에서 계속 스크럽 들어가면 되겠네."

그날은 특이하게도 협진 수술을 준비하게 되었다. 수술의 범위가 넓은 경우 일반외과 안에서도 분과가 나뉘어져 있어 같은 외과 선생님들이지만 전공에 따라 여러 팀으로 진행된다.

예를 들어 대장을 절제해야 하는 경우 대장항문외과 팀이 수술을 집도하고 간을 절제하는 경우에는 췌담도외과 팀이 들어와서 수술을 이어 집도한다. 정규 수술에 비해 협의 수술로 진행된다는 것은 그만큼 수술 부위가 크고 수술 시간이 길어짐을 의미한다.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내가 배정된 수술실에는 딱 2개의 협의 수술이 오전과 오후로 잡혀 있었다. 보통 4~5개의 수술이 진행되는 것과 비교하면 큰 수술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첫 번째 수술은 재발한 대장암이 간에 전이되어 대장 절제와 간 절제를 모두 해야 하는 환자였다. 두 번째 수술은 대장암과 신장암, 그리고 대정맥에 혈전증이 생겨 총 세 개의 수술팀이 들어오는 협의 수술이었다.

수술명만 확인하고도 ‘오늘은 저녁 9시는 넘어야 수술실에서 탈출할 수 있겠구나’ 하고 단념했다. 아침 미팅을 마치고 수술장으로 내려왔다. 잠시 짬을 내 10분 동안 빛의 속도로 아침을 먹었다. 하루 종일 끼니를 거를 수 있으니 미리 대비해두는 차원으로 넉넉히 먹어두었다. 그러고는 맡은 수술실로 향했다.

환자는 30대 젊은 남성이었다. 수술실에서 마주친 환자는 긴장을 감추려는 듯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큰 수술이었기에 마취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도 많았다. 중심정맥관도 준비하는 등 의료진은 바쁘게 움직였다. 나 역시 부산스레 움직이며 수술대의 팔걸이와 발걸이를 준비했다.

먼저 췌담도외과 팀의 집도하에 간 절제를 하기로 했다. 이어서 대장항문외과 팀이 재발한 대장암 부위를 절제하기로 했다. 이런 경우 환자가 입원한 과에서 책임을 지기 때문에 췌담도외과 팀의 수술 역시 대장항문외과 인턴인 내가 계속 스크럽을 섰다. 간혹 다른 인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14시간 동안 서젼은 계속 바뀌면서 수술을 진행하는데 인턴은 14시간 동안 한 번도 쉬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침 9시. 준비하는 데만 1시간은 족히 걸려 수술이 시작되었다. 긴 하루가 되리라는 예상과 달리 수술은 일찍 끝나버렸다. 재발한 암이 이미 대장과 간뿐만 아니라 온 복강과 소장에도 퍼져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수술 자체가 의미 없다. 손 쓸 도리 없이 퍼져버린 암을 눈으로 확인하자 환자의 열린 복부는 그대로 봉합되었다. 좁쌀처럼 하얗게 흩뿌려진 암은 남은 삶이 무참히 부서진 비극의 파편 같았다.

수술에 참여한 의료진 모두 환자의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모두 직감했으나 아무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수술대 위의 무영등만이 병든 장기를 비추고 있었다. 수술 시작 전 완쾌를 바라는 기대 속에 누워있던 환자의 모습이 잔인하게 떠올랐다.

환자를 회복실까지 이송하는 것 역시 인턴잡이다. 마취에서 깨어나기 전 아무것도 모른 채 자고 있는 환자의 얼굴이 측은했다. 오후 쯤 암이 온 복강에 퍼져서 수술이 의미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환자의 마음이 도무지 상상되지 않았다. 그런 감상에 젖을 시간도 없이 바로 다음 환자를 준비하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다음 환자는 여든 살 중반의 할아버지였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암이 콩팥과 대장에 발생했다. 콩팥에 생긴 암으로 인해 이차적으로 발생한 혈전증도 제거해야 하는 대수술이었다. 또 다시 준비하는 데 1시간이 걸렸고 대장항문외과 팀의 수술에 이어 비뇨기과 팀이 수술을 진행했다.

후복막 깊숙이 위치한 콩팥암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조심스러운 조작이 이어졌다. 더군다나 암으로 정상 콩팥에 비해 2~3배는 커져있었기에 절제 과정 역시 만만치 않았다. 더군다나 수술 중 정맥의 혈전이 떨어져 나가 심장이나 폐로 가는 경우에는 수술 도중 그 자리에서 위급해질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혈관외과 팀이 들어와서 콩팥을 떼어내기 전에 수술을 이어받았다. 아기 팔뚝만큼 커다란 대정맥을 절개해서 그 안에 위험하게 자리 잡은 혈전을 제거하는 과정이었다. 종합병원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수술이었다. 우리 몸에서 가장 굵은 혈관인 대정맥을 째고 들어가는 것은 잘못하는 경우 손 써볼 겨를도 없이 대량 출혈로 환자가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혈관외과 선생님의 조심스러우면서도 신속한 집도 아래, 환자를 둘러싸고 외과 선생님 두 분과 비뇨기과 선생님 두 분 그리고 나와 스크럽 간호사까지 총 6명의 의료진이 환자의 복강 안을 보며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 방포 너머에서는 이미 마취과 선생님 3명이 대량 수혈 및 필요한 마취과 처치를 하면서 환자가 수술에 무사히 견딜 수 있도록 분주하게 움직였다. 5시간에 걸친 긴박했던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할아버지는 마취에서 깨어나 중환자실로 이송되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80대 노인들에게 암이 있다고 말씀드리면 살만큼 충분히 살았다고 수술 권유를 해도 안 받겠다 했었어. 요즘에는 90대에도 암이 있으면 수술받고 더 오래 장수하려고 하시지. 시대가 많이 달라진 것 같아."

교수님의 말처럼 두 번째 수술 할아버지는 수술 도중 생명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잘 견뎌내셨다. 마취 후 서서히 돌아오는 통증으로 일그러진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부디 쾌차하여 더 오래, 인생의 황혼기 행복을 만끽하셨으면 좋겠다.

같은 수술실, 그리고 같은 수술대에 누워 수술을 받은 두 환자에게서 느껴지는 인생의 아이러니란. 아직 인생의 절정기도 찾아오지 않은 30대 초반의 젊은 환자에게 생의 비극은 발생했다.

80대 중반의 오랜 나이에도 하루라도 더 삶의 행복을 누리고자 생명을 감수한 용기는 무사히 희극의 막을 올렸다. 행복과 불행은 인생이란 파도의 한 지점 한 순간일 뿐이다. 그렇기
에 우리는 매 순간을 감사해야 한다.

[45]편으로 이어집니다.

※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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